2018. <강원아동문학> 43집 발표
동화
나쁜 기억 지우개
전 세 준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참아야 하는데. 그 순간만 참으면 되는데.....’
동호는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콩콩 쥐어박아 보았지만 조금도 속이 후련하지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조금만 참았어도......’
동호는 가슴을 톡톡 치며 후회 했습니다. 현우와 싸운 일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어제 청소 시간이었습니다. 동호는 현우가 청소는 하지 않고 교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장난만 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계속해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현우가 얄미웠습니다. 오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우는 언제나 청소를 할 때마다 뛰면서 놀기만 했습니다.
“현우야! 그만 뛰어! 우리 모두 청소하는데 넌 뭘 하는 거니?”
참다못한 동호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현우를 향해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뭐? 네가 뭔데 간섭이야? 시끄러워. 너나 청소 해!”
현우는 코웃음을 치며 여전히 이리저리 뛰어 다녔습니다.
“어휴, 저 자식을.......”
동우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 둬. 동호야. 현우가 언제 우리말을 들었니?”
“우리가 대신 빨리 청소하면 끝나.”
다른 친구들은 이미 현우의 고집을 알기 때문에 더 간섭하려고하지 않았습니다.
“에잇! 이 자식!”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동호는 갑자기 빗자루를 들고 껑충껑충 뛰고 있는 현우 앞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순식간에 동호와 현우는 서로 엉켜 붙어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서로 으르렁 거리며 씩씩거렸습니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달려들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떼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주먹질이 서로 오갔습니다. 현우는 코피가 터지자 큰 소리로 엉엉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아이들이 우르르 선생님 앞으로 몰려와 동호와 현우가 싸운 일을 일렀습니다.
“.....그래도 서로 싸우면 안 되지. 코피까지 흘리면서 이렇게 심하게 싸우면 어떡하니? 청소를 안 한 현우도 잘못이고 동호 너도 코피가 나도록 친구를 때리는 건 안 되는 거야.”
선생님은 두 사람에게 번갈아 가며 주의를 주었습니다.
“동호야, 네가 잘못했다고 해라.”
선생님은 동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네? 제가 왜 사과를 해요? 선생님, 현우가 청소를 안 해서 그랬는데요.”
“그래도 네가 현우 코피를 흘리게 했으니 잘못했다 사과 해.”
선생님은 현우 편을 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동호는 청소를 안 하고 장난만 친 것은 현우인데 자기가 사과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동호가 고개를 들고 마지못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미안해.”
동호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차하게 말을 길게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
현우는 동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안하고 입을 실쭉하며 고개를 휙 돌렸습니다. 동호는 그런 현우를 바라보며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다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부터 동호는 현우를 봐도 말도 안하고 같이 놀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못 본 척 했습니다.
동호는 지나간 일이라고 몇 번이나 잊어버리자고 생각했지만, 그 일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늘 머릿속에 남아있던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다 친구 다리에 걸려 넘어져 꼴찌 하던 일, 숙제 해 온 것을 안보여 준다고 옆 짝과 싸우던 일. 3학년 때 친한 친구가 자기가 잘 못 해 놓고 시침을 떼는 바람에 청소를 했던 일.......
동호는 지난 모든 나쁜 기억들을 하루 빨리 모두 잊고 싶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바람에 훨훨 날려 버리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한 가지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옛 생각까지 덩달아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잊어야지.......지나간 나쁜 기억은 지워버려야 해.’
혼자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일이 생기면 또 머릿속에서는 잊어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나타났습니다.
‘그래, 그래 이젠 잊어버리자.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
잠자리에 들 때 마다 혼자 다짐하고 했지만 영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난, 아무 잘못이 없어!’
속으로 외치던 소리가 또 입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이 없는데 먼저 사과하라는 선생님 말씀도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잊어야 해. 생각하지말자. 좋은 일만 생각하자!’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다가 동호는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 무렵이었습니다. 현우 방 조그마한 창문으로 둥근 보름달이 동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크고 예쁜 둥근 달이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안 그랬어요! 정말입니다.”
“선생님, 난 억울해요.”
동호는 자기에게 꾸지람하는 선생님이 둥근달로 변해서 창문으로 얼굴을 쏙 내 밀자 와락 소리를 질렀습니다.
“선생님, 정말이에요. 제가 훔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 내가 잘 안다. 너는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다. 이젠, 지나간 일이니 모두 잊어라.”
“선생님, 잊어버리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지난 나쁜 일들을 모두 깨끗하게 잊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동호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큰 병이야! 머릿속에 있는 나쁜 기억은 싹 지워버려라. 그래야 머릿속이 맑아진단다.”
“안 지워져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래? 그럼 이렇게 해봐. 그러면 나쁜 기억이 사라 질 거야.”
“어떻게요?”
동호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응, 내가 나쁜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를 줄 테니 내일부터 좋은 생각하고 착한 일 한 가지씩 하면서 나쁜 기억을 지워버려라.”
“네?”
동호는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네? 지우개? 지우개를 준다고요?”
창문 안으로 무엇인가를 홱 던지고 사라지는 둥근 달님을 향해 동호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정말이에요? 지우개는 어디 있어요?”
동호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보이지 않는 달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얘, 동호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웬 잠꼬대니? 어서 일어나 학교 가야지.”
어디선가 귀에 익은 엄마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눈을 번쩍 떴습니다. 엄마가 동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지우개. 지우개 어디 있어요? 엄마. 나쁜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
동호는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 방안을 둘러보았으나 지우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우개는 무슨 지우개? 그것도 뭐 나쁜 기억 지우는 지우개라니? 무슨 꿈을 꾸었니? 너 왜 그래? 어서 잠깨.”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중얼거리다가 나갔습니다.
동호는 자기 팔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사이 엄마가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찾아들고 있었습니다. 다시 달님이 던져 준 지우개가 생각나 눈을 비비며 찾았으나 지우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좋은 생각을 하면서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라고? 나쁜 생각 지우개로 지워버리라고?’
꿈에서 본 달님의 목소리가 학교에 와서도 귓바퀴에 뱅뱅 맴 돌았습니다.
그날부터 동호는 착한 일을 하려고 이리저리 다니며 애썼습니다. 청소 당번도 아닌데 친구들과 어울려 청소도 하고, 무거운 짐을 힘겹게 들고 가시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착한 일을 한두 가지 하고 집으로 돌아 온 날이면 웬일인지 몸도 가볍고 기분이 무척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동호의 행동이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동호야, 너 학교에 갔다 오기만 하면 매일 싱글벙글 웃니? 무슨 일이야?”
엄마는 동호의 입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아, 그런 게 있어요. 비밀이에요. 히히.”
동호는 아주 신이 난 얼굴로 힘주어 말했습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동호는 어린이 놀이터로 갔습니다.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줍고 싶었습니다. 동호는 휴지와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순찰하던 관리소장 아저씨가 동호를 보며 칭찬을 했습니다.
“참 기특하구나. 몇 동에 사니?”
“네. 102동 608호요.”
“응, 그래 착한 어린이구나.”
관리소 아저씨는 동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동호는 신바람이 나서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녁마다 숙제를 하면서도 잠자리에 누어도 동호는 마음이 즐거웠고 매일매일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잠도 저절로 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동호는 착한 일을 한날에는 달력에다 예쁜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동그라미 숫자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 동그라미가 뭐니?”
엄마가 이상해서 몇 번 물었지만 동호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딩동, 딩동.”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아파트 현관 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파트 관리소장님 이었습니다.
“소장님이 무슨 일로 저희 집에?”
엄마는 놀란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아, 잘 찾아왔네요. 마침 집에 있었네요. 아드님이시죠?”
방에서 나온 동호를 보자 관리소장님은 웃으며 예쁜 상자 하나를 엄마에게 건넸습니다.
“이 집 아드님 참 착한 학생이에요. 내가 몇 번을 가만 지켜보았는데 우리 어린이 놀이터를 말끔하게 청소해줘서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한다는 게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거든요. 학생이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왔어요.”
“아, 네. 뭐 이런 것 까지.”
엄마는 얼굴이 빨개지며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호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습니다. 동호도 머리를 긁적이며 살며시 웃었습니다.
“너, 그동안 엄마 몰래 참 착한 일 했구나. 와, 우리 아들 대단한데.”
엄마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동호를 얼싸안아줬습니다.
“엄마, 나 잘했지?”
“그래. 우리 아들 최고!.”
동호는 얼른 관리소장님이 주고 간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동호가 갖고 싶었던 로봇이 들어 있었습니다.
“와 너무 좋아. 엄마.”
동호는 너무 좋아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녀석도 참. 그렇게 좋아?”
“그런데 엄마. 나 이젠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나쁜 일들은 생각나지 않고 요즘 은 좋은 일만 자꾸 생각나 기분이 좋아.”
“그래? 나쁜 기억들은 머릿속에 넣어두지 말고 그때그때 다 잊어야 해.”
“맞아! 달님이 나쁜 기억 지우개를 선물로 준 덕분이야. 매일 매일 좋은 생각에 착한 일 많이 하면 마음이 즐겁다고 하더니 진짜야. 하하하.”
동호는 달력의 동그라미가 많아질수록 기쁨으로 차올랐습니다.
“달님이 준 나쁜 기억 지우개는 무슨 소리니?”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동호는 혼자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엄마,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이에요. 헤헤.” 동호는 혼자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달님아, 고마워. 그 나쁜 기억 지우개를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 지우개로 내가 착한 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 착한 일을 하니까 내 머릿속에 있던 나쁜 기억들이 하나 둘 사라져 버렸어.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동호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간 달님을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내일 또 착한 일을 해야지!.’
동호는 로봇을 꼭 안고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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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어린이강원 동도신문 소설 동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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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동화집 4. 동요가사집 2. 동요작사 100여편 작곡됨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