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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고치령~미내치~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1236m-‘푯돌’)~박달령~옥돌봉(1242m-‘푯돌’)~도래기재(250525. 일)
□ 때 : 2025. 05. 25(일)
□ 곳 : 고치령~미내치~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1236m-‘푯돌’)~박달령~옥돌봉(1ㅂ234m-‘푯돌’)~도래기재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8명(?)
□ 날씨 : 새벽-안개비, 안개, 낮-햇볕
□ 길 : 흙길+푸석돌 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5. 05. 25(일) 02:57~14:34(11시간 37분, 쉰 시간 포함)
□ 나무, 꽃 :
○ 철쭉, 물푸레나무, 신갈나무 많았다.
○ 앵초, 벌깨덩굴, 풀솜대 따위가 많았다.
※ 풀, 나무 : 뒤에 따로 적은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 ‘이 구간에 있었던 풀’ 참조
□ 길 푯말을 참고하여 셈한[헤아린] 거리
○ 고치령--8.0km--마구령--4.9km--갈곶산--1.0km--늦은목이--1.9km--선달산--5.0km--박달령--3.0km--옥석산[옥돌봉]--2.76km--도래기재⇒합계 26.56km
※ 고치령~도래기재(지도상 거리) : 약 23.56km(‘실전 백두’)
□ 일러두기
1.나온 데[출처]
○ 「실전 백두대」 조선일보사⇒‘실전 백두’ 로 적음
○ 「준 · 희」 깃⇒‘「준 · 희」’로 적음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2025. 5. 25(일) 02:57 고치령(해발 약 770m-‘실전 백두’) 나섬.
○ 03:17~03:20 더워 웃옷 벗음.
○ 03:30~03:33 쌀쌀해 다시 웃옷 입음.
○ 05:05 작은 봉우리,
○ 05:38 마구령
○ 05:49 묵은 헬기장
○ 06:35~06:51 작은 봉우리, 묵은 헬기장. 머묾.
○ 07:48 갈곶산
○ 08:10 늦은목이
○ 08:16~08:20 머묾
○ 09:14~09:19 ‘선달산’ 푯말, 머묾
○ 09:22~09:28 선달산(1236m-‘푯돌’), 머묾.
○ 10:33~10:45 머묾
○ 11:00 작은 봉우리
○ 11:15 작은 봉우리
○ 11:19 바위, ※ 조각 같은 바위
○ 11:44~11:55 헬기장, 박달령, 머묾.
○ 12:01 1006.5m(-‘준·희’)
○ 13:24~13:26 턱, (기다란) 나무 걸상 3개. 머묾.
○ 13:30~13:36 옥석산[옥돌봉](1242m-‘푯돌’(봉화군)), 머묾.
○ 13:50 「봉화 우구치 철쭉」
○ 14:34 도래기재, 도래기재 : 88 지방도, ※ 산행 마침.
고치령 산령각
민백미꽃
알록제비꽃
산옥잠화(?)
비비추는 산옥잠화보다 잎이 갸름하다
둥굴레
단풍취
은대난초
잘못 찍어 흐릿하다
애기나리
선달산 조금 못 미친 곳
붉은병꽃나무
큰앵초
앵초도 몇 종류가 있으나
홍자색 꽃은 '큰앵초' 라고 알고 있다
노루오줌
잘못 찍어 흐릿하다
벌깨덩굴
풀솜대
이번 구간에 풀솜대가 많았다
산괴불주머니
벌깨덩굴
피나물
풀솜대
삿갓나물
눈개승마
금강애기나리
꽃잎에 검은 빛이 도는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다
이번 구간에 제법 있었다
철쭉
졸방제비꽃
애기나리
조각품 같은 작은 바위
민백미꽃
박달령 푯돌과 쉼터
시설이 삭았다.
내려앉기 전에 고쳤으면...
전국에 '준.희' 님 깃발이 많다
고마운 분들이다.
꿩고비
도래기재
도래기재
※ 다른 사진과 글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간밤에 일찍 잠이 깨서 이것저것 하다가 잠이 모자라 차에서 많이 잤다.
2025. 5. 25(일) 이른 새벽. 버스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거의 도착해서야 잠이 깨, 허겁지겁 준비하다가 사진기를 버스에 놓고 고치령에 닿았다.
회장 님에게 전화했으나 불통이라 급하게 네오 대장 님에게 “무전기로 버스에 놓고 내린 사진기를 보내 달라” 부탁했다.
1진이 떠난 고치령은 고요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산꾼들 열댓 명이 차를 타고 내렸다.
우리 일행은 아니었다.
그들이 소백산 쪽으로 떠나고 나서도 한참 뒤 2진이 도착했고, 권재구 대장이 사진기를 갖고 왔다.
사진기 칩을 넣지 않고 나서기는 몇 번 있었으나 사진기를 놓고 내리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치령(해발 약 770m-‘실전 백두’)을 나섰다.(02:57)
고치령에서 20분쯤 걸었더니 땀이 쏟아쪘다.
봄 웃옷 가운데 조금 두꺼운 옷이라 그랬다.
웃옷을 벗고 3분쯤 뒤 나섰다.(03:17~03:20)
길을 나선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했다.(03:30)
조금 얇은 봄 웃옷을 다시 입고 길을 나섰다.(03:33)
변덕을 부리다 시간을 자꾸 지체한다.
전에는 등 가방에 옷을 잔뜩 넣고 다니면서도 잘 꺼내 입지 않았으나 요즘은 자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세월의 더께가 사람을 소심하고, 겁이 많아진 것인가?
웃옷을 입고 길을 나서(03:33) 1시간 32분쯤 뒤 작은 봉우리에 닿아(04:59), 머리 전등[헤드랜턴]을 껐다.
작은 머리 전등 하나가 여간 불편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벗고 나니 기분마저 상쾌했다.
작은 봉우리에서 23분쯤 뒤 마구령에 닿았다.(05:38)
마구령에 작은 나무를 심어 키우고 있었다.
지도를 보면 마구령은 북동쪽으로 강원 영월군 하동면 남대리와 남쪽으로 경북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를 잇는 길이다.
마구령에서 11분쯤 뒤 묵은 헬기장에 닿았고(05:49), 여기서 46분쯤 뒤 묵은 헬기장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 닿았다.(06:35)
무려 16분쯤 머문 뒤 묵은 헬기장이 있는, 작은 봉우리를 나서(06:51) 57분쯤 뒤 갈곶산(966m-‘실전 백두’)에 닿았다.(07:48)
갈곶산에서 22분쯤 뒤 늦은목이에 닿았다.(08:10)
“늦은목이 서쪽 아래 약 50m쯤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실전 백두’)고 한다.
지도를 보면 늦은목이에서 서서서북쪽으로 강원 영월군 하동면 남대리와 동동동남족으로 경북 봉화군 물야면을 잇는 길이다.
마구령에서 늦은목이까지 5.9km, 늦은목이에서 가야 할 선달산은 1.9km, 앞쪽에 선달산이 보이지만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늦은목이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갯마루로 이지만 봉화군에서 충청북도 단양군으로 가는 길목”이며, “근처에 ‘늦은목이 옹달샘’이 있고, 이 옹달샘은 내성천의 발원지로, 봉화군과 영주시,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리지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늦은목이 옹달샘’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언제 여유를 갖고 가 볼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늦은목이를 지나 6분쯤 뒤 웃옷을 벗고 머물렀다.(08:16)
4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서(08:20) 거의 1시간쯤 뒤 ‘선달산’ 푯말이 있는 턱에 올라섰다.(09:14)
여기서 물을 마시고 토마토를 먹으면서 5분쯤 쉰 뒤 길을 나서(09:19), 3분쯤 뒤 선달산(1236m-‘푯돌’)에 닿았다.(09:22)
목이 말라 여기서도 물을 마시고 토마토를 먹었다.
6분쯤 머문 뒤 선달산을 나서(09:28) 1시간 5분쯤 뒤 터를 잡고 머물면서(10:33) 토마토, 빵, 물을 먹었다.
전에는 물을 잘 마시지 않고, 잘 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많이 쉬면서 물도 많이 마시고, 과일도 많이 먹었다.
변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
무려 12분을 머물다 길을 나서(10:45) 15분쯤 뒤 작은 봉우리에 닿았다.(11:00)
여기서 15분쯤 뒤 길 푯말(↑박달령 1.4km, ↓선달산 3.6km)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 닿았다.(11:15)
이 봉우리를 내려서 4분쯤 뒤 조각품 같이 서 있는 작은 바위를 지났다.(11:19)
이 바위에서 25분쯤 뒤 헬기장이 있는 박달령에 닿았다.(11:44)
선달산에서 5km, 가야 할 옥돌봉은 3km 거리이다.
“박달령 북쪽 아래 약 100m 지점에 샘터가 있다.”(‘실전 백두’)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지도를 보면 박달령은 북쪽으로 영월군 하동면과 남쪽으로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을 잇는 길이다.
박달령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을 잇는 보부상의 고개로 옥돌봉(1244m)과 선달산(1236m) 사이에 위치한 해발 고도 973m의 고개. 백두대간을 넘는 도래기재, 마구령, 미내치, 고치령 등 부근의 여러 고개 중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11분쯤 머문 뒤 박달령을 나서(11:55) 6분쯤 뒤 1006.5m(‘준·희’)에 닿았다.(12:01)
‘준·희’ 님은 전국 산에 깃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깃을 달아 놓은 고마운 분들이다.
1006.5m 봉우리에서 23분쯤 뒤 길 푯말(↓박달령 2.74km, ←옥돌봉 0.24km, →주실령 1.85km)과 (기다란) 나무 걸상 3개가 있는 턱에 올라섰다.(12:24)
여기서 2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서(13:26) 4분쯤 뒤 옥석산[옥돌봉](1242m-‘푯돌’)에 닿았다.(13:30)
박달령에서 3km, 여기서 도래기재까지 2.76km 거리다.
6분쯤 머문 뒤 옥석산을 나서(13:36) 14분쯤 뒤 나무 나이 550년을 넘었다는 「봉화 우구치 철쭉」 보호수 있는 곳에 닿았다.(13:50)
유구한 세월 철쭉(나무)은 숱한 애환을 겪었을 것이다.
1~2주일쯤 전에 왔더라면 멋진 철쭉꽃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봉화 우구치 철쭉」 보호수 있는 곳에서 44분쯤 뒤 도래기재에 닿아(14:34) 산행을 마쳤다.
도래기재는 “도래기재는 조선시대 역(驛)이 있던 도역리(道驛里) 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과거 경북 동해안과 내륙을 거쳐 경기도와 서울 등지를 잇는 보부상의 길이었으며, 경상붂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와 우구치리의 경계이다.”
“현재 금강송이라고 일컬어지는 소나무들의 대규모 벌채가 도래기재 주변에서 이루어진 시기도 일제 강점기부터”《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라고 한다.
일제의 수탈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지도를 보면 도래기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 영월군을 잇는 아스팔트 길이다.
버스가 서 있던 곳은 일제시대 금광이 있던 곳이다.
이번 구간 앵초, 벌깨덩굴, 풀솜대 따위 들꽃이 우리 대원 눈을 즐겁게 하였다.
특히 귀한 금강애기나리도 제법 있어 기분이 좋았다.
겨울 폭설 아래서 숨죽이며 움을 키우고, 봄에 땅을 뚫고 아름다운 형형색색 빛깔 꽃으로 얼굴을 내민 들꽃들에게 경외감마저 들었다.
인간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귀중한 선물이다.
늘 자연에 감사한 마음이다.
들꽃 구경에 정신이 팔려 먼산주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작은 것은 보았으나 큰 것은 못 본 것이다.
세상일이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네오 · 심민철 · 권재구 대장 님 고생하셨고, 대원들고 수고 많았다.
회장 · 기사 님도 수고하셨다.
발이 느리고 많이 쉬면서 늦게 도착하여 대원들에게 미안했다.
특히 비호처럼 산등성(이)을 휘젓고 다니는 권재구 대장 님이 나를 챙기느라 쉬엄쉬엄 걷느라 수고가 많았다.
발 빠른 사람이 늦게 걷는 것이 보통 고통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미안하다.
고마운 인사와 함께 미안함을 전한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목련과 갈래 : 함박꽃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일본잎갈나무
○ 옻나뭇과 갈래 : 붉나무
○ 운향과 갈래 : 광대싸리[호자03(楛子)ㆍ황형02(黃荊)(?)]
○ 인동과 갈래 : 딱총나무[지렁쿠나무(?)], 붉은병꽃나무[물병꽃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 거제수나무 : 푯말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산딸기나무[산딸기], 줄딸기[덩굴딸기], 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산앵두나무, 꽹나무, 당채, 산이스랏나무, 이스랏나무, 천금동],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참나무], 신갈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고빗과 갈래 : 꿩고비(?)
○ 국화과 갈래 : 단풍취(?), 삿갓나물, 쑥, 우산나물,참취(?),
○ 꿀풀과 갈래 : 벌깨덩굴
○ 난초과 갈래 : 은대난초[은대난],
○ 두릅나뭇과 갈래 : 땅두릅[독활}(?)
○ 마타릿과 갈래 : 쥐오줌풀
○ 면마과 갈래 : 관중[관거, 관절, 면마](?),
○ 미나리아재빗과 갈래 : 투구꽃(?)
○ 박주가릿과 갈래 : 민백미꽃≒흰아마존
○ 백합과 갈래 : 금강애기나리, 둥굴레, 박새[동운초, 여로(藜蘆) 02(?)], 비비추(?),삿갓나물[삿갓풀], 선밀나물, 애기나리, 원추리, 은방울꽃, 풀솜대[솜대]
※ 풀솜대 : 많았음
○ 양귀비과 갈래 : 애기똥풀[젖풀, 백굴채(白屈菜)], 피나물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앵초과 갈래 : 까치수염, 앵초, 큰앵초(?)
○ 장미과 갈래 : 눈개승마, 쇠스랑개비[양지꽃]
○ 제비꽃과 갈래 : 남산제비꽃, 알록제비꽃, 졸방제비꽃
○ 쥐방울덩굴과 갈래 : 족두리[족두리풀, 민족두리풀, 조리풀, 세초]
○ 현호색과 갈래 : 산괴불주머니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허기진 내게 초코파이를 내민 노00 님
가. ‘갈곶산 초코파이’
2006년 3월 둘째 일요일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3기 28구간(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을 걸을 때였다.(토요일 저녁 출발하던 무박 산행이었다)
갈곶산에서 아침밥을 먹는데, 땅에는 눈이 있는, 추운 날씨였다.
얼음같이 차가운 밥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두어 숟갈을 떠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노00 님이 초코파이 1개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는 산에 다니면서 물을 많이 마시지 않고, 등 가방에 옷은 많이 넣고 다녔으나 잘 입지 않았다.
겨울이라도 걸으면 땀이 났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밥 먹을 시간에 겨울 셔츠와 조끼만 입고 오들오들 떨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측은(?)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때는 이름도 성도 몰랐고, 그렇다고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 초코파이 하나로 나는 기운을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고마움은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나, 나는 그 뒤로 특별히 은혜를 갚을 기회가 없었다.
그는 3기 졸업과 동시에 대간 길을 더 걷지는 않았다.
나도 9기 졸업 뒤 백두대간을 더 안 다니고, 9정맥을 마쳤다.
나중 노00 님 이름과 일터를 알았다.
그것도 7기(?) 대원 한 사람을 통해서였다.
같은 일터에서 근무했던, 술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을 통해서...
노00 님은 들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수도지맥 길을 걸으면서 그에게 ‘까치수염’ 이름을 배웠다.
내가 그에게 많이 배웠다.
내가 나무와 들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게 익힌 나무 이름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갈곶산 초코파이’로 알게 된 노00 님은 여러모로 고마운 분이다.
몇 년 전 내가 새 사진기를 사면서 그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는데, “선배 님! 요즘 무거운 사진기 들고 산에 다니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다들 손전화기로 사진 찍는데, 되도록 손전화기를 쓰는 게 어떻습니까?...”했다.
내가 산에 다니면서 남에게 베푼 것이 거의 없다.
노00 님은 식물 이름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노00 님!
‘갈곶산 초코파이’와 ‘식물 교습’을 떠올릴 때면 그를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내 딱딱하고 무뚝뚝한 태도를 반성하곤 한다.
도움은커녕 민폐만 끼치는 요즘이다.
나. 노00 님과 김00 님 등이 주선하여 꾸린 기맥 · 지맥 대원들
어느 날 노00 님과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내게 기맥, 지맥에 대해 이야기 하며 동행할 출중한 몇 사람을 소개했다.
나중에 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걷기를 잘했다.
나중 기맥 · 지맥을 같이했던 사람들 가운데 00기~△△기 대원이 몇 사람 있었다.
기맥, 지맥을 함께 걸은 사람들은 3기 노00, 김00, 7기 정00, 10기~13기 이00, 백00, 빙0, 나. 그 뒤 내로라하는 사람 몇이 합류하게 되었다.
9기 때 몇 번 참가했던 사람 외에 몇 분이 추가로 참가했다.
이00 님은 잘 걸었고, 등 가방[배낭]에 길이 60cm, 몸통 너비 13cm쯤 되는 대형 물병에 뜨거운 물을 짊어지고 와서는 대원들에게 일일이 커피를 타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바위 타기를 한다고 했다.
10년 이상 지나 가야산에서 만났다.
어느 산악회에 같이 갔으나 몰라보았다.
그랬는데 그가 먼저 인사했다.
무딘 내 눈. 나는 “몰라 봐서 미안하다...”고 했다.
“바위 타기 잘하고 있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중간에 허리를 다쳐 바위 타기는 하지 않는다...” 했다.
그도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백00 님은 그야말로 ‘반쯤 나는 사나이’였다.
나중에 J3 회장을 몇 해 하던 사람이다.
그는 사회를 보는 눈이 나와 비슷해서 마음이 잘 통했다.
가끔 뒷산에서 만났는데, 다른 데로 이사했을까?
만난 지 오래 되었다.
2. 사진 대가들
기맥, 지맥을 걸으면서 나는 노00 님에게 ‘갈곶산 초코파이’ 얘기를 하고 새삼 고마운 인사를 전했다.
노00 님은 당시에 큼지막한 사진기를 갖고 다니면서 들꽃을 많이 찍었다.
그는 여러 종류의 렌즈도 갖고 있었고, 사진 애호가였다.
노00 님과 또 한 사람 000 님.
그들 둘은 사진작가에 오를 만큼 대가였다.
내가 그들에게 사진과 사진기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두 사람은 들꽃 따위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걷기보다는 사진 찍기에 집중하던 사람들같이 보였다.
그들은 들꽃을 찍을 때 사진기를 ‘수동 모드’에 맞추고 ‘접사’ 사진을 찍었다.
아주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수동 접사를 찍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한참 들꽃 찍느라 시간을 뺏기고 나면 일행은 저만치 앞서기 일쑤이므로 앞선 대원들을 따라잡으러 내달리던 사람들이다.
그때 내가 “산에서, 특히 내리막에서 뛰지 말라...”고 여러 번 충고했으나 시간이 부족한 그들은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보다 8~10살 정도 적은 그들 두 사람 모두 지금 산에 다니지 않는다 했다.
안타깝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가지만, 이들 말고도 내가 아는 사진작가 수준인, 사진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좋은 선생님을 옆에 두고도 한 번도 그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워낙 게으른 탓으로...
지금이라도 내가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가르쳐 줄 사람이다.
내 일터에서 자주 만나는 사진 대가가 또 한 사람 있다.
지난 날 사진을 찍어 달력 만드는 인쇄소에 비싼 값을 받고 풍경 사진 따위를 납품했다는 분이다.
지금은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했다.
그분에게도 내가 요청하면 사진기에 관해서 많이 알려줄 분이다.
내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고, 게을러 배우지 못할 뿐이다.
3. 내 마음을 사로잡은 들꽃들
이번 구간에 유난히 앵초가 많았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 해 6월 한라산에서 접한 앵초 밭 이후 이번처럼 앵초가 무더기로 모여 있는 꽃밭을 처음 보았다.
갈 길은 바쁜데 어찌나 예쁜 앵초였던지...
벌깨덩굴, 애기나리, 둥굴레, 은방울꽃, 피나물, 산괴불주머니 따위...
눈이 심심할 틈이 없었다.
들꽃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누구에게 뽐내려 피었을까?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길지 않은 날을 살기 위해 그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가?
누구를 기다릴까?
노루, 고라니, 담비, 오소리, 삵, 산양, 멧돼지,,,,,따위 네 발 달린 짐승을 기다리는 걸까?
부엉이, 뻐꾸기, 꿩, 박새, 딱따구리, 직박구리...따위 나는 새를 기다리는가?
백마 탄 왕자
고깔 쓴 공주
날쌘 사냥꾼
성실한 흥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낭군이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기다릴지 모르겠다.
너무 화려해서 빤히 쳐다보기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들꽃에 미안해 다시 보았다.
갈 길은 바쁜데 눈길은 자꾸만 들꽃을 향했다.
찍어도 찍어도 자꾸만 얼굴을 내미는 들꽃.
사진기를 잡았다 놓았다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런 것을 일러 호사(好事)를 누린다 할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들꽃을 실컷 구경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00 님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첫댓글 결론은 무거운 가방과 카메라는 늘 함께 하실 생각 이시죠
가볍고 날쎄지시면 오히려 속도를내어 예전 벚들과 같은 다시는 산에 오시지 못하실터이니 짊가방에 카메라 둘러 메시고 꾸준하게 걸으시고 건강하신게죠
그렇다면 건강의 비결은 무거움 이신거네요~~
소설과같은 글 잼나게 잘 읽었어요 글재주가 뛰어 나셔 지루하지가 않았어요
뛰지말고 뚜벅 뚜벅 오랜동안 함께 해 주십시요
수고하셨습니다 ~~^^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빨리 갈 수 도없지만, 내달리면 풍경이나 식물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오랫동안 짊어지고 다녀 사진기 무게는 감당할 만합니다.
느린 발걸음으로 오랫동안 기다리는 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홍 님이 과찬하시는데, 사실은 낙서 수준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늘 부끄럽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님. 실물 영접하며, 존경의 인사 올렸어요,,역시 마른 장작이 화력 세다고,,,,깡마르고 다부진 몸매!!!ㅡ 산사나이가 맞네요. 혹시 산삼이 있을까싶어, 자전거용 랜턴을 손에 들고 옆길을 비추어 봤지만, 도라지 보고도 지나치는 내가,, 어림없지요, 위에 사진 중에 삿갓나물이 얼핏 산삼처럼 보였어요...저번에 한길님 뒤를 따라 갈까 했는데,,,마 약속을 못지켜 미안해요.ㅡ 성중종주 때는 어쩔까 모르겠네요.
목욕탕에서 인사해서 쑥스러웠습니다.
얼굴은 동안이어서 나이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넙적한 부채를 갖췄으면 흰 고무신이 더 잘 어울릴 듯했습니다.
대간 길에 뜻을 두고 도전하신 것 축하하고 손뼉칩니다.
나는 발걸음이 느려 앞서가셔야 합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오늘 한길 대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이 말이 느껴지네요.
같이 걸었더라면 모두는 아니지만 한두가지는 익혔을텐데.
밤은 어둡고 어두움에 안개가 더하니 앞이 잘 안보이고 푸른 것은 풀이요 알록달록은 꽃이며
햇살이 내리 쬐니 땀나며 얼굴이
따갑다. 원초적인, 본능적인 생각과 시각으로 걷고 나면
허탈할 때가 있답니다.
대선배님의 후기 덕분에
보았던 풀, 꽃, 나무들의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백두대간을 걷는 행태는 각자 나름대로 정립하는 것이라 봅니다.
경치에, 식물에, 대원둘 친교에... 여러 부문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 걷다 보면 길이 나타날 것이라 봅니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틀 안에 갇히기 보다 경계를 허물도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벽에는 쌀쌀하지만 낮에는 걷기 알맞은 날씨에 푸른 나무와 들꽃들이 나그네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걸음이 빨라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찰라를 구속시킨 예술가' 이번 블로거의 주체인 것 같습니다 형님 말씀에는 무수히 많은 순간을 구속시킨, 브레히트의 미학을 빌려와 인용하면 순간을 살해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오늘은 연둣핓 배경에 드러낸 꽃은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길에서 전장을 호령하던 '장비'의 기상과 멋진 모습, 호쾌한 웃음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편집장 님의 문학성과 오묘한 철학을 토막으로나마 접할 수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교양과목으로 '철학 개론'은 따분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쏘꿈 님을 만날 걸 미리 알았더라면 '철학 개론'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을...
지금이라도 하면 될 것이나 워낙 게을러 자신이 없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대간 전날까지도 매번 근교산을 다녀오시며
신체를 단련시키는 꾸준함에 항상 놀랍니다.
지속적인 실천 습관을 본받고 싶은데도
맘처럼 쉽지 않습니다.
20여년 전의 추억 하나하나가
아직도 생생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은
기록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글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1대간 9정맥 및 ??지간의 역사를
산증인을 통해 듣는 기분까지 듭니다.
대간 하나만으로도 이리 벅찬데
9개 정맥에 몇 갠지도 모르는 지간까지~~
그저 놀랍습니다.
존경합니다~^^
남들이 보면 그럴듯한데 실상은 허접합니다.
군대 생활 이후로 일부러 몸을 적당히 성가시게 하러 노력하기도 하지만, 별 효과는 없습니다.
일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으면 적당하게 땀이 나고 성과도 나고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고뿔에 잘 걸렸고, 허약했습니다.,
후천적인 버릇과 훈련으로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심은 있습니다
바란 만큼 성과는 없지만...
아름다운 들꽃이 많아 란선 님은 이번 구간이 특별했을 것입니다.
내가 보지 못한 식물을 란선 님이 많이 담아온 것을 사진으로 구경 잘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 큰형님께서는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않는,
진정한 산행의 묘미를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큰형님께서 지나온 발자취와 만남의 인연들이 큰 울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대간길 즐거운 추억을 불러주시고, 유익한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거운 카메라로, 더 멋진 사진을 담고자하는 고집이,
멋진 작품들을 창조하는가 봅니다.
덕분에 많이 즐기고, 배우게 됩니다.
항상 함께 할 수 있어 늘 든든하고, 감사드립니다.
다음 산행 때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일정한 틀을 고집하면 변화무쌍한 요즘 세태를 따라가기 어렵고 고루하게 되어 둘을 화학적 결합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달리 산행은 같이 땀 흘리며 같은 목표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 보면 서로를 알아가고 때론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멋지고 따스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초보 산꾼이 겪은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산천 구경에만 푹 빠지기도 했고, 사진 찍는 재미, 그 뒤에는 멋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깨달음과 인생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스무살,때 ㅡ 건강다이제스터, 라는 잡지책에, 70세 노인이 스틱짚고 산봉우리 바위끝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나중 나도 저렇게 하리라,,,다짐했는데,ㅡ 현재 그렇게 하고 있어요..ㅡ 이젠 한길 행님처럼 팔순을 바라보며 대간 타는 것처럼,,, 나도 따라 하고픈 마음입니다..나의 멘토 한길행님,,계속 건강하이소...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