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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지우기
최 규목
그리우면 길을 나서라
그리움에 삶이 허망하고
그리움이 애절하여 밤새 잠 못들때
신새벽에 행장 꾸러 길을 나서라
등짐 가득히 그리운 사람들을 꼬옥꼬옥 챙겨 넣고
먼 길을 나서라
인절미 같이 늘어진 길을 지나
고요히 본 듯도 한 토담 길을 지나
별빛가지에 애절한 님을 걸어 두고
달빛가지에 간절한 벗을 걸어 두어라
비탈진 산길, 솔청 아래서는
꿈속 같은 어머니, 아련한 아버님을 내러놓아라
하나, 둘 짐들을 내려놓으면 몸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리움도 한낱 스펙트럼임을 깨닫노라
옛 풍경이 새 풍경 앞에서 지워지고
먼 미지가 그리움으로 다가오듯
먼 길 지나서 되돌아보면
새 그리움 앞에선 옛 그리움은
한낱 풍경으로 지워지는 것을.
유년시절
황야를 가르며 고삐를 당겼다
노을이 지고
갈수 없는 초원의 끝에서면
여우떼의 울음이 유난히 처연하다
이제 밤은 깊고
회귀할 수 없는 길을 더듬으면
지구의 반대편 저 끝에서
유년의 아린 상처들이 분열을 거듭하고
분열된 세포 마디마디에선
어릴때의 친구
억이와 철이, 만이의 얼굴이 별이 되어 박힌다.
시작(詩作)
고통 없이 내려 솟은 산맥이 있으랴
미류나무 지팡이 짚고, 산맥을 오르면
동해로 오는 바람이 볼을 때리고
끝없이 가는 길은
산이 뼈를 맞대고
신음하고 있다
하염없이 계절을 벗기고 있다
가다, 가다가
삶의 빛이 바랜 어귀를 내려보면
촉성 좋은 어치 떼가 리듬을 뿌리고
맑은 마음 숙연히 모아
비 내리는 어느 서식지에서 세작 한 잎을 따고
다시, 먼 길을 나서면
바람도 모국어로 생목을 뉘는데
꺼어이, 제소리를 따라 읽을 뿐
지천으로 붉어지는 비문 하나에
이름 석자 걸면서 살날 있을지
발원지에서
마음속에
유년이 흐르는 강이 있어
더듬어 고요히 따라가 보면
노랗게 삭은 솔숲과
부리가 야윈 물총새와
버짐을 달고 다니는 소년과
그 소년이 쫓던 청솔매의 종아리가 외소한 강입니다
마음속에 강을 따라 조용히 발원지에 서면
육신을 부빈 듯한 적송과 안개꿈을 매단 당나무와
모노 배우처럼 감정이 출렁이는 옛 집터에서
차디찬 겨울 강에 감기옵니다
지금, 발원지의 강이 있어
뒤뚱되며 달아나는 노루 떼와
짙푸르게 윤기 나는 솔숲과 벽돌 담장과 슬레이트
지붕 마당에 노파가 호흡 고르는 낮선 풍경입니다
내 마음속에 강이 있어
산 노루 향기로운 옹달샘에
촐촐히 내려앉으면
만리장강처럼 굽어, 구비 흐릅니다
낯설게, 낯선 길을 따라...... .
눈오는 날의 풍경
공룡 같은 콘크리트 건물 창가로
눈발이 날리고 있다
광장에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데모대가
“ 취소하라”, “보상하라”를 외치며
갓 훈련한 팔뚝을 흔들고 있다
간부회의가 없는지
정장을 한 창백한 얼굴들이 서성거릴 뿐
법과 현실은 언제나 멀기만 하다
비둘기 떼 스쳐간 발자국엔
데모대의 고달픈 삶이 내려앉고
성난 자의 핏발 선 눈동자가 눈 - 물에 삭고
결국, 눈물이 되어
모두가 펑펑 우는 눈 오는 날의 풍경
짐
역이 바라보이는 호텔 커피 숍
그 구석진 자리에서
질기도록 Lee가 오기를 기다렸다
도시는 어둠이 내리고
그 어둠을 사르는 미색 불빛들이
혼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 그녀가 오면
잔잔한 일상과
일상에서 잉태된 많은 짐들에 관하여 이야기 할 것이다
피한다 해도
또 다른 누군가와 살아온 삶인 것을.
열차가 많은 짐을 내리고
또 다른 짐을 싣고 떠나간다
시를 수도 하역 할 수도 없는
마음의 짐들은 차 칸과 역 주변에 무겁게 쌓이고
그녀도 나도 지고 온 짐들을 하역 할 수 없어
결국, 그렇게 돌아 설 뿐이다.
당신은
당신은
팔부일몰의 수채화 속에서
갓 빠져 나온
집요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나
거듭되는 만남에서도
화장기 없는 해맑음 인 듯
연락선 선창으로 손 흔드는 수줍음인 듯
강 너머 언 땅 밑에서
준비하는 그런 긴 기다림이었습니다
일 출
토룡탕을 드셨나요
지칠 줄 모르고 멀리서 오셨네요
절두산 보다 선홍한 단색의 용광로
그가 뜨면
합궁하는 성들도 고개를 박고
대륙도 부끄러워 해면 아래 숨는다
오직 고개 쳐든 수목
가지 끝 일엽으로 살고 싶다
꽃이라고 했지
꽃이라고 했지
장미꽃이라고 했지
담벽에 몸 기대어 이슬 먹고 핀
수천 송이의 꽃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싱싱하게 핀 장미꽃이라고 했지
꽃이 내게 왔을 때 아름다운 향기에 취해 넋을 잃었지
힘들게 올라온 계단에서 끝없이 추락하여
오직 꽃대 아래서 한없이 머무르고 싶었지
탐스러움 앞에서 심장은 두근거리고,
전신은 선홍색 꽃으로 인하여 허물어지고,
오, 꽃이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는 부끄러워할 줄 몰랐네
꽃으로 인하여 한없이 행복했으니까
꽃이라고 했지
떨어진 내 모습 앞에서 비온 뒤 더 깊이 떨어져
검붉게 삭아지는 초라한 장미꽃이 아니라
칠흑의 어둠 속에서
향기로 인하여 얼굴 붉어오는
새벽마다 탐스러워지는 장미꽃이라고 했지.
그 네
마주보는 그네를 탄다
그녀와 내가 그네를 탄다
그녀는 내게로
나는 그녀에게로 그네를 민다
그네는 중간에서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리다 멈추어 버렸다
그네를 탄다
내가 밀면 그녀가 당겨주고
그녀가 밀면 내가 당겨준다
그네는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다
점점 더 큰 포물선을
멀리 멀리 날아가 듯 흔들린다
적은 힘이 배가되어 큰 힘이 되는 것을.
내 마음 깊은 곳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작은 슬픔 하나 있네
순백의 떨리는 그 슬픔 때문에
밤, 안개 속으로
끝없이 방황하며 별들에게 빌었지
슬퍼서 두려운 이 마음 지워 달라고.
구르는 바위엔 이끼가 없음에
사랑의 싹을 틔우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구르며 살아 왔다네
이제 그대 앞에 다시 서면
슬퍼하지 않고 편안할줄 알았네
그대 앞에 다시 서니
작은 슬픔이 더 큰 슬픔 되어 징소리 크져오네
가슴속에 천년을 잠자던 징 소리 울리네
심장이 멎도록 울러 퍼지네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말을 한다면
뿌리도 없이 물위에 뜬 그녀는
는개같은 비에도 무거워하고
하늬바람에도 흔들릴 것이다
사랑이란 목이 타는 갈망이지요
사랑이란 끝없는 집착이지요
버려서 편해지는 사랑 있다면
오늘, 이 바다에 서서
불길이 삭기를 기다려보지요
사랑이란 어둠이 아니라 밝은 환희이지만
내가 버려 편해지는 것이라면
파도에 육신을 감고
열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지요
사랑이란 상대가 있어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짐인 것을.
편안한 아픔
지상에 버려야 편안한 아픔이 있어
새날이 오기 전에 버려야 하거늘,
그럴수록 아파 오는 이 그리움
그대여, 어찌할거나
다스릴 수 없는 이 불경을
목이 타오르는 이 갈망을
고개들 수 없는 이 부끄러움을.
그대여 깨닳았노라.
그대 앞에선 어찌할 수 없는 이 열병을.
언젠가는 날이 오리라
버려서 편해지는 그런 날이
그대 앞에서 편해지는 그런 날이.
고 추
고추밭에 웅크리고 앉아 고추를 본다
고추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늘을 향해 꼬리쳐든 붉은 고추도 있고
땅이 패일 듯이 쭉 뻗은 푸른 고추도 있다.
고추를 보면 고추잠자리가 생각난다.
고추를 보면 토담집 대문위에 아들 낳았다고
새끼줄에 붉은 고추를 끼워 걸던 기억도 난다
우리 엄마도 날 낳고 무병장수하라고
대문 위에 붉은 고추를 걸었을 거야
불쌍한 우리엄마, 가고 없는 우리 엄마
채마밭에서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고난의 언덕 너머에 채마밭이 있다
이랑 끝, 외로운 감나무 한 그루
그 가지 위로 당신이 제림 하셨다
일제 강점기, 점령군의 땅 대판,
차가운 냉돌에서 배를 주리고
근로로 모은 품삯은 부친의 빗 봉수로 소진하고
절룩거리는 다리와 바꾼 채마밭,
이 곳에서 당신은 필생을 침묵하며
흙의 의미를 캐시다가 가셨습니다
밭은 채마보다 큰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질곡과 상념을 묻고 간 이 언덕 밭에
가난을 일궈 무씨 한줌을 뿌릴 수 있을지?
씨가 자라 무가 되듯이
당신이 살다간 삶의 질서를 체득 할 수 있을지.
오늘, 꿈이 쓰러진 당신의 영토에서
영혼이 잠든 봉우리 위로 술한잔을 붓습니다.
외톨이의 힘
두릅나무 가지 끝에서
짝 잃은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푸덕이고 있습니다.
두릅나무 새순을 따기 위하여 날개를 허공에 매달고
새순을 쪼고 있습니다.
힘겹게 딴 새 순은
잘게 부수어
갓 태어난 새끼들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나는 보았습니다.
이모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청상으로 살다간 이모,
포장마차를 하면서 살다간 우리 이모가
철거요원에게 밀가루 반숙을 빼앗기고
부뚜막에 앉아 서럽게 눈물을 감추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4남매를 훌륭히 키운, 거룩한 이모였습니다.
부족한 사랑
엄마가 그리워 찾아간 외가에는 엄마가 없습니다.
초동의 패인 눈 속에서 말똥 같은 눈물이 고였다 떨어집니다.
그리움은 절망과 분노로 이어지고
결국, 버려야 하는 것이지만
버리는 방법을 모르는 초동은
주머니 속에 절망을 채우고 동구를 돌아나섭니다
고무신까지 덮은 바지가랭이 사이로 허한 바람이 빠져나갑니다.
울퉁불퉁한 소달구지 길을 걸어
도착한 정류장 간이매점으로 허기진 두 눈길이 포개지고
초동에게는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는 것을 깨 닳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홀로선 나무
들판에 홀로선 나무를 본다
저 나무
청보리의 유려함과
벼이삭의 순종으로 살아갈까
모든 산이 만나 장엄한 산맥을 이루고
여울은 결국 물살을 휘어내듯
나무가 모여 숲을 만들고
숲은 지친 바람과 고단한 별들을 쉬게 한다
오늘 저녘
저나무 홀로 서있다
시린 바람에 홀로 서있다
누군가의 가슴처럼
외로움이 서러워 홀로 서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어둠속에 산맥이 기어나와
만산을 거느리고
쭉지 젖은 새떼를 품어 살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늘로 솟은 전나무가
하늘을 향해 머리 들고 별들과 속삭이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꽃밭에 핀 뜨거운 홍장미 한 송이 보다
풀 섶에 고개 밀고 핀 패랭이꽃의 찬란함을.
무엇이었을까
나무는 별에게 무엇이었을까
마른 풀씨 하나로 언 땅에 버려져
절망으로 삶을 포기할 때
어찌하여 밤마다 뜰 수 있는가를
꺼지지 않는 작은 빛일 수 있는가를 들려준 별에게
나무는 별에게 무엇이었을까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을까
빈 가슴 하나로 이 땅에 왔어
서럽도록 지 세운 밤마다 따스한 온기로 다가와
빈 가슴 채워준 너에게
너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춘일단상(春日斷想)
제1막 어머니 나라
개골물이 조올조올 소리쉬어 흐르고
졸음겨운 춘조(春鳥)는 넝굴로 오가는데
뒤주빨래 꺼내어 먼지 씻어내는
돌미나리 뜯어 지아비 밥상 차리는
춘일화폭이 당신의 나라입니까
준령아래 외진 호도 밭
밤새 청설모, 다람쥐 쫓는
염소, 벌떼 벗 삼아 풀을 메는
아득한 그곳이 당신의 나라입니까
고요히 집도된 가족무덤 두어 기
이승의 기억들이 알알이 분열되어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집요하게
오장을 갈기갈기 찢어내는
인동초 같은 세월이 당신의 나라입니까
당신의 피안입니까
너는 누구의 아들인가
너는 누구의 아들인가
헐렁한 냉기가 골목마다에서 허물허물 기어 나오는
광란이 스쳐간 아스팔트 위에
침묵으로 앙상히 누워있는
쓰디쓴 소주 한잔에 온몸이 망가져 누워있는
너는 누구인가
누구의 아들인가
보아라, 너는
아비에게서 알콜인자가 대물림 되고
그 인자를 또 아들에게 대물림할 것 인가
일어나라, 아들아
그리고, 걸어라, 젊은 아들아
태몽(胎夢)같은 희미한 동창이 밝아오고
어제처럼 이 거리도 일상으로 돌아올지니
너도 한결 세상의 물결로 살아야지.
성비둘기 내려앉는 도시의 거리위에
앙상히 누워있는 아들아, 내 아들아
일어나 걸어라, 힘차게 걸어라
우리의 아들아.
그리움 지우기
그리우면 길을 나서라
그리움에 삶이 허망하고
그리움이 애절하여 밤새 잠 못들 때
신새벽에 행장 꾸러 길을 나서라
등짐 가득히 그리운 사람들을 꼬옥꼬옥 챙겨 넣고
먼 길을 나서라
인절미 같이 늘어진 길을 지나
고요히 본 듯도 한 토담 길을 지나
별빛가지에 애절한 님을 걸어 두고
달빛가지에는 간절한 벗을 걸어 두어라
비탈진 산길 솔청가지 아래서는
꿈속 같은 어머니, 아련한 아버님을 내려놓으면
차츰 등짐은 가벼워지고
그리움은 길 따라 스치는 풍경이라는 것을 깨닫노라
옛 풍경이 새 풍경 앞에서 지워지고
먼 미지가 새로운 그리움으로 오듯
먼 길 지나서 되돌아보면
새 그리움 앞에서 옛 그리움은
한낱 풍경으로 지워지는 것을.
지워야 하는 것인 것을.
내마음의 야누스
확, 전지된
쥐똥나무 새순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에게서
출정식의 깃발부대를 본다
고요한 소류지에서 망둥어 떼가 파장을 일으키고
심산유곡의 물소리에서 슬픈 연가를 듣는다
내 마음 속에서 나는
나로하여 광분하고
나로하여 침잠하고
나로하여 함몰한다
시장골목에서 귀천을 생각하며
작열하는 붉은 고추밭에서 청매실 그늘을 생각한다
때로는 선술집 주모가
내자보다 익숙할 때가 있다.
포 항
벅찬 환희로 심장이 고동치는 날에도
절망으로 성곽위의 별을 헤는 날에도
파도는 언제나 고래등을 타고 밀려와
절벽에 부딪치며 멀어지곤 했다.
님이 오신다기에
님이 먼 곳에서 오신다기에
바람이 멈추는 날, 정갈하게 그곳으로 나가
광년 너머 아리한 등대불만 보았지
기다림은 외눈 민어의 연가가 되어
내 마음을 언제나 비릿하게 하고.
포구의 배가
넓고 먼 바다에서 들어오면
개벽의 첫밤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곳,
오늘도 외로운 등불 하나가
고요히 도시의 지평을 세운다.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지워지지 않는 보름달로 다가와
차디찬 겨울 밤을 새우게 하고...
보름달은 기울면 초승달이 되게 하고
시간조차 기울면 달그림자도 지워질 수 있을까?
밤마다 광년 너머 수많은 별빛들
그중의 별 하나 나에게로 와서
내 마음을 흔들고 달아났지.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누이야, 어찌할가?
밤마다 아려오는 이 아픔을
용서할 수 없는 이 불경을...
누이야, 청산가자
누이야, 청산가자
헤진 내의입고, 콧불을 달고
장터로 나간 엄마를 기다리던
너 삶과 내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솟아나는
아련한 마음의 영토, 누이야 청산가자
누이야 청산가자
주린 배 채우려고 도토리, 알밤 찾아 산속을 헤매고
이름 모를 새 호기롭게 바라보던풀벌레, 식물 채집하던 순이와 억이, 만이의 땅
생각하면 가슴부터 저려오는
너 삶과 내 삶의 절반인 그곳
누이야 청산가자
누이야, 청산가자
갓 낳은 송아지 토막 울음 내고
뒷켠 장독대 햇장이 익는
피마자 기름에 풀빵 부쳐주던 어머니의 영혼이 있는
너와 나의 영토, 누이야 청산가자
청산에 살자.
낮선 땅에서의 기억
온몸을 흘러 감는 우수 어린 눈빛도
큰 키, 큰 손 끝으로 떨릴 듯이 멈추어선 춤사위도
이제는 모두가 아련한데
이국에서의 잠 못 들던 아픈 기억들은 아직도 선연하네
휘어 도는 저 강물은 발원지를 묻지 않네
어느 개골에서 왔는지, 어느 여울에서 왔는지,
어느 하천에서 왔는지 서로를 묻지 않고 섞이어 흐르네
나는 그녀를 너무 알려 하였네. 그것은 한알 두알 집착이 되어
그대를 힘들게 하였네. 백두의 하늘 아래, 심양의 하늘 아래서
낮선 행동이 오해를 낳고, 그것들은 수백개 파편 맞은 새가 되어
불면의 힘든 밤을 보내었네
그대의 아픔이 내 아픔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때가 늦었네.
하지만 누이야!
우리의 인연이 차창가로 스치는 낮선 원두막 소녀의 인연이라거나
시골길에 스쳐 지나가는 더벅머리 총각의 인연보다 못한 되서야...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나의 누이야! 내게 그대가 소중하듯이
내가 잘못 한 것이 있으면 이해를 바라오.
시간의 뒤안길에서 화해의 몸짓을 보내오.
Gold Star
시어머니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누이에게
누이야 어머니 함부로 모시지 마라
씨다른 시어머니이지만
그분은 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낳았고
그와 너가 반씩 살을 섞어 너 이이를 낳았으니
그분은 너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니라.
누이야 늙고 병든 그분을 잘 모셔라
너가 아프면 네 남편이 너를 밤새 간호하고
너 자식이 아프면 밤새 너가 보살피듯
그분의 아픔이 자식의 아픔으로 알고 보살펴라
누이야 그분을 위하여 너가 울어주어라
떠나면 다시 올수 없고, 다시 볼 수 없으니
광풍에 촛불이 꺼질까
그분의 홀씨 같은 가슴을 너가 껴 앉고
안타깝고 애절하게 그분을 위하여 울어주어라.
강물 같은 멜로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비가 무겁게 내리는 날이면
백화점과 주차빌딩 사이의 카페에서 하염없이 샛강을 본다
백열등과 할로겐등과 형광등 불빛 너머로
사연을 담은 차량들이 사라져가고,
또 다른 차량들이 줄을 지어 사라진다
밤은 깊어 강 건너 카페에선
호롱불 같은 기억들이 하나, 둘 켜지고
강물따라 멜로디는 쓸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흐른다.
피난지의 시장 같은 저믄 혼돈을 불빛들이 사르고 나면
도시는 적막이 내리고, 강도 더욱 고요히 흐른다
사랑과 배신, 만남과 별리가 뒤엉키는 네 삶에서의 멜로디는
이 도시의 강물처럼
아침이 오기 전에 언제나 정리되어 흐른다.
깨어 있음
유년시절, 토실토실한 알밤을 주어면서 생각했습니다.
윤기 나는 짙은 갈색의 밤을 주얼 수 있는 것은
항상 남보다 먼저 내가 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밤송이 속에 알밤을 꺼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남보다 일찍 알밤을 줍고, 깔 수 있는 것은
깊은 어둠속에 신새벽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
새벽 저수지의 뚜꺼운 물살위로 속살을 드러난
여인의 물신한 비천무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물안개가 어둠을 걷어내며 휘몰아가며 차츰
산등성이로 희미하게 기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고요한
새벽에 내가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침잠하다.
태양이 적막을 밀어올린
토우 같은 봉좌의 등뼈 너머
운주산 구봉이 혈맥을 타고 내려온 곳에
천년을 누운 님과
주심에서 우두커니 비켜선 봉강제가 있다.
왕조 끝으로 칼날이 다가오는 절박한 시절에
님은 갈기를 몰아 북방을 질주하였고
멸망한 왕조의 백성을 위무하기 위하여
홀연히 금성으로 하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큰 소나무는 기약 없는 숱한 날들을 짙푸른 잎을 피우며
송진을 울컥울컥 토해내며 긴 세월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적막을 걷어낸 자리, 고요히 집도된 무덤 한기가
천년을 기다렸고, 또 천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 옛날 어느 왕조에서 붉고 올 곧은 독야청청 적송을 닮은 종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종인이 봉강제의 이름을 빚낼 그날을 별빛 아래 고요히 기다릴 것입니다.
세계속 대구
갈매기 날개 씻는 저 바다 푸른물은
어디서 흘러왔니 고향을 묻지 않네
바다에 다다르면 모두가 파도인데
달뜨는 밤마다 별뜨는 밤마다
울컥울컥 하나 되어 이름 모를 포구에서
흩어지고 부서지네 흩어지고 부서지네
머언산 작은 샘은 신천으로 흘러 들어
금호강 강물 되고 낙동강 큰물 되어
넓디 넓은 대양에서 출렁되고 넘실되네
질펀한 이분지에 기다림의 꽃이 피고
금호강에 배 띄어 낙동강을 굽이 굽어
대양으로 질주하네 세계로 질주하네
풍요로운 달구벌 세계에 넘실되네
부흥의 대구
너와 내가 가슴으로 일구어온 땅 부딪히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땅
개국의 첫밤 같은 새벽은 오고 안개는 는개는 여울을 만들고
여울은 강이 되어 바다로 갔지 팔공 대덕 비슬산맥 병풍처럼
감싸고 저 강과 같이 살아온 오천년 일어나라 함께 노래 부르자
일어나라 부흥의 노래 부르자 목청껏 날아라 노래 부르자
레일 위의 참사가 우리를 울게 하고 우국의 아픔으로 고비마다
넘어 저도 우리는 힘을 모아 축제를 벌였네
분지 위 창공으로 독수리 날개 펼쳐 오대양 육대주로 날아가는 날
그날을 위하여 노래 부르자 일어나라 부흥의 노래 부르자
목청껏 날아라 노래 부르자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미워하지 않게
작은 일로 인하여 서로가 다툴지라도 서로를 아파하게
그를 위한 간절한 소망의 기도를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겨울강 건너 희미한 불빛 너머
밤마다 천식하는 늙으신 어머니
생각이 눈물로 이어지는 불쌍한 나의 어머니
천식을 멈추게 하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밤새 거룩한 님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저 계단 위에서 밀고 계단 아래서 당기는
세계의 화제거리가 되는 여의도의 높으신 양반들
비움이 채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빨리 깨우치도록
기도하게 하시고
세상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아파하고 고마워하는
추기경의 기도를 평생 자주하게 하소서
오래 기억하고 실천하게 하소서
내마음의 풍선
발끝에서 머리틀까지
무름과 허리, 목
접지된 것들은 너를 향해
다리 접고,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인다
바람과 정면으로 돌아온 여정
너는 내 마음에 풍선이 되어
때로는 팽창하여 오장을 누르고
때로는 수축하여 동면하며 지낸다
시오리 읍내길 광주리 이고 들고
시간을 채직하던 심연의 영혼들
평생을 살다가 태어난 곳에 묻힌
이즈음은 자주 두 분을 생각하며
무름 꿇고,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인다
환절기
머-언
천리설원 회노루 울고
희미한 광선에 눈 녹으면
사춘기 소녀는 성장통 앓고
등너머 고지기 해소 멈추니
부활은 좀더 가까이 왔나보다
미동과 태동사이 새벽은 더디고
붉은 양철교회, 철탑의 종소리가
주기도문을 외우며 알알이 흩어져
고요한 적막을 밀어내니
침묵의 긴 시간은 가고
온기가 왈칵 밀려오더라.
유년으로의 회귀
벗겼다
눈부셨다
태양과 벗은 육체사이에는 간격이 없었다
알콜을 습음(習飮)하던 시절
유희하며 세상을 배웠다
30년 뒤 유희가 아닌 지친 육신으로 태사공 묘지에 누웠다
크게 팔다리를 벌리고 심한 호흡을 하며 누웠지만
돌아온 육신은 초라하다
태양과의 간격도 너무 멀었다
한정된 시간을 반복하는 노을이 지고
음모와 습득의 밤도 올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내육신은 이 회귀의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개나리 꽃
추위에 죽을까봐
이속 저속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너는 잔설속에서 전령사로 화사하게 피었다.
너가 피니
진달래도 피고 목련꽃도 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고 있다.
잎보다 먼저피어 꽃인지 잎인지 구별도 어렵지만
진정한 용기로 인하여 너는 꽃중에 꽃이로다
지저분하고 그늘진 척박한 곳에
너는 언제나 심어졌지만 꿋꿋하게 원망하지 않고
아름답게 피워
놀라운 봄의 전령사이다.
개벽
직립의 첫날 같은밤
새는 안개를 쪼아 집을 짓고
말은 갈기를 세운체 잠을 잔다.
산너머 산위로
일렁이는 파도 위로
홍의를 입고 님은 계시하더이다.
가진자 더욱 가지고
슬픈자 더욱 슬퍼하고 약한자 부러지라고
하루는 열두기둥을 세공하여
천년 기운 서린 왕관을 알알이 씻고
너와 나 우리는
참회의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청망한 결의를 한다.
내 몸은 바다이다.
내 몸은 바다이다
기억할 수 없는 유년에서부터 파도는 내 몸속에 들어와
끝없이 바위와 부딪쳐 강한 심장을 만들고 정맥과 동맥이
되고, 감각이 무딘 저 발끝까지 실핏줄을 만들어
온통, 내 몸은 푸른 피가 출렁거린다
내 몸은 언제나 동해의 깊고 푸른 바닷물이다
눈을 감으면 해저의 저 먼 곳에서 고래떼들이 몰려오고
눈먼 도미의 슬픈 울음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내 생의 거친 파도의 포말은 해안선의 길이만큼이나 긴
시원을 이루고, 포구는 조개류와 갑각류가 밀려나 단층을
이루고, 단층은 산이 되고 마침내 바다를 닮은 산맥을 만든다.
등대가 푯대를 세우고 영접하는 포구에서는 산맥은 언제나 해안선을 닮아 있다.
산맥은 저 큰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그리움으로 인하여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
산맥이 토해내는 슬픔은 유곡을 따라 다시 모천에 모여 바다로 가고,
나도 어느 이름 모를 포구에서 포말이 되어
바위벽을 때리고 있다.
그곳에 앉으면
그곳에 앉으면
아버지, 어머니,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강에서 건너오고
산에서 내려와
토란토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매미소리 시원에서 한결같이 시절을 찾아와 울 듯
착하고 가난한 그들도 내가 그곳을 찾을 때 마다
한결 같이 찾아와 토란토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홍수에 숱하게 떠내려가고
살아남은 앙징한 새싹들이 지금은 거대한 숲을 형성해도
내 유년의 기억들은 가난한 이웃들을 불러와
한바탕 신나게 웃어보는 고향땅 어느 풍경에서의 기억들.
내마음의 야누스
확, 전지된
쥐똥나무 새순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에게서
출정식의 깃발부대를 본다
고요한 소류지에서 망둥어 떼가 파장을 일으키고
심산유곡의 물소리에서 슬픈 연가를 듣는다
내 마음 속에서 나는
나로하여 광분하고
나로하여 침잠하고
나로하여 함몰한다
시장골목에서 귀천을 생각하며
작열하는 붉은 고추밭에서 청매실 그늘을 생각한다
때로는 선술집 주모가 내자보다 익숙할 때가 있다.
첫댓글 낭송하실 회원님 4명 선착순 댓글바랍니다
발원지에서. 하겠습니다
'꽃이라고 했지' 낭송해 보겠습니다.
“그리움 지우기”해 보겠습니다~~^^
정지홍선생님 반갑습니다
누이야, 청산가자 낭독 해 보겠습니다
11월 목시 낭송에 참여해 주신 회원님 감사드립니다^^
늦어죄송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낭송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