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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성강곡 禮成江曲
권도운 (방송작가)
멀리 강 위에 고기잡이배들이 한가로이 떠 있고 어부들의 노랫소리 이어질 듯 끊어질 듯 들려오고 있었다. 강둑길을 따라 나그네 선비 한 사람이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워져 오면서 위풍이 드러났다. 그는 다름 아닌 정몽주의 손자, 고려의 시인 *정보였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곧장 둑길 아래로 접어들었다. 강가에서 상선을 기다리던 노인이 정보의 풍모에 끌린 듯 먼저 예를 갖추고 사연이 많은 그곳 도선장을 지나게 된 사연을 물었다.
“보아하니 이곳 사람은 아닌 듯하온데, 어디서 오신 분이며,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요?”
“저는 풍류 따라 정처 없이 또 이 강을 건너려 하오.”
“그러시다면 배는 날이 밝을 무렵에나 닿을 듯합니다.”
“알려주어서 고맙소이다.”
“고맙긴요.”
“그런데 노인께서도 이 강을 건너시려는지요?”
“아닙니다. 객지로 장사를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중입지요.”
“그러고 보면 이곳엔 외국 상선들이 많이 드나들겠군요?”
“그것도 흘러간 옛말이지요. 한때는 이곳에 유명한 주막이 하나 있어서 외국 상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고들 합니다만······.”
“그 주막이 얼마나 유명했기에 그토록 많은 상인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더란 말입니까?”
“선비께서도 분명 저 노랫소리가 들리겠지요?”
“아니, 노랫소리라니요?”
“저기 저 어부들이 부르는 예성강곡을 말입니다.”
“아니, 그러고 보면······?”
그들의 시선에 한가로이 떠 있는 고기잡이배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가 또렷이 들려왔다.
어와 다시 만난 임이여,
요네 절부 네 몰랐더냐.
돈에 어둔 못난 자들아,
사랑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라.
노인과 정보는 멀리 강 위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을 바라보며, 어부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부들의 노래를 듣고 보니 과연 깊은 사연이 담긴 듯하군요.”
“암요, 사연이 깊고말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오늘날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 사연이 무척 궁금하군요.”
“보아하니 선비께선 풍류를 아시는 듯합니다만?”
“안다기보다는 알려고 하는 편이지요.”
“겸손의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늙은 것이 비록 아는 것은 없어도 좋은 사람은 볼 줄 알지요.”
“어차피 난생처음 만난 처지에 좋은 사람이란 과분의 말씀이겠지요. 하오나 바쁘지 않으시다면 저 노래 속에 숨은 사연이나 알고 싶군요. 들려줄 수 있을지요?”
“그거야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얘기를 시작하고 보면, 자연 시간이 좀 지체될 것 같기에···.”
“시간이야 어차피 기다리는 시간이니, 배가 닿을 때까지만 끝날 수 있는 얘기라면···.”
“그렇게 하시지요.”
“왠지 노인의 얘기를 듣지 않고는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 않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고장을 지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한답니다. 지금 선비님처럼 말입니다.”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하는 형편에 따르면 옛날 이 고을에 소문난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사연인, 즉···.”
송나라 상인들이 짐짝을 지고 오고 있었다. 우두머리 격인 하두강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부하 상인들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리, 나리···. 좀 천천히 갑시다요!”
“아, 이눔아, 좀 천천히 따라오너라!”
“아니, 뭐예요? 천천히 좀 가자는데, 오히려 천천히 좀 따라오라는 말씀은 뭔 말씀입니까?”
그 사이에, 하두강은 저만치 언덕을 넘어가고 뒤따르던 상인들이 한바탕 웃어댔다.
“못 볼 것을 보았나? 웃긴 왜 웃어?”
“아, 주인 나리의 속셈을 몰라서 그려?”
“속셈이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 사람은 이곳 벽란도에는 처음일 테니까!”
“그렇다면 저 언덕 너머에 꿀 항아리라도 숨겨 놓았다는 말이여?”
“아니 뭐야? 꿀 항아리? 푸하! 하긴 그것도 꿀 항아리는 꿀 항아리인 게지!”
“대체 그것이 뭐관데, 사람을 요렇게 궁금하게 만드는 거여?”
“자, 똑똑히 보아라···.”
상인 하나가 허공에 꿀 항아리를 그리는 듯하다가 여인의 나신을 그려 보이자 모두는 항아리처럼 입이 한껏 벌어졌다.
“이제 알 것 같으냐?”
모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너무 좋아들 말아라! 남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까!”
“남편이 두 눈을 시퍼렇게?”
“알았으면 싸게들 가기나 하자고!”
“하지만 나리를 어떻게 쫓아간다는 말이여?”
“그 염려는 놓아라. 내가 지름길을 알고 있으니까!”
“샛길로 날아가듯이 앞지르면, 욕심 많은 우리 주인 나리가 놀라 자빠질 것이다!”
그렇게 세 녀석이 일제히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하두강이 성큼성큼 오고 있었다.
“햐, 고것 참 근사하다 해!”
‘예성강’이라고 써 붙인 청사초롱 아래, 대문이 삐걱 열리고 분네가 하두강을 맞이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유, 이게 얼마만 인가요? 어서 오세요, 하두강 나리!”
“부 분네, 잘 있어 했나?”
“쇤네야 뭐, 아무려면 잘 있었지요. 근데 나리께서는 삼 년 만인가요, 사 년 만인가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또 만나는구먼요. 싸게 안으로 드시지요.”
“주모 아씨는?”
“예, 호호···. 목을 석 자나 빼고 기다린 지 오래지요.”
“뭐야, 기다려? 내가 오는 줄은 어찌 알고?”
“다 아는 수가 있지요. 들어가 보면 알지요.”
분네와 하두강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하두강이 분네를 따라 들어서자 마당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들마루가 놓였고 주객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하두강이 주위를 살피며 들어가자 부하 상인들이 언제 왔는지, 주객들 뒤에 숨었다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리, 어서 오세요.”
하두강이 눈을 번쩍 떴다.
“이놈들 봐라?”
분네가 자리를 안내했다.
“우선 앉기부터 하세요.”
하두강이 두리번거리며 앉았고 모두 앉으면 분네가 부엌 쪽을 향해 소리쳤다.
“얘 순이야, 손님 오셨다!”
순이가 쪼르르 나와서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셔유. 술 드릴까유?”
“우리 사람 술보다 순이 더 좋아해! 순이 업어가고 싶어 해!”
“뭐, 뭐여유?”
“자, 잘못 했어···. 마, 말이 잘못 나와 했어···.”
“주모 아씨는 어디 있어 해, 이거?”
“방에 기시지요.”
하두강이 방 앞으로 다가가서 헛기침을 하자 주모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 어서 오세요.”
하두강이 헛기침을 연발하며 방으로 들어가자 마당의 주객들이 요란하게 웃어댔다.
방 안엔 주객들 몇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주모는 옆문으로 들여온 술상을 받아 남편 덕수와 하두강 앞에 놓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았다.
“안주는 변변치 않지만, 많이 드세요.”
주모의 남편 덕수가 술을 따르며 인사치레를 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시었소. 그래, 그동안 돈은 많이 버시었소?”
“우리 사람 비단이 팔아 돈은 많이 벌었지만···.”
“돈만 많이 버시었으면 되었지, 세상에 돈보다 더 값진 게 또 무엇이란 말이오?”
“에이, 모르시는 말씀···.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뭘 한다 해, 쓸 데가 있어야 쓰지···.”
“그렇다면 아직 자식도 없소?”
하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가도 안 갔소?”
하두강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럼 홀아비요?”
하두강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상처를 했소?”
하두강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렇다면 새 장가를 드실 일이지···. 돈만 있다면야, 이루지 못 할 일이 무에 있겠소?”
“우리 사람 돈이라면 벌 만큼 벌었지만···.”
“송나라는 이곳보다 몇 배나 번화하고 예쁜 처녀도 많다던데, 아예 처녀장가를 드실 일이지···.”
“암, 번화하고말고 이곳 고려보다 열 곱절은 번화하고 처녀도 많지만, 우리 사람한테 시집오겠다는 여자는 하나도 없었소.”
하두강은 그러면서 연신 주모를 훔쳐보았다.
“자, 그러시다면 내 술부터 한 잔 받으시오.”
“아, 아니요. 기왕이면 다홍이 치마라고···.”
하두강이 그러면서 주모를 보았다. 그러나 주모는 망설였고 사람 좋은 덕수가 아내를 부추겼다.
“여보, 이 양반이 오랜만에 찾아와서 임자의 술을 받고 싶은 모양이니 한 잔 따라 주구려.”
남편 덕수의 말에 주모가 마지못하여 하두강의 잔에 술을 따르자 하두강은 입이 헤 벌어졌다. 그때 밖에서 주객이 불렀다.
“주모 아씨, 어디 갔소? 다 같은 돈 내고 술 마시는데, 방에만 있지 말고 밖에도 좀 나와 보시오! 이러다가 주모 아씨 얼굴 잊어버리겠소!”
그러자 주모는 마지못하여 밖으로 나갔고 하두강은 몹시 못마땅하였는데······.
주모가 마당으로 나오자, 주객들이 법석을 떨었다.
“주모 아씨, 술 한 잔 주오!”
“나도 한 잔 주오!”
“이 잔도 채워 주오!”
“내 술도 받으시오!”
주모의 남편 덕수와 술상을 마주한 하두강은 자꾸만 밖으로 신경이 쏠리었다. 그러나 덕수는 모르는 체하고 술만 마시자 하두강은 슬며시 일어섰다.
“아니, 왜 벌써 일어나시려오?”
“데리고 온 부하 녀석들도 거두어 먹여야지요, 헤헤···.”
하두강이 나와서 잔을 드는데, 또다시 방에서 주모를 불렀다.
“주모 아씨 어디 갔소? 밖에만 있지 말고 방에도 좀 들어와 보쇼!”
“허허, 이러다가 주모 아씨 숨넘어가겠네, 헛헛···.”
주모는 또 방으로 들어갔고 그만 심통이 난 하두강은 부하들의 보퉁이에서 비단 두 필을 꺼내어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웬 비단이오?”
“오늘 먹은 술값으로 받아 하쇼!”
“이 비싼 비단을 술값으로 주시다니?”
“우리 사람 비단이 많이 있어 해! 배 안에도 가득 싣고 왔어 해!”
“하지만, 돈이···.”
“걱정 말고 받아 하쇼!”
“정히 그러시다면 한 필만···.”
“무슨 소리, 받으려면 두 필 다 받아 해야지!”
주모가 말했다.
“술값에 해당하는 요량만 받지, 더는 받지 않습니다. 하오니···.”
“우리 사람 양심적인 주모 아씨 좋아하오!”
“그렇게 하시오. 기어이 주실 양이면 한 필만 주시고 한 필은 되려 가져가시오. 그 대신에 몇 날을 묵으면서 술이건 밥이건 양껏 드시오.”
“과연 듣던 소문대로 고려에는 술값도 싸고 인심도 좋아하오! 우리 사람 최고로 기분이 좋다 하오, 띵호왕이오, 띵호왕···.”
하두강은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배 위에 달이 덩그러니 떴다. 하두강은 주모를 생각하는 듯 달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아련히 들려오는 거문고 소리······. 하두강은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는 주막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분네와 순이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안방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리었다. 술상 앞에 덕수가 앉았고 주모가 거문고를 거두고 남편에게 술을 따랐다.
“서방님, 모처럼 제 술 한 잔 받으십시오.”
덕수는 술을 받아 마시고는 그윽이 아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여보,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이 많구려. 게다가 팔자에도 없는 술장사를 시키고 뭇 사내들에게 웃음까지 팔게 하여서 정말 미안하오.”
“아닙니다, 서방님···.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에 어찌 귀천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직 이렇게나마 서방님을 곁에 모시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면목이 없구려···.”
“밤이 깊었으니 그만 주무십시오.”
“그럽시다.”
방문에 불이 꺼지고 초가지붕 위에 밝은 달이 둥실 떠올랐다.
배 위에서 달을 보고 있는 하두강의 애타는 눈에 달처럼 밝은 주모의 얼굴이 떠오르자 하두강은 안을 듯이 주모 아씨를 불렀다.
“주모 아씨!”
그러나 다음 순간, 실망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와서 침실에 벌렁 드러누웠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밖에서 부하 상인들이 문을 두드렸다.
“나리! 배 떠날 시각입니다! 여직 주무십니까?”
이어서 문이 열리었고 부하 상인 하나가 고개를 들여 밀었다. 그러나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러나 부하 상인은 하두강이 주모 아씨를 찾아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일 났군, 일 났어! 아무리 여자한테 미쳤기로서니 이제는 하던 장사까지 중지하고선 두 눈이 시퍼런 남편 있는 여자를 좋아하면 어쩔 것이여?”
부하 상인의 짐작대로 하두강은 주막 앞에 오고 있었다. 주춤하고 청사초롱을 올려다봤다.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내친걸음이라는 듯이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벌써 주객들이 자리하였고 하두강은 들어서며 두리번거렸다. 주객들이 심상치 않은 눈으로 하두강을 흘겨보았다. 하두강은 방 앞에 가서 헛기침을 두어 번하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쯧쯧···!”
“미쳐도 철저하게 미쳤군!”
“그러게, 말이여!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렸다고···!”
“이 집 주모 아씨가 어떤 분인데, 아무려면 장사치한테 옆 눈이라도 줄 성싶어서 저러는가, 저러길···.”
“아, 못 오를 나무니까 아예 뿌리째 뽑아 버리자는 속셈 아니겠나!”
“그러고 보니 저 자가 암만 혀도 뭔 일을 저지르고 말 모양이구먼?”
주모의 남편 덕수와 하두강이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조반은 드시었소?”
하두강이 고개를 설레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해 놓았으니 함께 듭시다.”
하두강이 수저를 들었다.
“찬은 변변치 않지만, 많이 드시오.”
하두강은 밥을 먹다 말고 문득 구석에 놓인 장기판을 보았다.
“조반 드시다 말고 무얼 하시오?”
하두강은 그만 수저를 지웠다.
“많이 먹어 했소.”
“아니, 진지는 그대론데, 많이 들다니요?”
하두강이 일어섰다.
“벌써 가시려오?”
하두강이 대꾸도 하지 않고 나가자 덕수는 의아하였다.
“아니, 왜 벌써 나오십니까? 지루하시면 서방님과 심심풀이로 장기라도 두시며, 시간을 보내시지요.”
“헤헤···. 우리 사람 오늘은 갑자기 오느라 돈 가진 게 없어 해서···.”
“돈 걱정은 마시고 맘껏 노십시오. 그리고 저녁도 예서 드십시오. 비단 한 필이면 며칠을 묵어도 족합니다.”
“고맙긴 하지만, 오늘은 그만 가겠어 해. 하지만 우리 사람 하루라도 주모 얼굴 못 보면 몸살이 나서···.”
주모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행여나 서방님께서 그런 말씀 들으시면 오해하시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그럼 다시 오겠어 해.”
하두강이 휑하니 나갔다. 주모도 의아하고 주객들은 혀를 찼는데···.
하두강이 배 위에서 생각에 잠긴 채 달을 보며, 또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막에서 들려오는 거문고 소리가 하두강의 애간장을 태웠다. 하두강은 그만 고통을 참지 못하여 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두강은 배 안으로 들어와서 침실에 벌렁 드러누웠다. 멀거니 천장만 응시하였다. 그 눈에 방끗 웃는 주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두강은 꿈을 꾸듯이 중얼거렸다.
“주모 아씨···.”
그 얼굴에 부하 상인들이 지껄이던 말이 떠올랐다.
“남의 밥의 콩이 더 굵어 보인다고 그만 잊어버리쇼!”
“아,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쩔 것이여? 남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하두강은 실망의 빛이 완연하였는데···.···.
“미쳐도 철저하게 미쳤군!”
“그러게 말이여!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렸다고···!”
“이 집 주모 아씨가 어떤 분인데, 아무려면 장사치한테 옆 눈이라도 줄 성싶어서 저러는가, 저러길···.”
하두강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 오르지 못할 나무니까 아예 뿌리째 뽑아 버리자는 게 아니겠나!”
“그러고 보니 저자가 암만 혀도 뭔 일을 저지르고 말 모양이구먼?”
묘안을 궁리하던 하두강은 주모가 하던 말을 번개같이 떠올렸다.
“아니, 왜 벌써 나오십니까? 지루하시면 서방님과 장기라도 두시며, 심심풀이로 시간을 보내시지요.”
순간, 하두강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바로 그것이로구나!”
그러면서 벌써부터 승산의 미소가 가득하였다.
하두강이 비단 보퉁이를 메고 들어와서 한걸음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분네와 순이가 의아하게 보았다. 덕수와 하두강이 장기판을 마주하고 앉았다.
“장사는 안 되고, 심심하던 차에 장기나 한 수 배울까 하고···.”
“장기라면 송나라에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나 마나 손님께서 이길 건 불을 보듯 뻔하지요.”
“모르시는 말씀, 우리 사람 눈만 뜨면 장삿길 다니느라 장기 둘 시간이 없어 해서, 겨우겨우 가는 길만 알아 해.”
“그래도 왠지 썩 내키지 않습니다.”
“자자, 겸손해하지 말고, 한 수 두어 해 이거. 우리 사람 한 수 배우는데, 두 냥씩 낼 테니까!”
“정히 그러시다면 손님 접대로 알고, 한 수 배우겠습니다.”
하고 주모의 남편, 덕수가 다가앉아 대열을 정비했다. 그러나 잠시 후, 하두강은 음흉한 계산인 듯 한판 지고, 물러나 앉았다.
“아니, 일부러 저 주시는 건 아니오?”
“그러니 우리 사람 한 수 배우겠다고 하지 않았어, 해. 이거···.”
“그래도 그렇지, 풋내기 내 장기가 손님을 이기다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하두강이 엽전 두 냥을 내놓았다.
“그러니 약속대로 자, 받아 하쇼!”
“아, 아니오. 손님 접대로 둔 것이니 돈은 사양하겠소.”
“아니, 한 수 배우겠다는데, 이러시면 되려 우리 사람이 섭섭해하오.”
“모름지기 이기고,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승부의 세계란 양쪽이 대등해야 정당하다고 하겠기에 사양하는 것이오.”
“그러시다면 이참에 아예 내기 장기를 두어 하는 것이 어떠하겠소? 우리 사람 비단이라면 얼마든지 있어 하니···.”
“그러나 나는 비단이 없으니 무엇으로 대등한 승부를 한단 말이오?”
“아, 그러니까 비단 대신에 돈으로 닷 냥, 닷 냥만 걸어 하쇼!”
덕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선뜻 닷 냥을 내놓았다.
“좋소이다! 그 대신에 양보하지 말고 정당하게 두는 겁니다!”
“우리 사람 정당한 거 좋아하오. 자, 그럼···.”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장기를 두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또 하두강이 진 모양인 듯 비단을 꺼내 놓았다. 장기판이 거듭될수록 쌓이는 비단 더미와 함께 덕수의 모습이 득의에 차 보였다.
하두강이 비단 보퉁이를 메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방안에 비단 더미가 산더미 같았다. 이제 하두강의 보퉁이에는 비단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법 신중한 하두강과 자신만만한 덕수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였다. 그때였다. 방안을 들여다보는 분네와 순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그 너머로 넌지시 보는 주모도 싫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러나 왠지 걱정스러웠는데······.
“서방님, 아무리 놀음도 좋으시지만,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제 그만 일어들 나시지요.”
“허허! 부인은 별걱정을 다 하시는구려!”
“아닙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고는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만 정신을 차리시고 가업을 돌보십시오.”
“아니오. 우리 집안에 이만한 재물이 들어오기는 오늘이 처음이요. 이런 판국에 그까짓 장사는 해서 무얼 하겠소? 그러니 부인은 아무 염려 마시고 건너가 쉬시구려!”
주모는 하는 수 없이 물러났다.
“얘, 순이야, 순이 있느냐?”
“예, 주인님···.”
“오늘부터 우리 집에 장사는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러니 일찌감치 대문 닫아걸고 집 안 청소나 말끔히 해 놓도록 하여라! 그리고 참, 내 이 장기 끝나는 대로 그동안 수고한 집안 식솔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 터이니 그리 알아라!”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요!”
그러나 곧 주모의 눈치를 보면, 주모는 못마땅하게 안방으로 건너가 버리었고 순이는 하는 수 없이 나가서 대문을 닫아걸었다. 덕수는 방안에 그득한 비단을 챙기며, 희희낙락하였다. 그러나 하두강은 그런 덕수를 보며, 속으로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여보, 주인장,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소.”
“무엇이? 그럼 아직 배 안에 비단이 남았단 말이오?”
“배가 남아 있지 않소.”
“아니, 그럼 배까지···?”
“그렇소! 마지막 배를 걸고 한 판 멋 떨어지게 두어볼 생각이오!”
“하지만 손님께선 아무리 승부도 좋지만, 배까지 잃어버린다면 어찌 돌아가려고 그러시오?”
“고국에 연락해서 배를 가져오라 하면 되니 그 염려는 놓아 하쇼.”
“좋소! 꼭 그러시다고 하시면 나는 여기 있는 이 비단을 전부 걸겠소!”
“아니 될 말씀, 그것으론 배 값에 어림도 없다 해.”
“그렇다면 내 이 주막을 걸겠소!”
하두강은 손을 내 저었다.
“아니, 그렇다면?”
“이 집안에 배 값과 맞먹을 만한 것이 딱 한 가지 있어 하긴 하지만···.”
“아니, 이 집안에 배 값과 맞먹을 물건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이오?”
하두강은 위선의 미소를 흘리었다.
“궁금하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서슴지 말고 말해 보시오.”
“말하면 걸어 하겠소?”
“그렇소!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기꺼이 걸겠소!”
“그 말이 정말이란 말이오?”
“남아 일언 중천금이란 말도 있으니 과히 염려를 놓으시고 말씀이나 해 보시오.”
“우리 사람 남아 일언 중천금 좋아하오! 그럼 당신의 아내 주모 아씨를 걸어 하쇼! 그만하면 우리 배와 서로 절반씩 어슷비슷하다 하겠소.”
“에끼, 여보쇼!”
“아니, 왜 싫어하쇼?”
“농담도 유분수지, 그건 너무하지 않소?”
“그렇다면 남아 일언 중천금은 잊어 했소?”
“아니, 이 자가?”
“어찌하겠소?”
“음······.”
덕수는 깊은 시름을 내쉬었다.
‘하기야, 배는 이미 따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잠시 아내의 이름을 빌린다고 한들 그게 무슨 죄가 된단 말인가···?’
그러나 고개를 설레었다.
‘아니야. 그러다가 만에 하나 지게 되는 날엔······.”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하면 그럴 리는 없겠지···. 이제까지 내리 이겨서 이 많은 비단을 송두리째 땄는데, 딱 한 판이야 이기지 못 하겠는가···. 만에 하나 진다고 가정한들 비단을 팔아서 여자를 살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도 지금 부인보다 젊고 예쁜 처녀로 말이야···. 히힛···.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잘하면 배까지 따서 떵떵거리는 대부호가 될 터이니 에라, 저도 그만, 이겨도 그만, 이판사판이다!‘
하두강이 은근히 물었다.
“어찌 결정했소?”
“좋소! 손님의 소원대로 잠시 내 마누라를 걸겠소!”
“그게 정말이오?”
“남아 일언 중천금이오!”
“남아 일언 중천금 좋아했소! 자, 그럼 두어 하쇼!”
장기판에 장기의 행과 열을 갖추고 뚱땅뚱땅 장기를 두기 시작하였는데······. 주모는 방안에서 주고받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다. 분네와 순이도 몹시 놀랐다. 하두강이 다짐을 하였다.
“만약에 우리 사람이 이기면 당신의 아내 주모 아씨를 데려가도 이유 없는 거요?”
“글쎄, 염려 놓으시고 장기나 두시오! 남아 일언 중천금이라고 하지 않았소!”
주모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분네와 순이도 초조하였는데, 장기 두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장이요! 마장 받어 하쇼!”
“자, 멍이요! 그까짓 마장쯤이야 상으로 잡아 하였소!”
“양수 겹장이요! 마를 잡는 것까진 좋아했지만, 포, 포장은 무엇으로 받아 할 것이요?”
“그러고 보니 제법인 걸···!”
“이거 장기 두는 사람 어디 갔어 해? 뒷간에 갔어 해 이거?”
“이거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겠군···.”
덕수는 그만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빛이 되었다. 주모는 서둘러 기침을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닌 게 아니라 덕수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주모가 다가앉았다. 덕수는 눈앞이 캄캄하여 부끄러운 얼굴로 주모를 보았다. 주모는 원망스럽게 덕수를 보고는 힘없이 일어섰다.
힘없이 나온 주모는 들마루에 쓰러져서 울었다. 분네와 순이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였다. 주모 얼굴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장부의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으니 속히 내기를 실천하쇼!”
그 소리에 주모는 어떤 결심을 하였다.
덕수는 속절없이 죄 없는 담배만 피우고 있었고 하두강은 기세등등하였는데, 덕수는 마침내 결심하고 일어섰다.
덕수가 나와서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에서 흐느껴 울던 분네와 순이가 원망스러운 눈길로 덕수를 보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었다. 덕수는 할 수 없이 잠긴 대문을 보고는 안방 쪽을 보았다.
덕수는 힘없이 안방으로 들어오다가 멀거니 아내를 보았다. 아내 주모는 속옷을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그 한편에 작은 보따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주모는 이윽고 보따리를 옆에 끼고 밖으로 나갔다. 덕수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주모가 하두강을 따라나서고 있었다. 분네와 순이는 그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고···. 저만큼 앞서가던 하두강이 돌아보았다. 주모가 쭈뼛쭈뼛 오고 있었다. 못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정든 집을 돌아보았다.
그 눈에 청사초롱과 방금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듯한 분네와 순이가 대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주모는 울음을 울며 뛰어갔다. 하두강은 그제야 주모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분네와 순이가 그만 속이 상하여 대문을 와락 닫아 버리었다.
멍하니 방에 서 있던 덕수의 눈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맥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분네와 순이가 방 앞에 와서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서 나와 보셔요, 주인 나리! 아씨 마님 떠나가십니다요!”
“재물이 아무리 많으면 무얼 합니까요? 비단 제 돌려주고 아씨 마님 찾아오셔요!”
덕수는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 일어섰다.
“앗 불사! 내가 속았구나! 이놈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내 사랑을 뺏어 갔구나!”
덕수가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안 된다, 이놈아! 사랑이 없는 세상에 재물이 다 무엇이냐?”
미친 듯이 주막방으로 들어갔다. 허둥지둥 들어온 덕수가 비단을 보자기에 싸기 시작하였다.
“이 물건 제 돌려줄 테니 내 아내 돌려다오!”
그러다가 닥치는 대로 팽개쳤다.
“사랑이 없는 세상에 이것이 다 무엇이냐? 내가 그만 재물에 눈이 멀어 사랑을 잃었구나! 에라,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이냐! 내 사랑 돌려 다오, 이놈아…!”
비단을 끌어안고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미친 듯이 강둑길을 달려온 덕수가 털썩 주저앉았다. 비단을 흩뿌리며 목 놓아 울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돌아와 주오! 황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정이건만, 내 어이 진즉에 그것을 몰랐단 말인가···? 임이여, 이 일을 어찌하오···? 부인은 이미 먼 나라로 가시었으니 언제 다시 돌아오리···.”
울면서 하염없이 강 쪽을 바라보았는데···.
주모는 배 위에 앉아 철썩이는 파도를 보며 울고 있었다. 상인들이 주모를 보며 야단법석이었다.
“가오리데 구냥! 가오리데 구냥!”
“고려 여자! 고려 여자!”
“하오간! 하오간!”
“잘 생겼다! 잘 생겼다!”
하두강이 주모를 데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상인들이 야유를 했다.
하두강이 주모를 침실에 앉게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주모는 더욱 흐느껴 울었다.
잠시 후, 하두강이 들어왔다. 주모는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있었다. 하두강은 충혈 된 눈으로 다가서며 주모의 몸을 더듬었다. 주모는 번쩍 고개를 들고 소스라쳤다. 하두강은 다시 다가섰고 주모는 더욱 몸을 도사렸다. 그러자 하두강은 와락 주모를 안았다. 순간, 주모가 하두강의 뺨을 때렸다. 하두강은 멈칫하다가 싱긋 웃었다.
“그러지 말고 내 말 들어 해···.”
“흥!”
“이제는 별수 없이 우리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으니 옛정은 잊어버리고 새 정을 맺어 해···.”
“제발 부탁입니다. 이러지 마시고 남편께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집이라도 팔아서 비단값 변상하겠습니다.”
“우리 사람 비단은 필요 없어 해. 처음부터 당신을 얻으려고 계획적이었다 해. 그러니 앙탈 부리지 말고 말 들어 해. 우리 사람 고향에 가면 살기 좋다 해···.”
“아무리 좋은 말로 구슬려도 소용없습니다. 남녀의 정이란 하나뿐이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혀를 깨물고 죽을 것입니다!”
“아니, 뭐야? 혀를 깨물고 죽어 해?”
“그렇습니다! 만약에 완력으로 나를 정복한다면, 그때는 내 어이 정조를 더럽힌 몸으로 천추의 한을 안고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당연히 혀를 깨물고 죽을 것입니다!”
표독한 주모의 얼굴에 벽력같은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였다. 하두강은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주모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상인들이 천둥 번개 속에서 술렁이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
“여울도 아닌데, 배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이요?”
“그렇다면 얼른 상앗대를 짚어 보아라!”
“상앗대를 왜 짚어 보지 않았겠습니까! 배 밑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이냐?”
그때였다. 앞 못 보는 점술사가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나섰다.
“소인이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
“옳지! 점술사는 속히 점을 쳐보아라!”
“그럼···.”
점술사가 가운데에 앉아 지팡이를 세우고 입속으로 주문을 외었다. 주위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하였는데······.
침실에 앉아있는 주모는 마치 독사가 따비를 틀고 독을 쓰듯 꼿꼿하게 앉았다.
점술사는 주문을 외며 마치 지팡이를 독을 쓴 독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자 드디어 지팡이 끝에 방울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점술사가 지팡이를 잡은 손을 스르르 떼었다. 그러자 지팡이가 그대로 서 있었다. 방울이 여전히 울리었다. 감탄사가 연발하였다.
“이 배 안에 한이 맺힌 여인이 있습니다.”
상인들이 더욱 웅성거렸다.
“여자가 독을 쓰고 있기 때문에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여자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맞아요! 주막에서 데려온 그 여자 때문일 겁니다!”
“나리, 그 여자를 돌려줍시다!”
“속히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모두 간절하게 하두강을 바라보았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어찌해서 데려온 여자라고 그냥 돌려주란 말이야! 절대 그럴 순 없어!”
하두강은 휑하니 들어가 버렸고 상인들은 더욱 웅성거렸다.
황급히 침실로 들어온 하두강이 횡설수설하며 주모의 주위를 맴돌았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어찌해서 데려온 여자라고 그냥 돌려주란 말이야! 우리 사람 여자 없이 못 살아···! 요렇게 잘난 여자를 돌려주라니 어림도 없어 해···!”
그때였다. 표독한 주모 얼굴에 다시 뇌성과 번개가 번뜩였다. 밖에서 비명이 요란하였고 문이 와락 열리고 상인들이 허겁지겁 들어섰다.
“무엇이냐? 속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갈 생각들은 아니 하고 왜들 야단들이야?”
“배, 배가···!”
“배가 어찌 되었단 말이냐?”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뭐, 뭐야? 배가 가라앉아?”
“바닷물이 용솟음치더니 배가 점점 가라앉고 있습니다요!”
초죽음이 된 하두강의 얼굴에 뇌성과 번개가 더욱 난무하였다.
얼마 후, 강물에 허우적이는 여자가 있었다. 널판때기를 잡고 간신히 물가로 기어 나오는 여자는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주모였다. 주모는 헐레벌떡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둑길을 달려갔다.
“서방님―”
울고 있던 덕수가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에 달려오는 주모의 모습이 보였다. 덕수가 벌떡 일어섰다.
“여보!”
“서방님!”
지친 걸음으로 달려가고 달려오는 주모와 덕수···. 그들은 꿈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와락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어와 다시 만난 임이여,
요네 절부 네 몰랐더냐.
돈에 어둔 못난 자들아,
사랑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라.
정보가 노을이 붉게 물든 돛배에서 손을 흔들었다. 노인도 강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잘 있으시오―”
“잘 가시오―”
“여보, 노인장―”
“왜 그러시오―”
“주모의 남편이 불렀다는 이 예성강 노래의 후편을 제가 한번 즉흥으로 불러 볼까 합니다―”
“좋소이다― 어디 한번 불러 보시오―”
정보는 즉흥으로 시를 읊었다.
청산은 그림같이 배 봉창에 가득한데,
실같이 가는 비 돌무지에 뿌리네.
밤 깊어 잠 아니 올 제
뱃사람들 예성강 노래만 부르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과연···! 그러니 내가 비록 늙었어도 사람은 볼 줄 안다고 했었지···!”
그러면서 끝없이 손을 흔들었다. 노래와 함께 한 폭의 그림같이 배는 점점 멀어 져갔고 멀리 어부들의 노랫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예성강곡(禮成江曲)
<전편>
어와 다시 만난 임이여,
요네 절부 네 몰랐더냐.
돈에 어둔 못난 자들아,
사랑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라.
<후편>
靑山如畵滿封窓
細雨如絲灑石矼
己是夜闌淸不寢
舟人更唱禮成江
청산은 그림같이 배 봉창에 가득한데,
실같이 가는 비 돌무지에 뿌리네.
밤 깊어 잠 아니 올 제
뱃사람들 예성강 노래만 부르네.
*유래 : 예성강곡(禮成江曲)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그 유례를 전하고 있다. 송나라 거상 중 장기(將棋)의 고수인 “하두강”이라는 인물이 예성강 벽란도 “예성집”이라는 주막에서 주모(酒母)의 미모에 반하여 주모의 남편과 심심풀이 장기를 두는 척하며 접근하여 배에 가득한 비단을 몽땅 잃어주고 마지막 남은 배와 주모를 걸게 하여 결국 내기 장기에 이겨서 주모를 데려간다.
*취재일기 : 남편은 뒤늦게 속은 것을 알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부른 것이 전편이고 훗날 서기 1450년 무렵, 예성강 벽란도 국제무역항 하류 급수문(急水門) 부근, 그곳을 지나던 정몽주의 손자이며 고려의 시인인 정보(鄭保)가 부른 것이 후편이다.
*참고로 인터넷에 바둑이라는 말은 와전된 말이며, 떠도는 이야기는 모두 본 저서를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지하며,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20여 권의 ‘한국의 역사’를 저술한 朴相玉 역사학자 등과 함께 문헌을 통하여 검증받은 저술임을 밝힌다.
*정보[鄭保]: (요약)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정몽주의 손자다.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나자 사육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가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권도운 (방송작가)
- 1967년 동시, 동화, 단편 「병사의 일기」 소년한국일보 당선. 시조 조선일보 우수상.
- 1972년 시나리오 다수 영화 매거진 「신화」, 「환녀」 등 당선.
- 1975년~KBS 舞臺, 戰友, TV 文藝劇場, 傳說의 故鄕 등 다수 당선 및 執筆.
-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 근무.
- 현상공모-회화, 포스터 등 다수 당선. 고화 수복.
- 영화, 드라마 기획, 집필.
- 논문 「과학과 靈의 만남」 등
- 대한문학인협회 고문
- 한국기독교작가협회 부회장
- DNA·RNA 학술연구협회 『공백의 비밀』 고문. 방법론 학교 강사 지도 교수.
첫댓글 1997 도서 출판 드라마 – 작가들이 모여서 시작, 2006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 만들기 및 인격 향상만이 환경운동이다.’라는 발행목적의 『사람과 환경』을 설립하였으나 똑같은 상호를 너무나 많이 사용하여 – 2020 문학 전문지 「공백의 비밀 (DNA·RNA 학술연구협회)」 로 상표등록, 인격과 실력를 향상하기 위하여 DNA·RNA 학술연구협회와 함께 좋은 유전자 만들기 연구에 전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