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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 4월28일
딸 부부와 제주도 여행을 간다. 꿈일지 몰라 살짝살짝 나를 꼬집어본다.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시작하는 딸네 부부는 3개월 전에 미리 항공권과 렌트카 예약을 끝냈다. 건강 잘 지키셔 여행 즐겁게 다닐 수 있게. 딸아이가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거니와 봄날의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냄새와 공기와 빛깔에 반해 매일 매일 아파트 뒷산 중간길을 걸었다. 체력이 저절로 준비된 셈이다.
날씨는 맑다. 반복되던 황사도 사라지고 공기 질은 최적이다. 사위가 운전을 맡았다. 집에서부터 김포공항까지, 제주 공항에서 숙소까지. 그리고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내내 계속 운전을 담당할 계획이란다. 든든하다. 믿음직하다. 사위가 피곤할 때는 가끔 딸아이가 운전을 맡게 될 것이다. 엄마 아빠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면 돼. 라고 딸아이는 말했다. 남편이 늘 모든 것을 맡아서 하던 지나간 날들의 여행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남편에게는. 짐을 부치고 여유롭게 공항 카페에서 차를 마신다. 빵빵한 풍선 입구를 꽁공 묶고 있는 실을 가만가만 풀어내듯 웃음이 푸시시 푸시시 새어 나온다. 매일 매일이 오늘만 같아라 라는 기도 말을 되뇌다가 욕심이야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간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제주 공항 도착. 렌트카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모든 게 일사천리다. 딸과 사위는 서로서로 도와가며 일을 처리한다. 보기 좋다. 젊음과 거기에 보태진 사랑은 일을 처리하는 속도와 비례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음식점에 도착. 바다 냄새에 제주도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 전복 뚝배기 밥과 구운 옥돔과 성게 미역국과 성게 덮밥이다. 남편과 내가 신혼시절 일광에 살 때 지인이 귀한 것이라고 성게 알 한 통을 준 적이 있었다. 먹어본 적이 없는 터라 맛을 몰랐다. 비릿한 냄새 자체가 싫어 냉동실에 넣고는 오랜 뒤에 버렸던 기억이 있다. 성게 미역국은 상상 이상이다.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난다. 제주도에 오는 날에는 성게 미역국부터 찾게 될 것 같다.
카밀라이힐 공원. 무려 500여 종류의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한 자연스런 길을 따라 꽃들과 나무들이 반짝이는 얼굴을 내밀어 반겨준다. 이른 봄에 동백꽃이 피어 붉은 꽃동산일 때 온다면 나를 비롯한 관광객들 감탄사가 동백꽃만큼이나 공중을 수놓을 것이다. 바닥에 깔릴 것이다. 연한 푸른빛 수국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곳에서 딸아이와 사위가 사진을 찍는다. 사위는 꽃 가까이 얼굴을 대고 있고 딸아이의 손가락이 사위의 볼을 살짝 터치하며 둘이 활짝 웃는 사진이다. 수국꽃보다 환하다. 어찌나 어여쁘고 다정해 보이던지 우리도 흉내를 내본다. 물론 어색하다. 서툴다. 젊은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어찌 따라가랴. 흉내를 내는 우리가 웃고 어정쩡한 우리 표정을 바라보는 딸네가 웃는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순간을 남기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 순간의 미소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즐겁지 않아도 웃으면 또 웃으면 기적처럼 진짜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제주에 와서 점심을 먹고 동백 공원을 산책했으니, 이번 여행을 전담한 딸네도 그렇고 우리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싱싱한 회와 매운탕거리를 사다가 편하게 집에서 먹었다. 딸네와 함께 둘러앉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만족인 저녁상이다. 생선회가 쫄깃쫄깃하다. 매운탕은 싱싱한 생선이라서인지 비린내 없는 맛이다. 방은 많은데 침대방은 하나다. 신혼인 딸네 부부가 사용하면 좋은데, 고집을 부린다. 엄마와 아빠는 바닥에서 자면 늙어서 허리가 아프다나 살이 배긴다나. 허리가 아플지언정 딸네가 편안하게 자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인데, 딸아이 고집을 어찌 이길까? 그 어여쁜 마음을 어찌 꺾을까?
둘째날
어버이날 기념과 사위 첫 생일 기념 겸사겸사 이번 여행은 계획되었다. 바로 오늘이 사위 생일. 미역국에 불고기와 나물과 김치와 밑반찬 서너 개다. 집에서 준비해서 비행기에 실어 왔으므로 아무래도 간소하다. 대신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는다는 사위는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잘도 먹는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더니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딸만큼이나 마음이 쓰이고 눈이 마주치면 웃음보가 터진다. 법륜 스님은 말씀하셨다. 괜한 젊은 남자 사위에게 마음 쓰지 말고 늙은 남자인 남편이나 마음 쓰라고.
사려니 숲길. 키가 큰 삼나무들의 숲. 꽉 들어찬 나무들로 어둡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관이다. 하늘에 구멍을 낼 듯 한 기세로 쭉쭉 뻗어 올라간 삼나무들의 의지와 열정이 경이롭다.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봐도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삼나무 향기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삼나무들만큼 간격으로 제 자리에 발을 붙이고 서서 몸만 옆으로 구부려 남편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고 사진을 찍었다. 독립된 뿌리를 가진 객체로 태어난 남녀가 만나 하나가 되는 부부의 이치가 보인다. 갓 결혼한 딸아이는 나의 신혼이 그러했듯, 결혼을 둘이 아닌 하나라고 극구 주장할지 모르지만. 살아보니 결혼은 하나가 아니라 둘로 살아가는 시간이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사위와 남편 사이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얼마나 든든한 내 버팀목인가. 사진을 찍고 있는 딸아이는 내 어여쁜 버팀목이다. 삼나무 숲길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오래도록 걸었다. 딸과 사위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어디에 서도 사랑스럽고 행복이 넘친다. 우리를 행복으로 데려간다.
자연과 사람들 이라는 밀면집에 들어갔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꾸민 정원이 돋보인다. 비가 내린다. 장독대에도 꽃나무에도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시골 고향집을 생각나게 한다. 다들 맛있다고 달게 먹는다. 밀면 맛이 흡족한 것은 창 밖 편안한 시골 풍경이 배경이 되어 우리를 감싸주기 때문 아닐까. 주변을 거닐어보고 싶었는데 비가 점점 강해진다. 숙소로 가서 일단은 쉬기로 했다. 운전을 하던 사위가 딸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하도 이뻐서 찰칵! 나도 슬쩍 남편의 손을 잡아본다. 사랑은 전이된다.
다행하게도 오후에 날이 개었다. 그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없구말구. 마침 가까이에 있는 쇠소깍이 유명하단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제주도 남쪽으로 흐른다는 효돈천의 끝자락. 담수와 해수가 만나 생긴 깊은 웅덩이다. 소가 누워있는 모양의 연못을 말한다. 양쪽 벽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위로 숲이 우거져 신비하고 웅장하면서 아름답다. 물빛깔이 신비롭다. 쇠소깍 해변은 검은 모레다. 쇠소깍 이라는 이름은 생소할 뿐만 아니라 발음도 어렵다. 귀가 약간 어두운 남편이 우스개로 말했다. 채소 가게라구? 쇠소깍을 떠올릴 때면 우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채소가게라 말했다. 잊어버릴 일 없겠다. 저녁으로 물회와 전복죽을 먹었다. 제주 맛이다.
세째날
성산 일출봉. 아이들과 어머님과 친구들과 제주도를 네 번 드나들었으나 성산 일출봉 아랫녘만 서성이다가 돌아왔다. 한 번은 천천히라도 꼭 올라가고 싶었다. 건강이 좋아지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청명하고 성산 일출봉은 아침 눈부신 햇살에 신비한 초록빛으로 단번에 우리를 압도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 계단 한 계단이 내게는 기쁨이며 희망이다. 한복을 입은 여든을 넘었을 듯한 할머니도 올라가셨다. 오오 정상이다.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넓게 파인 분화구가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건강이 좋지 않던 나다. 성산 일출봉에 올라선 일은, 내게 감개무량한 사건 중의 사건이다. 성산일출봉과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가장 내가 가장 철부지처럼 신이 나 있다. 점심으로 갈치구이와 고등어 조림을 먹었다. 남편과 사위는 고등어조림에 딸과 나는 갈치구이에 흠뻑 빠졌다.
비자림, 천년의 세월이 녹아들어 있는 숲이다. 500~800년생 비자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는 숲. 숲에 들어간 순간, 진짜 숲에 왔구나 싶을만큼 숲 향기가 진동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 잎사귀가 윤기로 반들거렸다. 건강한 숲이라는 증거다. 상쾌한 숲 내음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단번에 해소되었다. 사려니 숲길이 좋아? 비자림 숲길이 좋아? 딸아이와 사위는 사려니 숲길이 좋단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분위기가 좋았나보다. 남편과 나는 비자림에 표를 던졌다. 비자림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노자의 말 속 그 자연으로 돌아와 품에 안긴 기분이니까.
개인 정비 시간입니다. 개인 정비 잘하도록.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때 딸아이의 말이다. 그래그래 개인 정비 시간! 적절한 말이네. 개인 정비 후 돼지 갈비집으로 갑니다. 그랬다. 푹 쉬고 난 다음 콜택시를 불러 돼지 갈비집으로 갔다. 맛이야 말해서 뭐하랴. 딸이 있고 사위가 있고 남편이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가 없어 이십여 분을 걸어서 숙소로 왔다. 자동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 한적한 제주도 밤길을 딸네와 함께 걷는 일, 딸과 사위의 웃음과 이야기에 우리의 웃음과 이야기가 섞여들었다. 바람결에 바다내음도 섞여들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는 만족한 걸음으로 걷는 길. 자꾸 떠올려보게 될 달달한 기억이다.
네째날
핀크스포도호텔. 핀크스 골프장에 포함된 건물. 제주의 오름과 초가집을 모티브로 설계된 건물인데 하늘에서 보면 꼭 포도송이 같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졌단다. 건축물이 주변 풍경에 녹아 들어있다. 사위가 지난해에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 할 때 와 봤던 곳인데 주변 풍경도 풍경이지만 우동 맛이 일품이라서 안내했단다. 하루 숙박비는 일인당 사십만원에서 오십만원선이라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자고 가는 걸까? 아깝지는 않을까? 서민으로 살아온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새우튀김우동이 28000원 짬뽕 우동이 47000이란다. 사위가 사주겠다니 좋다고 박수를 쳤다. 예약을 부지런히 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바깥 경치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았다. 우쭐해진다. 장소도 서비스하는 사람도 음식도 제대로 대우받는 기분이다. 영화 속 프랑스 귀족 여인처럼 허리가 곧게 펴지고 고개가 치켜세워졌다. 멀리 산방산이 그림 속 풍경처럼 아득하게 보이니, 이만한 호강이 없다. 산책길에서 만난 골프장은 드넓고 푸르고 아름답고 고급스럽다. 이 나이에 골프에 도전해보고 싶어질 만큼.
산방산. 거대한 조각작품처럼 웅장하다. 신비스럽다. 제주 서남부 어디서나 보이는 렌드 마크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남편과 사위가 사진을 찍었다. 산방산처럼 우뚝하고 듬직하다. 산방산 아래 작은 굴에는 부처님이 계시단다. 산방산이 지척인 언덕 위에 노란집 엘파소 카페로 갔다.마치 동화책 속처럼 환상적인 빛깔로 꾸며져 있다. 산방산을 바라보며 노란 파라솔 아래에 앉아 차를 마셨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방산이요 앞을 바라보면 바다다.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눈을 가늘게 뜨고 침잠해도 좋을 자리다. 차를 마시는 중인데, 가끔 도발적인 주문을 일삼는 내가 발동을 걸고 말았다. 사위는 근육질 남자다. 내 딸 무게는 키가 작지 않고 마르지도 않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나는 주문하고 말았다. 다움이 어깨에 매달 수 있나 한번 해 볼래? 물론 사위는 자신감 있게 어깨에 힘을 주었고 딸아이는 매달리느라 애를 썼다. 잘하네 잘해. 박수를 요란하게 치는 내 칭찬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벌떡 일어섰다. 자 내 어깨에 매달려봐 나를 보며 말했다. 남편에 비하면 나는 체구가 작다. 사위와 딸에 비하면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거뜬하게 나를 매단 남편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시라. 나이 먹어도 남자는 남자다.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이십여 분 간다. 가파도. 청보리밭이 유명하다. 제주도 관광객이 줄었다더니. 아니다. 오전 시간 배는 이미 꽉 차 있었다. 내일 배를 타느니 못 탈 것 같다느니 궁리궁리하던 딸아이가 오후 배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되고말고. 발상의 전환이다. 계획대로 오전만 고집하다가 기회를 놓칠 뻔한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청보리밭은 상상한 대로 섬 구석구석 가득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제히 바람에 몸을 뒤척이는 청보리 한가운데 서서 낭만적인 사진을 찍었다. 흰색 티를 커플로 입은 딸네 사진이 압권이다. 악수를 청하는 할아방 옆에서 우리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사진을 찍었다. 맘에 든다. 손을 내미는 일 그 자체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어디를 봐도 온통 청보리밭이다. 고개를 들면 온통 하늘이다. 멀리 바라보면 온통 바다다. 돌아오는 길에 청보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청보리향이 입안에 가득이다.
아빠를 즐겁게 해 드린다고 딸아이가 고스톱을 제안했다. 넷 중 남편만이 고스톱을 칠 줄 안다. 삼십여 분 열성적으로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는 남편에게 우리도 고스톱을 열심히 배웠다. 언니와 오빠들 옆에서 고스톱 구경을 이십여 년 넘게 해 온 나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에 꼭 맞다. 딸과 사위보다 아는 게 많았다. 첫날은 고스톱을 배우고 서너 번을 연습하였고 여행 마지막 날에 정식으로 고스톱을 쳤다. 어찌 고수인 남편을 따라가랴. 한번 쯤은 이겨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안달인 딸아이를 못본 척 남편이 자꾸만 이긴다. 광이며 청단이며 피까지 계산하니 6000원. 남편은 신이 나서 목청이 높아지는데 딸과 사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난감한 표정이다. 딸네가 마주 보고 웃는다 싶더니, 화투판을 순식간에 뒤집는 것이다. 파토야 파토야. 딸과 사위가 투정부리듯 혀 짧은 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가 이내 허허허 웃었다. 그 광경에 나도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가족이 아니라면 대판 싸움이 났을 일. 명절에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고스톱을 치다가 싸움이 나서 경찰을 불렀다는 뉴스도 있었다. 아빠라는 것 엄마라는 것 딸이라는 것 사위라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며 웃어주는 사이. 내 편이다.
다섯째날
집으로 돌아가는 날, 보말 칼국수가 유명하단다.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에 들러 칼국수를 먹었다. 맛있다 맛없다 를 논하는 것은 사실 욕심의 범주다. 딸과 사위와 남편이 함께인데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더 무엇을 논한단 말인가. 가까이에 해수욕장으로 갔다. 햇살에 바닷물이 은구슬처럼 반짝거린다. 뛰어오르는 사진을 찍었다. 딸네는 가볍게 잘도 뛰어오르는데 나는 돌덩이라도 매단 듯 무겁다. 남편은 그래도 펄쩍 잘도 뛴다. 뛰는 흉내만 내다가 힘이 쭉 빠지는데 다행히 한 장 건졌다. 남편과 내가 바다를 배경으로 눈을 질끈 감고 죽을 힘을 다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역동적인 모습,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일단은 내가 건강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더구나 딸네의 알콩달콩 사랑스런 모습과 함께여서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성산 일출봉을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게 최상의 기쁨이었다. 딸네가 앞장서 주어서 편안하고 든든하고 고마운 여행이었다. 나란히 옆을 걸어가는 남편이 있어 감사한 여행이었다. 본래 표현이 적은 남편도 여행 다녀온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딸아이가 만들어 온 아지자기한 제주 사진 앨범을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야!
다음에는 일본에 가요. 사위와 딸이 말했다. 뭘 너네들 신경 쓰느라 애쓰잖아 둘이서 가렴 이번 여행으로 족해. 겉마음은 이렇게 말했지만,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아 그래그래 또 여행가자 속마음은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