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한민국 다 족구 하라 그래 (제 12회)

[kimdeoksoo]

□ D. -88

“위원장님,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글쎄, 포기할 줄을 모르네.”

국제경기를 승인하는 WOC의 승인 위원장은 담담하게 답을 내 놓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족구선수권대회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공문이 발송된 지 이틀 만에 한국에서 답변이 도착했다.

“참 애매 합니다. 더 이상 경기를 막을 명분이 서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선수등록을 하겠다는데……”

“결정하는 거야 별거 아니지. 하지만 우리 WOC도 명분이 있어야 해.”

한국체육회에서는 경기를 막는 WOC에 대해 조목조목을 반박을 해 왔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선수등록을 진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한국의 주장이 전혀 옳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입장의 차이 일 뿐이었다.

“위원장님, 제 생각은 한국체육회의 주장이 틀린 것도 없다고 봅니다.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전국대회에 우리 WOC가 관여한다는 것은 분명한 월권이라는 말은 맞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 규칙은 모든 회원국이 동의한 내용입니다. 각 국가에서 벌어지는 국가단위 스포츠 경기는 반드시 WOC에서 정한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정식 선수로 등록되지 않고서는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는 조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예, 맞습니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하는 경기는 정식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놀이일 뿐이죠.”

위원들간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미 경기가 진행중인 상황에 빠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어쩌면 한국과의 대립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원장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위원장님, 압니다. 저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들 말로는 조만간 결과물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 정말 어렵네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하게 놔두면 되는데……”

“맞습니다. 일정조건만 만족하면 하게 놔 두면 됩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을 자극해도 안 됩니다. 한국 에스전자가 올림픽 최대 스폰서입니다.”

“물론 그렇지만 지금까지 저들과 함께 해 왔습니다. 스폰서는 스폰서일 뿐입니다. 그들도 이익이 있으니까 스폰서를 하는 거고요. 아무튼 이 정도는 우리가 해 줘야죠.”

“아니죠, 경기는 승인해 줘야 합니다. WOC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역할은 충분히 이행했다고 생각합니다.”

팽팽한 분위기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위원장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온갖 생각이 떠 오르며 명분 있는 답변을 찾기 위해 그 생각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있었다.

“위원장님, 가장 좋은 방법은 저쪽에서 문제삼지만 않으면 됩니다. 솔직히 문제 될 것도 없지만요.”

“예, 위원님도 그냥 넘어가는 좋겠다는 생각이시군요. 그래요, 말씀하신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저쪽에 무조건 양보만을 요청하면 저쪽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회장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위원장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경기를 승인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모아지는 듯 했다.

“현장에서 선수등록은 불가능합니다.”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 하는 위원장을 바라보는 조금 전 발언을 한 위원은 움직임이 없었다.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서로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하고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조건을 붙이죠.”

다른 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를 주관하는 위원장은 쏟아지는 의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 D. -87

“이사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괜찮다니까, 이미 그 쪽에는 이야기 해 놓았어.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최 이사를 만나는 기찬은 불안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중국회사의 협찬을 받는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협찬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앞섰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족구협회 임원회의에서는 압도적인 찬성을 보여왔지만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늦은 시간 술집에 손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협회사무실에서 만나기를 원했지만 중국측에서 불편하다며 술집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저기 오네.”

입구를 바라보던 최 이사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왕인베스트의 진 대표였다. 친한 듯 최 이사에게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고는 바로 기찬과 최 이사가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왕인베스트의 진 대표입니다.”

명함을 건넨 진 대표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그는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 이사님으로부터 말씀 들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회사가 협찬하겠습니다.”

“예?”

자리에 앉자마자 진 대표는 자신이 할 이야기를 모두 뱉어버렸다. 머뭇거림 없이 확신이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었다.

“아니 진 대표, 그래도 우리 홍 회장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예? 이미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우리 회사가 키오스크 단말기와 필요한 프로그램까지 모두 지원하겠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준비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회장님?”

일사천리로 말을 쏟아내는 그에게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기찬은 우선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고비는 넘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먼저 다가왔다.

“그런데 대표님, 요구사항은 없습니까?”

“요구사항이요? 협찬 계약서에 들어갈 내용 말입니까?”

“아니요. 진짜로 원하는 요구사항 말입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진 대표는 최 이사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신호를 보냈다. 최 이사도 상황을 이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회장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사업을 준비하는 우리 회사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영광입니다. 한국 스포츠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쏟아지는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기찬은 상황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전제조건에 대한 이야기는 사전에 전달되지 않은 듯 보였다.

“대표님, 말씀대로 협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협찬은 WOC의 승인이 난 후에 필요합니다. WOC에서 승인이 나지 않는다면 협찬은 의미가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는 거죠.”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재미있다는 듯 진 대표는 웃음을 머금고 기찬과 최 이사에게 한 손을 들어 보였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신호였다.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WOC에서 승인이 날 겁니다. 제가 100% 확신합니다.”

“예?”

진 대표의 자신감에 기찬과 최 이사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근거에서 확신을 보이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스포츠 관련 투자회사입니다. 정보가 생명입니다. WOC에서 벌어지는 일 정도는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승인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들도 체면이 있고 명분이 필요하거든요.”

더 이상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진 대표가 모습을 나타낸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할 대화와 예상하지 못했던 정보까지 모두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정말입니까?”

“예, 확실합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야 예선전에서만 사용하면 되지만, 키오스크 단말기가 계속 필요하실 겁니다. 어쩌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우리가 계속 지원하겠습니다.”

한 번의 건배도 없이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마무리 되었다.

“하~ 홍 회장, 할 이야기 남아있어?”

“아니 없습니다.”

“그럼 진 대표도 할 이야기 남아 있습니까?”

“아니 저도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건배를 해야죠.”

최 이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자신도 이렇게 쉽게 이야기가 마무리 될 줄은 몰랐다. 한 순간 긴장이 사라지며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기찬은 지금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려 했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최 이사와 진 대표의 관계며 서슴없이 협찬을 하겠다는 결정 그리고 WOC에서 승인이 날 것이라는 정보까지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일 들 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서로가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안도감이 세 사내의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 웃음소리에 적막감만이 감돌던 술집은 다시 활기를 찾으며 세 사내의 목소리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여명(정봉혁)]

잘 읽었습니다

[kimdeoksoo]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