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창문외과
박 순 태
오래전에 정비했던 몸체의 문짝이 또다시 삐걱거린다. 노출되지 않는 깊숙한 곳이라 당황스럽고 거북스러워 난감하다. 관리 잘못을 자책하면서 재정비에 나섰다.
몸 정비소 앞이다. 출입문이 자동으로 스르르 열렸다. 밤새 쌓였던 퇴적물을 원활히 배출하여 상쾌한 아침을 맞도록 뒷감당해주는 곳이라서 드나드는 문마저 매끄럽나 보다. 꽤 세월이 흘렀건만 엊그제 들린 것같이 분위기가 친숙하다. 무의식중 눈길이 구석구석에 머문다. 벽면 색상이며 내부구조는 물론 집도의執刀醫 표정까지 변함이 없다. 낯설다면 접수대에서 얇은 미소로 맞아주는 마흔 살 정도의 흰 가운 차림 여성 둘이었다.
접수대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니 “2009년에 들리셨네요.” 하면서 곧바로 진료실로 안내한다. 며칠 전 이비인후과 의원에서는 스무 명 이상이나 대기하고 있어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여서 좋다. 하지만 승객 없이 텅텅 비어있는 버스에 몸을 실은 마음으로 진료실을 향했다. “형님 오셨군요.” 반갑게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눈 후 15년 전 그때를 떠올리면서 싱긋 웃었다.
진료대 벽면에 붙은 그림 한 장이 무언으로 지시한다. 엉덩이를 노출한 채 자궁 속의 태아 자세로 벽을 향해 누웠다. 그림의 분부에 따랐던 이력이 있었던 터라 익숙했다. 가장 보여주기 싫은 치부恥部를 간호사 앞에 까발리려니 쑥스러움을 더해 민망하기 여지없었다. 눈 질끈 감고 에라 모르겠다는 식의 철면피가 되어야 했다. 내시경과 초음파로 상태를 점검한 후 정비사는 박힌 이물질을 제거해야겠다는 조심스러운 어투였다. 간단히 기름칠만 하면 될 줄 알고 왔는데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위해 절차를 밟았다. 왼쪽 엉덩이에는 항생제, 오른쪽 엉덩이에는 소염진통제 주사를 맞고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도록 진정하면서 대기했다. 그때 진료를 마치고 나온 환자에게 오늘 비용은 천칠백 원이라며 전한다. 그 말이 귀를 파고들어 마음을 눌렀다. 수고스러움에 대한 대가가 의외로 적다는 판단에서였다. 시간적으로나 절차상으로나 맞닥뜨리는 느낌으로나, 다른 전문 의원과 이것저것 형평성을 따져보니 저울대 눈금이 공평치 않다 싶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무직이 내려앉는다.
내과에서는 청진기로 가슴과 배와 등에, 이비인후과에선 내시경으로 코와 귀며 목에, 피부과에선 이상 부위에 볼록렌즈로, 정형외과에선 방사선 촬영기로, 안과에선 시력검사기로 간단하게 증상을 살피면서 진찰을 하지만 이곳에선 내시경이며 초음파며 하면서 몇 차례 절차가 따랐을뿐더러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악취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에서 코 틀어막고 땀 흘리는 노동자가 연상되는 게 왜일까. 손쉽게 진후診候할 수 있는 전문의과가 무수한데 하필이면 김 박사는 삼디 업을 택했을까. 방향을 조금만 틀어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면 손쉽게 돈방석에 앉을걸.
그런데, 외과 의사 없이 크고 작은 잡다한 수술이 가능하기나 할까. 의사 중의 의사이건만 칼과 바늘을 잡고 피 묻은 손으로 해결한다. 그러하기에 천성적인 희생과 봉사가 묻어 있어야 하는 전문직종이다. 거기에 더해 개인 의료원 간판을 걸자면 진료 폭이 좁아 고달픈 외길을 걸어야 한다. 포경 수술을 덤으로 한다만 배설 부위인 치질과 치루에 한정된 게 올가미다. 환자의 입장을 망각한 채 무슨 연유로 걱정이 여기까지 미칠까. 오지랖 넓은 괜한 생각이라고 가벼이 넘길 수만은 없다.
시간이 되어 수술대에 배를 깔고 누웠다. 온몸의 신경이 아픈 부위에 몰려들었고 긴장이 고조되었다. 부분 마취 주사를 맞는 순간 따끔거리고 욱신욱신하다. 몸은 정비사에게 맡기고 마음은 사업장에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를 떠올리며 머리를 채워나갔다. 수영 경영 부분 천오백 미터 완주 선수가 물살을 가르며 가쁜 호흡으로 골인할 시간이 흐를 즘 그제야 끝났음을 알린다. “형님은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참아내는 데는 단연 금메달감입니다.” 하면서 엄지척 하기에 “두 번째라서 그렇지.” 하면서 화답했다. 일어나니 원망스러웠던 콩알 크기의 엉킨 덩어리가 그동안의 행패를 사죄하는 듯 풀이 죽은 행세를 하고 있다. 수북이 쌓인 피 묻은 거즈가 눈에 들어오자 집도의며 간호사의 고마움이 함박눈 내리듯 쌓이고 쌓였다.
회복을 위한 주의 사항을 듣고 접수대 앞으로 왔다. 조금 전 수술을 보조하던 두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다목적 댐 같았다. 주사 놓기, 수술 도움, 금전 정리, 게다가 청소까지 맡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여인이 “오늘 비용은 십육만 얼마입니다.”라고 알린다. 진찰에서부터 수술까지 진행된 시간이며, 더구나 세 사람이 합심하여 골칫거리를 해결했는데, 어찌 이 금액으로 될까 싶어 받아든 진료명세서를 꼼꼼히 읽어내렸다. 의료보험 몫으로 육십여 만원 책정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이 놓였다.
의학적인 면에서 보면 인간의 역사는 곧 질병 극복의 역사이리라. 정부와 의사회가 샅바싸움을 하는 시점이라 의료 제반 사항에 관심도가 높았었다. 손에 피 묻혀가면서 살을 갈라 도려내고 기워봤자 다른 전문의와 상대 대비 터무니없이 적은 대가에 맴도는 외과. 이러한 실정에서 의사 숫자를 아무리 늘린들 외과 전문의가 얼마나 증가 될까. 너도나도 손쉽게 진료하는 부분만을 선택하려 발싸심이다. 심히 걱정스럽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희생하기 위해 탄생한다. 인간사회는 더욱더 그러해야 할진데 번외로 벗어나려 영악하게 날뛴다. 그 틈새를 비집고 활짝 핀 얼굴이 내 눈을 낚아챈다. 아니 내 뇌리에 무지개를 수놓는다. 매사에 진지하며 결 고운 성품에 인간 냄새 풍기는 둥글둥글한 ‘김 박사’.
"수술 부위 아물면 소주 한 잔 합시대이." 하고서는 자신의 입을 꼭꼭 틀어막는다. 그의 향기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