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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바구니(기독) 원문보기 글쓴이: 팔도강산
슥 5: 1 두루마리 - 슥 5: 3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
제 5 장 :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의 환상
1. 날아가는 두루마리 ( 5: 1-4 )
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스가랴는 두 가지의 환상을 보았다.
그는 먼저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았다.
그 크기는 길이가 20규빗, 약 9미터이고 너비가 10규빗, 약 4.5미터이었다. 두루마리는 소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옛 시대의 종이이다.
그것은 책으로 사용되었다. 옛날에 성경은 두루마리의 형태이었다.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에는 온 세상에 적용되는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모세의 율법책은 복과 저주의 말씀이다.
* 신 28: 1-6 –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신 28: 15-19 –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에 저주의 말씀이 쓰여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증언한다.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가 모든 죄인들에게 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도둑질한 자는 그 율법의 저주대로 벌을 받을 것이며 거짓 맹세한 자도 그 율법의 저주대로 벌을 받을 것이다.
이 저주가 온 세상의 모든 죄인들의 집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는 악인들과 그 가족들과 그 재산들에 임할 것이며 그들을 다 멸망시킬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슥 5: 1 두루마리 -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
여섯째 환상과 일곱째 환상 : 날아가는 두루마리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타락한 지도자들의 영향이 일반 백성에게 전수되어 백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반 백성의 문제는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배교로 집약된다.
여섯째 환상
여섯째 환상은 온 땅을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와 그것에 기록된 저주들이 귀환한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성전 재건이 완성되기 전에 선결되어야 하는 내적 문제다.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정화시키시려는 계획을 보여준다.
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눈을 든" 것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얻기 위하여 준비된 행동이다.
인간은 영적으로 우둔하기 때문에 경건한 노력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주님과 교통이 열리는 법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여러 날 동안 기도를 힘쓰고 애써야 필경 기도가 된다.
두루마리의 출처는 하늘로 하나님의 법정임을 알 수 있다.
2]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본문의 양면에 율법이 가득 쓰인 두루마리가 펼쳐진 상태로 날아가는 이 환상은 대단히 두려운 모습이다.
이 모습은 모든 율법이 시행되는 준엄한 순간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백보좌 심판대 앞과 같고 열 재앙이 내려지던 유월절 밤 애굽 사람들의 집에 죽음의 재앙이 내려지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두려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이 율법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세상의 죄인들을 찾아 심판과 저주가 내려지고 있다.
슥 5: 2 길이와 너비 -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규빗이요 광이 십규빗이니이다 )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두루 돌아다니는 저주로(3절) 두루마리의 안팎에 쓰인 것이다.
* 겔 2: 9-10 –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1]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경이한 일을 보게 된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기절하거나 혼절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사는 스가랴를 향하여 정신이 온전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2]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계시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은 그들의 성전 재건 공사가 원수들의 방해로 인하여 낙심하였던 것을 다시 착수하게 하려는 것이다.
3]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라" 하였으니, 이는 성소의 면적이다.
* 출 26: 1 -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이것은 기록된 저주가 매우 크며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록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면적이 성소와 같은 이유는 거기 쓰인 저주를 받을 자들이 성소에 나타나는 하나님 백성에게서 끓어지겠기 때문이다(Delitzsch).
두루마리의 크기를 말씀한 이유는 그 크기가 갖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은 솔로몬 성전의 성소 앞 낭실의 크기와 동일한데 그곳은 제사장들이 율법을 낭독한 곳이다. 왜 율법을 낭독하던 곳이 이 사이즈였을까? 그리고 왜 본문의 두루마리가 이 사이즈였을까?
본래 10은 가득한 만수 혹은 구비수요, 2는 증거의 수로 그러니까 율법의 완전성과 전체를 의미한다. 즉 조그마한 쪽지에 한두 가지 적어놓은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완전한 율법, 충만한 율법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두루마리의 활동이란 곧 율법 전체를 완전하게 지켜야 만이 저주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슥 5: 3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 -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온 땅에 내리는 저주였다.
1]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에 내리는 저주라.
(1) 고대 사회에서는 저주를 몹시 두려워한다.
좋은 실례를 민수기 5: 11-24의 간음한 여인을 다루는 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민 5: 11-24 –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렸고 13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14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15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 16 제사장은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몸을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가 마르고, 네 배가 부어서 네가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23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24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 가서 쓰리라.
남편의 의심을 받으면 그녀는 제사장 앞에서 저주를 맹세하고 쓴 물을 마셔야 한다. 성경에서의 저주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2) 온 땅에
이스라엘의 땅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죄를 범한 자로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 없다.
(3)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도 정확해서 아무도 속일 수 없다.
2]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여기 명시된 죄악은 "도둑질"과 "맹세", 두 가지다.
그러나 이 두 죄악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모든 죄악을 포괄한다.
(1) 도둑질하는 자
"도둑질"은, 이웃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십계명의 둘째 부분(5-10계명)을 어긴 죄악을 대표한다.
* 렘 23: 30 -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 말 3: 8-9 –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2) 맹세하는 자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서(4절 참조),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로 십계명의 첫째 부분(제 1-4계명)을 위반한 것이다.
저주로 인하여 집들이 돌과 나무와 더불어 불살라지는 완전 파괴를 당하게 된다.
구약에서 집이 파괴되는 것은 대표적인 심판이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도둑질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도둑질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과 사람에게 대한 계명으로 나누어지는데 도둑질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지을 수 있는 모든 죄악의 원천인 탐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죄악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둑질은 인간에 대한 모든 율법의 대표이다. 따라서 율법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되려면 탐심을 온전히 이기고 인간에 대한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탐심이 쉬운 일입니까? 탐심처럼 다루기 어려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발람이나 가룟 유다는 돈에 넘어졌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나 아간도 물질에 넘어졌다. 다윗은 성욕에 넘어졌고, 에서는 식욕에 넘어졌고, 사울은 교만 즉 자기를 높이는 명예와 권세에 넘어졌다.
어떤 사람은 혈기에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자기 사랑에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랑에 넘어진다. 어떤 사람은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원한의 상처에 넘어진다. 이처럼 자기에게 가장 취약한 탐욕의 분야가 있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율법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
딤후 3: 1-5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했다. 돌아설 뿐 아니라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