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지리학1
장희한
근래 들어 국립현충원에 고 박정희 대통령묘소에 쇠말뚝이 박혔다는 사건이 벌어졌다 참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울분이 터지는 소리다 어떻게 국부의 묘소에 쇠말뚝을 박았을까 묘소란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해 양지바르고 집 가까운 곳에 무덤을 만들어 섬겨 오고 있다 그런데 국부의 무덤에 쇠말뚝을 박다니 나라가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쇠말뚝을 박은 사람은 조상이 없을까 쇠말뚝을 박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독을 품었으면 죽은 사람의 무덤에 말뚝을 박았을까 왜 무엇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람을 죽였나 아니면 국민을 못살게 했나 잘못이 있다면 국민을 배고픈 도탄에서 건져냈을 뿐이다 보라 우리가 지금에 와서 비행기를 제작한다지만 비행기 설계는 박정권 때 자주국방이라 외치며 설계했던 것으로 지금에야 만들었다 그분의 업적이야 대한민국 곳곳에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이 있던가 이런 분을 죽은 시신에다 쇠말뚝을 박다니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우리가 전국적으로 명산에 쇠말뚝을 박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놈들이 박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자로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과거 김영삼 정부 때 중앙청이 광화문에 있어 옮긴 것이 지금의 천안 현충원에 있지만 그것은 중앙청 윗부분이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서 일제 잔 제를 없앤다 하며 옮겨 놓았다 풍수지리 학설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일행법이라 하여 조선 초기에 들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풍수지리 학설은 중국에서는 진시황시절 이전부터 만들어 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다 풍수지리 학설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느냐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무학 대사가 도읍지를 정할 적에 삼각산을 거쳐 흘러내린 산맥을 보고 정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청와대가 멀리서 보면 얼마나 웅장하고 보기가 좋으냐 말이다 사방으로 성을 쌓고 문을 만들어 궁궐을 지켜왔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 놈들이 풍수지리 학설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퍼뜨린 것은 조선에 인물이 하도 많이 나니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가 조선을 도우려 왔다가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일화가 있다 이여송은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 왔노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아버님 왈 너의 조부모의 무덤이 압록강 강변에 있는데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이여송이가 가만히 생각하니 전쟁이 끝나고 돌아 올 적에 마지막 쇠말뚝을 박은 곳이 자기 할아버지 묘소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이여송은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사실은 명나라 군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을 한 곳은 몇 군데 밖에 안된다 유부녀나 노략질 하고 전쟁 흉내만 내다 돌아갔다 (징비록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자기네 한 데 직접 피해가 없는데 피를 흘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가깝게는 육이오 사변을 보면 안다 중공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왔다하나 일차로 투입된 군대는 중국동포들이다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때 중국에 살려고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백성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중국이 남의 나라에 전쟁을 하면서 자기 나라 백성은 죽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중국 놈들은 전쟁비용으로 백두산을 절반 뺏어 간 것이 오늘에 이른다 그리고 엉터리 풍수지리 학설 책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퍼뜨린 것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원래 정통적으로 우리나라 풍수지리학 책은 따로 있다 이름은 모르겠으나 성은 이 씨고 이름은 잊어먹어 여기에 올리지 못함을 사과드린다. 그리고 박정희 묘소에 쇠말뚝을 얼마나 많이 박았느냐 하면 평당 2ㅡ3개를 박았다는데 언제 이렇게 박았느냐고 문의 한바 10년 전에 태풍으로 인해 잔디가 흘러내려 박았다고 말했다 (잔디 한 평은 사방 30센트) 그렇다면 묘소의 넓이가 백 평을 기준할 적에 한 평은 잔디 36평이다 그러면 한 평에 두 개만 박았다 하면 철 핀이 72개란 숫자가 나온다 묘소 전부를 계산 한다면 7200개인데 현충원에 계산으로는 4400개라 하는데 현제 뽑아 낸 핀은 1400개를 뽑아내었다
풍수란 물과 바람을 말한다 무덤에 물이 없고 바람이 세지 않는 곳이면 조상 무덤으로서 손색이 없지 않을가 하는 저의 소견이다 그렇다고 해서 풍수지리 학설을 아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땅의 오묘함은 우리 인간으로서 아직도 다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 몸속에 지구의 모든 물질이 다 들어있다 의학 서적에 보면 몸에 좋은 광물질을 약품으로 만들어져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내 고향은 창녕이다 창녕읍 뒷산에 고분이 20기 정도가 있는데 무덤 한 곳에서 미이라가 발견됐다 (부곡에서도 발견)고분의 크기는 왠만한 산처럼 커서 무덤 안으로 들어서면 조금은 구부려 걸어 들어갈 정도니 말해 뭘 하랴 그 무덤은 벼슬아치나 큰 부자집 마님의 무덤인데 여종과 같이 순장된 무덤이다 그런데 마님은 뼈 한 조각 없이 다 삭아버리고 없는데 여종은 옷을 입은 그대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현제 경남 박물관에 보관) 그렇다면 한 무덤인데 어째서 주인은 흔적 없는데 종년만 남았을까 다 자라지 못해 아니 사람으로서 다 하지 못한 한이 맺혀 그럴까 창녕박물관에는 사진만 남아있다 얼마나 원통한 일일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무리 명당이라 하나 좌가 맞지 않으면 명당의 운이 효력이 없는 것이 풍수지리 학설이다 내가 경험한 일이지만 필자의 아버님 묘소가 그랬다 어머님이 살아 계실 적에 형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아버지가 꿈에 보였는데 등 뒤 두루마기가 젖었으니 무덤을 파 보라는 말씀이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두었던 모양이다 해서 세월은 흘러 묘를 이장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님 묘를 파 보니 과연 물이 솟고 있었다 뼈는 이미 다 삭아 없어지고 몇 조각 남은 것을 이장을 하고 이틑 날 팠던 무덤에 가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일일까 팠던 무덤에는 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처음 무덤을 만들 적에 도저히 물이 나올 자리가 아니다 무덤 바로 앞에는 밭 언덕이고 밭 옆에는 도랑이 있으나 비가 오지 않으면 물 한 방울 없는 곳이다 결국 좌향이 맞지 않았다는 소리다
내가 이야기 한 토막을 하겠다 명당이란 그렇다 산이 잘 생겨야 하고 그 잘생긴 산에 맥을 알아내어야 한다 맥이란 산의 형태가 십이지로 볼 적에 어떤 동물의 형태로 그 동물이 학이라면 명당은 학의 등이다 그리고는 좌청룡 우백호가 천년 적으로 에워싸 무덤이 마치 반지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것처럼 되어 있어야 명당이다 그렇다고 해서 좌가 맞지 않으면 헛일이다 좌란 무엇일까 좌란 시체가 누운 자리를 말한다 누운 자리가 죽은 자의 사주와 산의 십이지와 결합이 되었을 때 효력이 나타난다고 들었다 그러나 옛 말씀에 삼대 부자 없고 삼대 거지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그만치 가난에 서러움을 벗어나기 위한 후손의 독한 마음가짐이 있었을 것이고 잘사는 사람은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왜 못살까 그만치 노력을 하지 않는데 있다 다만 무덤을 우리가 섬기는 것은 나를 낳아주고 길러온 부모님을 차마 보낼 수 없어 무덤이라도 모셔놓고 후손들이 제삿날에 함께 모여 회포를 풀라는 것도 있으리라 그런 것을 국부인 고 박정희 묘소에 쇠말뚝을 박았다니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내가 그리고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하나 조상은 조상이다. 만약 쇠말뚝을 박은 놈의 조상 묘소에 쇠말뚝을 박으면 기분이 어떨까 꼭 그놈을 찾아 복수를 할일이다. |
첫댓글 골뱅이 님 수고 했어요
고마워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안녕 하세요? 항상 수고 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골뱅이 님 반가워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수고 해주신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즐겁고 행복한 저녁 시간 되세요
골뱅이 님 안녕 하세요? 좋은 글에
잘 쉬었다 갑니다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 합니다 행복한 오후 시간 되세요
골뱅이 님 감사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