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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앞 광장의 부흥회
본 문 : 느 8: 5-12
예수님 당시 인구가 1억 6천만쯤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인구가 두배가 되는데 약 12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60억이 넘었습니다. 당시 12명의 제자들에서 시작된 신앙인은 1900년대에 5억 5천 5백만이 되었고 2000년 대에 들어와 20억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만도 13억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가르쳐 사람들은 영적 추수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1900년에는 5만이던 기독교 인구가 지금은 7000만 명으로 아프리카에서 880만 이었던 기독교 인구가 3억 4천 만으로 늘어 났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하루에 2만 5천 여명씩 예수님께 돌아오고 있고 지금 약 1억 정도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남미 브라질 동구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부흥의 물결이 퍼지고 있습니다. 부흥의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구약 시대 최대의 부흥회가 수문앞 광장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강사는 학사 에스라입니다. 때는 주전 606년 바벨론 나라에서 포로가 되어 그 나라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주전 536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 받아 예루살렘에 돌아 와 느헤미야가 성벽 건축을 완성하였을 때입니다. 부흥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입니다(1) 부흥회 시간은 새벽부터 오정까지 약 6시간씩 했습니다.
1. 부흥회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5)
1)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성경 말씀을 봉독하기 위해 펴니까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니까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6).
2)말씀을 다 깨달았습니다(8).
3)말씀을 듣고 회개하여씁니다(9).
4)말씀을 듣고 나누웠습니다(10)
5)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10,12).
6)하루만 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7월 1일 나팔절과 7월 15일부터 22일 초막절까지 계속 모여 말씀 연구 운동이 일어났습니다(13). 초막절이 끝이 났어도 이 회개 운동은 계속 이러졌습니다(9:1-2).
7)성경으로 돌아가는 생활의 변화가 사회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방혼인을 금했습니다.(10:30),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킵니다(31). 헌금운동이 일어납니다(35, 37-38).
정리하자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놀라운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느 8: 9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다고 하였고, 9 : 1-2,3b에도 회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에 접한 자마다 그의 양심이 살아 있는 한, 회개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시야왕이 그러하였고(왕하 22:11), 오순절 날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습니다(행2:37).
둘째는 즐거움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느 8: 12,17에 크게 즐거워하였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즐거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즐거움, 하나님을 기대하는 즐거움, 삶이 회복되는 즐거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영육이 치유되는 즐거움이 임한 것입니다.
셋째는 말씀에 의한 개혁 운동입니다. 말씀으로 지난날의 죄를 회개한 그들은 과거에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고치었습니다. 일시적 감정의 흥분이 아니라 삶으로 정착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부흥 운동이 일어나니까 세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 사회가 실현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영적 각성이 이루어집니다. 부흥이란 용어는 리바이벌, 영적 각성이라는 말로 죽었던 심령을 살리는 것입니다. 성도답지 못한 사람이 성도답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과 거룩을 새롭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무감각하게 살던 신자들이 죄악에 대한 깊은 자각과 회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감격을 회복하며,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이 불붙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심령이 되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불타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여 우리의 심령과 공동체가 새로워지고 마음과 몸이 치유되고 변화되며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침체된 심령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삶의 비전과 환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달라지게 됩니다. 오늘 저녁부터 수요 저녁까지 우리 교회에서 심령 부흥회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의 심령에 우리 성도님의 가정에 우리 성도님의 삶의 현장에 우리 교회에 나아가 이 민족에 이런 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이 부흥을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느헤미야 시대의 부흥 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 우리가 한 사람 한사람이 말씀을 품은 열정을 가지고 결단할 때 부흥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에 열정을 품은 한 사람 에스라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에스라7:10).
에스라7: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 7:10)"
이 시대 이스라엘 나라의 부흥의 역사는 한 사람의 결심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큰 불도 조그마한 불씨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큰 바다도 한 방울의 빗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집도 벽돌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에스라서는 3가지 결심을 합니다. ①율법을 연구하겠다는 결심 ②말씀을 준행하겠다는 결심 ③말씀을 가르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부흥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부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내 영혼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나로부터 부흥이 일어날 때 가정에 행복이 오고 내 영혼으로부터 부흥이 일어날 때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고 인생이 바꾸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도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이 말씀 앞에 결단할 때 그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목사가 스미스에게 신앙부흥회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이에 대한 스미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분필로 당신이 앉아 있는 마루 둘레에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부터 먼저 신앙부흥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이러한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 드디어 신앙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규만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11년 경북 선산에군 구미면 상모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44년 1월 10일 33세의 나이에 장로 장립을 기념하여 대구 서현 교회 성전부지 1842평을 헌납하여 1957년 8월 19일 성전 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건축 규모는 건축 평면적 400평 연건평 1960평 당시 동양 최대의 석조 예배당이었습니다. 성전 건축 시작 되자 마자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 서원 기도 "하나님 정규만의 생명을 한 번만 살려 주옵소서 이 생명을 한번만 살려주시면 이 한 목숨 다하여 또한 종의 전 재산을 다 바쳐 성전 건축에 헌신을 다하겠습니다." 온 교회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병에서 살아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대구 경북 지역에 악질전염병이 만연하였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되지 않는데 유독 정규만 장로님의 한약방만 와서 약을 지어서 먹으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아침부터 마당에 줄을 섰습니다. 건축비를 모두 감당하였습니다. 그 엄청난 공사비를 다 빗 한번 지지 않고 감당한 것입니다. 1000명이 넘는 교인들은 빨리 헌당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정 장로님은 자기가 죽으면 헌당식을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혹이나 정장로님을 칭찬하여 천국 상급이 삭감될까봐서입니다. 성도들이 하려고 하니까 어서 빨리 천국에 대려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1969년 정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때서야 교회는 헌당식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고인이 되어서야 고인의 이름으로 표창장과 공로패를 받았고 온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이 장례식은 대구가 생긴 이래 가장 긴 승용차 행렬이 이어졌고 가장 많은 조문객이 모였다고 합니다.
2)우리 모두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일 때 부흥이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1)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백성이 다 한자리에 모였다(1) 재력(財力)이 있는자, 학식이 있는자, 권세있는 자들도 있었겠지만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부흥의 출발점입니다. 말씀 앞에 모이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지뢰도 밟아야 합니다. 수류탄도 던져야 합니다. 소금도 넣어야 합니다. 구슬도 꿰어여 보호가 되는 것입니다.
(2)말씀을 뜨겁게 사모합니다(3) 6시간을 귀를 귀울이고 듣습니다. 거창한 것 아닙니다. 그저 에스라는 말씀을 낭독하기만 합니다.
(3)말씀 앞에 일어서서 아멘 아멘으로 응답합니다(6).
우리도 부흥을 체험하려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부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교회 위에 주권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일어납니다. 말씀을 상품화한 부흥이 아닙니다. 말씀을 마케팅으로 사용하는 부흥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 오순절처럼 성령을 충만케 해 주시면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질적 성장과 양적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언제든지 부흥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어 내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깨닫게 돌이키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렘 23:29)"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잠 29:18)
이시대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닙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진리로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사 40:8)"
어떤 교회가 부흥할 지 여부는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는 비판하기 위해, 세일하는데 개인적인 참고를 하기 위해 들으면 안됩니다. 아니면 목사님이 불쌍해서 들어주는 것으로 들으면 안됩니다.
말씀이 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옛날 학교 다닐 때 기숙사에 들어오지 못한 가난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고 기숙하는 사람을 빈대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하도 갈세를 하니까 빈대가 그 학생의 방 앞에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1)"라는 성경 구절을 써놓았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그 학생이 자신의 방 앞에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잠 25:17)" 써 놓았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심기가 불편한 성도님을 심방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라고 메모를 남기고 왔답니다. 그 다음 주에 헌금을 하였는데 봉투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0)"라고 써 놓았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양식을 먹고 영혼이 살고 우리의 삶에 행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합니다. 그런데 행5:33, 행7:54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3)"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4)" 그들은 결국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씀입니다. 행2:37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그들은 회개하고 그 뒤로 읽어 보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왕입니다. 당시 선지자 하나쯤은 아무 문제 없이 죽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간음한 지적하지 어떻게 합니까? 통곡하고 회개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군이 된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그 때 그가 전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의 말로 알아 들었다면 그는 오늘날 수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는 베뢰아 사람들을 보십시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월화요일은 야인시대, 수목일에는 이제마, 토일에는 제국의 아침 사모하며 일주일 보내지 마시고 말씀을 사모하여 내 심령이 부흥되고 교회가 이 민족이 부흥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믿는자들에게는 의식주 문제의 안정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추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마음이 열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지 않으면 그 인생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은 "먹어도 배부름이 없고 보아도 족함이 없도다" 입니다. 먹을 때는 만족이 있고 배부르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것 뿐이요 돌아서면 다시 배고픈게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만이 우리를 의미있게 살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신명기8:3,마태복음4: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떤 체면이나 선입관념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데 장애물이 되지 못하도록 포기하고 치워버려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인격적인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회개합니다. 부흥 운동은 회개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1907년 우리 나라 초기 부흥 운동
평양시내의 네 장로교회 연합으로 한주가 말씀 사경회 장대현교회당에만 매일 밤 1500여명의 교인들이 참석
사경회가 끝날 무렵 진행자는 혹시 다음날 아침까지 남아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사람이 있는지 물었으며, 5, 600명이 남음
『기도 후 누군가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성령 충만 새벽 2시까지 다음 날
『주기철 장로「나는 간음을 했으며, 공금을 유용했습니다.」한국인 형제들이 그를 둘러서 함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길선주 목사의 회개 소식은 이번 사건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 그는 『나는 아간이올시다. 친구의 미망인 재산을 친구의 부탁으로 관리하다가 미화 백불을 사취했는데 내일 아침까지 반환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회개의 불길은 교회뿐 아니라 평양연합대학과 평양신학교, 평양여자초등학교, 평양여자고등학교 등 모든 기독교학교로 번져가고 있다. 이들 학교는 매일 오후 집회를 갖고 죄 고백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쏟아지는 죄 고백으로 현장은 각종 더러운 죄들로 둘러싸인 지옥 같다. 살인에서 간음 음주 절도 강도 거짓말 시기 질투 등 온갖 죄목들이 열거되고 있다. 한 차례 이런 고백들이 씻겨 나간 뒤의 현장은 그러나 더 없이 아름다운 천국이다.
말씀은 들음으로 끝나서는 아니됩니다. 사모함으로 끝내서는 아니됩니다. 내 삶에서 열매로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나눕니다. 말씀을 듣고 이방혼인을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재물관이 달라집니다.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면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면 사랑하고 용서하라하면 용서하고 나누라면 나누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인구가 100명 밖에 되지 않는 마을로 축소된다면, 물론 현 세계의 인구구성, 인구 비율은 그대로 보존한대로 축소한다면, 이 조그맣다고 할, 또 다양하다고할 마을은 어떤 모습이 될까? 스탠포드 의대의 의학박사인 필립 M. 하터가 계산을 시도했다고 하지. 결과는 다음과 같다. 57명은 아시아인, 21명은 유럽인, 14명은 서반구(미주)인, 8명은 아프리카인, 52명은 남자, 48명은 여자, 70명은 유색인종, 30명은 백인, 70명은 비기독교인, 30명은 기독교인, 89명은 이성애자, 11명은 동성애자, 6명은 세계 부의 5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그 6명은 모두 미국 사람, 80명은 적정수준에 못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고, 70명은 문맹, 50명은 영양 부족, 1명은 죽기 직전, 1명은 임신 중, 1명은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고 1명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
좋은 집, 먹을 것이 있는데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아주 엘리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또 만약에 전쟁의 위험, 감옥에서의 고독, 고문에 의한 고뇌, 기아의 괴로움 등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계 인구 상류 500만 명 중의 한 사람인 셈이다. 만약 고통, 체포, 고문, 혹은 심지어 죽음의 공포 없이 매주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곧 지구상 30억 인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누리는 행운아이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는데다 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75%보다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은행에 돈이 있고, 지갑 속에도 있고, 어딘가 잔돈만 모아 놓은 동전통도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상에선 상위 8%의 부자에 속한다.
지구상에 글자를 읽지 못하는 20억 인구가 있고 먹지 못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해 20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너무 돈돈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메리린치 자료에 의하면 자산 100만 달러 이상 되는 사람이 우리 나라 8만 6천 명이라고 합니다. 전세계 백만 장자는 700만이라고 합니다. 이중 북미 250만 유럽 220만 아시아 170만이라고 합니다. 분당에 집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는 기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영적 부흥이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을미사변이 있을 당시 전국 교회는 채 30여개에 지나지 않았고 교인 수는 1천명 미만이었으나 교회는 민족의 위기 앞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독립과 민족 정신을 이끌어 갔고 3.1 운동을 통하여 국권 회복에 앞장을 섰습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 비밀 문건 속에는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기독교는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위기는 경제적인 것보다도 도덕적인 위기이며 신앙적인 위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영적 부흥이 일어나 가정의 부흥, 직장의 부흥, 사회의 부흥이 일어나길 위해 쓰임받으시기 바랍니다.
수문앞 광장의 부흥회/느헤미야8:5-12/2002년 10월 13일 열린교회 김필곤 목사
말씀의 페스티발(Festival)
성경본문 : 느헤미야 8: 5-12
5.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8.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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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목사님이 차를 끌고 복잡한 시내에 들어섰다가 마땅한 주차공간을 찾지 못합니다.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주차공간이 아닌 곳에 차를 세우고는 운전대 앞 차창에 이런 짧은 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
"나는 어느 교회의 목사입니다. 주위를 열 바퀴나 돌았지만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이곳에 주차했습니다. 잠시 일을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주차 단속원께서는 나를 용서하십시오.""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인용해 적어 놓았습니다.
잠시 후 불법주차 단속원이 다가왔습니다.
이 쪽지를 보고 고민을 하던 그는 결국 딱지를 떼고 이런 짧은 글로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나는 10년 동안 이 곳 주차 단속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불법 주차한 차량에 딱지를 붙이지 않으면 내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라고 쓰고는 역시 그 밑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적어 놓았습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의대로 이용한 좋은 사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경청하는 말씀의 축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2의 출애굽 사건과 같이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워하던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성벽과 성전을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을 때 애국자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가 돌아옵니다.
결국 느헤미야의 뛰어난 지도력으로 온 국민이 힘을 합해 성벽 건축을 완수하고 나자 백성들은 성전 동편 앞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만든 나무 강단에 서고, 에스라 좌우에는 레위인 13명이 도열해 섰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두루마리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에 그곳에 모인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에스라가 새벽부터 오정까지 장장 6시간을 서서 성경 말씀을 읽자 백성들은 아멘, 아멘하며 손을 들어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진 백성들의 회개와 통회가 시작되고 수문광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에스라를 도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울고 있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마침 이 날은 나팔절이었습니다.
이 날은 백성들이 특별 성회로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노동을 금하고 안식하는 귀한 절기였습니다. 그야말로 말씀의 축전이며 민족적인 페스티발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하늘과 땅이 함께 하는 축복의 잔치였습니다.
오는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우리 교회의 산상부흥사경회가 이러한 집회가 되기를 빕니다.
페스티발(Festival)이라는 말은 잔치, 향연, 축전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에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Celebration이라는 말도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이 단어는 어떤 예전이나 의식이라는 의미가 깊고, 이에 비해 Festival은 그야말로 흥미가 넘치고 열정적인 잔치를 뜻합니다. 축하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열정적인 잔치를 뜻합니다. 요즘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 페스티발, 말씀 페스티발, 여름 페스티발, 뮤직 페스티발, 심지어 영성 페스티발이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백성들이 경청하면서 회개하여 울고 즐거워했던 역사는 구약시대의 종교 개혁이라고 칭할 만큼 위대한 말씀의 페스티발임에 틀림없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중심한 나팔절에 있었던 말씀의 페스티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I. 말씀 중심의 잔치였습니다.
말씀이 풍성하고 그 말씀이 권위있게 선포되는 잔치였습니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읽으매, 백성들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때 에스라가 백성들 앞에서 율법책을 펴자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에스라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멘, 아멘하며 응답하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지난 날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고 율법을 어기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죄값으로 포로가 되어 70년간 갖은 수모와 고통의 징계를 받아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귀환민의 회개 운동이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운동을 주전 621년 요시야왕 때에 있었던 회개운동과 더불어 제2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말씀의 잔치는 인생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인격을 준수하게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자 무려 153마리나 잡았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직업의 풍성이요, 인격의 성장 기회입니다.
휴스턴에서 마침 85세 되시는 장인 어른을 모시고 낚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잠시동안 낚시를 했는데 커다란 갈치를 23마리나 잡았습니다. 거기에다가 큰 광어도 낚고 조기도 낚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셨고 실제로 오순절 이후 베드로는 하루에 3천명, 5천명의 새신자를 얻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갈치를 낚았던 것처럼 우리 교회 새신자들을, 그것도 갈치처럼 아름답고 손맛나는 새신자들을 얻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II. 기쁨의 잔치였습니다.
나팔절의 페스티발은 백성이 크게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잔치였습니다.
잔치에는 뭐니뭐니해도 먹을 것이 풍성하고 즐거움과 흥겨움이 있어야 합니다.
수문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지로 동원된 것도 아니요, 그 행사가 연례적으로 행하는 의례적 행사도 아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모든 백성들이 원해서 행하는 잔치였기 때문에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했습니다.
신앙인의 특징 중 하나는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울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오늘은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라. 울지 말라. 과거에 묻혀 뒤만 돌아보고 울고 슬퍼하는 것을 이제는 그치라. 그리고 살진 고기를 마음껏 먹고 달고 시원한 음료를 마음대로 마시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는 수요일 저녁부터 우리 교회의 31회 산상부흥사경회가 시작됩니다.
부흥사경회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말씀이 좋고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이번에 강사로 오시는 이동원 목사님은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롭게 잘 하시는 분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은혜받지 못하면 본인의 책임이요 오랫동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목사님이 평신도로 있을 때 자신은 교회의 공예배에 절대로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빠진 그 예배시간에 성령의 큰 역사가 일어나면 나는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서 였다고 합니다. 이번 집회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둘째는 좋은 장소와 맛있는 음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장소에 대해 불평하거나 교통이 불편하거나 지나치게 협소하면 은혜받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원은 가장 좋은 장소 중의 하나요, 마치 에스라 시대에 수문광장과 같이 축복받은 장소임을 믿습니다. 영적인 잔치에 말씀은 물론이지만 육신으로도 금식하는 기도회가 아닌 이상 먹거리가 풍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기도원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해야 은혜롭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없이 들쭉날쭉 한, 두 번 체면상 얼굴이나 내미는 식으로 참석해서는 은혜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첫 시간부터 끝 시간까지 다 참석하여 은혜받는다는 결심을 견고히 하시기 바랍니다. 에스라가 성경 말씀을 낭독할 때에도 백성들은 일주일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했습니다.
III. 함께하는 잔치였습니다.
수문광장에서 있었던 에스라의 말씀의 페스티발에는 모든 백성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는 것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잔치에는 나눔이 있고 교제가 있고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잔치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도 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설교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율법의 말씀을 따라 초막절을 지키는데, ""에스라가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은혜받는 자는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고통의 질고에서 구원하시고 천국 시민으로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말씀의 잔치로만, 진리의 페스티발로만 끝난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결단하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은혜받은 자는 하나님께 자기 몸보다 더 귀한 것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바울이 회개하고 헌신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치유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세계가 바뀌고 교회가 든든히 섰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집회가 말씀의 페스티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잔치가 되어 우리 모두가 함께 은혜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치 70년간의 노예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수문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일주일동안 경청하고 회개하며 눈물을 흘림같이 풍성한 은혜의 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처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음식을 나눈 것같이 우리들의 이웃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증거하여 선교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같은 은혜와 축복의 잔치에 여러분들을 정중히 초청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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