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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지토 한일 교류회 원문보기 글쓴이: 부산롯데
밥 먹을 때마다 일본 사람들에게 감사 기도를 한다고?
어느 미친........!!
하며 벌떡 일어나실 분 많다는 거 압니다.
그러나 저는 밥 먹을 때마다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해서 빠지지않고 기도를 꼭 합니다.
인정할 건 하고 배울 건 배우자, 그 다음에 따지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매일 만들어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배달해주는데 어찌 감사 기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는 일본이 너무나 가깝다보니 사사건건 서로 물고 늘어지고
특히 독도문제나 교과서 왜곡 문제로 끓는 냄비처럼 잔잔한 날이 없을겁니다.
그러나 여긴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에 산다고해서 반일 감정이 갑자기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친일 감정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 곳에서 살면서 일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따질 것은 목소리 높여 따져야겠지만 인정할 건
솔직히 인정하며 배워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은 브라질에 사는 일본 사람들에 대해 조용히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상파울루의 일본촌 거리로 대부분의 일본이민자들이 이 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일본 농업 이민 역사-브라질 먹거리 시장 장악
일본 사람들이 브라질에 이민온 지는 벌써 약 10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민이 43년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긴 역사를 가졌지요.
그들 역시 한국 이민자들처럼 처음 농업이민으로 시작하였는데,
한국 사람들은 얼마안가 모두 오지의 농장을 버려두고 도시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그 성실함과 끈기로 계속 농사일을 하게됩니다.
물론 일본 이민자중에는 도시로 나와 청과물 행상같은 걸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상파울루 근교에서 농사일에 전념하여
브라질 내의 특수 작물이나 과일류, 야채류, 어패류 등 동양인 입맛에 맛는 먹거리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한국 사람들이 의류업으로 변환한 것과는 다르게 묵묵히,
천천히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신용 보증 수표> 일본-월드컵으로 한국 위상도 급상중
이 곳 브라질에서 일본 사람들은 <신용 보증수표>로 불립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성실하여 서비스 부분에선 정말로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전까진 길에 다니면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은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다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과 4강까지
진출한 우리 대표팀을 보면서 아시아인중엔 한국사람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특히 월드컵 기간동안 브라질 TV에 연일 한국 역사와 문화가 소개되어
일본과 다른 점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지요.
작년에는 브라질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는<베자>
여기자가 쓴 <놀라운 대한민국>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곳에선 우리를 일본 사람 닮은 한국인으로 부르곤 합니다.
당연히 <일한 월드컵>이지요. 아...그게 아니고 <한일 월드컵>이라고 우기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래도 신용 보증 수표로 불리는 일본 사람덕에 덩달아
한국 사람까지 인정받는 기분이어서 씁쓸하지만 낯선 땅에서 살다보니
그런 일본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용 보증 수표, 왜?
그 신용과 존경이 어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겠습니까.
실제로도 브라질에서 일본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불티나게 팔립니다.
자동차도 Honda의 인기는 대단해서 주문하고 기다려야 할 지경입니다.
차의 성능이 대단히 우수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프터 서비스는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이지요.
여담이지만 우릴 항상 눈찢어진 동양인이라고 말하는 브라질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일본 사람 - 한국 사람 - 중국 사람 구분하니?"
-옷 멋있게 입고 화장 많이 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고
그냥 수수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은 일본 사람이고
하고 다니는 사람은 중국 사람-
그 말 듣고 가만 생각해보니 맞는 것도 같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의 눈에도 우리가 겉멋에 상당히 신경쓰는 사람으로 보이나 봅니다.
우리가 치장한다고 거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일본 사람들은 밭으로 공장으로 뛰어다닌 것들이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낳은 모양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농장에서 재배한 식제품을 파는 가게에 가면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이젠 브라질 사람들도 안심하고
물건들을 구입하고,
더불어 이젠 브라질 사람들의 입맛까지 바꿔가고 있습니다.
상호부터 아예 일본명인 이 곳은 화장품 총판입니다.
큰 건물에 화장품 판매뿐만아니라 미용실, 피부 관리실,
네일 샵 등 다양한 학원이 들어서 1년 내도록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입니다.
이제 브라질에서는 일본 미용 학원을 나와야 전문가 소리를 듣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서로 자기네 전통과 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아낌없이 십시일반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자체 건물인 <일본 문화회관>에서는
언제나 일본 사람들이 모여 작은 소리로 문화 행사를 꾸려나가고
위 사진에서처럼 일본 공원을 만들어 어울림의 장소로 사용합니다.
칼,가라데까지도 문화 상품으로 판매하는 일본 사람들
사무라이들의 상징인 칼도 이젠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되었으며
이 곳에서도 검도와 쿵푸의 열기는 대단합니다.
실제로 가라데는 알아도 태권도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
우리 한국의 초기 이민자들중엔 태권도 사범으로 영주권을 받고
들어온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거의가 다른 일로 전환하고
소수의 사범들만 활동하고 있는 실정에서 일본 사람들의
자기 문화를 지켜가는 모습은 솔직히 부럽습니다.
물론 먹고 사는게 당장 급할 땐 문화고 애국이고 생각할 틈이 없게되지만
일본 사람들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텐데도
꿋꿋이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부분은 참 존경스럽습니다.
첫 한국 이민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버선발로 뛰어나온 일본인들
1965년 석 달간의 항해 끝에 브라질에 도착한 우리 한인 이민자들은
말도 안통하는 낯선 나라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산토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일본말로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우리 한국 이민자들을
친형제처럼 돌봐주며 초기 이민의 기틀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농장에서뿐만 아니라 도시로 나와서까지 자질구레한 법적인 일
, 장사 하는 법, 집 얻는 법, 아이들 학교
이웃 사촌처럼 챙겨주었습니다.
특히 이 곳에서는 돈만 있다고 집을 얻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보증을 서 주어야만
건물 임대나 살 집을 세얻을 수가 있는겁니다.
만약 세입자가 월세를 못 낼 경우 고스란히 보증자가 떠안게 되는 제도지요.
그래서 지금도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보증을 꺼리는데,
그 오래전에 아무 것도 없는 한국 사람들을 믿음 하나로
보증서주며 따뜻하게 챙겨준 일본 사람들,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온갖 궂은 일을 다 돌봐준 형제같은 일본인들
특히 미다라는 일본 할아버지는 평생을 거의 한국 사람을 가족처럼
여기고 온갖 보증을 다 서주어 나중에 집세를 안 내고
사라진 한국 사람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러나 언제나 한국은 일본의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그 할아버지 장례식에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와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는 비슷한 외모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나봅니다.
그러나 비슷한 외모나 문화를 가진 동양인으로는 한국도
중국도 있지만 유독 브라질 땅에서 일본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그것을 성실과 치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좀체 그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늘 둘러앉아 있지만 조용 조용 이야기하며
하나의 일을 치밀하게 밀고 나갑니다.
그런 점이 나쁘게 발전하면 한국에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들의 근거가 되기도 하겠지만 좋은 면
으로 발전하면 이렇게 남의 땅에서도
주류 사회를 형성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직과 신용 판매-상권 장악, 이젠 김치까지
한국 식품점에도 라면이 있는데 이상하게 일본 식품점이 더 쌉니다.
그래서 한국 식품점에 이야기하면 운반료와 세금을 말하며 우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은 세금을 안내나요. 장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정직합니다.
그래서 신용을 얻고 꾸준히 성장해 가는 것 같습니다.
일본 코끼리 상표의 전기 밥솥에 일본 쌀을 씻어 넣고
일본 식품점에서 더 싸게 산 각종 야채와 두부로
국을 끓이고 거기다 이젠 일본 김치까지 한국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어버렸습니다.
한국 식품점에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제품이 더 비싸다보니
서서히 일본 식품점으로 발길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밥을 해먹어보면 별 차이가 없는데도 일본 쌀과
한국 쌀의 가격 차이는 너무 큽니다.
쌀 살 때마다 손 떨리고 가슴 떨리는 그 망설임.
부끄럽고 초라하지만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현실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서서히 상권을 잠식하는 사이 이제 김치까지
브라질 시장을 파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김치>가 아닌 <기무치>로 말입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손맛이 그대로 들어있는
발효식 김치가 아닌 일본식 기무치가 마치 진짜 김치인 것 처럼 알려지고 있는겁니다.
맛있는 우리 김치는 보여주지도 못하고 기무치 속에 가려진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 제가 일본 식품점에서 산 물건들입니다-
이 낯선 땅에서 일본 사람들의 정성이 없었다면
제 촌스럽고 까다로운 입맛은 브라질 음식에 적응하느라 진땀깨나 흘려야했을겁니다.
시장 바구니에 물건을 하나 담을 때마다
성실하게 자기 길을 가는 무서운 일본 사람들의 매서운 손 맛까지 담습니다.
야채,곶감, 멸치, 한국 과자 등 한국 손님에 대한 배려도 놓치지 않습니다
. 가족 단위로 일을 하는 일본 사람들의 하이 아리가토~친절은 뻣뻣한
한국 손님까지 녹아들게 합니다.
칼하나로, 젓가락 두 짝으로 세계의 식탁을 잠식하는 일본인들
브라질의 일식점은 최고급 식당으로 인정되어 브라질 사람들이
어색한 손동작으로 젓가락질을 하면서 생선 살을 집어 먹는
것을 아주 고급스런 문화로 인식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젓가락 사용법을 물어오는 브라질 친구들에게 이 젓가락
사용이 뇌운동까지 되고 그래서 동양인들이
머리가 좋은 거라고 뻐기며 가르치고나면
아, 저 젓가락으로 일본 음식 먹을거지....하고 쓸쓸히 웃습니다.
똑같이 젓가락 문화를 가진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우리 끼리만 몰래 돌아 앉아 김치와 된장 먹는 사이 그들은
잘 손질된 예술 생선회에 미소시루(일본 된장국)까지
브라질 식탁에 특별식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실제로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일본 생선 요리들....
그 생선 요리 하나를 만들어 내기까지 새벽부터 바다로
시장으로 궂은 일 마다않고 소리없이 달려간 일본인들의
정성이 오늘날 그들을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만들었나봅니다.
적어도 일본사람들은 생선회 칼 하나만 가져도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밥은 굶지 않을테니까요.
-조그만 간이 음식점에서 조용 조용 일본말 섞어 가며 담소를 나누는 일본 이민 2세대들-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할 일본 이민자들의 삶
이제 100년이 된 일본 이민자들의 삶.
과연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그들의 놀라운 적응과 발전은
어디까지 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외모와 습관을 가진 한국 사람으로서
브라질에서의 그들 삶을 지켜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게 뒤엉킨 일본과 한국.
사사건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는 현실 속에서 막연히
거부감을 가지고 바라본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만나 본 일본 사람들은 누가 뭐라든
자기 갈 길을 조용히 가는 부지런하고 야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서우면서도 부럽고 또 감사했습니다.
취재를 마치며-새로운 희망을 향해!!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지하철 입구에서 일본 사람으로 보이는
고등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얼른 봐서는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구분이 안가 -스미마셍
~-하고 슬쩍 일본말로 다가갔더니 으아하게 바라보지만
그 기본적인 일본말도 못알아 듣는 듯했습니다.
할아버지 때 일본에서 건너와 아버지 세대를 지나며
이젠 완전 브라질 사람과 다름없이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
단 한마디의 일본말도 모르고 일본에도 가 본적이 없지만
그러나 여전히 일본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중 구조의 일본 이민 3세들.
"일본에 가보고 싶진 않아요?"
-하하하, 그 돈이면 독일 월드컵에 가지요....-
아참, 여긴 브라질이지....!
이제 브라질에서 일본 이민의 지속적인 성공
여부는 저들의 웃음 속에 달려있겠지요.
아, 우리 한국인들은 어떻게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며
또 나아가 그들을 뛰어넘어 확실하게
세계 각국에서 신용과 친절의 대명사로 성공적인
, 애국적인 이민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한국을 떠나 살아도 일본 따라잡기/
일본 넘어서기에 대한 고민은 그치질 않네요....
첫댓글 항상 재미있는 소식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