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14-16
충성을 맹세하라. / 한서노회
학습목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앞에 충성하는 백성 이어야한다.
주요내용: 체험에 근거한 신앙적 결단을 하게 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체험적인 신앙을 가졌다.
2]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는 선도자적 인격을 가졌다.
3] 신앙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영속적인 명령에 대한 충성과 복종이다.
시작하는 말
현대 사회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인간을 가리켜 호모 에스페란스(Home Esperans)라고 정의 했습니다. 이 말을 쉽게 번역하면 [희망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꿈이 있기에 삽니다. 잠언 29:18절에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가나안 점령이란 희망 때문에 광야의 역경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희망 때문에 삽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희망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꿈과 희망의 근원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현대 신학자 몰트만도 그의 저서 [희망의 신학]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의 희망은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점령이 이루어진 후 백성의 신앙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차지해야 할 가나안 땅에는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질적인 신앙도 문제였거니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거룩한 성도들의 영원한 희망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이치를 깨달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날을 회상 시키며 희망의 하나님께 계속 충성하라 명합니다.
1. 세겜 땅에 모인 백성
여호수아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에서 이스라엘 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역사적으로 말하여 기억 시키고자 온 백성을 회집 시켰습니다. 이 집회의 장소로는 세겜 땅을 택하였는데, 과거를 회상하고 조상들의 흔적을 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 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 세겜이었고(창세기 12:6~7), 야곱이 메소포타미아의 삼촌 집에서 20 여년의 유랑생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심하며 우상들을 묻어버린 곳이 세겜이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5:4).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에 비하여 조금도 우수한 조건이 없고, 똑같이 우상 숭배하 던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셨다고 밝힙니다.
여호수아 24:2~4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조상)들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왜 이곳까지 와있습니까? 여호수아 24:5~13절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만 해도 단체 행동을 받은 일이 없는 오합지졸의 군상(군상)이었으나 기적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 실로 역사(History)는 하나님(His)의 이야기(Story)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듯이,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 이십니다.
성경은 예수의 사건이 중요함을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갈라디아 6:17)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체험적인 신앙 이야말로 하나님을 가깝게 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들 자신 안에 예수의 흔적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도덕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결단을 촉구합니다. 24:15절을 보면,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신앙에는 중간 지대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계시록 3:16절을 보아도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네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택하라"는 말은 인생에 있어서 어떤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것보다도 중대한 신앙 문제의 결정은 결코 연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는 말씀은 여호수아의 분명한 자세를 밝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여호수아는 다른 사람에게 명령만 내리는 독재형이거나 혹은 알아서 하라고 방임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솔선수범(솔선수범)하는 신망이 두터운 지도자 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누가복음 14:25~27절을 보면,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갈새,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의 뜻은, 우리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극복하고, 소극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의 주변 상황과 자신의 내면적인 결함과 단점을 극복해야 할 뿐더러, 적극적인 면에서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주저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지도자 여호수아처럼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3. 백성들의 고백적인 증언
지도자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증언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증언처럼 지금까지의 모든 성공은 자기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성취된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만을 섬기리라"고 결심하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의 선언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스라엘 민중의 결심이 변동되지 않아야 될 것을 강조 했는데,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차 확고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고백하였고, 이 때 여호수아는 그들 자신이 그들의 고백에 대한 "증인"이 되었다고 하며, 한층 더 강하게 그들에게 하나님만 섬기라고 다짐하였습니다.(여호수아 24:21~24) 그리고서는 백성들 앞에서 맹세의 상징으로 '언약의 돌비'를 세운 것입니다.
언약의 돌비를 세우면서 백성들은 자기들의 선택을 재확인하고 무조건 주를 섬길 결심을 하고 영원히 구속력을 가지는 엄숙한 언약 했습니다.
마무리의 말(결론)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호수아의 신앙 인격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적 결단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력이 넘치는 깊은 신앙도 예외 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구원의 감격을 간직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기를 맹세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서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깊은 신앙의 사람들이 됩시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