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하면 스파게티를 먼저 떠올린다. 토마토소스와 섞은 꽤 단단한 면은 포크로 감아 먹는 거라 했다. 때로는 치즈가 가득 덮인 채 오븐에 들어갔다 은박도시락에 담겨 배달되기도 했고, 여러 명이 나눠먹을 수 있도록 접시가 아닌 커다란 볼에 담겨 나오기도 했다. 양식은 느끼하다고 손을 내젓는 한국 사람을 위해 얼큰한 국물이 가득한 스파게티 메뉴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스파게티에 익숙해져갔고,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한 종류라는 것도 서서히 터득해갔다. 더불어 돈가스에 곁들이는 마카로니도 파스타의 한 종류다.
파스타의 주인공은 면
우리나라 최초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1966년에 생겼는데, 시청 건너편 ‘라칸티나’에서 마늘빵을 시작으로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쌀을 주식으로 하듯이 밀은 유럽인들의 주식이다. 쌀에 비해 단단한 밀은 가루 내어 반죽했고, 반죽의 첫 번째 형태인 넓적한 빵모양 형태가 국수의 시초일거라 전해진다.
파스타(Pasta)라는 어원자체를 들여다보면 흔히 알고 있는 면의 여러 종류를 총칭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가루 또는 밀가루반죽으로 만든 음식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중세이전 기록에서 밀가루 반죽인 파스타가 있었음을 추정한다. 14세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는 마카로니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 흔히 보는 대량생산된 면의 형태는 18세기부터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로마의 ‘라가나’, 중동의 ‘피타 빵’, 인도의 ‘난’ 등과 같이 고대의 둥글납작한 모양에서 점점 더 잘라내고 뜯어내고, 더욱 가늘게 뽑아서 지금 익숙한 형태의 국수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파스타의 주인공은 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물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국수의 특성상 국내에서는 소스를 강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토마토소스, 크림소스, 오일 등 소스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제일 먼저 고민했다. 그 다음은 그 소스에 어떤 재료를 올릴 건지에 대한 선택이었다. 그러다 보니 파스타의 핵심인 면에 집중하려는 노력보다는 화려한 고명과 부재료가 더 앞서게 됐다. 가격은 덩달아 올라갔다.
입안에서 꼭꼭 씹어야 나는 ‘밀 맛’
우리나라의 밀가루 국수는 한국전쟁 이후가 본격적이었다. 그 이전의 국수를 지칭하는 것은 주로 메밀국수였다. 국내산 밀은 수급이 어려웠고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칼국수, 잔치국수, 우동 면은 꽤 부드러운 편이다. 같이 있는 소스 또는 국물이 잘 묻어 올라갔다. 자장면의 진한 갈색소스는 물론 설렁탕 안의 소면도 국물과 후루룩 하고 섞여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파스타는 달랐다. 국수의 쫄깃함은 없었다. 겉면은 코팅된 듯 매끄러웠지만 몇 번 씹는다고 잘 넘어가진 않았다. 입안에서 꼭꼭 씹어야만 나는 ‘밀 맛’을 느끼기엔 연습이 부족했다. 게다가 알 덴테(Al dente)라고 불리는 상태, 즉 면 심지가 살아있어야 잘 삶은 것이라고 하는 정보도 혼란스러웠다. 엄밀히 따지면 이탈리안 코스 중 하나였던 파스타는 국내에서 ‘한 그릇 음식’이 되면서 묘하게 뒤틀렸다. 한 그릇 먹고 나오기엔 배가 헛헛하고 가격은 꽤 비싼 데이트음식이 돼버린 것이다. 파스타는 뒤돌아서면 충분하지 않은 음식으로 자리 잡혀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인이 맛있는 쌀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국과 찌개, 반찬을 만들어내듯 이탈리아인들도 그들의 든든함을 채워줄 맛있는 면을 먹기 위해 파스타를 먹는다. 토마토소스나 페스토(Pesto), 봉골레 등은 그저 면 뒤에서 소리 없이 도울 뿐이다.
이탈리아 섬 출신 셰프가 만드는 1만원대 파스타
서울 한복판에서 파스타는 2만원, 어쩔 때에는 2만원을 훌쩍 넘는다.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청담동 등 강남에서 1만원대 파스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다 파르치>는 비싼 인테리어와 비싼 기물이 없다. 압도하는 외관이나 비싼 테이블보도 없기 때문에 편하게 앉기만 하면 된다. 파스타는 8,500원부터 있다. 모든 메뉴가 1만원대다. 피자 역시 마찬가지다.
인심 좋은 여주인장은 쉴 새 없이 영어로, 이탈리아어로 셰프인 남편과 얘기를 한다. 좁은 주방을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장악하는 남자는 이탈리아에서 온 파르치씨다. 테이블 4개의 공간, 작다고 무시하면 오산이다. 오너셰프 파르치씨는 이탈리아의 서쪽에 위치한 ‘사르데냐’라는 섬 출신이다. 파르치씨의 어머니는 늘 1년치 토마토소스를 만들어 광에 저장했다. 가열용으로 재배된 갓 딴 토마토를 수확해 끓는 소금물에 데치고 껍질을 벗겨 갈았다. 소독한 길쭉한 유리병에 꽉 채워 맨 위에는 올리브오일을 부어 뚜껑을 밀봉했다. 그 파스타를 먹고 자란 이탈리아 남자가 바로 파르치씨다. 그는 젊은 시절을 모스크바, 로마의 파인다이닝, 뮌헨의 홀리데이인 호텔, 잘츠부르크의 스테파니 호텔, 일본 요코하마의 인터콘티넨탈 호텔 등을 거친 뒤 한국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이탈리안 식당인 피렌체에서 일했다. 그 후 2014년 5월 <다 파르치>를 오픈했다.
기본에 충실한 파스타, 양까지 넉넉해
김치찌개집, 막국수집, 문구점이 들어선 이 지하식당가에서 <다 파르치>는 이탈리아의 편안한 파스타를 만든다. 토마토소스에 양파를 넣어 손수 끓이고, 봉골레 파스타를 위해 오너셰프는 1주일에 2~3회 가락시장에서 장을 본다. 모시조개 등을 사러가는 것이다. 사르데냐 섬에서 온 셰프는 신선한 해산물에 강하다. 모시조개를 기본으로 토마토를 섞은 ‘봉골레 루꼴라 파스파’는 <다 파르치>의 인기메뉴다. 연한 붉은빛의 파스타다. 모시조개의 자연스러운 육수가 토마토색깔로 변했다. 단단한 듀럼밀(Durum)로 만든 건면은 셰프가 주먹 쥐고 테스트한 결과만큼 잘 삶겼다. 듀럼밀을 빻은 가루를 세몰리나(semolina)라고 하는데 듀럼세몰리나로 반죽해 압출한 면은 훌훌 넘어가는 우리 국수와는 다르게, 가만히 씹을수록 끈기 있는 구수함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면 위에 얹은 루꼴라는 쌉쌀한 뒷맛이 매력적이다.
뇨키 역시 파스타의 한 종류다. <다 파르치>의 뇨키는 주문 가능한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다. 이탈리아 셰프가 만든 뇨키는 수제비처럼 쫀득한 맛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감자, 파마산치즈, 밀가루, 넛맥 등으로 부드럽게 성형한 반죽은 꽤 몰랑몰랑했다.
파르치 오너셰프는 파스타는 한국에서만 유독 비싸다며 누구든 부담 없이 먹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철학은 <다 파르치>에서 먹은 음식들과 일맥상통하다. 가격도 분위기도. 본 고장에서는 늘 파스타를 먹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일행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옆집 테레사 아줌마도 격식 있게 안 했어. 넉넉히 했으니 그냥 같이 먹자고 불렀지.” 밥 넉넉히 한 날 이웃과 나누어 먹고 싶은 딱 그 마음을 담았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파스타는 가까이 있다. 기본에 충실한 <다 파르치>의 파스타는 양까지 넉넉하다. 잘 먹고 나서는데 파르치씨가 외쳤다.
“SPAGHETTI E BASTA(스파게티 에 바스타)!”
<다 파르치> 강남구 양재동 삼호물산 A동 B1 106호, (02)589-3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