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0월 어느 화창한 가을날, 인천광역시 소속 강화군 전등사를 향했다. 강화초지대교에서 약10km 드라이브길이다. 전등사 창건은 2021년 기준 1640년전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한 '진종사'가 기원이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1282년(고려 충렬왕 8년) 충렬왕 비인 정화궁주가 송나라 대장경을 간행하여 보관하고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로 바뀌었다.

'전등사' 입구는 위 사진처럼 정족산성(삼랑성)의 문루인 '종해루' 아래로통과해야 한다. 전등사 입구는 정족산성의 남문과 동문의 2개 출입구로 입장이 가능하다. 전등사는 다른 절과 달리 '일주문'과 '불이문'이 없다. 호국의 상징인 정족산성 동문과 남문이 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남문으로 들어오면 옆으로 정족산성의 둘레길이 펼쳐진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둘레길을 걸어보자. 본래 동서남북이 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문과 동문만 출입이 가능하다.

동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목에 악귀를 쫓는다는 해태얼굴의 돌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그런데 왠지모를 답답함이 느껴진다. 다리 반대쪽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다리의 반대쪽도 뚫어 있어 시냇물 소리가 졸졸 나야 하건만, 그 오랜 세월동안 지형지리에 맞게 수정된 것이리라.


약 700년된 은행나무가 놓여 있다. 2021년 10월 초에 방문했으므로 지금쯤이면 노란색으로 변해갈 수도 있겠지 한다.

본격적으로 절로 들어가기 전에 '하마비'가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지키는 규칙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두산백과 발췌,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

사찰의 하이라이트 대웅보전을 가기 위해 오르는 중이다.

전등사라고 적힌 편액의 건물은 '대조루'인데, 다른 사찰에서의 '불이문'역할을 한다. 대조루 아래를 통과하면 정면에 대웅보전이 나온다.

대조루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 대웅보전을 바라볼 때의 각도는 25도쯤 위쪽을 향해야 한다. 대웅보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는 각도라고 한다. 대웅보전은 보물 제178호이다.


대웅보전의 '귀공포'이다. 현대에 새롭게 색칠된 것보다, 이렇듯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색바랜 목조 건축물이 멋있는 법이다. 귀공포는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짜맞추어댄 것이다. 장식의 기능도 겸하는데, 그것은 아래 사진을 보면 잘 보일 것이다.

지구를 떠 받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대웅보전을 머리와 손으로 받치고 있는 목각인형이다. 어떤 명칭이 있을 성 싶다.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이고, 그 앞의 수미단은 조선시대 불교 목공예품으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제 제48호이다.

나는 정문보다 옆문이 더 좋다. 공연장에서도 1층 가운데보다 양측면이나 2층 맨 앞좌석에서 내려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극락암에서 내려다 본 장면으로 저 아래 가운데 종루가 보인다.

보물 제179호인 약사전으로 향했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조선중기의 건물이다.
가운데 약사전 석불좌상(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와 그 뒤의 후불탱(인천광역시 유형문화제 제44호), 그 왼쪽에는 현황탱(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3호)이 나란히 보인다.

약사전 석불좌상과 후불탱의 클로즈업으로, 후불탱에서의 불화 기법이 관심이 간다. 전통적인 정면기법과 단순 색채와 달리 서양에서의 명암 기법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20세기 일제 강점기 시대에 그려진 불화라고 한다.
약사전 석불좌상 후불탱 옆의 현황탱 클로즈업으로, 인간이 사망하고 3일이 지나 심판을 하는 현왕을 도상화한 그림이다. 죽으면 끝인데 무슨 심판을 받는가 하지만, 그래야 현세에서 착하게 사니까 그런 믿음을 부여하는 것은 맞다^^

약사전 건물 앞에서 바라본 정족산의 전망이다. 정족산은 '전등사'라는 사찰에서 비롯되듯이 '전등산'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단군이 세 아들에게 시켜 쌓았다는 삼랑성의 단군신화 전설이 있는 유서깊은 장소이다.
이제 삼성각으로 오르는 길이다. 걸어가는 여정이 느껴지도록 촬영해 보았다. 숲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사찰에 간간이 존재하는 삼성각은 보통 위쪽에 자리하여, 주변 전망에 좋다. 삼성(산신, 독성, 칠성)을 모신 전각이다. 삼성은 중국의 도가 사상과 관련 있는 성인들이지만, 불교 사상과 융합되어 현재까지도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어차피 절대적인 것은 없고, 그때 그때에 따라 언제든지 종교도 변한다.

극락왕생을 비는 곳인가 보다^^

그 옆으로 '극락암'이 보였다. 이곳은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 큰스님과 상묵 큰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극락으로 가는 암자이다. 내세가 있던 없던, 환생이 있던 없던, 그것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죽을 때 마음 펀히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극락암에서 계단을 잠시 내려오면 '명부전'이 보인다. 설명에 따르면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이라는데,,,

'명부전'에서 내려오면 '전등사 철종'이 있다. 중국의 종이 들어있는 전각이다.

송나라 때 중국 회주 숭명사에서 무쇠로 만든 종이라고 하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종을 녹여서 병기를 만들려고 인천의 병기창에 가져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전등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약사전을 돌아서 여러 장소를 구경하고 층계를 내려와 위를 쳐다보니 다시 약사전이다.



가을날이다.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현대식 건물이 자리하여 무엇인가 했는데, '무설전'이라는 곳이다. 현대식 컨셉으로 조성한 갤러리를 포함한 복합공간이다.

한바퀴 돌아보고 나가는 길이다. 죽은 나무 사이사이로 기원을 하는 돌무더기를 구석구석 채워넣었다. 인간은 뭐에 기대어 빌어야 한다. 그래야 맘이 편하다. 자기 맘이 불안하지 않고 편하려면 어쩌겠는가.

주차장으로 가는 길가에 간간이 집들이 보인다. 누가 사는 건지,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