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 친환경 농식품 매장이 수년 새 썰렁해졌다. 심심찮게 터지는 '친환경 식품 오염' 뉴스에 주부의 불신이 커진 데다, 경기 침체로 지갑이 얇아져 구매를 주저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뿐일까? 진짜 이유는 친환경 식품의 맛이 그저 그래서이다. 2001년 시행된 친환경 농산물인증제는 화학비료와 맹독성 농약의 남용으로 발생한 농식품의 잔류농약과 토양 오염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인증제는 3년 이상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으면 '유기농산물', 농약은 쓰지 않고 화학비료를 정부 추천량의 3분의 1을 쓰면 '무농약 농산물', 화학비료와 농약을 모두 권고량의 절반 이하로 쓸 경우 '저농약 농산물'로 분류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친환경이란 이름에 걸맞은 인증은 '유기농산물'뿐이며, 나머지 둘은 농민의 반발을 의식해 만든 무늬만 친환경 인증이다.
그런데도 3종의 인증 농산물끼리는 물론이고 일반 농산물과도 상표에 표시된 인증마크를 보지 않고는 겉보기에도 맛으로도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 '유기농산물'의 인증 기준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이다. 정부는 유기농업용 비료와 농약을 제조할 때 사용 가능한 원료 하나하나를 법규에 명시했고, 농민에겐 영농일지 작성은 물론 재배 중인 작물과 토양 내 잔류성분의 정기 검사까지 의무화했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농자재 비용과 인건비가 2~3배 늘고, 소비자 가격도 50% 이상 비싸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성과 비용을 투자해 재배했지만, '유기농산물'의 생김새와 맛이 심지어 일반 농산물과도 다르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시골 장터 채소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화학비료를 뿌리고, 병·해충이 들끓으면 농약도 사용해 키운다. 친환경 농산물이 아닌데도 맛이 깊다. 그 비결은 여러 작물을 함께 심고 더불어 키운 전통농법에 있다.
토양에는 90여 종의 다양한 원소가 녹아 있다. 비료는 이 가운데 작물 생장에 꼭 필요한 3가지 다량원소(질소·인산·칼륨)를 비롯한 16가지 안팎의 필수원소를 작물과 용도에 따라 적절한 비율로 섞은 종합영양제이며, 어떤 비료이든 주기능은 농작물의 증산이다. 반면 농작물의 깊은 맛은, 흔히 '피톤치드'라 부르는 식물의 이차대사산물(二次代謝産物)과 토양에 녹아 있는 다양한 미량원소를 유기화 하는 미생물에 의해 결정된다. 농부가 해마다 한가지 품종을 잇달아 심고 잘 보살피면, 농작물은 방어물질인 이차대사산물 생성을 스스로 줄이고 토양미생물도 다양성을 잃는다. 단일 품종을 키우는 집산지에 아무리 좋은 유기농 비료와 생약제 농약을 사용해도 농산물의 맛이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친환경 농식품 매장이 썰렁해진 진짜 연유이며, 비싼 친환경 농식품이 제값을 못하는 까닭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해롭고 반(反)환경적이고, 유기질비료와 생약제 농약은 이롭고 친환경적이다'라는 주장은 둘 다 옳지 않다. 화학비료도 농약도 적절히 사용하면 오히려 이롭다. 친환경 농업에 대한 갖가지 오해와 허상이 대한민국 농업의 근간을 뒤틀어 놓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견지해온 대단위 집산지 중심의 농업정책을 근교 전통농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다음 회(9월 4일)에는 근교 전통농업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