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라보시는 이
한자 ‘친할 친(親)’을 보면 나무 ‘목’자 위에 설 ‘립’자, 그리고 볼 ‘견’자가 합쳐졌다고 합니다. 누군가 이 한자를 설명하면서 “친하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가 등을 돌려 떠나갈 때 나무 위에 올라가서 떠나가는 그 사람을 계속 바라보는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류장에 잠시 들렀다 떠나가는 버스처럼 오늘도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다 떠나갑니다. 한결같이 정류장에 서서 떠나가는 뒷모습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시는 이가 있습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며 작은 고양이가 꾸벅꾸벅 조는 깊은 밤에도 여전히 기다리시는 이, 한 번만 돌아봐 준다면 모든 것을 다 줄 것 같은 마음으로 서 계십니다. 요즘 우리네 인생이 아주 어둡습니다. 너무 캄캄해서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을 땐 뒤를 돌아보십시오. 쓸쓸한 나의 뒷모습도 사랑하시는 친구가 서 계십니다. 쓸쓸한 인생 정류장에 서서 당신을 두 팔로 안아 주실 것입니다. 내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친구 예수가 서 계십니다.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영적 가족력
가족력(家族歷)은 ‘가족이 앓은 병에 대한 내력’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꼭 가족력을 물어봅니다. 부모님도 당뇨병과 대장암, 뇌경색을 앓았기에 저도 늘 조심하고 건강검진 시 유의해서 검사를 받습니다.
이번에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육체적인 가족력뿐 아니라 영적 가족력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안에 죄성 때문에 쉽게 유혹당하는 영역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걸 영적 가족력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어느새 거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곧 그게 우상이 돼 영적인 병에 걸린 상태가 될 것입니다.
가족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건강관리가 시작되듯이 영적 건강도 영적 가족력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게 있어 특히 쉽게 유혹받는 곳이 어딘지 먼저 인식하고 하나님께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를 치료하는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늘 구한다면 늘 영적으로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설교를 잘하는 목사
구멍가게 주인이 고객들에게 A교회에 부임한 목회자를 칭찬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를 참 잘하십니다.” 한 고객이 물었습니다. “설교를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설교를 잘하는지 아시나요.”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이 새로 오신 후부터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외상값을 잘 갚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빵 가게를 운영하는 한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구운 빵은 크기가 작아 고객들로부터 원성을 샀습니다. 그의 별명은 ‘대포 집사’였습니다. 대표 기도를 할 때 대포같이 큰 소리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힘차게 기도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느껴 목회자에게 상담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저를 싫어할까요.” 목회자는 진지하게 권면했습니다. “집사님 기도 소리는 줄이고, 빵 크기를 늘리세요!”
성도의 능력은 일상의 산 제물, 즉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우리가 지나간 그 자리엔
성서일과를 따라 말씀을 준비하던 중 신약성경 최초의 문서인 데살로니가전서를 대하게 됐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풀려나온 뒤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가 있는 중요한 항구도시였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중상모략하는 이들은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로 갑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문 기간은 고작 3주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바울이 짧은 기간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찬양사역자 박보영의 노래 중 ‘우리가 지나간 그 자리엔’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그 자리엔 해바라기 씨앗 하나, 어린나무 한 그루 심겼으면 좋겠다는 노래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가 지나간 그 자리엔 작은 예배당이 지어졌음 좋겠다. 백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햇살 속에 빛나는 순례자의 눈물이 예배당 나무 십자가 닮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나간 그 자리엔 무엇이 남을지, 우리의 생각이 맑고 깊어지는 가을을 기대합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무관중
스포츠 경기의 묘미는 열심히 뛰는 선수, 감독의 전술·전략, 심판진의 경기운영 등이 어우러질 때 드러납니다. 그리고 관중의 열광적 응원이 더해질 때 맛이 더해지지요.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무관중 경기가 많이 열렸습니다. 무관중 시합을 볼 때마다 관중의 환호 속에 치르는 경기와는 사뭇 다른 경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자세는 매우 진지합니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관중석은 비어 있어도 그 경기가 생중계되고 기록에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성적이 수치화되고 다음 해의 고과에 분명히 반영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같은 자세가 요구됩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세상이라는 경기장에서 열심히 뛸 때, 유일한 관중이신 하나님이 응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
이성준 목사(인천수정성결교회)
천국 통장
어린 시절 학교 숙제 중 하나가 ‘자기 이름으로 통장 만들기’였습니다. 은행 가서 내 이름이 인쇄된 생애 첫 통장을 받고는 마냥 신기해하며 통장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용돈이 생길 때마다 은행에 달려가 입금을 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통장 잔액이 조금씩 쌓여가는 즐거움에 하루하루 행복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통장을 하나 이상 갖고 있습니다. 예금통장 적금통장 노후연금통장 주택청약통장 등 열심히 저축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안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통장보다 더 큰 안정과 행복을 주는 ‘천국 통장’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천국 은행장’이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예배통장 기도통장 찬양통장 봉사통장 전도통장 선교통장에 상급을 쌓아 가십시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최고의 안정과 행복이 생길 것입니다.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1인치 장벽
2020년 1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봉 감독은 트로피를 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자막, 장벽도 아니죠. 그 1인치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미국인들, 자막이 보기 싫어서 외국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뛰어난 영화를 의미 있게 소개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보여주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세상의 이면에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하고 원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불가능의 상황 이면에 바다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보여주는 자막대로 살지 마십시오.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면 하나님이 감독 되셔서 펼쳐 가시는 은혜와 기적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필요 채우기 숙제
예전에 영성훈련을 받을 때 매일 하나씩 남의 필요를 채워주는 숙제를 했습니다. 과제를 위해선 남의 필요를 열심히 찾아야 했습니다. 이 훈련 이후엔 습관이 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상황을 더 잘 인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선물을 주거나 차를 대접하고 병문안을 간다든지 하는 것 외에 아주 작은 도움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기, 양손에 짐을 들고 승강기를 타는 사람을 대신해 단추 눌러주기, 뒤에 오는 사람 위해 문 잡아 주기 등입니다.
신기한 건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실천하고 나면 종일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때 ‘작은 자에게 선을 베풀라’는 예수님 명령이 상대뿐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고, 스스로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사는 길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작은 섬김으로 기쁨이라는 상을 늘 받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헛된 것을 따르는 삶
18세기 말 중국 베이징에는 말라리아가 창궐했습니다.
말라리아는 지금도 마땅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고 수많은 합병증을 일으키는데다가 사망률이 10%가 넘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당시 베이징은 말라리아 대한 공포가 엄청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항간에 ‘용의 뼈를 먹으면 말라리아가 낫는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시내의 약방에서 실제로 ‘용의 뼈’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말라리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앞 다투어 용의 뼈를 사 먹기 시작했습니다. 수요가 많아지자 이제는 일반 상점에서도 용의 뼈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용이 상상 속의 동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국은 처음에는 자라의 뼈를 용골이라 속여 팔다가 나중에는 자라보다 싼 소나 양의 뼈를 용골로 팔았고 사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말라리아에 대한 두려움에 모든 사람들이 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의 뼈를 돈을 주고 사먹고 또 말라리아가 치료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해, 혹은 금세 사라질 것을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주변을 보면 세상을 위한 삶의 결국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허탄한 것들을 따르지 말고 영원한 것을 위해 주님이 주신 삶을 투자하십시오. 아멘!!
주님, 쫓아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게 하소서.
허상을 쫓는데 과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네 가지 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를 낼 때는 반드시 4가지를 생각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 첫째, 올바른 대상인가를 따져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화의 원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온순하거나 나와 가까운 착한 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 둘째, 올바른 시기인가를 따져야 합니다.
불의한 일을 당할 때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분노조절장애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상황과 장소를 봐가며 화를 낼만한 때에 내야 합니다.
- 셋째,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때렸다고 나도 똑같이 때리면 분풀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 넷째, 올바른 목적으로 화를 내야 합니다.
화를 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반드시 관계나 상황의 더 나은 개선에 있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가지 목적을 말하면서 ‘올바르게 화를 내는 것은 화를 참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아울러 분을 다스리라고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분을 다스리는 유순한 마음을 주시며 반드시 화를 내야할 때는 올바르게 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분을 다스리는 지혜와 유순한 마음을 허락하소서.
화를 낼 때는 위의 4가지 원칙을 최대한 지킵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서원의 축복
한국전쟁 당시 대학교를 다니다가 공산당에 끌려간 청년이 있었습니다. 재판과정 중에 청년의 학력과 또렷한 말투가 맘에 들지 않았던 재판관은 바로 총살형을 선고했습니다. 청년은 포박된 채로 산속으로 끌려가면서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기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저를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평생을 주님과 민족을 위해 살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군인들이 잠시 쉬었다 간다며 길을 가다 멈췄습니다. 그러더니 보초도 세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이때다 싶어 죽을힘을 다해 달렸고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해방이 되고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기독교식 교육을 연구해 보급하는 일에 힘썼고 박사가 되어 문교부 국장, 한남대 총장, 경희대 부총장까지 역임을 하며 학계의 인정까지 받으며 이원설이라는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은퇴 뒤에는 한국기독교학교 연맹을 만들고 기독교리더십연구원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성경의 원리를 적용한 교육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지금도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시오. 주님께서 부어주신 풍성한 복을 잊지 말고 주님께 드린 약속을 꼭 지키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께 드리는 서원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축복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께 서원하고 지키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서둘러 지킵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그럴 때 생각하십시오
로마의 황후 헤로디아가 도시 곳곳에 은으로 된 흉상을 만들고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절을 하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성자 크리소스톰은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절대로 절을 하지 마십시오. 목이 달아나더라도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헤로디아는 분개해서 신하를 보내 당장 설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고 협박했지만 오히려 크리소스톰은 다시 광장으로 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곧 황후에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은 주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황후가 제 몸을 찢으려 한다면 저는 이사야를 생각할 것입니다. 사자 먹이로 준다면 다니엘을 생각할 것이며 바다에 던진다며 요나를 떠올릴 것입니다. 돌에 맞아죽은 스데반이 있었고, 목이 잘리면서 복음을 전한 사도 요한이 있습니다. 고난이 닥칠 땐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고 믿었던 이들을 생각하십시오.”
크리소스톰은 이 설교를 한 뒤에 병사들에게 끌려가 유배를 갔는데 가는 도중에 자객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칠 땐 성경을 봐야 합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한 행동을 따라 신앙을 지키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마음의 반석을 견고히 닦으십시오. 아멘!!
주님, 어떤 역경에도 주님을 떠나지 않는 삶으로 영광되게 하소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을 떠올리며 찾아오는 역경을 이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한 번에 한 사람씩
제나라 선왕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려고 제단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저자거리를 지나는 도중 제물로 쓰일 소를 잠깐 지나쳤는데 눈물이 맺혀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가는 소를 보고는 죄책감에 사로 잡혀 신하를 불러 명했습니다.
“아무래도 소를 잡아서는 안 되겠다. 저 소를 풀어주고 대신 양을 잡아라.”
이 말을 들은 신화와 백성들은 영문을 몰라 혼란에 빠졌습니다. 소나 양이나 죽는 것은 똑같은데 굳이 바꿀 이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왕이 돈을 아끼려고 풍년을 비는 제사에 소보다 싼 양을 쓴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오며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맹자는 직접 선왕과 신하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은 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나 양이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소는 봤고, 가까이서 만나 그 처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소에게 그런 인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왕은 백성들을 향한 선정도 베풀 수 있습니다.”
나의 작은 실천으로는 세상이 아무것도 바뀌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껏 실천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도울 힘이 있을 때 힘껏 도우십시오. 아멘!!
주님, 일상의 손과 발을 통해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살며 만나는 최소 한 사람에게 도움을 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주님이 함께 하신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 기념비에는 웨슬리가 남긴 3가지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1.세계는 나의 교구다.
2.하나님의 일꾼들은 언젠가 땅에 묻히지만 하나님의 일은 계속되고 있다.
3.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중요한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웨슬리는 세계를 돌며 말씀을 전하고 속회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이 죽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일꾼들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유언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세계를 교구로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성직자 타울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나는 언제나 기쁘다. 그렇기에 주님이 없는 황금의 성인 천국에 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인 불구덩이 지옥 속으로 가는 것을 나는 선택하겠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말처럼 위로가 되며 힘이 되는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승리를 선언하셨고, 함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위로받고 승리하는 성도의 삶을 사십시오. 아멘!!
주님, 언제나 함께 계시는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매일 아침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집을 나섭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집을 짓는 지혜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의 ‘건축가’라는 작품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건축가, 운명과 시간 안에서 집을 짓는 건축가’
솔로몬은 시편 127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그리고 예수님도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집 짓는 비결 3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첫째,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웁니다.
그러나 반석은 임의로 만들 수 없습니다. 먼저 반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 둘째, 모래 위에 세우지 않습니다.
반석에 비해 모래는 찾기가 쉽지만 집에 닥칠 어떤 풍파도 막아주지 못합니다.
- 셋째,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온전한 반석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말씀 위에 인생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 시간과 삶을 보면 어디에 집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씀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진정한 반석을 찾고 그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루에 얼마나 주님을 위해 쓰는지 점검하고 계획을 다시 세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죄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스코틀랜드의 브라운로우라는 다재다능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만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얼굴도 잘생겼고, 재산도 넉넉했습니다. 말에는 기품이 있었고, 성격도 낙천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런 인생에 곧 싫증을 내고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도박을 했고, 매일 파티를 열어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장난으로 20명의 여자에게 돌아가면서 청혼을 했는데 모두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브라운로우와 결혼을 하겠다며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생을 탕진하며 살아도 어떤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성경을 통해 회개하게 됩니다.
‘지난 40년간의 인생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걸어보자.’
그리고는 넘치는 은혜를 받아 스코틀랜드의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난 삶을 기억하고 불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 설 수 없는 끔찍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지금 저를 변화시킨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를 변화시킨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를 잠시만 들어주시겠습니까?”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내게 임한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격의 마음으로 복음을 주위에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나를 변화시킨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다른 사람에게 확실히 전해 줄 수 있는 간증을 준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나 자신, 또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느냐에 따라
샬롬!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아침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로마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이 규칙을 기억하라. 혹시라도 억울한 기분이 들려고 하면 ‘나는 불운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걸 잘 이겨내면 행운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라.”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이야기할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나누는 대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남에게 하는 말과 자신에게 하는 말. “나는 혼잣말 같은 거 안 합니다.”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 어느 날을 되돌아봐도 ‘당신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운동하다가, 일하다가, 음식 먹다가, 책 읽다가, 글 쓰다가, 걷다가, 문자 메시지 보내다가, 울다가, 싸우다가, 기도하다가…. 목록은 끝없습니다. 심지어, 잠들기 전에도. 실은 지금도 당신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묘사할 때에 쓰는 언어에 따라, 실제로 우리가 그 상황을 보고, 경험하고, 참여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언어는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직면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부정적인 자기대화는 기분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무력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작은 문제도 크게 보이도록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없던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말하는 방식은, 무의식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내면화되어, 장기적으로 우리 생각과 행동을 바꿔놓습니다. 일상에서 나 자신이나 남과 어떻게 대화하느냐에 따라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출처; 좋은생각, ‘개리 비숍’의 ‘시작의 기술’)
아시다시피, 머리로 생각하거나 마음에 품었던 뜻이 그 입에서 말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우리가 평소 하는 말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내 생각을 바뀌게 하듯이 말입니다. 고로, 우리는 되도록 ‘부정적인 말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 글쓴이의 주장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재수 없다’고 말할 게 아니라, ‘난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고 입으로 계속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물맷돌)
[항상 기뻐하십시오.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살전5:16-18)]
“저는 이미 빚진 걸 갚았을 뿐입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전립선비대증’은 중년남성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환이랍니다. 전립선은 방광 아래 요도를 감싸는 밤톨만한 조직인데, 이것이 커져서 그 내부를 통과하는 요도를 압박하며 이상(異狀) 증상을 일으킬 때 ‘전립선비대증’이라 한답니다. 그 원인은 노화와 남성호르몬 변화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막노동으로 생활비와 검정고시 학원비를 벌던 시절, 밥값이 없어 저녁을 거의 굶을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머니에 400원 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려서, 어묵 한 개 사 먹고, 국물만 열 번 떠먹었습니다. 그런 제가 안쓰러웠던지, 아주머니가 어묵을 열 개나 주셨습니다. “어차피 퉁퉁 불어서 팔지도 못하니까 그냥 먹어요!” 허겁지겁 먹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습니다. 그 후(後)에도 퉁퉁 불어버린 어묵을 거저 얻어먹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머니께 ‘나중에 능력이 생기면 꼭 갚아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대기업(大企業)인사과에 취직했습니다. 아직도 그 포장마차가 그곳에 있을까싶어 찾아가보았습니다. 6년 만이었습니다. 여전히 장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옆에 아들이 함께 있었는데, 다리를 심하게 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마침 우리 회사(會社)는 장애인을 전문으로 채용하는 사회적 기업이었습니다.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학자금도 보장하는 회사였습니다. 당장 회사 부장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장님은 흔쾌히 승낙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채용되자,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은혜(恩惠)를 어떻게 갚죠?” 저는 대답했습니다. “빚진 걸 갚았을 뿐입니다!”(출처; 어느 ‘아침편지’ 독자가 전해준 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고생해봐야 조금이나마 인생을 알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저도 나름 고생이라는 것을 조금 해봤습니다만,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세와 은혜를 갚고자 힘닿는 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받은 은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물맷돌)
[하나님은 우리의 태양이시요 방패이시며, 우리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시고,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다.(시84:11) 우리도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자비를 입고 필요에 따라 주시는 은혜와 도우심을 받읍시다.(히4:16)]
저도 그 친구에게 값진 존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샬롬!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일본의 한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따뜻한 방에서 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잠에서 깼을 때 혈압이 안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불 밖으로 나올 때, 방이 너무 추우면 혈관이 수축되고, 몸을 덥히기 위해서 심장에 과부하가 걸린다고 합니다.
가족에게 차마 연락하지 못한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랫동안 마음을 나눈 한 친구였습니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겨우 입을 뗐습니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없어? 너 무슨 일 있는 거야?” 친구 말에 턱 끝까지 찬 울음을 겨우 삼켰습니다. “이런 이야기 꺼내서 미안한데….” 용기 내어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퇴했다는 것과, 일을 구하긴 했지만 숙식 해결이 어려운 상황 등. 묵묵히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30만 원 정도 부쳐줄 수 있다. 이것밖에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간신히 ‘고맙다’고 한마디 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30만 원은 그 친구가 상근 예비역으로 복무하면서 몇 만원씩 1년간 모은 돈이었습니다.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지낸 한 달이 너무나 행복했던 것은, 당장 잘 곳이 생겨서가 아닌, 억만금보다 더 귀한 ‘친구’라는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종종 그때 일을 말하면서 ‘고마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손사래를 칩니다. “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한데, 왜 자꾸 그 이야기를 꺼내는가?” 저도 그 친구에게 값진 존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출처; 좋은생각, 김준철)
저에게도 이런 친구가 여럿 있습니다. 제가 손 내밀었을 때에 기꺼이 도와준 친구들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친구들에게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들이 저보다 형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그 친구들에게 이 ‘아침편지’를 정성껏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친구여, 고맙네!”(물맷돌)
‘아버지는 내게 바른 도리를 가르치나 그 행동은 바르지 않은 것 같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주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레바논의 영성가 ‘칼릴 지브란’은 ‘결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다.” 하지만, 그 그늘이 ‘어떤 성격의 그늘이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도움과 배려’의 그늘이라면, 그 거리가 얼마든지 가까워져도 상관이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맹자는, 그의 제자인 ‘공손추’가 “군자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 도리로 가르칠 텐데,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감정이 상하게 된다. 아들도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바른 도리를 가르치면서 아버지의 행동은 바르지 않은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처럼 부자간에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데, 이는 옳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군자(君子: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라고 해도 자녀사랑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해도, 마음이 기우는 것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사랑이 큰 만큼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그래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자식에게 화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인간인지라 순간적인 감정을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처럼 아버지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자식도 또한 감정이 상하기 마련이고, 자연히 부자간에 틈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맹자는 “책망하면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면 이보다는 더 큰 불행은 없다.”고 했습니다.(출처; 샘터, 조윤제)
부모가 자식을 가르쳐서 그 스승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겁니다. 고로, 가르치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부모는 생활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따르도록 해야 할 겁니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서 이룸으로써 대리만족하려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습니다.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너는 지혜가 충만하고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워 하나의 완전한 모범이었다.(겔28:12) 그들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몸소 훌륭한 모범을 보여서 그들을 지도하십시오.(벧전5:3)]
고독은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 갖는 시간입니다.
샬롬! 11월의 네 번째 주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혈압과 관련이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첫째는 짠맛이고, 두 번째가 단맛, 세 번째가 기름, 네 번째가 흡연, 다섯 번째는 이런 것을 통해서 생기는 비만, 그리고 여섯 번째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이 여섯 가지 요인을 줄이는 것이 고혈압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하네요.
고독과 외로움은 모두 혼자 있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의 부재로 인한 결여의 감정인 반면에, 고독은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 겪는 시간입니다.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하여 긴 시간을 혼자 보내는 애벌레처럼 말입니다. / 학자의 길을 걷고 싶었던 저는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수년간 일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지인에게 사기당해 날리고, 다시 일 년을 모은 돈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출국 전, 아버지께서 말씀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해도 비정규직으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더라. 한 가지만 약속해주면 좋겠다. 설혹 교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망가지지 않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아쉬움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후회란, 목표를 향하여 달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 뒤늦게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저는 아쉬움을 안고는 살아도 후회와 함께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알겠노라’ 답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 자신의 꿈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모함이 아닌 용기로 무장하고,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시간을 견뎌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아쉽다고 해도, 후회는 남기지 않습니다. 살면서 어떤 사건을 겪게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지 않지만, 그 사건에 어떤 마음으로 대응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교수 박선웅)
고독과 외로움, 아쉬움과 후회, 서로 비슷하나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자신이 되고자 고독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가 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무쪼록 분투노력하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물맷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든 땅 위의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키겠다. 사람에서부터 땅 위의 모든 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멸망시키겠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아는 여호와의 마음에 들었습니다.(창6:7,8)]
하루살이는 ‘내일’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샬롬! 11월의 세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숙면을 도와주는 음식에는 바나나, 따뜻한 우유(꿀을 타서), 아몬드 등이 좋다고 합니다. 특히 바나나는,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과, 근육이완을 도와주는 ‘마그네슘’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현재 투병 중에 있는, 소설가 이외수 씨가 자신의 ‘트위터’에다가 이런 글을 올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매미는 가을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리고 메뚜기는 내년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참새는 환갑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永生)’을 모르거나, 아니면 아예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외수 씨는, 소개해드린 그 글의 말미에다가 ‘물론, 몰라도 먹고 사는 일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생(永生)을 모른다고 해도, 먹고사는 데에는 전혀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를 한 번 잘 살펴보십시오. 학업에 대한 열심이나 공부하는 태도가,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취업하려는 학생들 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려는 꿈을 가진 학생이라야, 고교과정도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미래에 대한 꿈이 있을 때에 현재 일에도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물맷돌 주일설교 중에서)
신앙의 3가지 요소를 잘 아실 겁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 3가지는 신부를 태우고 가는 가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소망이 영원한 미래의 길로 인도하면서 이끌어가고, 뒤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믿음으로 밀어주면서, 현재라는 가마에서는 사랑의 실천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현재 이곳에서 ‘사랑의 실천’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물맷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으뜸인) 것은 사랑입니다.(고전13:13)]
“하나님, 저 왔어요!”
샬롬!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일본 한 의대연구팀에 따르면, 따뜻한 방에서 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잠에 깨어났을 때에 혈압이 안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방이 너무 추우면 혈관이 수축되고, 몸을 덥히려고 심장에 과부하가 걸린다는 겁니다.
‘다 누렸다’는 생각이 들자, 삶의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재미없어지고, ‘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일들이 계속 발생하면서, 심한 우울증이 왔습니다. ‘죽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수면제 70알을 술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4시간 만에 깨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깨우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몸이 쇳덩이를 얹은 것처럼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겨우 일어나서 화장실 거울을 보니, 제 얼굴이 달덩어리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오셔서 저를 보더니 “너, 약 먹었지?”하고 물으셨습니다. 힘없이 “네”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저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성미가 약을 먹었다’, ‘아니다. 쇼를 한 거다.’ 그런 기사들이 나오니까, 저는 더 죽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권사님이셨던 새엄마가 ‘새벽기도를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전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니까, 그냥 앉아서 “하나님, 저 왔습니다!”, 둘째 날도 “하나님, 저 왔어요!”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찬양할 줄도 모르고, 기도도 할 줄 모르지만, 그렇게 40일 새벽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이때 저에게 새로운 인생의 역사를 열어주셨습니다.(출처; 빛과 소금, 개그우먼 이성미)
사노라면, 우리는 여러 차례 삶의 위기를 겪게 마련입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를 잘 극복하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런 한계상황에 도달했을 때에 절대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물맷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부패하고 더러운 일을 행하니,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시53:1)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과 싸워서, 나를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내겠습니까?(롬7: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