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한문학 「설날 정경(元日情景)」 올해도 만사형통 강녕다복 하소서>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설날은 새해의 첫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설,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 신년(新年), 신세(新歲), 개년(改年), 연초(年初), 개세(開歲)라고도 하며, 조심하고 근신하는 날이라 하여 신일(愼日)이라고도 일컫는다.
섣달그믐날(음력) 밤에는 온 집안을 밝혀놓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겁을 주어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 정담을 나누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전통 풍습이 있었다. 또한 새해 인사 중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있는데 그 속에는 복은 항상 먼저 주어야 한다는 우리의 사랑과 봉사 희생정신이 담겨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홍익(弘益)의 심성(心性)인가. 그야말로 더불어 사는 민족 고유의 문화라 할 것이다.
이번 지면에는 거제시 고전학자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의 칠언고시 「설날 정경(元日情景)」을 소개하겠다. 어린 시절 고향 거제도에서 겪은 설날 모습들을 읊은 고시(古詩)다.
○ 한편 새해 아침에는 설빔으로 갈아입고 웃어른에게 세배(歲拜)하고, 부부간에 맞절하고, 조상님께 정성껏 준비한 제물과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동네 어른을 찾아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했다. 그러면 어른께서 긍정적인 덕담(德談)을 내리고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사내아이들은 제기를 차거나 연을 날리고, 아낙들은 널을 뛰면서 대소 간에 하나가 되고, 식구들과 오순도순 모여서 윷놀이를 즐기면서 형제, 동기 간에 끈끈한 정을 나눈다. 설날 악귀를 쫓는다는 풍속에 따라 석 잔의 술을 마시기도 했다(應俗三盃酒). 그리고 한편 1691년(숙종17) 섣달 그믐날 밤에, 거제면 동상리 김진규(金鎭圭) 선생은 거제면 바닷가의 폭죽소리에 무척 놀랐다고 전한다. 액귀를 쫓는 거제민의 풍습이라고 한다.
○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로는 ‘나이 먹기가 서러워 설날’, ‘새해의 첫날이라 낯이 설어 설날’,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니까 해가 선(立)다고 해서 설날’이라 한다는 등 여러 설이 많다. 또한 설날의 ‘설’은 몸을 사리다의 ‘사리다’ 즉 ‘조심하거나 경계한다.’는 의미라고도 한다. 다가오는 설날 아침엔 마음을 ‘사리고’ 몸가짐을 경건하게 하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원일(元日)에 서로 인사드리는 것을 ‘세배(歲拜)’라 한다. 원일에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서로 다투듯 모여서 노름을 하며 술을 마시고 놀며 즐긴다.”고 적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설날 풍경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새해 아침에는 설빔으로 갈아입고 웃어른에게 세배(歲拜)하고, 부부간에 맞절하고, 조상님께 정성껏 준비한 제물과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동네 어른을 찾아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했다. 그러면 어른께서 새해에 이루어야 할 소망에 대해 긍정적으로 덕담(德談)을 내리고 아이들에게는 "절 잘한다."라고 칭찬하면서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사내아이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팔다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제기를 차거나 연을 날리고, 아낙들은 널을 뛰면서 대소 간에 하나가 되고, 식구들과 오순도순 모여서 근본 뿌리로 돌아감을 잊지 말라는 윷놀이를 즐기면서 형제, 동기 간에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다. 또 설날 악귀를 쫓는다는 풍속에 따라 석 잔의 술을 마시기도 했다(應俗三盃酒).
○ 원일(元日)을 《서경(書經) 황호(黃㦿)》에서, 정월 상일(正月上日)이라 하였으니, 곧 정월 1일이다. 해의 으뜸이며 달의 으뜸이며 날의 으뜸이므로, 삼원 절일(三元節日)이라 한다. 사당에서 새해의 제사를 지내고 상하가 경하(慶賀)하는 예(禮)로는 이날을 가장 중하게 여긴다. 우리나라에서는 묘제(墓祭)를 아울러 지낸다. 원일(元日 설날) 5경(更)에 향을 피우며 촛불을 밝히고 술ㆍ과일ㆍ메[素]를 상 위에 차려놓고서, 가족들을 거느리고 산천(山川)ㆍ토지(土地)ㆍ오곡(五穀)의 귀신에게 풍년이 들기를 빈다. 그리고 설날에 먹는 신반(辛盤)은 파ㆍ마늘ㆍ부추ㆍ여뀌잎ㆍ겨자를 섞어 만든 음식을 말하는데, 이것을 먹으면 오장(五臟)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 음력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는 시기이다. 대보름엔 ‘액(厄)연 띄운다’ 하여 연에다 ‘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송액(送厄)’이니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써서 액을 연에 붙여 멀리 날려 보낸다. 또한 정월 초순경부터 2월 초하루까지 하는 놀이로써 짚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 ‘고’를 놀이 기구로 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윷놀이'는 우리나라 설날 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 다음 ‘先’ 운목(韻目)의 칠언고시 「설날 정경(元日情景)」은 거제시 고전학자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의 2016년 한시다. 설날(구정)에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식사와 축수 잔을 들고난 후, 세배를 올리고 산소를 다녀왔다가 여러 형제들과 좌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문득 옛날 어린 시절 설날이 생각났다. 가까운 이웃집과 친척들 집집마다 다니면서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을 받았던 행복했던 그 고운 시절이 어꺼제 같은데, 지금 나는 우리집에서 어머님을 제외한 최고령자가 되었다.
「설날 정경(元日情景)」은 지난날 고향집과 마을의 아련한 설날 정경을 떠올리며 지은 글이다. 지난 시절, 설날에는 집집마다 새해 맞아 떠들썩하고 온 가족이 즐겁다. 온 마을이 다투듯 새해를 축하하고 물가에서 꽃 꽂은 무녀들이 춤추고 북치며 굿을 하고 선박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부산하다. 아무쪼록 행복과 안녕을 기원드리며 해상의 태평성대를 기원한다고 읊었다.
*「설날 정경(元日情景)」* 고영화(高永和)
兒童歡笑喜新年 아동들은 웃고 떠들며 새해 맞아 기뻐하는데
笑我當時片刻姸 우스워라~ 나도 그 고운 시절 잠깐이었지.
全家幸亦俱無頉 온 가족이 다행히 탈 없이 잘 있나니
祖子孫會迎今年 할아버지 아들 손자 모여 새해를 맞이한다.
得年未是人間慶 나이를 더함이 인간의 경사가 아니건만
賀客紛紛還空然 하객들 분분하여 도리어 쓸쓸하다.
三杯壽酒渾家樂 삼배의 축수 잔에 집안이 마냥 즐겁고
同閈爭相賀年年 온 마을이 서로 다투듯 새해를 축하한다.
揷花巫女舞翩翩 꽃 꽂은 무녀들이 훨훨 날듯 춤추고
靈旗獵獵祭祀船 신령한 깃발이 펄럭이는 선박에서 제사를 지낸다.
竹爆桃符辟鬼神 폭죽과 도부로 나쁜 귀신들이 도망가는데
臨汀賽皷鬧新年 물가에서는 북치고 굿을 하니 새해가 부산하다.
香烟正繞金鑪上 향 연기가 쇠 화로 위에서 감싸 돌 때
辛福安寧祈願偏 행복과 안녕을 오로지 기원 드리네.
靑山有約終須到 청산에 약속 있어 끝내 가야 하지만
海上狂歌樂聖天 해상의 태평성대 미친 듯 노래하리라.
◉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설날 특유의 습속도 많았다. 설 전날 밤에 대문을 활짝 열어두는 풍속이 있었는데 자정 넘어서부터 시작되는 새해에 복이 집안으로 굴러 들어오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습속이다. ‘설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 진다’는 어른들 말에 철모르는 어린 것들은 밤새도록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야 했다. “복조리 들어갑니다.”라고 외치면서 담 너머로 복조리를 던져 넣던 ‘복조리 꾼’도 추억의 한 장면을 메운다. 쌀이 부(富)의 척도였던 농경시절부터 한 해 동안 식량이 넉넉해서 삶이 풍요롭길 바랐던 우리네 습속 중 일부분이다. ‘설날 아침 여자애들은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이상한 불문율도 있었다. 남존여비 사상을 지녔던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민간 습속이었다. 어쨌든 어린 여자애가 설날 점심 무렵까지 이웃집에 못 가도록 했다.
옛날 거제도에, 목욕을 자주 못하던 시절에도, 추석과 설날에는 아이들 목욕을 반드시 시켰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 집집마다 아이들 목욕하던 풍경이 펼쳐졌고, 설날에는 아이들이 번지르한 외모에 설빔을 차려입고 세뱃돈을 챙겨 1년 중에 가장 귀티 나는 하루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아름다운 명절에 구정(舊正), 신정(新正), 양력설, 음력설이 아니라 '설'이라고 바로 불러 우리의 경천(敬天) 숭조(崇祖) 애인(愛人) 정신이 되살아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참고로, 별신제(別神祭)라고도 하는 별신굿은 마을 공동으로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을 제사하는 점에서는 동제(洞祭)와 유사하지만, 동제는 동민 중에서 제사를 주관하고, 별신제는 무당(巫堂)이 주재하는 점에서 다르다. 남해안별신굿(南海岸別神)은 주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행하는데, 보통 마을회관에서 제물을 차린다. 각 가정에서 한 상씩 차려와 문밖에 늘어놓는 거래상(退鬼床)이 특이하다. 굿거리에서 무녀는 부채와 무령(신방울), 신칼, 손대 등을 일률적으로 사용하고, 악기는 악사 셋이서 각각 장구, 징, 꽹과리를 잡아 사용한다. 그러나 이따금 북을 사용하기도 하고, 특히 굿의 시작과 끝 무렵에는 대금만을 사용했다. 마을에 따라 당산굿(당맞이굿), 용왕굿, 지신밟기 등을 올리기도 했으며, 어촌마을에는 어선을 모아놓고 풍어제를 올렸다. 또한 마을 어귀마다 대나무 두 개를 세워 위쪽을 새끼줄로 연결해서 마을에 들어오는 악귀를 막고 간단한 제를 올렸다.
○ 설날 특유의 습속 중에는 설 전날 밤에 대문을 활짝 열어두는 풍속이 있었다. 자정 넘어서부터 시작되는 새해에 복이 집안으로 굴러 들어오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풍속이다. ‘설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에 밤새도록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야 했다. 또한 설날 점심 무렵까지 여자애들은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이상한 불문율도 있었다.
○ 그리고 거제부사는 재군(읍치소) 서쪽 5리, 거제향교와 외간마을 사이에 있는 사직단(社稷壇, 사단社壇)에서 토지 신과 오곡(五穀) 신께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제사를 올렸고, 뱃사람들은 신당(神堂)이나 공수서(公水嶼)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해 바다 신께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