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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과 도덕률의 차이: 피아노의 건반들이 '본능'이라면, 도덕률은 어떤 건반을 눌러야 할지 지시하는 '악보'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본능이 충돌합니다. 구하려는 군집 본능과, 나를 보호하려는 생존 본능입니다. 보통 생존 본능이 훨씬 강합니다. 그러나 제3의 목소리(도덕률)가 개입하여 *"네 생존 본능을 억누르고 그 사람을 구하라!"*고 명령합니다. 가장 강한 본능을 억누르라고 지시하는 그 목소리는, 결단코 본능 그 자체일 수 없습니다!
교육과 도덕률의 차이: 우리가 구구단을 학교에서 배웠다고 해서 구구단이 인간이 발명한 관습입니까? 아닙니다. 수학은 인간이 '발견'한 우주의 법칙입니다. 도덕 역시 부모와 사회로부터 배우지만, 그것은 인간이 편의대로 만들어낸 규칙(교통신호처럼)이 아니라, 수학처럼 인간 내면에 원래부터 실재하는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3. 우주 배후의 침입자 (The Reality Behind the Universe)
이제 이 논리는 현대인의 숨통을 가장 맹렬하게 조여옵니다. 이 절대적인 '도덕률'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과학은 '존재하는 것(What is)'만 관찰할 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What ought to be)'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돌멩이는 그냥 떨어질 뿐, '떨어져야만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인간에게만 "너는 정직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라는 건축물 '배후'에, 인간의 내면을 향해 끊임없이 도덕적 의무를 지시하고 압박하는 '어떤 지적 존재(A Mind / The Lawgiver)'가 실재한다는 완벽한 증거입니다!
그 존재는 단순히 생명력이나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치열하게 옳고 그름을 따지며, 우리에게 절대적인 선(Goodness)을 요구하는 두렵고도 맹렬한 '인격적 통치자'입니다!
[결론 및 강단 적용: 목회자의 칼날]
이 시대의 영적 흑암을 찢는 강단의 사령관들이여!
이 책을 그저 고상한 인문학 서적으로 소비했던 알량한 지적 유희를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이 맹렬한 1강의 논리로, 상대주의에 오염된 성도들의 두개골을 쪼개고 강단을 재무장하십시오!
상대주의 도덕관의 영구적 사형 집행: "내 생각에는...", "요즘 시대에는..." 따위의 썩어빠진 상대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을 강단에서 도륙하라! 옳고 그름은 인간이 투표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배후의 입법자가 못 박아둔 '절대 진리'만이 존재함을 타협 없이 선포하라.
이성을 굴복시키는 맹렬한 변증의 무기화: 성도들을 덮어놓고 믿는 맹신도로 만들지 말라! 세상의 과학주의와 무신론 앞에서 주눅 들지 않도록, 도덕률이라는 인간 내면의 피할 수 없는 증거를 통해 창조주의 실재를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해 내는 지성의 칼날을 벼려주어라.
값싼 위로의 타파와 '무서운 하나님'의 대면: 복음을 처음부터 '따뜻한 위로'로 포장하는 얄팍한 기만술을 멈추어라! 우주 배후의 설계자는 먼저 '절대적인 선을 요구하는 무서운 심판관'으로 우리 양심을 옥죄어 온다. 이 도덕률 앞에서 자신이 철저히 파산한 죄인임을 뼈저리게 절망하게 만들어라. 그 처절한 절망의 밑바닥에서만, 십자가의 피 묻은 은혜가 진짜 구원으로 폭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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