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암(知足庵)
지족암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걸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 본디 이름은 '도솔암'이었다.
오래도록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1856년(조선 철종 7)에 추담대사가 창건하였다.
1893년(고종 30)에 환운대사가 건물을 중건하면서 '도솔'의 의역(意譯)인 '지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래 동곡당 일타께서 머물면서 도량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해인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정리)
희랑조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 희랑이 이곳에 토굴을 파고 수도하였다고 한다.
이후 사적은 전하는 게 없다.
16~17세기 유학자들이 '지족암'에 들렸다는 글로 미루어 1796년 승려 관수가 중건하기 전에도 사세가 유지된 것으로 추정.
1850년 추담장로가 머물다가 큰절로 내려간 후 폐허, 1856년 박문환이 중건하였다.
1893년 환운 대덕대사가 중수, 1913년 홍수로 절이 무너짐. 1915년 고산 혜명이 암자를 복원함.
1940년 송해, 1958년 영월, 1963년 정수 등이 머물렀다.
1976년 해인총림 율주인 동곡당 일타대종사께서 머물면서 법당, 요사채 등을 신축, 절의 면모를 변화시켰다.
2010년에서 2013년 향적종사께서 큰 불사를 하였다.
(지족암 안내판 내용 정리)
햇살은 따사롭다. 걷기 좋은 날이다.
국일암 앞까지 갔다가 나오는 길에 부도 3기를 봤다. 어제 보지 못한 부도들이다.
간간히 차들이 지나간다.
나는 가을 밟으며 가을 햇살을 즐긴다. 오늘 백련암까지 걷기로 한 날이다.
무슨 화두를 들고 걷는 길이 아니다. 이 생각이 나면 이 생각을 따라가고, 저 생각이 나면 저 생각을 따라갈 뿐이다.
동곡교, 동곡당 일타의 당호를 따서 다리의 이름을 지었다. 우측으로 난 오솔길은 희랑대 가는 길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힘들어도 계단으로 걷는 게 좋겠다.
임도를 차가 다니 전에는 이 문을 통해 들어갔겠다.
산신각
해인삼매탑
대몽각전, 전각의 이름이 수상하다. 낯선 이름이다. '대몽(큰 꿈)에서 깨달았다.' 깊은 뜻은 모르겠다.
설핏 보이는 기와, 저곳이 희랑대이겠다.
향적부, 종무소인 것 같다. 아래 층엔 공양실? 지형을 이용한 2층 건물이다.
지족도솔암, 지족이나 도솔은 의미상 같다고 한다.
동곡당
지족암에서 본 보현암과 금강굴(금강암)
첫 글자는 대, 끝 글자는 전.....중간은 모르겠다. 대몽각전이겠다.
지족암과 희랑대는 작은 골을 사이에 두고 있다. 가까운 곳이다.
대몽각전 내부, 단촐하다.
불상은 석가모니불 같다. 그림 아래는 4명의 보살, 위는 좌우 각각 5명의 선사이다. 안경을 쓴 분도 있다.
10명의 선사는 해인사나 지족암과 관련된 승려일까?
무슨 보살일까?
위패엔 '조고조모조상선망부모영가'라고 쓰여져있다.
석경당, 수행처, 출입금지.
흘려 쓴 글은 어렵다. 나의 무지함이로다.
'거'자만 알겠다.
가을은 곱다. 수채화 같기도 하지만 때론 파스텔화 같기도 하다. 따스함이 있기에.
희랑대
『희랑대사는 그 암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희랑조사가 머물던 곳으로서,자연이 이루어낸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로 말미암아 일찍이 금강산의 보덕굴에 비유되곤 했다.
희랑대는 이곳의 삼성전에 모셔진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한데,
이를테면 이곳에서 기도하여 부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따위의 여러 영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암자는 특히 일반 신도들에게 친근하다.』
해인사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그대로 가져왔다.
희랑대는 건립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희랑대를 소개한 글, 나에겐 반갑지 않다. 이건 부처의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희랑대사가 추구한 구도와도 무관한 기복행위이다. 기복행위는 신앙도 아니며 구도도 아니다.
그저 사람의 욕심, 그 욕심일뿐이다. 이를 이런 사찰에서 버젓이 적어놓았다는 건 나로썬 이해 불가.
불교, 불교의 정체성은 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족암 가는 길, 동곡교 건너기 전 우측으로 산길이 있다. 희랑대 가는 길이다.
산돼지 드나들 수 없도록 문을 달았다.
절벽이라기엔 그렇고, 가파른 산에 축대를 쌓고 전각을 지은 것 같다.
흘러야할 물은 흐르지 않고.....
독성각 내부
작은 고무신, 앙증맞다.
골 건너편 지족암이 보인다.
절 뒤편으로 길이 있어 올랐다. 바위에 사람이 쓰여져 있다.
백련암 가는 산길이다. 임도인 차도로 가는 것보다 가깝다. 짦은 거리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