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序詩 친필 원고
첫 시(序詩)를 ‘죽는 날’로 시작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또 있을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서시>를 쓴 윤동주 시인은 단군기력(檀君紀曆)을 벽에 걸고 은밀히 광복의 소망을 키워가던 북간도, 그 간고(艱苦)한 땅에서 깊은 성찰과 치열한 저항의 시어(詩語)들로 식민지의 어두운 하늘을 밝힌 한 줄기 별빛이었다.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일제의 감옥에서 숨진 윤 시인은 독립투쟁의 무기를 들지 않고 오로지 고뇌의 글로써 겨레와 자신에게 닥친 부조리한 현실을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9월이 오면, 연변 간도(間島)의 용정중학교(옛 대성중학교) 교정에서 만났던 윤동주의 시비(詩碑)가 다시 눈앞에 어른거린다. <서시>가 새겨진 이 시비는 1992년 가을, 9월에 세워졌다.
짧았던 삶과 비통한 죽음에 담긴 그의 민족혼은 독립투사의 심장처럼 뜨거웠고, 그의 저항은 의열단의 전투처럼 처절했으며, 그의 성찰은 철학자의 명상보다 진지했고,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종교인의 신앙 못지않게 거룩했다. 윤동주가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암흑기에는 더 짙은 그늘이 드리웠을 것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그린 강원도 평창 봉평골 9월의 정경이다.
초가을 깊은 밤, 풍성한 달빛을 등지고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겨울 숲속 눈송이처럼 청초한 순백의 세상에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이채로운 정감에 휩싸인다.
나라가 일제의 군홧발에 짓밟힌 암담한 시절, 외진 산골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숭실전문 영문과 교수가 된 수재였지만, 고등문관시험을 거쳐 고급관리로 출세하거나 나라의 광복을 위해 고난을 무릅쓰는 독립투쟁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장래가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문학의 길로 나아갔다. 민족 수난의 혹독한 현실,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의 미로(迷路)를 슬며시 빠져나와 탐미적 몽환(夢幻)의 예술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부(富)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현실적 성공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았다. 아내와 어린 아들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뒤 그는 만주 방랑길에서 서른여섯 살에 뇌막염으로 짧은 삶을 마쳤다.
그 불우했던 문인 한 사람이 고향의 오늘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봉평의 가을은 출세도 부귀도 못 누린 채 가난하게 살다가 젊어서 죽은 문인의 짧은 이야기로 해마다 활기를 띠곤 한다. 그가 일제의 판검사나 되었거나 만주벌판을 달리는 무장독립투사로 삶을 마쳤더라면 봉평골의 9월은, 아니 우리의 가을은 지금처럼 풍성하지 못할 터이다.
9월이 오면, 마음밭 깊숙이 뿌려지는 메밀꽃 씨앗들이 정치·외교·군사의 업적보다 더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깨달음에 흠뻑 젖어든다.
스탈린에서 푸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100년이 넘도록 학살과 전쟁의 피로 흥건한 동토(凍土)가 되었지만, 러시아를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것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파스테르나크와 솔제니친이 사랑한 땅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종교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의 말이다.
9월은 톨스토이가 태어나고, 도스토옙스키가 내란음모죄로 체포돼 법정에 끌려나오고,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솔제니친의 <암 병동>이 비밀스럽게 출간된 달이다. 9월이 오면, 논리가 아니라 직관(直觀)을, 개념이 아니라 은유(隱喩)를 사랑하는 인문정신이 정치와 사회의 혼탁한 현실을 훌쩍 넘어 찾아든다.
식민지배나 독재정치만이 악(惡)은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권력투쟁의 제물로 삼는 정치꾼들, 약자와 소외계층의 눈물로 탐욕의 허기를 채우는 돈의 노예들, 들뜨고 헤픈 집단감성의 충동으로 분별력을 마비시키는 혹세무민의 선동과 괴담들, 그리고 삶의 다양한 가치를 폐쇄적 신조(信條) 속에 옭아매는 종교권력의 도그마 따위도 저 가난한 예술혼이 온 몸으로 저항한 악의 폭력에서 멀지 않다.
아, 9월! 온갖 폭력의 소음들로 먹먹해진 두 귀를 성찰과 명상의 고요 속으로 기울여야겠다.
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도스토옙스키가 묶여 세워졌던 사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