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취임 공약으로 공언했던 4대 공약 중 가장 신경 많이 쓰이고 시간을
많이 할애헸던 울산 지역 산업시찰이 무사히 마무리되어 한숨 돌렸으나
행사 일정표를 점검하니 아직도 할일이 산적해 있다.
5월 26일, 일정에 없던 임시 이사회를 소집했다. 성공적인 산업 시찰로
한껏 동기회 친목 분위가가 고조된 상태에서 혹시 소홀히 다루어지는 사항은
없나? 중간 점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임시 이사회가 열린 장소는 남부 터미널의 팜스 팜스, 참석인원은 필자를
제외한 10 명, 상정된 안건은
1. 하계 야유회에 관한 안건 - 일자는 6월 15일로 정하고 행선지는
총무이사가 현장 점검을 마친 수원 화성 행궁,융건릉, 용주사 등을
경유하는 코스, 참가비 일만원으로 결정.
2.동기회 운영회비 및 협찬비 납부 독려 - 5월 중순까지 협찬비 누적액이
일천여만원이 걷혔으나, 인원수로 보면, 50 여명,년말 총회 참석인원을
100 명으로 예상 했을 때 50 %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찬이 필요한 실정이다.
3. 회원들의 주소록 점검 - 우편물, 또는 큰그릇 등 발송품이 회송되는 것을
방지하고, 자주 발생하는 전화 번호 변경에 대처하기 위하여도 수시점검이
필요하다.
4. 카페 활성화 방안 - 동기회 카페는 우리들의 쉼터다. 그 효용성을 아무리
논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참여하여 우리들의 쉼터를 가꾸어야
한다.
당일 회장으로서 당연히 회의룰 주재하여야 했으나, 필자의 고질병인 발가락
통풍이 재발하여 한발짝도 걸을수가 없었다. 부득이 준비한 안건을 총무이사에게
인계하여 회의를 주재하도록 할수밖에 없었다. 회의록에 기록된대로 총무이사는
회의를 훌륭하게 주재하였다.
상기 협찬비 납부와 관련하여, 오래동안 지속될 한가지 전설을 생략 할수가 멊다..
그 당시의 감성을 되살리기 위하여 2017년 5월 7일 본 카페에 실린 필자의 기록
" (고 ) 조강이 회원의 유언" 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동기회 은행 구좌 점검에 들어갔다.
입금자 명단을 읽어가던 나는 100만원이란 숫자에 깜짝 놀랐다. 입금자 명단에는
"조강이" 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입금자 명단에는
분명히 "조강이"라는 이름이다.
순간 내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어떤 동명 이인이 송금을 잘못 했나?
아니면 보이스 피싱이 난무하는 요즘 나의 은행 구자 비밀번호라도 알아내려고 미끼를
떤진 것인가? 아니면, 고 조강이 회원이 동기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저승에서 송금을
했다는 말인가? 것잡을수없는 시나리오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10 여분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시나리오가 " 혹시 고인의 가족들이, . . . ? "
급히 2014년도에 발간된 동기회 수첩을 열어본다. 그리고 고 조강이 집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혹시 용산고 10회 조강이 사장댁이 맞습니까? "
" 예, 맞습니다."
" 동기회에 협찬금을 내 주신적이 있습니까?"
" 아마, 협찬금을 냈다면 어머니께서 내 주셨을 겁니다."
" 아!, 그렇군요!, 그럼 어머님 전화번호를 알려 주십시오, 감사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수인사가 오고 간 후, 여사의 협찬금 송금에 대한 내역을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 바깟 양반이 서거하기 보름전, 유언을 하셨습니다. 올해는 6반이 수임반이어서 내
후년이 되면 8반이 수임반이 되니까,그때가서 당신이 알아서 협찬금을 보내주구려.
하더군요. 그리고 총동창회에도 협찬을 하고, 금년이 바로 남편이 말하던 8반 수임
해 임을 기억하고 송금을 하려고 하였으나, 어디,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서
헤메이디가, 용산고 총동창회의 전하번호를 알아가지고 " 큰그릇 " 동창회보를 보내
달라고 했지요. 큰그릇을 받아보니 그곳에동기회 구좌번호가 있더군요, 평소에 남편이
10회 동기들에 관해서 남다른 애정을 표하곤 해서 죽은 남편의 유언울 지킬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 졌어요."
재학시절, 나와는 8반 같은 반이었으나 가까이 지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졸업
후에는 장기간의 해외 생활로 고인과 접촉할 기회도 없었고,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에도 별로 접촉이 없어서 고인에 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력이다.
여사와의 장시간 대화에서 고인의 생전 모습을 틈틈이 엿들을 수 있었다.
가정적이고 매사에 신중하고 개인 사업을 일으켜 장남에게 물려주어 현재도 사업이
번창하고 있단다. 서거 전 사후 2년 후의 일( 협찬금 지원) 까지 챙길정도로 여유있고,
준비 된 생활방식은 매우 존경스럽고 우리가 크게 배워야할 대목인것 같다.
장시간의 전화 통화후, 하루종일 뇌리속에는 깊은 감격과 감동, 그리고 이유를 알수없는
아쉬움과 잡힐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운만이 머리속에 맴 돌았다."
이틀 후인 5월 28일, 3차 카페 운영회의를 주재하였다.
장소는 강남역 근처 "노랑 저고리",
참석 인원 : 카페지기 오정일, 간사 유창수, 김영성,
김원규, 남궁윤, 임기완, 홍석준 ( 국내 운영위원 7인 전원)
상정안건 : 1. 카페 활성화 방안
2. 카페 회원 명부 정비
3. 신규 회원 가입 독려
운영위원들의 열성은 회의 분위기를 심도있게 그리고 뜨겁게 4시간이나 이어갔다.
우선, 회원 명부에서 중복 기명자의 성명 또는 아이디를 단일화 시켰고, 사망자의
이름을 제명 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숙제로 남아있던 카페의 레이 아웃과 콘텐츠를 새롭게 정리했다.
불필요한 칼럼을 제거하고, 중복되는 칼럼을 단일화 하였으며, 필요한 칼럼은
신설 하는 등, 카페의 면모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한가지 부언 할것은 2016년 12 월 31일까지의 기록은 " 고전 도서관" 이란
칼럼을 신설하여 옛 자료들을 언제던지 열랍 해 볼수 있도록 영구 보관 해
놓았다는 점이다.
( 14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