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떡볶이의 족보
학교 앞이나 시장 골목 어디든 빠지지 않고 파는 간식은 떡볶이다. 달달하고 매콤해서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쫄깃한 가래떡에 얇고 부들부들한 오뎅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만든 빨간 국물에 빠진 떡볶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뚝뚝흐른다.
중학교 때 1년에 한 두번 여학생들은 가사 시간에 조리실에서 실습을 했다. 그때 만든 요리 중에 떡볶이도 있었다.
지금처럼 쉽게 해먹는 빨간 떡볶이가 아니라 하얀 궁중떡볶이였다.
준비물은 가래떡,쇠고기,표고버섯,미나리,석이버섯,당근,숙주나물,파,간장 등이었다.
쇠고기에 양념을 해 가늘게 썰어 볶다가 떡과 버섯을 넣고 간을 맞춰 끓이다 미나리와 계란지단,실고추,잣으로 장식했다.
궁중떡볶이는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고추장 떡볶이가 나온 것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대체로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이라는 증언이 지배적이다.
떡볶이의 기원은 떡 산적으로 본다.산적은 양념을 한 재료를 꼬챙이에 끼워 석쇠에 굽는 것이다.예전에는 고기를 구운 것은 육적,생선을 꼬챙이 끼워 구우면 어적,채소를 구운 것은 소적이라고 했다. 또 숯불에 굽는 것뿐아니라 번철에 지지는 것도 전이라 하지않고 적이라 했다.
떡산적 역시 떡과 각종 버섯과 채소를 꼬챙이에 꿰어 요리한 것이니 소적에 해당한다.
떡산적이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선조 때 문신 유운용의 <겸암집>이다.각종 제사 때 떡 산적을 올린다고 적혀있다.
18세기 중엽 영조 27년 윤 5월 2일 <승정원일기>에도 "어머니께서 절편과 병적(떡산적)을 좋아하셨는데 치아가 좋지 않아 잘 드시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다 한다.
영조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된 숙빈 최 씨다.
떡볶이라는 한글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19세기말 요리책인 <시의전서>다.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1919년 상주군수를 지낸 심환진의 며느리인 홍 정에게 필사본이 전해지면서 알려진 책이다.
파평 윤 씨 종가집, 안동 김 씨 종가집 떡볶이가 독특하다고 한다.그것은 조선 후기 사대부 집안에서 떡볶이를 해 먹으면서 널리 퍼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릉중앙시장 근처에도 떡볶이 맛집이 성업 중이다. 젊은이 들이 즐겨찾는 그곳에 들려 매콤 달달한 떡볶이의 쫄깃한 맛을 즐기면 기분 전환이 된다.
빨간 국물에 카레가루를 넣으면 더 맛있는 떡볶이가 된다. 걸쭉한 빨간 국물에 삶은 달걀, 바삭한 튀김이나 순대를 찍어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