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목재가공단지 시찰
글·사진 / 송재봉 (산림조합중앙회 중부목재유통센터)
10월의 어느 날, 선진지 시찰단에 내가 뽑혔다.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던 일도 있고 임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뭘 보고 올 것인가라는 생각도 언뜻 스쳤다.
낯선 해외여행에 대해 걱정하며 11월 13일 저녁 인천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날 아침, 밥을 먹고 호텔 밖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은 출근하느라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정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여고생들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그게 일상인 듯했다. 미야자키는 일본에서도 기후가 온화한 지역이었기에 우리나라 봄 정도의 상쾌한 날씨로 얇은 겉옷이면 충분해 보였다.
우리는 미니밴 2대에 나눠 타고 첫 목적지인 미야자키 목재이용기술센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 산속의 나무들이 누가 손질한 듯한 모습으로 곧고 예쁘게 서 있었다. 평소에 나무를 예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상품으로 생각해온 내가 예쁘다는 말을 쓸 정도로 보기 좋게 산을 뒤덮고 있었다.
굽이굽이 산을 지나 목재이용기술센터에 도착하였다. 첫인상은 글쎄, 이건 뭐 그냥 공장이나 다를 바 없지 않나라고 생각되어졌다. 세미나실에 앉아서 부소장님의 말씀을 들으니(물론 통역으로) 일본인 특유의 근면함과 자긍심을 엿볼 수 있었다. 미야자키 수목의 90%는 삼나무로 무르고 연해서 구조재로써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성재 연구나 무른 단점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이어갈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해서 자신들만의 기술을 이미 완성하였고 보급 또한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센터의 이름에도 ‘이용’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국도 10년 후면 집성재의 이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건물을 도색한 색깔이 100년 후 목재의 색깔을 추정해서 칠해놓은 것이라고 한 것과 집성재에 대한 인식이 제재목보다 떨어지는 것이 10년 후면 의식이 개선돼서 널리 보급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쉽게 말해 최소 10년에서 멀리 다음 세대까지 바라보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의 화려함이나 목재의 웅장함이 아니라 이들의 정신의 광대함에 조금쯤 감명을 받았다고 할까, 시샘이 났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이용기술센터 내 건물의 골조는 전부 다 집성재인 듯했고 인원은 거의 없고 지금은 이미 축적된 기술을 보급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센터 본관의 사무실 건물에 들어선 순간 마치 자랑하듯 늘어선 지붕골조가 눈앞에 펼쳐졌다. 전부 집성재이며 각을 달리하여 서로 맞물려 있는 지붕은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광고하고 있는 듯했다.
난 설명을 듣기보다 저걸 어떻게 따고 걸었을까 생각하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붕을 평범한 사각 박스형이 아니라 사각의 틀 속에 중심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을 사이에 두고 보가 서로 맞물려 올라가 있었다. 서로 잡아주고 있는 형국이기에 비대칭처럼 보이면서도 서로 정교하게 계산되어 맞물려 있었다. 이걸 만들기 위해 프리커팅 기계의 수치를 얼마나 정교하게 조정했으며 크레인에 올려놓고 사람들이 들러붙어 집어넣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자랑도 이 정도로 해야 자랑이구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성 프리커트 공장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공장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우리들에게는 목재유통센터라는 절대적인 비교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 수준을 가늠하기가 아주 쉬웠다. 인상 깊은 점은 공장의 건조에너지를 톱밥 보일러로 공급하고 있어 연간 에너지 절감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한 프리컷 과정을 보면 우리 센터의 가공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연결부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2중 3중으로 가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공장의 자동화 라인에 깜짝 놀랐다. 목재를 어떤 식으로 가공할지의 판단도 컴퓨터가 하며 두세 가지 공정을 한 번에 해내는 기계화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미야자키 삼림조합연합회로 향했다. 우리 센터도 규모면에서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곳인데 그곳의 야적장은 우리의 몇 배쯤 될 듯했다. 그렇기에 목재도 체계적으로 적재할 수 있었고, 분류도 확실하였다. 또한 삼나무가 주종인 특성상 균일하고 곧게 자란 나무를 분류하는 것은 낙엽송을 분류하는 것보다 쉬웠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중간 중간 내려 견학하는 형식이다 보니 한 곳을 더 간 것 같은데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약간은 몽롱한 가운데 둘째 날의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향했다.
저녁은 미야자키 삼림조합연합회 간부들과 식사를 했다. 시간으로 계산되는 음식점이었는데 기본안주가 나오고 술은 무제한으로 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근데 여기에도 맹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안주의 양이 적고 천천히 나오기 때문에 술을 계속 먹을 수도 없었고 기다리다보니 시간이 지체되면서 제풀에 지치는 것이다. 뭐 나름대로는 일본문화를 조금쯤 느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아 우리 음식이나 주도 같은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여졌다.
11월 16일 일본 셋째 날, 벌써 목이 건조하고 몸이 나른하다. 바닥난방에서 공기난방으로 바뀐 환경과 계속되는 차량 이동, 낯선 음식으로 다들 몸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 셋째 날의 주된 목적은 집성재 제작과정을 보는 것이다.
차를 달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미가와 광역삼림조합이었다. 이젠 시설이나 규모로 놀라지는 않게 되어버렸다. 이곳도 시설은 거의 자동화가 되어 있었으며 어떠한 공정이든 이미 체계화되어 어떤 것은 어떤 간격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으로 해야 하는지 안정적인 데이터가 이미 확보된 상태로 보였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일향역사라는 집성재 제작공장이었다. 집성재를 직접 제작하는 과정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공장의 주요 골조는 거의 다 집성재로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공장은 철골 부분을 집성재로 대체한 것이 많았다. 물론 이 지역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며 기후가 온화한 지역이어서인지 우리 센터와는 다른 지역적 특색을 보이지만 그래도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지붕을 쳐다보고 이곳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은 부러울 따름이었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은 니코 역사였다. 지붕을 대형 집성재로 꾸며놓은 역으로 입구부터 지붕까지 집성재를 많이 활용한 점이 돋보였다. 이 사람들의 일생에 이렇게 목재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생각이 들며 이렇게 되기까지 노력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스쳤다. 지붕을 사진에 다 담지 못하여 몇 번이고 다시 찍었는데 그래도 다 담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였으면 편한 철골구조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를 목재로 대체한 이들의 노력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실현되길 빌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쿠마모토 제재공장으로 향했다. 일본의 공장은 다들 이런 수준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기계화되어 박피부터 제재까지 한 번에 이루어지는 라인에 우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톱밥을 계속 먹고 있었다. 이 라인의 일부 공정이라도 우리가 들여와 우리 실정에 맞게 개량한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 단가경쟁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시끄러운 기계소음 속에서도 생각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오늘 공식일정의 마지막은 목재를 압축하여 표면을 경화시켜 여러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기계를 시연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기계가공공장에 가까운 곳이었다. 삼나무와 편백을 기계에 넣어 압축시켜 표면을 가공하는 방법이었다. 무른 삼나무도 깨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우리 낙엽송의 송진 문제와 크렉 문제에 대해 서로들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다. 뭐 하긴 아직은 들여온 것이 아니라 다각적인 측면에서 목재이용 및 가공과정을 개선해보자는 생각이니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삐삐삐~” 11월 18일 아침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깼다. 몸은 무겁고 목은 아팠지만 샤워를 하고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객실에서 짐을 꾸려 로비로 내려가니 다들 어제의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제 공항 가는 일만 남았구나 생각하니 좋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여행이란 평소에 잘 느껴지지 않는 이런 감정을 곧잘 느끼게 해주는 게 좋은 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에 차창 밖의 풍경을 건조하게 바라보았다. 다들 출근시간이라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직장으로 향하는 듯했다.
쿠마모토 공항은 노선이 2개 정도밖에 없는 작은 공항인 듯했다. 국내 항공사가 있었기에 수속에 별다른 문제없이 한국행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평일 낮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날씨는 화창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 아닌 기대는 무너지고 아무 탈 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11월 24일, 시간은 벌써 일본을 떠나온 지 일주일이 흘렀다. 내 흐릿한 기억과 쉴 새 없이 눌러둔 카메라 셔터 덕에 퍼즐처럼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출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의식수준은 눈으로 한 번 본 것은 명확하진 않아도 기억해낼 수 있는 것 같다. 평범함 속에 살다보면 그것이 표준이 되어버리고 그것이 기준이 되지만 높은 수준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 그것이 체득되어 기준이 되는 것이다. 문화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네들의 기술과 의식수준은 이미 목재에 대한 연구가 마무리 단계인 듯하다. 물론 이는 그네들의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들의 노력이 이러한 것과 합해진 것도 분명한 것 같다.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니라 이러한 노력과 결실은 우리도 받아들여야 하며 그네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우리들만의 기술로 다듬어야만 이 땅에서 목재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짧은 소견이 이러할진대 우리 모두의 마음은 어떠할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도 이제 조금 더 멀리 보고 뒤도 한 번 보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도성 프리커트 공장. 우리 회사 프리커트 기계(K2)와 비교해서 기계가공된 면의 정밀성이 돋보인다.끝 부분에 보면 가공을 2중 3중으로 하여 가공된 목재가 서로 맞물렸을 때 훨씬 튼튼하며, 이렇게 2중 3중으로 가공하려면 그 정밀성이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에 정확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니코 역사 지붕. 집성재를 이용하여 역사의 지붕을 덮을 정도로 나무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고 그 활용면에서도 목재의 활용, 집성재의 이용이 기술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혼다 겸공기. 목재의 압축 표면을 경화시켜 부피를 줄이고 그 압축된 면을 마감재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계. 목재의 활용면에서 이러한 연구,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목재이용기술센터 사무실. 지붕을 집성재(장재)로 서로 이어놓았다. 기둥을 가운데 두고 4~6개의 상부보가 서로 맞물려 있다. 상부보의 각도도 90나 0°가 아니기에 그 각도를 계산하고 컷팅하는 데 정밀한 기술력을 알 수 있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멋지네요..^^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