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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
13세기말 원나라를 방문했던 마르코폴로는 그당시 동양문화의 탁월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왜냐하면 13세기만해도 중국은 비잔틴문명과 인도문명과 유럽 의 문명을 능가하는 제국으로서 손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3세기 당시만 해도 중국은 벌써 거주 인구가 몇백만 명을 넘는 도시들을 많이 갖고 있었고, 상권도 막강 하였고 제지공장도 뛰어 났고, 연간 10만톤이 넘는 철을 생산 했으며, 일찍부터 화폐가 통용되었으며, 예술과 과학분야의 연구가 아주 활발 하였고,종교,과학,군사,농경기술에 관한 서적도 만만치 않은 분량을 이미 출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대단했던 중국이 18세기 이후부터 산업혁명과 식민지 확장을 통해 전세계를 장악한 유럽에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단순한 이유는 중국은 도전정신이 약했다는 것입니다. 마르코 폴로 같은 유럽인들은 중국을 방문했지만 중국인들은 유럽에 가지 않았습니다. 인쇄술을 개발한 것은 중국이지만 책을 대량으로 찍어낸 것은 유럽인들이었습니다. 화 약은 중국이 만들었지만 신식 총과 대포를 대량생산 한 것은 유럽이었습니다.
중국은 자기를 세계의 중심으로 보며 만리장성을 둘러치고 스스로에 만족하며 안주 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훨씬 도전적이었고 끊임없이 모험을 시도 했습니다. 이런 유럽인들의 도전정신이나 청교도들의 개척정신은 기독교신앙 의 영향이 컸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도전적인 말씀에서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씀 하시면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 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십니다.
사람들은 울타리를 치고 끼리끼리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 바울도 베드로 도 유대인이라고 하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은 후에도 자기 동족밖에는 모르는, 유대인에 대한 우월의식과 편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때때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가라고 하시고 ,성경은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가지 않고 장막터를 넓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도전과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런면에서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말씀이라고 할수 있습니 다. 그들이 장막터를 넓히라는 말씀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한백성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고, 하나님이 그들 에게 기대하시는 과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들은 미래를 향한 궁극적인 비젼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도 이렇게 하나님의 집으로서 영광스럽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세가 지 사실 앞에 철두 철미 해야 합니다.
첫째로, 교회의 존재 이유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존재 이유를 자녀들 때문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비록 노예 생활을 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자녀들이 많아 집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결혼도 늦게 하고 또 결혼을 해도 아기를 늦게 가질려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자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 하지 않고 자기들의 짐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짐이 아니라 날개라는 사실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는 그 날개를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날개 때문에 새가 하늘 을 날 듯이 부모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신대로 여호와의 기업 이고, 가장 귀한 선물이고,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야 말로 부모들의 생존의 보람이고, 그 가정의 미래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교회를 확대된 가정이라고 할 때 우리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많아진다는것, 그것이 우리교회의 보람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계속 강조되는 것이 이런 말씀 입니다.
<믿는 사람의 수가 많아 지더라>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는 질적인 발전이 중요하지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 조금만 건지자…. 질적으로 건지자..너무 많이 건지지말자.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건져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구원을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영혼들,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지는 것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세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선교사를 파송하며, 복음을 전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건져 생명을 주는 것, 이것이 교회 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회안에 새생명의 탄생이 중단되면 그것은 교회가 중병 에 걸렸거나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지경을 넓히는 것,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존재의 보람이요, 존재의 이유라는 사실 앞에 여러분은 아멘하십니까? 본문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 보다 많음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선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말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남편 없는 과부처럼 외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보람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바벨론에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세상에서 많은 난관과 역경과 교회를 반대하는 악마의 세력앞에 부딪히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보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의 보람은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면서, 죽은 영혼들을 살리며 그들에게 새생명을 제공하며, 그들을 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한다는, 이것이 교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축복 하실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둘째로,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장막터를 넓히는 것입니다.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여기 우리의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아지는 자녀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막터를 넓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막터라는 말은 <미시칸> 이라는 말로서 <하나님을 위한 삶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당시의 역사로 말하자면 회당제도를 말합니다.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민족교육, 문화교육,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장막터가 넓어지는 것은 그들의 꿈이었고 보람 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업이 잘되면 사업터를 넓힙니다. 직원을 늘립니다. 이것은 사업하는 사람들의 감격이고 보람입니다.
우리교회에 많아지는 자녀들, 우리교회에 몰려오는 젊은이들, 또 새롭게 태어나는 수많은 새생명들, 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 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일본교회가 매우 빈약하고 한심한 이유를 아십니까? 그들에게도 부흥의 기회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교회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 에는 관심이 없었고 교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성경공부의 정원제를 실시 했습니다. 그래서 숫자제한을 실시 했습니다.
이것이 선교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본교회의 최대의 실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의 열의를 잃어 버렸고, 돈이 많아지자 곧 세속화 되어 버림으로 성장의 기회를 상실 하게 된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선교의 황금 시대가 있었고,큰 부흥의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교회는 이 축복을 감당할만한 비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부흥을 주실 때 장막터를 넓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 우리교회의 과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궁극적인 비젼은 무엇입니까?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이것은 굉장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지금 그들은 바벨로니아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포로의 꿈은 무엇입니까?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자손은 온세계를 얻으며...>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제자들
이 좌우로 퍼지며,열방을 얻으며,온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는데 있습니다>
전세계 역사속에서 진행되는 운동 가운데 세계정복을 꿈꾸는 운동은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공산주의 이고,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입니다. 공산주의는 폭력으로 세계의 정복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으로, 사랑으로 세계정복을 꿈꿉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지막 계획입니다.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모든족속으로 내제자 를 삼으라 make a disciple all nations>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이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비젼입니다.이 비젼이 저와 여러분의 비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교에 대해서 수정해야 할 <의식>이 하나있습니다. 우리는 선교하면 보통 <돈 많은 나라>가 <돈이 없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선진국이 후진국에게>.<힘이 많은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이 선교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이스라엘과 로마> 두나라 가운데 누가 강국입니까? 이 두나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어디에서 어디로 갔습니까?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갈릴리에서 로마로 간것입니다.
세계선교라는 지상명령을 최초로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 이었습니까? 그들은 로마의 귀족들이 아니었습니다. 로마군대의 장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베드로를 교황을 만들어 놓다보니 너무 화려하고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 놨지만 실제의 베드로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지극히 평범한 어부 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온천하에 가서 모든 족속 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문자 그대로 그당시의 세계를 복음화 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도 그 열매중의 하나입니다.
크게 나누면 두가지 선교사밖에 없습니다. <가는>선교사와 <보내는>선교사 뿐입니다. 갈수 없거든 보내셔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우리교회가 공항에서 10분거리의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은 바로 이런 목적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가슴은 복음으로,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불타고 있습니까?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세계를 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우리의 자손은 열방을 얻으리라>. 우리의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것보다 더 높은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분부하신 이 위대한 비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낼 차례입니다. 주의 제자들을 길러내어 그들을 보내며, 우리의 젊은이들을 훈련 시키며, 이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훈련의 장으로서,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 교회는 존재하는것입니다.
앞으로 노인아파트를 짓고, 크리스챤스쿨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영혼구원이라는 보다 커다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 뿐입니다.
저는 예배당만 무조건 크게 짓는 것은 반대합니다.
지금 구라파에 가 보시면 유령집 같이 커다란 예배당이 텅텅 비어있는 모습을 흔히 볼수 있습니다. 본당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런 교육시설이 없습니다. 그냥 예배만 드리고 흩어져 버립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길러지지도 않고, 성경공부도 없고, 제자훈련, 선교훈련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식의 교회는 텅빈 건물만 남게 될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이 땅에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캐네디언과 어깨를 겨루어도 부끄러움이 없는 우리의 후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그쳐서는 안됩니다.
더 높은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순수한 복음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이어받고 전세계에 전하는 것, 이런 위대한 일들이 우리세대에 이루어지기위해서 우리는 또다시 영광스런 새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못했지만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전세계를 변화시킬 비젼을 가진 젊은이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카나다를 변화 시킬수 있는 인물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건강한 인간은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교회에서 길러지는 것입니다.
현대의 위기는 우리가정의식이 약해지고 우리교회의식이 약해지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고아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라는 의식을 자녀들에게도 강하게 심어 주십시오. 바울사도는 안디옥교회가 길러낸 작품입니다. 빌리그래함은 달라스 제일침례교회….
교회는 우리 영혼의 고향입니다.
우리교회라는 의식을 철저히 가져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교회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 이산 가족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입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주고 가장 위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성전건축은 아주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새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벅찬 미래를 꿈꿀수 있는 것 입니다.
여기서 안주 하지 말고 계속해서 장막터를 넓히고, 휘장을 널리펴고,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히 박아야 합니다.
이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에 최선을 다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