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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저작함에 하나님은 먼저 역사에 직접 개입하셔서 사건과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속의 뜻과 계획을 계시했다. 그리고 선택된 저자들에게 그 계시를 바로 깨닫도록 성령으로 영감을 주고 또 영감 받은 내용을 정확히 조명케 하여 인간의 글로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시대, 여러 저자로 저작된 당신의 말씀들을 보존 수집하여 정경(正經)으로 형성시켰다.
아타나시우스가 367년에 처음으로 사용한 정경(Canon)이란 단어는 막대기 자를 뜻하는 헬라어에 유래한다. 용량, 무게, 길이 등을 측정(measure)하는 것보다는 똑 바른지 굽었는지 갖다 대보는 기준(rule) 혹은 표준(standard)의 의미를 지닌다. 즉 정경으로 확정된 성경만 하나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령의 계시, 영감, 조명까지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인간 저자의 내면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반면에 정경화는 이제 외적으로 완연히 드러나기에 인간이 주도권을 잡고 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이 인간더러 인지할 수 있도록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드러내었다면 잘못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당신께서 정경으로 만드셔야 한다. 또 실제로 정경화는 전적으로 성령이 주관했다. 단지 인간이 선택 확정 지었다는 역사적 이유만으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는 결코 반발하지 못한다. 그럼 정말 그러한지 정경화의 역사적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1. 구약성경의 정경화
구약 성경의 내용은 시대적으로 창조부터 바벨론 포로귀환후기까지 망라하고 있다. 바꿔 말해 성경의 기록뿐 아니라 정경화도 사실은 어떤 특정 시점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는 뜻이다. 물론 현재처럼 39권으로 확정된 것은 주후 90년의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그런 최종적 확정 작업 이전에 이미 유대 공동체는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고 읽고 묵상하며 따르고 있었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우선 주전 132 년의 외경 ‘집회서’에 저자의 손자는 “율법과 선지서 그리고 그 뒤에 오는 다른 책들”에 대해 서문에서 언급했다. 비록 “다른 책”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지만 당시에 이미 확정된 구약성경을 세 부분으로 구분까지 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여기서 선지서는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 이르는 역사서를 포함한다. 그래서 역사서는 전선지서로,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의 예언서는 후선지서로 분류한다.)
또 주후 1세기 중엽에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항상 받아들여졌던 기록과 금방 받아들여졌던 기록을 포함해서 나머지 네 권의 책들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인간의 삶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다”라고 진술했다. 성경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받아들여진 것에서부터 최근에 받아들여진 것도 있다는 말이다. 그가 열거한 책 리스트는, 소선지서 12권을 한 권으로 묶는 것 같이 분류방식이 다르지만, 현재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39권 그대로였다. 요세푸스보다 앞선 유대 저자 필로도 구약의 세 분류를 인정했고, 또 주전 168년에서 주후 68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이는 쿰란 공동체에선 구약 39권 중에 에스더서를 제외하고 다 발견되었다.
흔히 모세오경으로 불리는 율법(Law;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은 대강 다윗의 때 까지는 현재의 형태로, 또 나머지 선지서(Prophets; 역사서와 예언서)들은 포로 후기에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사건 발생보다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작은 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동시대적으로 이뤄지고 또 읽혀졌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수집 분류되어 경전으로 확정된 시점이 그렇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수시로 전 민족적인 종교개혁을 했었고 특별히 남북 왕국이 멸망되어 이교도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것에 충격을 받자 이미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성경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유다왕 요시야 때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국민들 앞에 낭독하여 회개하고 전국의 우상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이 때 발견된 책은 모세오경 중에서도 신명기로 추정하고 있다.)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왕하 23:1-3)
지혜서로도 불리는 성문서(聖文書 Writings)의 저작 배경은 욥기의 경우는 족장시대, 시편과 잠언은 모세부터 통일왕국시대에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수집 된 것은 포로 시대나 그 이후로 본다. 어쨌든 구약성경이 최소 주전 150년까지는 지금의 39권으로 구성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주후 90년에 얌니아 종교회의를 정경화의 확정시점으로 보는 이유는 구약성경 중에 몇몇이 정경에 포함시켜야 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더서는 여호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전도서는 회의주의가 팽배하고 쾌락주의를 암시하는 구절이 일부 있으며,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며, 잠언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내용이 있고, 에스겔서는 모세 오경과 상충된다는 의구심과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논의 된 모든 문제점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충분히 드러내지만 단지 표현이 오해를 살만하거나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정경에 그대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말하자면 그 종교회의는 새롭게 정경을 선발 추가시킨 것이 아니라 기존에 정경으로 널리 유포 사용되고 있던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신자까지 포함해, 성경 정경화의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사항이 하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구약의 경우에는 유대교 랍비들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 한 번에 모여서 이미 수집된 수십 수백 권의 책을 함께 검토해서 그 중에서 내용이 가장 심오해 정경이 될 만한 것들을 (투표 같은 방식을 통해) 골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이미 유대인들의 신앙공동체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아 읽혀지고 있던 것을 랍비들은 단지 차후에 확정한 것이다.
이미 말한 대로 이스라엘에 때때로 경건한 왕들이 나와 종교개혁을 했고 또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자기 민족의 종교를 더욱 순전하게 지킬 필요성이 있어서 경전을 재확정지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때도 새롭게 저작하여 추가시킨 것이 아니라 그 때까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선지자들이 이미 기록해 놓은 책들의 가치를 새삼 인정하여 공동체 전부가 다시 회개 헌신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성경의 필사, 유포, 수집, 편집, 정경화 이전에 인간 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 기록했다. 또 그 기록한 내용을 유대 공동체에서 선포 내지 낭독했고 사람들은 찔림을 받아 말씀 앞에 진심으로 엎드렸다. 단적인 예로 모세는 십계명의 돌 판을 두 번 받았고, 예레미야도 예언을 두 번이나 기록했어야 했다. 또 모세의 고별 설교는 기록으로 남겨졌고 여호수아도 율법을 전 국민 앞에서 낭독한 후에 여호와를 따를지 다른 신을 따를지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바꿔 말해 구약성경은 유대민족 전체가,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서 반복해서 읽고 그 말씀대로 따라 살기로 노력한 결과적 산물이다. 천재적 랍비나, 독재적 왕이나, 소수의 제사장들에 의해, 그것도 일시적인 편집 작업을 통해서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백성들이 그 말씀에 영적 감동을 받았느냐 여부만이 정경화의 기준이었다.
그럼 수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그것도 근 이천 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영적 찔림을 받고 동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려면, 최소한 정경으로 인정하자고 무언의 합의를 하자면 그 배경에 성령의 간섭이 작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자꾸 인간이 저작하고 인간이 수집 선택했다는 외부로 드러난 모습에만 국한하는 단세포적 관점으로는 성경이 절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흔히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에 뿌리를 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 내지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고 반발한다. 그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많지만, 성경의 정경화라는 관점에서만 따져 보아도 반드시 한 민족이 동일한 영적 체험을 했어야만 했다. 만약 구약성경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오랜 역사적 산물이 아니었다면, 다른 말로 개인 혹은 몇몇 영적천재의 창작물이었다면 그야말로 인간의 사상으로 전락하지 않는가 말이다.
무엇보다도 구약은 역사이기에 오히려 더 하나님 말씀이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생생한 체험이다. 또 역사이기에 하나님이 인간사에 직접 개입한 은혜의 기록이 된다. 어떤 민족 전체가 타국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열 가지 재앙과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구원 받았다면 어느 누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며 또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반발하겠는가? 또 그것을 두고 몇몇 사람이 모여, 아무리 제사장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정경으로 선택하자 누락시키자 말할 수 있는 권리란 없다. 아니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 아닌가?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자를 가진 민족 중의 하나였다. 그 민족에게 하나님은 정말로 기록하지 않고는 안 될 은혜들로 간섭하고 말씀으로 계시하셨다. 특별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직접 계시한 말씀들을 기록하여 모든 후손들이 암송하며 그대로 따라 살게 하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 정경화 작업을 하나님이 시작하고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단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다 같이 납득, 동의, 감동, 결단, 헌신, 순종하는 한에 말이다.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만사에 개입하시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 유일한 민족이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그 민족을 택하여(신7:7) 그런 진리를 알 수 있도록 계시해 주셨다. 또 자기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 족속들에게 흘러나가도록 하는 제사장 나라의 소명을 받았다. 나아가 그 소명을 잘 수행하도록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유대 민족은 실존적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바로 이 언약의 바탕에 비추어 정확하게 기록된 책만을 정경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나 혼합주의에 빠져들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만은 유지하려 노력했다. 때때로 종교개혁을 했고 민족적 절기에는 꼭 성경을 낭독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록으로는 따질 수 없지만 모세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서, 또 여호수아가 임종 직전 세겜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언약을 갱신한 전통을 따랐다. 아가서는 유월절에, 룻기는 오순절에, 애가는 아브월 9월 기원전 586년 유다가 멸망하던 날에, 전도서는 초막절에, 에스더서는 부림절에 낭독되었다. 한 마디로 구약은 랍비가 아닌 이스라엘 민족이, 또 그 민족보다는 성령이 정경화 한 것이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그렇게 확정된 정경을 우리 주님이 확인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24:44) 구약을 율법과 선지서와 성문서 셋으로 구분하는 것이 당시에 이미 통용되고 있었고 또 예수님도 그대로 다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후에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에 (이미 정경화 된) 구약성경 말씀으로 물리쳤다. 가공할 영적 존재인 사단을 인간이 인간의 능력으로, 나아가 인간의 말 몇 마디로는 더더욱 절대 물리칠 수 없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당신의 말씀으로 대적하니까 사단은 꼼짝 없이 물러간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약이 예수님 당시에 이미 정경화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확실히 해주는 증거가 따로 있겠는가? 바꿔 말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확신하여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 오늘 날도 귀신을 쫓고 병이 낫고 죄인이 변화되는 동일한 권능과 표적들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 확신할 수 있는 여부는 정경화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누가 따로 강요하거나 편집 회의 하지 않고도 자연히 구약성경 앞에 엎드리고 자손 대대로 가르쳤지 않는가? 우리 또한 말씀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을 비롯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얼마든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날마다 체험할 수 있다.
2. 신약성경의 정경화
로마의 핍박과 성경
로마제국은 처음부터 기독교를 박해하지는 않았다. 황제를 숭배하고 국가종교를 존중하는 이상 제국내의 모든 종교를 다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유일신 야훼를 믿는 유대교가 로마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황제 숭배의 시초가 된 아우그스투스는 각 지역의 전통성과 제국의 통일성을 함께 고려해 융통성 있게 운용하였다. 유대교에 대해선 단지 황제의 안녕을 기원하도록 요구했기에 열심당 같은 극우파를 제외하고는 별달리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따라서 유대교의 한 부류로 취급되었던 기독교 발생 초기에는 본격적인 박해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유대인들이 로마 점령군의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러다 지방 총독이었던 플로루스가 66년에 성전에서 17달란트를 강탈한 사건으로 로마와의 전쟁이 촉발되었고 초기에는 유대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네로 황제가 임명한 베스파시안 장군이 그 아들 티투스(Titus)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자 사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70년에 티투스는 그 전 해에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돌아간 아버지 대신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철저히 약탈했다. 7 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베스파시안 황제는 유대를 사마리아에서 분리시켜 직속 식민지로 만들었고 성전을 완전히 파괴했다. 자연히 제사장 제도는 사라지고 율법학자를 중심으로 한 회당이 유대인의 종교와 삶의 중심이 되었다.
사도행전 15장에 의하면 이방인의 개종과 할례 문제를 예루살렘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했다. 성전 파괴 이전까지 기독교는 유대교적 기독교의 색채가 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기독교는 외부로 이동해야만 했고 또 황제 숭배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박해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전쟁으로 유대 민족은 큰 불행을 겪었고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성전은 돌 하나 남지 않고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도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할 무렵인 네로 황제 통치 하의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는 참혹한 환난으로 비쳐질지라도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당신의 절대적 주권과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베풀어지는 법이다. 성전 파괴는 기독교가 자체적인 정체성을 갖고 유대교와 공식으로 결별하여 세계적 종교로 본격적 발돋움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기독교 고유의 경전이 공식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신약 정경화가 기독교를 창립해야 할 현실적이고도 인위적인 필요에 따라 새롭게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시 베드로와 바울이 이미 순교했는데 그들이 기록한 성경만도 신약 27권 중에 15권이지 않는가? 바꿔 말해 기독교 태동 훨씬 전부터 그들의 서신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아 회람되고 가르쳐지고, 서신서 자체가 입증하듯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는 1세기 후반에 유대 회당 중심으로 지중해 세계 곳곳에 이미 상당히 전파되어 있었다. 예루살렘 파괴는 다만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른 독립된 종교라는 인식을 당시 사람들에게 확실히 심어주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간 유대교 우산 아래 있던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숭배에 대한 거부 입장을 당당히 밝힘에 따라 핍박도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대교회 신자들이 순교를 감수하며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도 있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예배는 성전제사와 율법의 도덕체계 두개가 축을 이루는 유대교와는 달랐다. 무엇이 절대적 진리이며, 그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진리를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지를 말씀으로 가르쳤다. 그 진리는 물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였고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 그분을 배우고 변화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기독교와 그 경전은 서신서가 기록되자마자 이미 내용적으로는 확정되어가고 있었기에 정경으로 확정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역사적 정경화 과정
초대교회들이 사도들의 서신을 하나님 말씀으로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실제 역사 기록이 보고하는 것은 110 년경에서야 처음 나타난다.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 지도자 이그나티우스가 쓴 서신에 마태복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한 문서로 인용하고 있다. 또 사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서와 사도행전이 교회에 이미 널리 회람되고 있었던 것은, 당시에 그 필사본들이 많이 증가했으므로,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 후 2세기 말쯤에 이레네우스는 왜 그리스도인에게 4 복음서가 필요한지 설명했다. “교회가 전 세계로 흩어질 때 교회의 기둥과 터는 복음이며 생명의 영이다. ... 교회가 모든 방면에 불멸의 숨결을 불어 줄 네 개의 기둥을 가져야 함이 적절하다. ...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던 주님께서 네 가지 모양으로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그 말씀이 성령에 의해 함께 묶였다.” 주목할 표현은 “성령에 의해 함께 묶였다”는 것이다. 단순히 복음서의 정통성만 인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4 복음서를 즉, 다른 유사 내지 거짓 복음서들을 제외하고 성령이 확정시켰다는 뜻이지 않는가? 또 그렇게 당시 교회에서 인정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현재의 27권으로 최종 확정시키는 데는 이단의 도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초의 이단자인 마르시온(Marcion)은 오직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여 구약성경에 드러나는 무서운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144년 경에 로마에서 정경의 범위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예수와 연관되는 것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누가복음과 바울의 10개 서신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최초의 성경비평학자가 되었고 이후의 초대교부들의 정경화 작업에 불을 붙인 셈이 되었다. 당연한 반발로 저스틴과 그 제자 타티안 같은 기독교 변증가들이 이레네우스와 함께 4복음서를 옹호했다. 또 오리겐은 현재의 27권의 신약성경 모두를 정경으로 인용했다. 4세기 초에 교회사가 유세비우스가 계시록에 대한 비평을 하는 등 몇몇 책들이 여전히 논란 중에 있었지만 성문서를 확정짓는 일에 대한 필요성은 더 고취되었다.
또 정경화의 중요한 역사적 증거로 1740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무라토리가 2세기 말경의 로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정경 목록("무라토리 정경")을 발견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에 지금 같은 확정된 정경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히브리서를 제외한 모두와 현재 성경에는 없는 몇몇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현재의 27권대로 정경이 확정 된 것은, 367 년 아타나시우스 감독의 부활절 서신에 그대로 인정한 기록은 있지만, 397 년의 칼타고 종교회의에서였다. 그러나 일부 논란이 된 책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기독교 공동체가 정경으로 확정짓는 일이 오늘날의 역사가나 신학자들이 짐작하는 것만큼 심각한 논쟁거리는 아니었다. 그들이 정경으로 판별하는 아주 확실하고도 분명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보편성(catholicity)을 들 수 있는데 교회에서 실제로 널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아서 가르쳐지고 있는지 여부를 보았다. 또 다른 기준은 정통성(orthodoxy)으로 기록 내용이 사실에 바탕을 두었는지, 가르침과 계명에 윤리적 하자가 없는지를 보았다. 나아가 다른 신구약 정경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에 대한 신학적 진리와 상충이 없는지를 따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도 첫째가는 기준은 사도성(apostolicity)이었는데 예수님의 제자이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자가 저작했는지 여부를 말한다. 사실상 사도성이 확실하다면 당연히 윤리적 하자는 발생할 리 없고 성도들에게 영적인 감명을 끼치지 않을 리도 없었다. 사도성이 확보된 책이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이다.
당시 논란이 된 몇몇 책들도 이 세 기준의 검증을 거쳐서, 특별히 사도성에 초점을 맞추어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예컨대 히브리서는 정통성과 보편성에 아무 하자가 없었고 저자만 불명이었는데 차츰 바울의 저작 내지 그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의 저작으로 인정되어 정경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최종 확정되자 초대 교회의 안정과 기독교 부흥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성령의 감동으로 저작된 책들이 성령의 인도와 간섭으로 정경화되었고 또 기독교 공동체에서 성령의 조명으로 읽혀지고 가르쳐졌기에 정말 권능이 넘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역사했던 것이다.
누가 돌을 옮겼는가?
‘누가 돌을 옮겼는가?(Who moved the stone)’라고 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변증하는 유명한 책이 있다. 영국의 젊은 변호사였던 ‘프랭크 모리슨’이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해 세밀한 조사와 연구를 했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정반대였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성경 기록 그대로 송두리째 믿게 되었다.
아카데미상을 가장 많이 받은 ‘벤허’는 동명 소설을 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가 영화화 한 것이다. 저자 루 윌리스는 인디애나 공화당 선거대회에 가는 길에 기차에서 무신론자인 잉거솔을 만나 그로부터 기독교와 신에 대한 지독하게 부정적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쓴 소설이었는데, 오히려 자신의 회의가 사라지고 하나님과 예수의 신성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런 유사한 예는 얼마든지 많으며 지금도 주위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무신론자나 회의론자가 정말로 예수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려는 마음으로 성경을 정독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그분을 믿게 되는 일이 생긴다. 성경은 영원토록 살아 있는 말씀으로 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바꿔 말해 정경으로 확정될만한 책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있었기에 정경은 스스로 정경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은 책들은 정경으로 입증되지 못함도 너무나 당연했다. 정경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교인들에게 온전한 영적 감화를 불러일으켰지만 정경이 아닌 책들은 그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종교적 신학적 전문가들이 모여 컨테스트 하듯 정경을 선택 결정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주전 2세기에서 주후 2세기 사이에 기록된 유대교 내지 기독교 문서들이 유무명의 저자들에 의해 많이 저작되었는데 위경과 외경 둘로 분류된다. 먼저 위경(僞經: Pseudepigrapha)은 구약정경과 외경에 포함되지 않은 구약 정경을 모방한 모든 문서를 총칭한다. 주후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구약정경을 확정하면서부터 위경의 사용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졌다.
외경(外經: Apocrypha)에는 구약 외경과 신약 외경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구약 외경은 카토릭에선 정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선 정전으로 인정하지 않는 15권의 책이다. 헬라어 칠십인 역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들이다. 말하자면 신구약 중간의 침묵시대에 주로 정통 유대교 외부에서 헬라어로, 제1 멕카비서 같이 히브리어 기록된 예외도 있지만, 저작되었다는 뜻이다. 개신교는 1618년 개혁파 중심의 도르트 회의와 1643년 장로파 중심의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구약 정경에 비해 보편성과 정통성에서 부족하고 기독교 진리와 상충되는 이단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정경에서 제외키로 했다.
신약 외경(때로는 상기 15권만 외경이고 나머지 모두를 위경으로 분류하기도 함)으로는 최근 회자 되고 있는 도마 복음을 비롯한 복음서 40권, 사도행전 7권, 서신서 4권, 묵시록 10권, 시가서 2권 등이 있다. 초대 교회에서 널리 읽혀지지 않았고 사실이 아닌 지어낸 내용과 윤리적 하자와 십자가 복음과 상충되는 내용들이 다분하며 무엇보다도 사도와 전혀 무관한 저작들이다. 기독교와 기록 당시의 유대 역사, 문화, 관습, 종교의 상관관계 등을 연구하는 참조자료는 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책들이다.
위경은 그 내용이 명백히 하나님의 문서로 삼을 만하지 않기에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간혹 신자들 가운데 외경은 미심쩍어하는 자도 있다. 종교개혁 때까지 외적으로는 유일한 기독교였든 카토릭이 계속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또 최근 자유주의 개신교 쪽에서도 도마복음 같은 신약외경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정경과 외경의 차이는 이렇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주 소문난 원조 음식점이 있으면 그 주위에는 비슷한 맛을 내는 위장 원조 음식점들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장원조 음식은 재료나 양념에서 80-90% 비슷해도 뭔가 깊은 맛이 빠졌다는 것을 처음부터 원조 음식점에 다녀본 손님들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원조에는 원조만의 비밀 조리법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1945,6년)에 애굽에서 발견된 도마 복음도 마찬가지다. 114편의 예수님 말씀이 포함되어 있고 개중에는 현재 복음서와 유사한 내용도 상당부분 있다. 또 신약성경 자체도 초대 교회 당시에 기록되지 아니 한 예수님의 말씀이 더 있다고 시사했기에, 정경의 4 복음서 외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도마 복음서의 신학적 핵심내용은 예수의 말씀을 묵상해서 지식(gnosis)을 얻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인간 이성에 의한 스스로의 깨우침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적 색채가 주를 이룬다. 이 복음서에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하나도 없고 그분의 말씀만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학자들은 더더욱 영지주의 이단 문서로 분류하고 있다. 아무리 그 안에 배울만한 가르침이 있고 사복음서와 동일한 부분이 나와도 그렇다.
진짜 원조 음식점은 오히려 간판이 붙어 있지 않다. 또 조리비법을 밝혀서 가짜들과 어느 것이 진짜인지 심사받을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한 번 맛을 본 손님들은 누가 원조인지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원조 음식점의 좌석이 모자라는데다 가짜 음식점의 시설이 너무 좋아서 한 번 시험 삼아 가보기도 하지만 금방 가짜인줄 안다. 그래서 간판도 없고 낙후된 시설에다 주인 할머니에게 구박 받으며 줄서서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진짜에만 다닌다.
반면에 어느 집이 진짜 원조인지 모르고 그 먹자골목에 들어온 자는 시설 좋은 가짜 원조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또 그냥 그 맛에 익숙해져 오히려 진짜 원조가 가짜 같이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모른다. 다른 모든 가짜 원조 음식점은 맛이 비슷하지만 진짜 음식점에는 진짜로 진하고 깊고 뒷맛마저 개운한 남이 전혀 흉내 내지 못하는 진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요컨대 가짜 원조는 누구라도 개업할 수 있지만 진짜 원조 음식점은 그 피를 나눈 자식들에게만 비법이 전수되어 아무도 그 맛을 흉내 낼 수 없다.
작금 기독교 신학도 연구했다는 한국의 유명한 도학자 한분이 요한복음을 그것도 영어로 강의하면서 심심찮게 도마복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은 가짜 원조 음식점의 맛에 길들여진 분이다. 정경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전혀 맛보지 못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원조 신자가 아니다.
대신에 정경과 외경과 위경 모두를 학술적으로 연구했을 뿐이다. 자신이 옹호하는 도마복음의 신학적 주제처럼 예수의 가르침을 잘 깨달아 그대로 사는 데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 가짜 원조에 다닌 사람이 진짜 원조의 음식을 가짜를 기준으로 비평하는 것이 그분의 요한복음 강해일 뿐이다. 말하자면 성경의 정경화는 인간이 결정한 일이기에 지금도 얼마든지 인간이 정경을 분석 비판 반대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진 것이다.
신구약 성경의 비밀스런 연결고리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성경의 정경화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여 거룩하게 통치한 기록이다.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4:34,35)
유대인들은 실제 삶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은혜를 누렸다. 때로는 징계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긍휼에 바탕을 두었다고 이해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 이후로 그분이 자기들 역사에 간섭하셨던 체험에 비추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의 영원한 진리와 구원의 길을 성령의 영감에 따라 계시 받아 기록했다. 다른 말로 그들은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어느 책이 정경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예로 신약성경 유다서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11절) 이스라엘의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이 한 구절 안에 다 인용되어 있다. 말하자면 저자 유다는 당시 유대인들 모두가 가인(창3장), 발람(민22-24장), 고라(민16장)를, 나아가 소돔(유다서7절) 사건마저 익히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기록한 것이다.
유다서가 기록될 당시는 1세기다. 유대인들이 집집마다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시보다 근 2천여 년 전의 사건들을 아무 설명 없이 인용하고 있다. 성전과 회당에서 읽혀지고 있는 구약정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또 그 모든 사실들을 집집마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과 은혜를 함께 체험했던 유대 공동체가 구약 정경을 얌니아 종교회의 훨씬 이전에 이미 확정해두었던 것이다. 또 외경은 아무리 해도 정경이 될 수 없다고 그들 스스로 인정했던 것이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다.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여 담대해진 예수님의 제자들이 천하만국에 십자가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그 전해진 복음에 역사하여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공동체들이 곳곳에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구약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여 어느 민족도 보지 못한 큰일을 행하셨듯이, 신약의 새 이스라엘에는 성령님이 역사하여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이루어내셨다.
사도들로선 자기들 스승이자 구세주였던 예수님이 당부하신 대로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가르쳐 알게 하고 성삼위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했다. 그분의 십자가 사건을 목격하지 않은 자들에게 글로써 전해야 했고 또 그 의미를 하나님께 계시 받아 가르쳐야 했다. 당연히 그 말씀을 전해 듣고 배운 자들도 사도들과 동일한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났으며 또 거듭난 자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다. 구약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공동체 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사이에서 정경은 스스로 정경임을 마땅히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초부터 잇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요일1:1-3)
아무리 그래도 결국 구약은 유대교, 신약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인간이 기록하고 확정한 경전일 뿐이라고 끝까지 반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한 가지 사실, 즉 가짜 원조 음식점에만 다녔던 자가 원조 음식의 맛은 절대 모르는 것 같은 일이 있다. 아무리 구약은 이스라엘, 신약은 초대교회의 산물이긴 해도 하나님은 그 둘을 연결하는 고리를 비밀스레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마무리한 정경화 작업은 인간더러 그 비밀의 고리를 발견케 만든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히브리 정경은 신약성경의 보충 없이 그 자체 만으로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족하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 정경도 히브리 성경에 뿌리를 두고서야 완전한 영적 진리로서의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것이다.
쉽게 말해 구약의 수많은 메시아 예언 없이는 예수는 자칫 위대한 인간 내지 마술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반면에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구약 곳곳에 숨겨진(예컨대 시편 22, 이사야 53장) 구원의 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구약 정경화 작업은 반드시 현재 형태로 이뤄졌어야 했고 그 배경에는 성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간섭하셨던 것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도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5:39-43)
정경이 정경으로 확정되게 하나님이 숨겨둔 비밀의 고리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여부다. 예로 든 두 사람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고서 정말로 예수에 대해 알아보려고 성경을 정밀하게 읽어본 자는 그분을 구세주로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비참한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살아 있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분의 독생자, 즉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온” 구세주 예수를 인격적 실제 체험으로 만날 수 있다.
반면에 그러지 못하면, 즉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아무리 성경을 묵상해도 위인으로서의 인간 예수는 발견해도 구세주는 만나지 못한다. 예의 도학자처럼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인간의 깨우침일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경화 작업을 인간이 했을 뿐이지 성령의 존재는 인정하지 아니 아예 알지도 못한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신자든 불신자든 성경의 정경화에 대해 가장 먼저 또 가장 진지하게 검토할 것은 그 역사적 과정이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써 누구라도 그 앞에 겸허히 나오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주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하는지 여부다. 신구약성경 66권에 계시된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인데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리 학술적 논리적 역사적으로 정경화 과정을 따져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앞에 전부를 건 자만이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점차 거세질 기독교에 대한 비방에 당당히 맞설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얼마든 생명을 바쳐 순교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