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인디애나 주 제퍼슨 빌
1963년 12월 29일 오전
*소 개*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고마워요 형제여. (찬양을 부르게 합니다.) 이제 고개를 숙여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오늘 아침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감사드리며, 위대한 영원의 이 날, 사랑스러운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함께 모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의 삶에서
구속하시고, 그분의 의를 통해 우리에게 이 위대한 유산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가 그분의 대사로서 이 생명의 떡을 기다리는 회중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으니, 성령께서 모든 말씀에 영감을 주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리에 앉으십시오.
오늘 아침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큰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앉을 공간이 더 이상 없어서
죄송합니다. 우리의 장막이 충분히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휴동안 투산에 있는 우리 집에서 이곳에 모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날씨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곳에 와서 집회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치유 예배, 즉 병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을 거라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방금 빌리에게 말했습니다.
빌리가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죠?
저는 “오늘 밤 6시 반쯤에 카드를 나눠주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다 받을 수 있도록...”라고 말했습니다.
여기가 너무 꽉 막혀서 카드 번호로 한 명씩 불러서 혼잡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가져와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씩 불러서 기도하면서 줄을 통과시키면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프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데리고
오고 싶으면 6시 반쯤, 7시쯤 오셔서 기도 카드를 받으세요. 그가 문 앞에 있거나 여러분이 들어올 때 어떻게든
나눠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당분간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올 봄까지는
미국에 있을 거예요. 그래서 올 여름에 조금 늦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여기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어요. 빌리에게 물어보려고 했어요.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일곱 나팔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곱 나팔을 위한 모임을 여기서 갖고 싶어요. 일곱 교회 시대, 일곱 인, 그리고 이제 일곱
나팔에 대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는 6월에 시간을 내서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병원에서 셰퍼드 형제를 뵙게 되어 기쁩니다. 저번에도 보러 갔었거든요.
그리고 셰퍼드 자매님, 어제 전화 못 드렸어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꿈은 정말 좋았어요.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계신 그리스도를 봤는데, 아직 결박되어 계셨어요. 하지만 사라지기 전에 모든 가족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그 꿈의 해석은, 당신 가족들이 그분의 마지막 날의 움직임이 사라지기 전에 그분의 움직임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매우 영적이었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매우 좋은 축복이었습니다.
그 가족은 큰 환난을 딛고 일어나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조금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만난 이후로...우리의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자
이 장막에 온 코츠 가족은 우리 모두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동쪽에서, 혹은 시카고에서 내려왔어요.
빌리 하비브 자매님, 암스트롱 자매님, 그리고 모든 여자아이들까지요. 그들은...전에는 나사렛 사람이었다가 주님을
영접했고, 우리의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코트 형제와 자매는 얼마 전 서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도로에서 사고나 코트 자매를 죽였어요. 투손에서 저를 불러서 그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저는 자매님이 방금 만들어 주신 사탕 한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있었어요. 제 기분이 어땠는지 모를
거예요. 하지만 오늘 아침에 주님께 감사한 것은 어머니가 고통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는데 고통 받을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방금 전 저기 방에서 그녀의 두 딸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하고 있었어요. 코츠 형제가 오늘 아침에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병원에 전화해서 미주리 주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정말 용기가 있고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그의 작은 여왕이 죽지 않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으며
재결합할 때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욥이 말하기를, “오, 주께서 나를 무덤 속에 숨기시고 주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은밀한 곳에 두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도 같은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여기 나무에 있는 수액이 나뭇잎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겨울이 오기 전에 진노가 땅에 부어지는 것처럼... 한때는 지구에 겨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에는 더 이상 겨울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땅 위에 진노가 쏟아졌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진노가 오기 전에 하나님은 자비로 그 수액을 땅 밑으로, 그 나무의 뿌리로 바로 내려 보내시고 겨울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거기에 보호하신 다음 봄에 다시 수액이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오, 주께서 나를 무덤 속에 숨기시고 주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은밀한 곳에 두시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은 우리 자매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코트 형제님, 신의 축복이 있기를. 고난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성령의 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도 몇 년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큰 강을
하나씩 건너야 합니다. 언젠가는 제 때가 될 것이고 언젠가는 당신의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했듯이
“나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제 하나님께로 간 우리의 소중한 자매, 코트 자매를 추모합니다. 저는...그녀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회중이 잠시만 기립했으면 합니다. 며칠 전, 이 성막에 들어와 우리 사이를 드나들며 악수를 나누던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 얼마 전 주님께서 다시 보게 하신 그 자리에 다시 젊은 여성이 되어 다가오는 가족을 기다리는 한
자매를 생각하며 머리를 숙여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코트 자매에 대한 기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귀하고
사랑하는 자매님!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살아갈 때, 우리는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녀가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여기에는 그녀가 고통을 겪어야 할 어떤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순식간에 하나님의 품으로 곧장 들어갔으니까요.
주님, 오늘 아침 그녀의 남편과 자녀들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용감한 믿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하 감옥, 화염, 칼에도 두려워하지 았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믿음” 이 모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그녀의 소중한 혼을 쉬게 하소서. 그녀는 우리의 자매였습니다. 그녀의 부재로 슬픔에 눈물방울이 우리
가슴에 떨어지지만, 눈물방울에서 기쁨이 솟아나니, 그녀가 결코 죽을 수 없는 불멸의 생명으로 살아 있다는
당신의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그녀가 지금 있는 곳에서는 결코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뒤에 올 사람들을 기다릴 뿐입니다. 코츠 형제를 축복하시고, 소녀와 그녀의 가족, 주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소서.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 우리는 질병도 슬픔도 죽음도 없는
저 위대한 저승에서 그녀를 만날 것을 믿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건강하고 잘 지내며 주님을 섬기며 그날을
고대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곳 성막에서 우리를 다루시는 위대한 성령께서,
당신의 말씀을 계시하시면서, 우리가 만날 때까지 그녀의 용감한 혼을 평안히 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이곳은 따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로 인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발표를 하겠습니다. 가끔 아침 예배가 길어질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한 시간, 한 시간 반, 때로는
두 시간씩 예배를 길게 드리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테이프를 녹음하는 것이고
이 테이프는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우리가 아침부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모이는 이유는 바로 이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 오기 때문입니다. 저기 저 방에서 테이프가 만들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고 그 테이프와 메시지 책자들은 전 세계 원하는 모든 곳으로 나갑니다.
이제 곧, 주님 뜻대로, 제가 이곳을 떠나자마자...주님 뜻대로, 내일 아침, 언젠가, 애리조나로 돌아갈 것입니다.
집회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부로 가는 거죠. 조지아, 미시시피, 텍사스, 앨라배마에 있는 남부
주민 여러분, 바로 플로리다로 내려갈 겁니다. 여기서 피닉스로, 캘리포니아로, 그리고 다시 댈러스로, 그리고
아마도 샌안토니오로 내려가서 앨라배마, 플로리다, 그리고 거기를 거쳐서 다시 내려갈 것 같아요.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곧바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면...주님께서 지금 저희의 마음을 주시면 올 여름에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집회를 열도록 알려 드리겠습니다.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 계신 많은 분들이 그 환상이 왔을
때 스칸디나비아 나라에서 그 집회가...거기서 예정된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제가 뉴욕에 있는 동안 어떤
이유로 모든 집회가 취소될 거라는 환상이 왔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 여기 계신 분들께 말씀드렸던 게 기억나요.
모두가 같은 날을 원했지만 장소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럼 6월에 작은 자리가
남을 수도 있겠네요. 더 늦기 전에 여기 트럼펫을 위해 돌아오라는 게 주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아시겠죠? 모든 게 잘 풀린다는 걸 알아요. 그게 제 마음이었으니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일지도 몰라요.
이제 여러분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복도에서도 서로 자리를 바꾸고 있는 게 보이네요. 우리도 내려앉을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트럼펫이 생기면...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리고 싶어요. 5,500석 정도 되는 체육관이라면
누구나 앉아서 설교하는 동안 조용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이 트럼펫은 아주, 아주 좋아요.
저번에 봤어요. 보세요, 일곱째 인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기 직전에 여섯째 인에서 일곱 나팔이 모두 울립니다.
그리고 오늘 밤, 저는 치유 예배 직전에 전하고 싶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기도
줄이 있을 테니 가능하면 조금 일찍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길게 설교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교회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성경을 통해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 오늘 아침 저와 함께 이사야서를 넘기면서 우리가 어디에서 읽고
있는지 표시하거나 기록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사야서 42장부터 읽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다우흐 형제가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여러분들이 돌아가는 동안...저번에 슈리브
포트에서 사람들은 그가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그는 확실히 믿음이 있죠. 네, 주님의 축복을 받아
바로 살아났죠? 다우치 형제는 아흔 한 살에 심부전증에 심장마비까지 겹쳤어요. 그리고 바로 그 의사는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죠? 다우흐 형제는 살아있고 의사는 죽었습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그는... 봐요, 다우흐 형제가 여기 앉아 있잖아요. 그리고 아흔 한 살의 심부전과 심장마비로 쓰러진
남자가 있었어요. 제가 올라가는데 그분이 길을 걸어 내려오는 걸 봤어요. 교회에 있는 걸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산소 텐트 아래서 그분께 “주님의 이름으로...교회에서 다시 뵙고 길거리에서 악수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다음 예배에 그는 바로 여기 교회에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저기 블루 보어에서 식사를 하러 루이빌로 가서
식사를 하고 차에서 내려 길을 나서려는데 다우치 형제가 길을 걸어오고 있었어요. 바로 거기 있었어요.
주님께서 그를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이제 우리는 치유와 오늘 밤, 그리고 사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오늘 밤 여러분에게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제 테이프를 가져와서 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사야42장1~7절까지를 읽겠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4장12~16절까지 읽겠습니다. 자, 이사야 42장부터 읽겠습니다.
1.내가 떠받쳐 주는 나의 종, 내 혼이 기뻐하는 자 곧 나의 선택한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었은즉
그가 이방인들에게 공의를 베풀리라.
2.그는 외치지 아니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것을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고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공의를 베풀어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
4.그는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며 마침내 땅에 공의를 세우리니 섬들이 그의 법을 바라리라.
5.하늘들을 창조하여 펼치고 땅과 땅에서 나오는 것을 펴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고 그 안에서 걷는
자들에게 영을 주는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6.나 {주}가 의 안에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붙잡고 너를 지키며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인들의 빛이 되게 내주리니 7.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열어
주며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고 어둠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 집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제 마태복음4장12절에서 저는 이사야가 말한 예언의 성취를 읽고자 합니다.
12.이제 예수님께서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떠나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경계의 해안에 있는 가버나움에 와서 거하셨으니
14.이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이방인들의 갈릴리여, 16.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지역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하였느니라.
17.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는 이들에게 축복을 더하시기를! 그리고 지금,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었던 이상한 작은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여기 빛을 켤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빛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세 가지 주제로 이어집니다.
그 중 하나는 투손이나 피닉스에서 예수님이 왜 베들레헴의 길로 오셨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베들레헴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B-e-t-h는 “집”, e-l은 “하나님”, e-h-e-m은 “빵”, 빵입니다. “하나님의 빵의 집"이죠?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빵의 집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거기에 다윗이 자기 백성으로부터 파문당할 당시 도망자였던 다윗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포위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은 베들레헴 주변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망자 다윗은
오늘날 교회의 유형인 그리스도의 유형입니다. 보세요, 그리스도는 오늘날 자신의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도망자는 “거절당한 것”입니다. 다윗은 거절당했지만 선지자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그는 자기 백성으로부터 도망자 신분이었지만 주위에 용감한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창이나 칼로 하루아침에 8백 명을 죽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눈 내리는 날 구덩이에 뛰어들어
사자를 죽였어요. 그리고 콩이나 완두콩 같은 렌틸콩을 수확하고 있었는데 모두 도망가자 그는 팔이 지칠 때까지
서서 사람을 죽였어요. 골리앗의 거인 형제들도 죽였어요. 용감한 사람들은 다윗이 권력을 다시 잡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따랐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고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다윗을 아무리 배척해도 그가 권력을
다시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오늘날의 그리스도, 즉 도망자 그리스도는 어떤
유형입니까! “도망자 그리스도?”라고요?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일곱 교회 시대를 용감하게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그리스도는 교회 밖의 도망자였고, 거부당하고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자신의 교회에서 도망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도망자 인 이유는
그분이 말씀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교회들의 신조들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 위대한 투쟁에서 다윗 주변의 용감한 사람들, 즉 이방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주제는 다루고 싶지 않지만 베들레헴이 어떻게...사실,
창녀 라합, 그녀의 아들이 베들레헴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은 밀의 중심지였고 좋은 물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는 작은 도시를 세웠어요. 선지자가 말하기를, “유대 베들레헴아, 너는 예루살렘이나 유대 성읍의 모든
방백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냐? 그러나 너에게서 내 백성을 다스릴 치리자가 나올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서.
다윗이 거기서 선택됐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을 부으러 올라갔을 때, 위대하고 훌륭한 형제들이 모두 거기
서 있었어요. 위대하고 용맹스러워 보이는, 보기도 훌륭한 왕이 될 것 같은 사람들이었죠? 그러나 바로 그 기름을
부은 사람은 다윗이었어요. 버림받은 도시는 그리스도가...그리스도께서 택하신 것은 바로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가 오벳이 온 후에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가 온 후에 보아스가 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방인이 들어옵니다. 그는 룻에 의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새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새에게서 다윗이
나옵니다. 그리고 저 밖의 작은 마구간에서 만왕의 왕,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 그의 영적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제 다윗은 이 도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작은 곳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베들레헴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하나님의 떡이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빵의 집입니다.
다윗은 그날 그 언덕에 누워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블레셋 사람들이 저렇게 주위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보고
더위와 목마름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아, 저 우물물을 한 번만 더 마실 수 있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왜죠? 그의 생각 중 가장 작은 것이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명령이었으니까요.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지극히 작은 생각, 즉 그분의 말씀이 그분을 사랑하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명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아무리 거부당하더라도 그분이 권력을 잡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이지만, 모든 하늘과 땅이 사라져도 이분은 여전히 똑같이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이 권세를 잡으실 것을 압니다. 그 어떤 것도 그 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브래넘 형제가 성경을 두드린다.] 이것은 그리스도, 그분의 계시이며, 그분은 말씀이시기에 말씀이 말씀하신 대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 중 가장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침례를 받으라.”는 것이든 무엇이든,
우리는 어쨌든 그것을 행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생각 중 가장 작은 것은 오늘날 이방인 교회의 한 유형인 이방인들에 대한 명령이었습니다.
용감한 사람들이여! 보세요, 다윗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용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한 사람이 칼을 들고 팔백 명을 죽였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죽였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었어! 그들 중 한 명은...다른 한 사람. 이집트 전사
한 명이 긴 창을 들고 달려왔어요. 그는 손에 막대기 하나만 들고 있었어요. 그는 막대기를 들고 창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창을 들고 그를 죽였어요. 보이시죠? 그 거인 중 한 명은 손가락이 14인치였어요, 그렇게요. 14인치면
손가락을 닫았을 때 손만큼 길고, 열면 28인치 손이 되죠? 그리고 창으로! 그리고 바로 뛰어들어 그를 죽였죠?
그들은 이방인들로서 다윗이 권력을 잡을 줄 알았고,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다윗이 마침내 왕이 되어서 권력을 잡았을 때, 다윗이 그들에게 도시들을 다스리게 한 것을 보셨습니까?
예수님도 똑같이 약속하지 않으셨나요? 똑같이, 그들을 통치자로 만들겠다고. 그때 다윗의 소원은 신선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오래되고 따뜻한 고인 물을 마시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우연히 하나님의 떡이
있는 베들레헴에 있는 생수가 생각났어요. 그리고는 “저 우물물만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 사람들은 칼을 뽑아 들고 15마일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다윗이
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물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베어버렸습니다.
두 명이 싸우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물동이를 가지고 돌아와서 다윗에게 물동이를 건네주었습니다. 용감하군요!
경건한 사람 다윗은 “신이시여, 이 친구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물을 내가 마시는 것을 금하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 주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 하리이다. 이 물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하고 그 물을 주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주님께 드려라. 주님께, 제가 아니라. 그분이
받으실 자격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들은...그분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그분 안에 지니신 바로 그 그리스도 자신,
곧 깨어진 반석이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로 그분의 생명을 땅에 부으셨으니 이 말씀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오, 이방인들아, 내가 말했듯이, 누가 나와 함께 그 칼을 뽑을 것인가? 그분은 오늘 아침, 이 낡고 정체된 교회
신조와 우리가 장난치는 것들이 아니라 신선한 음료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믿음,
그 말씀의 모든 말씀을 믿을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물가에 가서 음료와 다과를 가져와서 신조와 교파가 아닌
예배를 드리자. 그러나 진정한 성령 예배는 신조와 다른 것들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가운데서 그분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냥 그분을 그렇게 모시자고요.
다음은 요셉 시대에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눈치 채셨나요?
꿈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부차적인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꿀 수 있지만 아무의미도
없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악몽을 꿀 수도 있죠? 꿈은 부차적인 방법이에요. 알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부차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셨을까요? 그분은 요셉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자기 자녀의 복지를 위해 부차적인 방법으로 보내셨어요. 생각해 보셨나요? 그 땅에는 선지자가 없었으니까요.
그는 꿈을 통해 일해야 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해석해야 할 꿈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녀에게서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니...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특이하십니다. 그리고 그 특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진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진리는 너무 이례적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모르고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직하고 진실하다면 신은 꿈속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든, 휘파람을 불든,
찬양을 부르든, 간증을 하든,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든, 당신의 전 존재가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다면,
당신이 그분께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네빌 형제님은 '탈출'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그 설교가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성령께서 저에게 바로 다음 주제인 빛에 대해 다루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구유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본문에서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분도 몰랐고 나도 몰랐고 여기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그 다음이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그것과 잘
어우러질 무언가를 얻었습니다. 오늘 밤 주님의 뜻대로 바로 진행합니다.
자, 위대한 빛이여! “죽음의 그늘진 곳에 앉아 있던 이방인들에게 큰 빛이 솟아났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에서...
이방인의 갈릴리 길에서,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 빛은 창세기1장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빛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빛은 그분이 말씀하신 주체가 빛이라는 증거, 즉 빛이 나타날 때 보여줍니다.
빛이 있었지만, 그분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빛이 있었습니다.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빛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증거이며,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분의 말씀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 시대를 위한 빛입니다.
이제 그분의 말씀이 옹호되거나, 다른 말로 하면 알려지고 증명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그분의 말씀의 빛입니다.
그리고 빛 없이는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태양의 빛, 식물의 생명 등, 빛에 의해 오는 것
외에는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외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분은 참 빛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 공부하면서 이 빛이...창세기1장2절에서 “땅은 형체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학교 등에서 지구가 수백만 년이나 되었다고 주장하며 성경을 정죄하고 틀렸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려주지
않거든요. 성경은 창세기1장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게 다예요! 언제,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자, 그게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마침표는 그 문장의 끝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억, 10억, 또는 그 이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하셨는지는
제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아실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땅이 형체도 없고 공허하며 물은 땅 위에 있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물 위에 움직이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1장3절에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태양과 달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창세기1장3절을 설명하자면...하지만 저는 여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움직였고, 온 땅에 안개와 안개가 끼어 어두워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어둠이 사라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은...성경의 다음 구절, 창세기1장4절에 “그리고 그분은
빛과 어둠을 분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빛과 어둠을 분리합니다. 보이시죠? 빛과 어둠을 분리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을 사용하실 준비가 되면 언제나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이 오래된 별이나 그것이 무엇이든
이 세상을 사용하실 준비가 되셨을 때 빛과 어둠을 분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이 떠나실 준비가 되셨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려면 빛과 어둠을 분리하셔야 합니다.
그분이 한 개인을 사용하실 준비가 되셨을 때, 그분은 빛과 어둠을 분리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빛은 항상 하나님에 의해 옵니다. 그리고...“빛은 그분의 말씀으로 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 없을 때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그분은 빛을 보내어 어둠과 빛을 분리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은 하늘을 맑게 하여 태양이 비추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분의 말씀은 불신의
모든 분위기와 어둠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강단에 오기 직전에 11번의 인터뷰를 한 것 같습니다. 너무 안 좋았어요...
얼마 전 제 친구 짐 풀의 어린 아들이 심장마비인 줄 알고 병원에 급히 데려갔어요. 천식 증세가 있었고, 그 작은
친구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그의 작은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비명을 지르고 숨을 쉴 수 없었고, 그들이 그를
데려왔을 때 작은 친구는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려 했는데 그들이 그를 여기로 데려왔어요.
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어떻게 된 거야, 홍역에 걸렸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홍역, 열이 어린 친구를
강타했습니다. 아이를 지켜봐요. 며칠 후에 다시 보고 싶어요. 홍역에 걸려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여기 그는 홍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셨죠?
자, 이제 뭐죠? 하나님은 어둠과 빛, 또는 빛과 어둠을 분리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죽음과 생명을 분리하시며,
그분의 말씀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이것을(빛)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 빛이여! 씨앗은 이미 땅에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씨앗을 심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그 씨앗에 닿기만 하면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죠? 씨앗이 이미 땅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나오는 데 며칠밖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씨앗에 필요한 것은 빛뿐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분의 씨앗, 그분의 말씀은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그 씨앗에 필요한
것은 오직 빛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빛이십니다. 그분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빛은 같은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은 말씀의 빛입니다. 생명의 싹은 곡식 안에 있고, 곡식...생명은 곡물에서 싹을 틔우고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서 말씀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밀알 안에 있는
생명처럼, 또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밀알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 그래서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나타납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나타납니다.
이렇게 책 속에만 있는 한,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드러나면 말씀이 말씀하신 바의
산물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에 대한 빛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바로...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것이 실현될 때, 그것은 빛 속의 생명, 빛이 생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빛은 생명을 가져옵니다.
밀을 여기에 심으면...지하실에 넣고 온통 덮어버리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나올
수 없으니까요. 거긴 빛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빛이 닿는 순간 발아한 씨앗이라면 생명을 낳을 것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고, 생명이 말씀에 부딪히면 생명이 생겨나고, 빛이 말씀에 부딪히면
말씀이 다시 살아납니다. 모든 시대가 항상 그랬습니다. 오, 우리가 이 위대한 것들, 즉 말씀이 입증되는 것이
말씀의 빛이라는 것을 어떻게 감사하는지. 아시겠죠?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만 하고 빛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괜찮은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방금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그분이
하나님이신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볼 때, 그것이 바로
그 시대의 빛을 발하는 빛, 말씀의 진리입니다. 아시겠죠? 빛과 생명이 있습니다. 모든 자연의 생명은 그분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태양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하늘에 낮을 위한 큰 빛과 밤을 위한 작은 빛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모든 자연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겨나야 합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추지 않으면 꽃은 자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생명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무리 이렇게 말하려고 해도, 저렇게 말하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태양이 있어야만 생명, 즉 자연적인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생명,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올 수 있습니다. 이때 생명이 바로 S-o-n입니다.
그분 안에는 빛이 있고 그분 안에는 어둠이 없으며,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빛이십니다. 맞습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그 말씀이 살아 움직이려면 하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여기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브래넘 형제가 성경을 두드린다.], 이제 빛을 비추십시오! 아멘!
빛이 비추면 그 빛이 모든 말씀을 제때에 제 위치에, 그 시대 제 때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아멘! 오! 때가 되면!
때때로 그 곡식은 땅에 뿌려진 씨앗, 겨울 밀처럼 겨울 내내 땅속에 누워 잠들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햇볕이 적당히 내리쬐면 싹을 틔울 것입니다. 아시겠죠? 태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시대와 모든 날들을 위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빛이시며 생명이시기 때문에 빛이
올바르게 비추면 그 시대를 위한 말씀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낳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성경으로만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성경이 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인쇄된 형태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며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비추고, 그 말씀을 입증하고, 하나님이 여전히 생명, 영생을 말씀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하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자연의 빛을 말씀하시고 생명을 가져다주십니다. 생명은 오직 빛, 즉 말씀이
현현하거나 육신이 된 말씀에 의해서만 옵니다. 성경에서 모든 약속이 실현된 시점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신 때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주체입니다.
이제 이곳이 더워지면 창문을 내리거나 원하는 대로 난로를 끄셔도 됩니다. 관리인이 난로를 조금 줄여줄지도
모르죠. 많은 분들이 따뜻해 보이네요. 여기 서 있는 것도 따뜻하니 기억하세요. 차갑지 않고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전 따뜻한 걸 좋아하거든요. 전...따뜻하면 항상 빛과 생명, 불을 가져다주거든요. “육신이 되었다”를 주목하세요.
말씀이 육신이 되면, 말씀이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을 가져다가 올바른 위치와 올바른 종류의 땅에 놓으면 그
말씀이 나올 것입니다. 씨앗은 그 종류를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올바른 종류의 마음에 심겨지면 자신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것은 빛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 위에 빛을 발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자연적이든 영적이든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빛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빛에 의해 올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하나님의 빛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자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이 시대 빛을 보내시고, 지금 보는 이 모든 일을 행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지금 제일 불쌍하고 안타까운 일은 빛이 우리에게 보내졌을 때 그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나는 태양과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태양이 있다고 믿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모든 문을 닫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태양 같은
건 없어. 빛 같은 건 없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어두운 지하실로 다시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빛의 혜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는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따뜻한 광선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건강을 주는 물질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빛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차라리 어둠 속에 앉아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그 남자에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사랑과 존경심을 담아 이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빛이 바로 눈앞에서 비추고 있는데도
자신의 신조로 돌아가 성경의 빛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영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뭔가 잘못
되었습니다. 보세요, 자신의 신조와 신학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신의 치유와 같은 것은 없으며,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영적으로 눈멀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커튼을 내리고 자신에게 임할 수
있는 성령을 거부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다면...“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이 말씀에 비치는 빛이 너희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도록 주신 원천을,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면 그의 경험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이곳으로 와서는 "이제 나는 단지...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마세요. 저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당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어요!”말한다면...
얼마 전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당신이 50개의 암을 가져와서 50명의 의사를 데려와서 증언을
해도 나는 믿지 않아요. 내 눈앞에서 죽은 자를 살린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뭔가 잘못됐어요.
저기, 저기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은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조직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말씀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남자는 그 지하실, 낡고 퀴퀴하고 더럽고 더러운 조직의 지하실로
뛰어들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함과 생명을 주는 참 빛을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하나님과 성경의 빛 안에서 살기보다 그 의무와 어둠 속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도 이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이 말을 듣고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말씀을 거부하는 당신의
믿음은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교회들 또한 그 상태에 있고,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말씀을 믿지도 않고 빛 가운데 행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서로 간에 교제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빛(그 시대 입증된 말씀) 가운데서 걷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시간에 주어진
그 말씀을 취하여 그것을 입증하십니다.
창세기1장3절에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빛이 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나오자 빛이
그 뒤를 따랐고 안개가 걷혔습니다. 그리고 어둠이 한쪽 구석으로 가고 빛이 다른 쪽을 비추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분은 이 시대를 위해 말씀을 보내시고, 성령이 오셔서 그 말씀을
살아나게 하십니다. 그러면 흑암으로 가득 찬 교파의 신조들과 교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빛이 비칩니다. 그러면 교파의 흑암은 물러갑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정확히 성경적인 이야기입니다.
자, 우리는 옛날의 동방박사들이 하나님이 주신 실체를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말씀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빛으로 따라 왔습니다. 이제 “어떻게 따랐나요?”라고 묻습니다. 글쎄요,
민수기24장17절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 발람도 일종의 동방박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여기서 야곱에게서 별이 떠오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박사들은 야곱에게서 별이 떠오를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그 작은 표식을 따라 영원한 빛의 근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날 교파들의 신조와 교리와 신학에 눈이 멀지 않은 현자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위해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천문학자들,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당신들은 미쳤어!”라고 말했을까요?
그들은 2년 동안 여행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나라를 지나가면서 “어디로 가야만 할까요?”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교단 본부가 있는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들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거리를 오르내리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에 의지해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별이 그들을 영원한 빛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고 따랐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완전한 빛으로 인도하소서.”
말씀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고, 빛은 그 말씀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목하세요,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현자들은..."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모든 과학자들과 위대한 학문이나 다른
것에 의존하는 여러분은 원자를 쪼개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그것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 생명이 올 수 있는 곳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원자를 쪼개는 방법을 아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들이 절대 알아내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만약 그들이...그렇게 해야만 한다면...이 세상이 오늘 매달려 있기 때문에...이 큰 구멍을 터뜨려
용암이 나와서 이 세상을 다시 젊어지게 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악인의 먼지 위로 걸어 나오고, 죄가 잊혀 질
새로운 땅을 만들기 위해,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지혜로 생명나무 대신 지식의 나무를 따먹으면 하나님이
살도록 주신 땅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나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질병과 죽음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빛이여! 빛이신 주님, 우리에게 빛을 보내주소서.
목자들을 영원한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언덕에 빛을 비추신 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이었습니다. 빛으로만 올 수
있습니다. 생명은 오직 빛으로만 올 수 있습니다. 목자들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왕이 태어났을 때, 찬양이 있고,
큰 행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비밀리에 태어나셨고 마구간에서, 소와 말이 먹는 구유에서 태어나셨지만
왕이셨어요. 그리고 천사들이 내려와서 빛 가운데서 목자들에게 찬송을 불렀어요. 천사들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빛이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날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천사들에게는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빛으로 와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사들의 말씀을 따라 영원한 빛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천사들이 말한 대로 포대기에 싸여 있는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생명은 오직 빛으로만 오니까요.
그분은 빛이 되신 말씀, 즉 빛이 되신 분이셨습니다. 그 세대의 말씀, 그분은 옛 선지자들이 그분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그 세대의 말씀 빛이셨고, 여기 오셔서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선지자들이 말했던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이 말씀과 함께 여기 다시 오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빛이 임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그가 우리와 함께 계실 하나님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말했고 말씀은 나갔지만 그분은 빛이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성취입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그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그분은 그 말씀의 현현이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시대의 정확한 시간에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빛입니다.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참 빛이셨습니다.
선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을
‘기묘자라, 평강의 왕이라, 모사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라 할 것임이라”고 말했을 때,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셨나요? 그 말씀을 성취하신 빛, 아멘, 그 말씀을 성취하신 참 빛입니다.
마태복음28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내가 그의 혼을
지옥에 두지 아니하겠고 내 거룩한 자를 썩는 것을 보게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다윗의 말씀의 빛이셨습니다.
죽음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의 봉인을 뜯으시고 그 안으로 들어가셨다가 다시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빛이셨고, 죽은 자들이 죽은 후에도 살 수 있다는 확증된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러셨습니다.
오순절 날, 그분은 성령이 오셨음을 보여주는 빛이었습니다.
이사야28장에서 이사야는 “교훈은 교훈 위에, 선은 선 위에, 여기서는 조금, 저기서는 조금”이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것을 굳게 붙잡으라.” “내가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리고 이것이 안식일,
내가 그들에게 줄 안식일이다...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듣지 않고 고개를 흔들며 떠나갔다.”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자 그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비틀거리며 술 취한 남녀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걸어가면서 고개를 흔들며 “이 백성이 새 포도주를 먹고 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예언된 빛, 말씀이 표명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시대에 말씀이 나타나고, 생명이 되고, 그 시대의
빛이 되고, 말씀이 나타나게 됩니다. 창세기1장3절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빛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엘서2장28절에서 “말세에 이르리니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아들과 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내 여종과 하인들은 내 영을 부어 주리니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볼 것이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약속하신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그
말씀 위에 빛으로 임했습니다. 말씀이 표명되었을 때 그 말씀은 빛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 할 빛이십니다. 그분은 유일한 빛이십니다. 천사들은 빛을 발견하고 그분께로 따라왔습니다.
이제 모든 시대에 하나님은 각 시대를 위해 그분의 말씀을 할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 말씀이 들어가서
그 빛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것은 모든 시대에 똑같은 일을 하셨고, 항상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말씀드린 대로 선지자들의 모든 신성한 거룩한 능력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들은 작은 신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임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너희 율법과 너희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그들을 '신'이라고 불렀는데, 내가 '나는 그 신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너희가 어떻게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하나님 자신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그 말씀의 표명(현현)이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다른 선지자의 말씀의 현현 이었기 때문에 신이라고 불렸다면 그분도 똑같은 분이 셨는데,
어떻게 그분을 정죄 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약속된 메시아였습니다. 그분은 메시아의 약속이 실현된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그곳에 서 계실 때 그분을 보십시오. 그분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으면 나를 정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하는 일들을 믿어라. 그것들은 내가 누구인지
증거 합니다. 그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것이다.” 그들이 사는 그 눈멀고 어두운 시간,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저런 분이실 수 있죠? 바로 여기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실 수 있죠?” 그들이 알기만 한다면 말씀은 그렇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분 아버지 요셉은 목수였어요. 그의 어머니는 왜, 사실 우리 형제들 사이에서는 그가 사생아로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상고하라, 그 안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니, 성경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 증언하는 책이다. 바로 이 성경이
나를 증언하고 있노라.” 그렇다면 그분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빛입니다. 그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은 “나는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너희가 세상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고, 그분의 말씀을 성취한다면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는 각 시대의 빛이 똑같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질문하고 싶습니다. 왜, 왜 그들은...거절했을까요? 그들이 읽고 있던 바로 그 성경이
그들 앞에 나타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하세요. 이제 기억하세요,
지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4, 5백 명뿐만 아니라 수천 명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멈춰주세요. 녹음기를 멈추고 질문해보세요. 왜 종교인, 선한 사람이...왜 요셉이 의문을 품었을까요?
아시겠죠? 왜? 성경을 찾아보지 않았으니까요. 제사장들은 왜 질문했을까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잘 표현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의 선생님이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당신이 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그게 뭐였을까요? 그들의 전통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메시아를 거부했을까요?
왜 그들은 그 빛을 거부했을까요? 여기 그들이 알고 있던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말씀이 드러났을 때 (오늘날과 비교해보십시오. 보십니까?) 말씀에 기록된 대로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왜 그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했을까요? 교사들. 그들은 다른 시대의 빛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거예요. 그들은 다른 시대의 빛의 눈부심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다른 시대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절하는 이유는 다른 시대의 빛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말한 것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시대가) 지나간 것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동일하다.”는 이 메시지가 거절당하는 바로 그 이유도 사람들이 다른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그것을 거절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웹스터는 “눈부심은 일종의 거짓 빛입니다. 눈부심은 거짓된 빛, 즉 눈부시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라고
도로 위의 신기루 처럼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며 길을 가다가 전방을 내려다본다고 가정해 보세요.
지상에 있는 태양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신기루처럼 도로 전체에 물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신기루일 뿐이며 진정한 빛의 눈부심일 뿐입니다.
오늘날 마귀가 사람들에게 신기루, 교회 협의회, 교단 그룹을 보여주고 있지만 거짓으로 판명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빛이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짜 빛은 빛나지 않았고 신기루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짜 빛이 빛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은 다른 시대, 다른 것의 눈부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눈부심, 이 신기루는 거짓입니다. 그것은 태양의 눈부심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참 빛의 거짓 눈부심입니다. 이제 그분은 참 빛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그들은 왜 그분이 빛이신 것을 알았습니까? 그분이 빛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약속된 말씀이 그분을 통해 표명됐기 때문에 그분은 그 말씀의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 오순절 침례교 신자인 제가 소리 지를 뻔했어요. 주목하세요, 생각해보세요! 눈부심을, 보세요,
눈부심 속에 사는 것! 그러나 참된 말씀이 살아 있을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빛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것이 나타났다면 어땠을까요, 신기루처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네,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셨는데
안개가 더 끼었다면요? 그건 빛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나 빛이 온 이유는 그분의 말씀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여러분이 그것을 보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에 빛이 비치는 것입니다. 말씀이 빛이 되어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말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미쳤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사마리아인이고, 당신은 올바르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글쎄, 우리는 당신이 죄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교단에는 당신의 신원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미쳤어요. 당신은 마귀가 드렸습니다.” 아시겠죠? “왜, 그들이 예수에게 당신은 마귀 들렸어요?"라고 말했을까요?.
하지만 그분은 사실 하나님의 참된 빛이셨고, 말씀의 빛으로 빛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부심은 곧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지자 모세가 있고, 모세가 우리의 길잡이입니다!”
그분은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알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성경을 믿었다면 지금 이 시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기독교인입니다. 우리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시대를 위한 그리스도의 행적을 알 것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지자들이 나에 대해 너희에게 말했다. 너희가 그 선지자들을 믿는다면, 그 이유는
너희가 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행하는 일들이 내가 누구인지 너희에게 나를 식별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가 할 것이라고 말한 것들을 내가 지금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누가 나를 불신으로 정죄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눈은 눈부심, 즉 참된 말씀이 무엇인지 다른 것의
눈부심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그 말씀을 믿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은 그들의 얼굴을 참된 말씀에서 눈부심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진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시대가 그러했습니다. 참된 말씀은 빛나고 있지만 그들은 교회의 전통이라는 그
눈부심에 너무나 가려져 있어서 그 말씀의 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눈부심을 보고 있고 눈이 멀었습니다.
눈부심은 그 시대의 빛인 말씀에 눈을 멀게 합니다. 거기에는 막이 있습니다. 눈을 멀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볼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 형식과 교회의 전통의 눈부심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빛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눈부심은 거짓 빛, 신기루, 참 빛에 대한 거짓 개념입니다. 거짓된 교리들, 그것은 진리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닌 다른 어떤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이 행하신 바로 그 일들이 그분이 누구인지, 그분이 참 빛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빛 안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잠시 멈추고 누가 빛 안에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오늘! 형제 여러분, 그 당시 교인들이 그런 성급한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런 성급한 일을 저질렀다면,
이제 우리는 잠시 멈추고 빛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성급한 실수를
하지 맙시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해봤고, 보고도 몰랐습니다.
이제 잠시 멈추고 오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보세요.
그들이 멈춰 서서 “여기서 그분은 말씀이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성취하고 계십니다.”라고 생각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가 여러분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도전하셨습니다! 보이시죠? 보이시죠?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살펴보고, 성경을 찾아보고, 지금이 때가 아닌지 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성경을 찾아보라,
그 안에서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니, 성경은 나를 증언하는 책이다.” 오늘날 그분의 말씀을 증언하고, 증명하고,
있는 것은 그분의 작품입니다. 증언하는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 작품 자체가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언하고
성경은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므로, 그것은 그 시대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도 그분의 작품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에베소서2:10.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
고개 흔들고 떠난 사람들처럼 여러분의 전통과 물건은 성경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성경은 “모든 식탁이 구토물로
가득 차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여러분, 아시나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서 증명하고 계신 바로 그 일을
거부할 때, 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전통적인 구토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개가 토하러 가듯이.” 처음에 토한 것이 그를 아프게 했다면, 두 번째 토한 것도 그를
아프게 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조직화되고 처음 조직을 만들면서 교회에 병을 가져왔다면 루터교, 감리교,
그리고 나머지 모든 침례교, 장로교, 오순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는 토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암퇘지는 굴로
돌아간다.” 아시겠죠? 주님의 뜻대로 몇 분 안에 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눈부심, 눈부심 속을 걷는 것, 신기루, 참 빛에 대한 잘못된 개념. 그분은 그분이 “참 빛”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소수의 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 세상에, 수백만 명이 그분을 반대했습니다!
지구상의 6분의 1, 90분의 1의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그분이 여기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의 40분의 1, 아니 거의 50분의 1, 아니 100분의 1,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유대인만이 그분이 그곳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은 교단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분을 거짓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분은 태초에 창세기부터 말씀하신 참 빛이셨고, 성경을 찾아서
그분이 그 시대에만 살지 않았는지, 그분이 하신 일이 그 시대에 약속된 것을 정확히 성취하지 않았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아멘. 오!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형제여! 우리는 엄청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옳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숭배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빛이셨습니다.
그들은 그 빛을 숭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숭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그것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지만 눈이 멀어서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조직적으로,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 눈부심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전통이란 어떤 사람들이 모여 “우리는 가서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고,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의 작품은 살아있는 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은 살아있는 말씀 그
자체였으며, 그분이 태초부터 약속된 그 참 빛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은 그 참 빛이셨습니다. 그분의 참 빛은
그 시대의 약속된 말씀에 대한 그분의 빛으로 그 약속이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살아나게 하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없을 때까지 그것을 돌이키게 했습니다. 보이시죠? 하지만 그분은 그 시대의 참 빛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들이 경배한다고 주장한 빛이셨습니다. 그들은 창조의 신을 숭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눈부신 빛을 숭배하며 살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가르침(신학)과 전통을
교리로 가르치면서 나를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그분은 말씀이 현현하신
참 빛이신 분이십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디에서나 들리는 곳마다, 그것이 말씀이 “현현된 말씀”이라는 것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우리에겐 말씀이 있구나."라고 말입니다. 왜, 말씀, 모두가 성경을 가지고 싶어 하죠? 그러나 말씀이 입증되고
명백해지면! 그때서야,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죠? 네, 그들은 끝까지 믿지 않습니다.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믿지 않는다고 누가 그들을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시간 동안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루터의 전통,
또는 웨슬리의 전통, 그리고 나머지 오순절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 뒤에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발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고, 그 말씀은 그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믿어야 할 사람들에게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비추시기를 바랍니다. 생각보다 늦었습니다.
제 아들 빌리 폴은 자면서 말을 하긴 하지만 꿈을 자주 꾸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밤에 꿈을 꿨는데
깜짝 놀랐어요. 교회에 있는 꿈을 꿨는데...제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들어왔을 때 눈에서 불이
날아가는데, 제가 “때가 왔다. 끝났어요.” 그러자 모두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못하겠어요! 내 아이들!”
심지어 제 아내도 “식탁에서 사라에게 축도를 부탁할 수 없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로이스와 아기를 데리러 가야겠어."라고 말했죠.
저는 “로이스는 지금 못 온다고 했어요. 아기는 너무 어려서 알 수 없어요. 빌리, 시간이 다 됐어요. 가야 해요.”
제가 말했죠, “지금 자정이에요. 동이 트기 전에 예수님이 오실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그리스도의 거짓
증인입니다.” 그러자 누군가 “분이나 시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분이나 시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낮까지'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자...가자...?...”라고 말했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시간에 있습니다. 가자고요.”
그리고 우리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죠. 하늘에는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지만 땅은
어두웠어요. 제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제 손을 이렇게 잡았는데 눈에서 여전히 불이 날아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주님, 저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렇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큰 화강암 산을 가리키자, 손이 없는 빛이 산에서 수백 톤이나 되는 돌을 잘라내더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요. 몇 분 안에 다 끝날 거야."라고 말했죠. 그러자 이 돌이 그 곳을 향해 오면서
사방에서 거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늦을 수도 있습니다. “손이 없는 돌, 산에서 잘라낸
돌"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예요. 무언가를 요구하게 될 때요. 저는 그들에게
“이미 그런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경고하셨잖아요. 그래요.” 저는 “내 자식이든 누구든 그 시간이
다가왔어요. 저는 그분이 제게 하라고 하신 말만 할 수 있고, 그 때가 올 거예요.” 그리고 정말 그랬어요.
그리고 갑자기 [브래넘 형제가 손뼉을 한 번 친다.], “산에서 손 없이 잘라낸 돌”이 오셨어요. 다니엘은 수년
전에 그것을 보았습니다. 빌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것은 주님이 그에게 보내신 꿈이었습니다.
이제 보세요, 그들은 자신들이 조롱하던 바로 그 신을 숭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똑같은
이유로 빛 대신 눈부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위대한 빛에는 빛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어둠 속에 있는지 보세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세요! 살인, 강간, 분쟁을 보세요!
왜, 현실이 됐어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지난 집회에서 “10년 뒤에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시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챙겨야 할 것입니다. 법 집행 기관을 충분히 배치할 수 없습니다.” 총격, 살인, 강간 등 모든
것이 미쳐버렸어요. 길거리에서 난리가 났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빛이 비추고 있어요! 그들이 보기만 한다면, 보기만 한다면, 말씀을 들여다보고 이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그 빛을 숭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그 빛을 숭배한다고
주장했지만 진짜 빛이 아닌 다른 빛의 눈부심 속에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빛이었어요.
교회의 신조와 전통은 눈이 먼 상태에서 그들을 약속된 말씀의 참된 빛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확증하신 말씀이 오셔서 그 말씀이 그분의 시대, 그 시대까지 정확히
성취되게 했습니다. “그는 69이레의 중간에 끊어질 것이다.” 예언의 3년 반인 69이레가 바로 그분의 예언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예언하실 것이고, 그 후 사흘 반이 지나면 그는 산 자들과 단절되어 속죄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3년 반 동안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한 바로 그 시편22편 말씀에, “나의 모든 뼈들이여, 그들은 나를 쳐다본다.
그들은 고개를 흔든다. 그들은 나를 지나간다.” 다윗이 성령 안에서 이 찬양을 부를 때 이미 8백50년 전에
예언으로 간주되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같은 희생 제물이 십자가에 매달려 그분의 손으로 찔렸을 때 성전에서
그 찬양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도다.” 보이시죠? 보이시죠?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과거의 말씀의 눈부심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시대의 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신이 똑바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상상할 수 있나요?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 꼭 필요한 곳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는 빛이 있는 것을 거부합니다.”라고 말하는 정신이 똑바른 사람을 상상할 수 없죠. 미친 짓이죠.
성경이 약속하고 바로 눈앞에서 살아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거부하는 신조와 그런 것들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의 영은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비행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1
그분은 지금 여기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참 빛이셨고, 세상은 그분을 알았습니다...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자기 백성들은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셨고 세상은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어제(지나간 시대 말씀)의 빛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제의 빛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의 빛은 추억일 뿐입니다. 어제의 빛은 기억일 뿐, 즉 역사적 사실일 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제의 빛(말씀)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같은 태양, 같은 빛이지만 어제의 태양으로 오늘 씨에
빛을 비추면 싹이 나올 수 없듯이 매일 조금씩 더 강한 힘을 내어 곡식을 익혀 수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태양은 조금 더 강하게 비춥니다. 이제 매일 조금씩 더 강해지고, 조금씩 더 강해져서 마침내 그 빛을
받고 있는 밀알이 성숙하게 익어가게 될 것입니다. 잠시 후, 생명은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강해질 것입니다. 4월, 5월, 6월, 7월이 지나서 수확기에 접어듭니다. 1월이나 12월, 오늘 같은 태양이 저 위에서
눈을 녹여 곡식에 물을 주고, 같은 태양이지만 6월에 같은 햇빛을 받으면 밀이 살 수 없죠? 그럴 수 없습니다.
태양은 매일 조금씩 더 강해지고 곡식은 그 시대의 햇빛을 받으려면 조금 더 성숙해야 합니다.
그게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초기 교부들, 루터와 웨슬리와 그들에 의해 뿌려진 곡식은 왜소해져서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들은 그것을 죽입니다. 자라기를 거부했죠. 아시겠죠? 그것은 그것을 자르고 줄기에서
스스로를 가져와서 여기로 와서 자신의 작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껍질이 되고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아들이 날마다 강해지듯이 곡식도 성숙하고 강해져야 합니다.
이제 잠시 지켜봅시다. 교회 시대를 살펴봅시다. 교회에는 일곱 시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성장하면서
각 교회가 어떻게 할 것인지, 알곡이 어떻게 성숙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이 마지막 시간에 어떻게 내려올 것인지 그분이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 하셨는지 지켜보십시오.
그러니 교회들도 똑같이 해야 합니다, 교회들....자, 루터는 한 알의 곡식을 뿌렸고 루터는 한 알의 곡식이고
그것을 뿌렸습니다. 아시겠죠? 웨슬리도 그랬고, 오순절도 그랬고, 침례교와 나사렛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첫 번째 교단인 가톨릭의 빛으로 돌아가서 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또 다른 빛이었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숙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루터교 부흥이라는 작은 소수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런 다음 웨슬리 부흥을 따라 와서 그 안에서 왜 그들은 루터교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 보이시죠?
그리고 오순절파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순절파가 조직을 만들어서 똑같은 일을 하고 껍데기를 가져갔죠?
하지만 알맹이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시대에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왜 그들은 알곡이 익은 것을 보지 못할까요? 이 날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가 성경을
두드린다.] 왜 그들은 그걸 보지 못합니까? 그들은 루터교의 눈부심, 웨슬리의 눈부심, 침례교의 눈부심, 오순절의
눈부심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빛의 눈부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온전한 말씀의 빛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비밀이 밝혀진 일곱 인이 돌아와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려줄 텐데도, 그 빛이 들어오면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멀리 멀어집니다. 그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계시를 통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과학과 다른 모든 것을 통해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진리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순절적인 눈빛으로 “나는 어셈블리다! 나는
하나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다! 내가 바로 이것이다!” 보세요, 40년, 50년 전의 눈부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루터의 눈부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웨슬리, 침례교, 장로교, 나사렛, 다른 교회 시대의 눈부심 속에서 살면서
똑같은 일을 조직하고 행하고, 실제로 참 빛이 비추고 있는데도 거부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기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건하게 말하지만, 여러분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깨우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기루 속에 살고 있어요. 예수님이 “왜, 너는 소경인데 소경들을 이끌고 있니?”라고
말씀하신다면요? 그들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에게 말하려고 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라. 장님이 장님을 이끌면 모두 도랑에 빠질 거야”라고 말했죠? 바로 그 때가 왔습니다!
그들이 비틀거린다면 어쩔 수 없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습니다. 정확히 그런 것 같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 일을 했습니다. 당신이 증인입니다.
1933년, 오하이오 강 아래서 저기 보이는 빛이 비추었을 때, 바로 여기 성막에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당신에게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라.” 그 시간만 기다릴게요. 언젠가 그분이 오실 거예요.
주목하세요, 루터의 눈부심 속에서 살고, 웨슬리의 눈부심 속에서 살고, 오순절의 눈부심 속에서 살고, 그것이
그들이 이 시대의 참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이스라엘의 왕이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하늘의
징조를 보고 그 별의 인도를 받고 왔으나 예루살렘 교파교회에 들어가 소속되었을 때 교파의 눈부심으로 더 이상
그 별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었듯이 교파 교회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는 눈이 멀어 참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교파가 전하는 교리와 신조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몇 분만 멈추고 성경을 집어 들고 그 말씀과 성경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한 시간 동안이라도 비교한다면 그것이 약속된 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잠시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말라기4장에 따르면 주님은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약속의 땅을 향해 행진하던 이스라엘의 여정에서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의 빛이자 생명인 만나를 먹으며 힘과
생명을 얻었죠? 그렇죠? [회중이 “아멘.”한다.] 이스라엘은 어제 내린 만나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썩었습니다. 그들에게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먹는다면 죽을 것입니다. 어제 그들을 살린
만나가 오늘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성경은 그 안에 세균이 들어있어 오염되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매일 매일 새로운 만나를 취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아멘. 그것을 주의 깊게 연구해보십시오.
그게 뭐였죠? 루터와 웨슬리의 만나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오염된 것을 먹고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죽이고, 당신을 교회 전통으로 당신을 영적으로 조금씩 약하게 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어제의 루터의 만나가 감리교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만나도 오순절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순절의 만나가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만나가 매일매일, 날마다, 신선하게,
그리고 교회 시대 내내 하늘에서 시대 시대마다 이어져 내렸듯이 말입니다.
루터의 만나는 “칭의의 메시지”였습니다. 웨슬리의 메시지는 “성화의 메시지”였습니다.
오순절은 은사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는 상반되는 마지막 날,
신부 나무인 머릿돌을 소개하지만 성숙한 자에게는 동일한 빛입니다.
7월에 추수를 위해 곡식을 익히는 오늘도 같은 태양이 비추듯이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하지만 오늘의 빛은 7월에는 아무 소용이 없죠? 더 강하죠? 밀은 더 성숙해져서 받아들일 준비가 됐어요. 아멘.
그렇겠지 지금은 못 견디지만 그때는 견딜 수 있어요. 그때는 시기가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맞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법이 있고, 그 법에 어긋나면 식물을 죽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에 따라 가야 하며, 그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법은 말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생각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환상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예언,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예지입니다.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바울도,
그리고 그들 모두가 이 시대에 대해 말했던 환상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그 예측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자, 어제의 만나...여기 보세요. 태양이 매번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셨나요?
이해하시나요? 그리고, 교회 시대도 똑같이 반복되었습니다. 뭐? 태양은 동쪽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문명은 태양과 함께 이동해 왔고, 태양은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한 빛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태양을 따라 어디로 가는지 보러 왔습니다. 인생 자체는 태어날 때 태양과 같습니다.
태어나서 해가 지는 순간까지, 해가 지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인간은 항상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왔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문명은 동방의 중국입니다.
예루살렘...그리고 계속 서쪽으로, 그리고 계속 서쪽으로, 계속 서쪽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교회 시대도 하나님의 S-o-n에 의해 같은 방식으로 여행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 동방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초대 교회인 바울은 동방에서 시작해서 거기서 바다를 건너 독일로 넘어갔습니다. 세 번 당겼어요.
여기 보세요. 아시아에서 팔레스타인을 거쳐 바다를 건너 독일로 건너간 사람은 루터입니다. 그리고 루터로부터
영국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간 사람은 웨슬리입니다. 그리고 웨슬리로부터 미국 서부 해안으로 건너가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벌써 저녁 시간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싸웠는지 보세요. 바울, 처음엔 초기에 아일랜드, 이레네우스 등으로 내려갔고, 프랑스로,
거기서 독일로, 영국으로, 계속 서쪽으로 갔죠? 그리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시대입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시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지리적으로, 연대기적으로,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는 거의 모든 방식으로 보십시오. 성경적으로, 당연히 성경이 우선입니다.
증거, 역사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우리는 마지막 교회 시대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칭의” “성화” “성령의 침례” 그리고 이제 다가오는 머리 돌에
이르기까지 참 교회의 소수가 성장하여 스스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이후에는 더 이상 조직이 없습니다.
더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조직이 아니라 머리 돌과 연합, 한 몸을 이룹니다. 우리는 서쪽에 있습니다.
모든 유형과 다른 모든 것을 통해 보여드리려고요. 저 세 번의 점프와 세 번의 당김을 보세요. 오늘 밤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에 어떤지 보시면, 태양처럼 여행했습니다. 교회는 일곱 교회 시대부터 똑같이 왔습니다.
문명은 바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고 교회도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금보다 더 멀리 가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옵니다. 서해안을 떠나면 바로 “중국과 한국”으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7천 마일을 건너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갑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났으니 그게 전부입니다. 이제 끝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 2부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