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굿바이, 제플린」
Posted by 박민규 on 2007-12-13 00:00:00 in 2007 성석제, 문장배달, 문학집배원 | 0 댓글
박민규 「굿바이, 제플린」
걸렸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제플린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언덕 위에 올라서자, 그것이 장대나 밧줄이 닿을 만큼의 거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아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능적이고 교활한 흰 고래처럼, 제플린은 우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롱을 당한 느낌이었다. (…)
아무튼 그때였다.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한 무더기의 코찔찔이들이 언덕길을 올라왔다. 대략 사오 학년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의 손에는 각기 한 정씩의 총이 들려 있었다. 저거 총 아니냐? 제이슨 형이 외쳤지만 진짜 총일 리 없었다. 형 저거 비비탄 넣고 쏘는 가짜예요. 야, 잘 만들었네 하는 사이 아이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목표는 우리들의 제플린이었다. 야, 쏘지 마! 고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에이 장난감인데 뭘 그래? 제이슨 형이 어깨를 쳤다. 형, 저거 장난 아니예요. 눈에 맞으면 그대로 실명할 정도라니까요. 야, 쏘지 말라니까! 정말이지 더럽게 말 안 듣는 애새끼들이었다.
팔을 걷고 나는 코찔찔이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 들었다. 총을 빼앗고 야단을 칠 생각이었는데 아저씨 뭐예요? 하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한 놈의 머리를 쥐어박자 갑자기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왔다. 악. 이마를 감싸고 나는 주저앉았다. 더럽게 아팠다. (…)
때가 왔다.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애새끼들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가르쳐야 할 때가 왔다고 나는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교육이다. 사랑의 매.
(…) 여기저기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이 들자 두 명의 코찔찔이가 눈앞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나머지들은 우루루 언덕을 뛰어 도망치고 있었다. 엄마한테 말하자, 신고할 거야, 차 번호 외웠지 등의 목소리가 먼지와 함께 바람에 실려 돌아왔다. 오열하던 두 명의 코찔찔이도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뿌연 먼지가 걷히고 나자 언덕 위엔 푸른 창공과 제플린과 우리 둘만이 남아 있었다. 서서히 제플린도 움직이고 있었다.
● 출전 :『2007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작가 2007
● 작가 : 박민규 : 1968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2003년 문학동네작가상으로 등단. 소설『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카스테라』『지구영웅전설』『핑퐁』등이 있으며, 한겨레문학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독 :
윤상화 : 배우. 연극 <발자국 안에서> <천년전쟁> <관객모독> 등에 출연.
성홍일 : 배우. 연극 <관객모독> <루나자에서 춤을> <남도> 등에 출연.
제플린은 중소도시의 대형마트에서 광고를 하기 위해 임대한 비행선입니다. 가스를 채우면 길이 15미터로 늘어나서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르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시험가동 중에 지상과 연결되어 있던 로프가 풀리는 바람에 끈 떨어진 연처럼 멀리멀리 날아가게 되고 자동차로 추격이 시작됩니다.
장난 같기도 하고 장난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요. 아이들의 장난감 총이 장난감이지만 맞아보면 장난이 아니게 아프듯. 슬프고 힘들고 끝나면 허무한, 장난 아닌 장난 같은 세계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2007.12.13. 성석제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