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무속 드라마가 안방을 차지하고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을 높이는 가운데 국민의 정신은 영상 문화로 병들고 오염되었습니다.
드라마 작가의 의식과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의 머리 속엔
파멸과 고생의 파행 길을 걷는 파탄지로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인.사.철이 강조되는 시대에
인문과 역사와 철학의 중심 사상은 개성과 자유를 인본주의 이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실존 사상으로 쌓아가는 신바벨탑 문화는
다원주의 이상을 지상의 파라다이스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교육,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 중심의 문화는 마침내 밤하늘의 별마저 가리웠습니다.
별 빛 쏟아지는 밤 하늘의 정서는
하늘의 하나님 영광을 노래하는 청조적 서정으로 넘칩니다.
별 빛 쏟아지는 밤 하늘의 정서를 잃어 버린 도시 문화는
그 상실한 대로 버려두는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책 읽어 주는 라디오와 TV속의 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시중의 거의 모든 책은 인본주의 사상을 모티브로 하는 인문학 서적이 대부분입니다.
기독교 베스트 셀러도
기독교 인본주의로 가득할 뿐입니다.
문득 예레미야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렘6:7-8)
선을 가장한 샘물이 솟구쳐 악을 쏟아내는 시대상은
예레미야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인본주의는 악인가 선인가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치관이 혼란스럽기만합니다.
인본주의 사상이 중심인 포스트 모던 시대의 의식은
교황마저 동성애를 수용하고 혼전 동거를 허용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시대......
성경적 가치관은 시대의 선과 첨예한 대립과 갈등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21세기 인류에게 성경적 가치는
잃어버린 밤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 네티즌을 향하여
막장 드라마와 같은 첨예한 대립과 갈등 구조를 가진 성경 이야기를 하자니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과
오직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다윗과 그의 군대 장관 요압의 이야기는
밤 하늘의 별을 잃어 버린 우리 시대 신본적인 삶을 아침 햇살처럼 영롱한 교훈을 줍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밤 하늘의 별을 마음의 창조적 서정으로 회복할 것입니다.
다윗과 요압은 혈연적으로 외삼촌과 조카의 친족 관계이며
다윗은 이새의 아들이요, 요압은 이새의 딸 스루야의 아들로 외손자입니다.
요압은 다윗 왕국의 개국 공신으로
다윗을 도와 에돔과 아람을 물리친 백전백승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때로는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었습니다.
밧세바 사건으로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 전사하게 하라는 밀명을 수행하였고
다윗의 인구 조사가 하나님의 기뻐하지 않는 일임을 진언하면서도 인구 조사를 수행하였습니다.
요압은 왕의 신하로서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서까지
왕인 다윗의 명을 받드는 충성된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의 충성은 악한 뜻은 마지 못해 받들었지만
다윗의 선한 뜻을 받들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다윗의 충정을 요압은 받들지 못하였고
2인자로 자신의 뜻을 세우는 일에 의로운 자를 서슴지 않고 살해하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싸우는 싸움을 싸우는 전사였지만
요압은 자신의 업적을 쌓는 전쟁 영웅의 정복자였습니다.
요압의 사이코 패스적인 살인은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암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다윗의 군대 장관인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엇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려가서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보셋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가 기브온에서 맹렬히 싸웠는데
아브넬이 패하여 도망하다가 발이 빠른 요압의 아우 아사헬의 추격을 받았으나 역공하여 죽였습니다.
요압은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의 칼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갈수록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갔습니다.
한편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았습니다.
아브넬의 권세는 사울의 첩 리스바를 통간하였고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책망하였습니다.
아브넬은 적반하장으로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며 오히려 역정을 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배신하고
다윗과 화친을 언약하였습니다.
마침내 재혼한 미갈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다윗의 아내 미갈을 빼앗아 오는 첩보를 수행함으로 화친의 조약은 성립하였고
아브넬은 헤브론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어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완전히 넘겼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화친의 언약을 맺고 평안히 돌아가는 아브넬을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전령을 보내어 데리고 와서 친근히 성문 안으로 들어가서
배를 찔러 암살하였습니다.
아브넬의 살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며 저주하였습니다.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울었습니다.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이르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였으며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울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신복들에게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사울의 첩을 통간하는 과오를 법하였지만
다윗의 이스라엘 정통성을 인정하였으나 요압은 아브넬의 화친 언약을 위장전술로 오해하였습니다.
아브넬은 전성기에는 사울의 뜻을 따랐지만
죽음으로 사울의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겨 화친 언약을 맺음으로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 사이에 전생을 불식 시키고
다윗의 통일 왕국을 이루는 데 의로운 자란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있으면서 다윗의 저주를 받았으며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는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복수의 칼끝은 한을 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하는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요압의 악행을 곧바로 처단하지 못한 다윗은
일생의 암적 존재가 되어 눈물의 분을 한으로 쌓았습니다.
또한 아브넬을 암살하였던 요압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척살하였습니다.
한 때 요압은 누이 다말의 일로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 간 압살롬을 화해시켰으나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여 군대를 일으켰을 때 압살롬의 군대 장관으로 선택되지 못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요압대신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삼았는데
아마사는 이새의 딸 아비가일의 아들이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과 압살롬 뿐만 아니라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마저 암살하였습니다.
이새의 딸 스루야의 아들이 요압인데
요압과 이새의 딸 아비가일의 아들 아마사는 이종사촌지간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누이 다말의 성폭행 사실을 알고
계획적으로 왕자인 암논을 암살하였습니다.
또 재판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도적하여
마침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다윗을 광야로 몰아내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궁을 차지한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으로 다윗과 함께 미처 도망하지 못한 후궁들과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며 성폭행으로 욕보였습니다.
다윗을 추격하던 압살롬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려
노새는 빠져나가고 압살롬은 공중에 달렸습니다.
군졸들은 아무도 압살롬을 죽이지 못하엿으나
요압은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압살롬의 악행은 처참한 죽음으로 심판을 받았으나
요압이 압살롬을 죽인 것은 다윗의 왕명을 거역한 것이었습니다.
압살롬의 죽은 소식을 들은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울었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아무도 내 아들 압살롬의 생명을 해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요압은 왕명을 무시하고 나무 가지에 매달려 저항 할 수 없는 압살롬을 찔러 죽였습니다.
압살롬이 죽자 압살롬의 군대는 흩어졌고.....
다윗은 골육인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다윗 곁에서 군대 장관이 되게 하였습니다,
다윗의 명을 받아 비그리의 아들 세라를 치기 위해 연합군으로 요압과 아마사가 만났을 때
요압이 인사하는 척 하면서 칼로 배를 찔러 아마사를 죽였습니다.
요압은 끝까지 솔로몬 대신 아도니아를 왕으로 옹립하다가 실패하고
솔로몬의 명을 수행한 브나냐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요압의 죄명은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겨눈 복수의 칼끝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자신에게 돌아왔고
다윗 왕국의 배경으로 가장 영예로운 자리에서 잡스런 권력의 힘으로 막장 드라마의 악역을 연출하였습니다.
다윗과 함께 군대 장관으로 전쟁의 용사였던 요압은
다윗의 세 용사와 삼십인 용사의 명단에도 들어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의 아우 아비새는 둘째 삼 인의 두목으로 존귀한 자였고
아브넬에게 죽은 아사헬은 용사 삼십인 두목의 명단에 올랐습니다.
요압은 복수의 칼끝으로 동생을 죽인 원한으로 아브넬을 암살하였고
군대장관으로 선택받지 못한 감정으로 압살롬을 무참히 살해하였으며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자신을 대신하여 임명받은 아마사를 질투심으로 척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모인 다윗의 삶 속에
다른 생각을 가진 요압의 삶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마음대로 칼을 휘둘렀습니다.
다윗과 끝까지 함께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동행한 다윗의 길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본주의 신앙의 삶이었지만
요압의 길은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의 정복자의 길이었습니다.
다윗은 대적하는 사울을 죽이지 않았으며 악행을 일삼는 요압을 척살하지 않았으며
사울과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가를 지었고 압살롬의 죽음을 탄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화친의 언약을 맺었고
압살롬의 군대 장이 되었던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장관으로 삼았습니다.
사울의 집 남은 사람을 후대하였고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를 관용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욕심을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았으며 .....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의를 다윗 왕국으로 건설하였습니다.
포용과 관용의 리더쉽을 가진 다윗의 신앙은
영원한 다윗 왕으로 천하를 통치하는 메시야 언약의 뿌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