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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대신 바라바
본문<요18:33~40>
기독교와 일반 여타 종교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물론 크고 작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 하나만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힌트) 기독교에서만 존재하는 게 있습니다. 뭘까요? 이것을 알면 진리를 아는 자요 참 신앙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중보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하시는 분, IX(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왜 중보자가 필요할까요? 인간은 죄인이기에 ㅎ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성경은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 어떠한 것도 가증하고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열심과 노력으로 ㅎ님께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본질적 죄악으로 뭉쳐진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맹렬히 타오르는 태양 앞으로 육체의 인간이 다가간다면 근접하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소멸되지 않겠습니까? 가는 건 고사하고 맨눈으로 쳐다보지도 못하잖아요. 하물며 그 시뻘겋게 타오르는 태양을 만드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 감히 어떻게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출20:18절 이하를 보면 ㅎ님이 율법을 전하시러 시내산에 임하실 때에 고막을 찢는 천둥소리에 번개가 번쩍이고 나팔 소리와 화염에 쌓인 자욱한 연기와 함께 임하십니다. 그 어마무시한 광경이 너무도 놀랍고 무서워서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간청합니다. 앞으로는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하나이다. 그러니 모세 당신이 ㅎ님의 말씀을 듣고 전달해 달라고 합니다.
한 여름 소낙비가 장대비가 되어 쏟아질 때, 번쩍이는 번개와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마치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우릉~ 쾅쾅..하는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릴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두려움을 경험해 보셨지요? 순간적으로 머리털이 쭈삣 서면서 아마도 세상 끝에도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ㅎ님의 임재의 광경에 너무도 놀랐던 충격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작은 경험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컸겠지요. 그래서 다시는 ㅎ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도록 간구를 합니다.
이것을 신5장과 신18장에서 연거푸 다시 말씀하는데요. 보겠습니다.
<신5:25~29>
‘25~26절 봉독,
<신5: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중보자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에게 전해달라는 것으로 중보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다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보자를 원하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어지는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5: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옳다는 것은, 백성들이 죄인들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대면하지 못한다는 걸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자를 원하는 것이 맞다고 말씀하시는 것인데, 이처럼 하나님은 처음부터 중보자이신 IX를 통해 우리를 대하시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2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5: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이 항상 이와 같은 마음을 품어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가 되어 구원의 복을 받길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진짜 의중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온전히 지켜 구원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이 드러나면 약속하신 메시아가(중보자)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복음으로 바꾸어 주길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시고 선물로 주신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성들이 모세가 중보자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대로 메시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해주어 구원해 주길 원하는 것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대로 모세와 같은 중보자를 보내주셔서 구원해 주신다고 신명기 18장 15~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는 IX의 예표적 인물입니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어 출애굽시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처럼 영적 애굽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약속하신 선지자(메시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따라야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는지 이어지는 16~17절을 보면 ....
<신18:16~17>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무서워 떨며 중보자를 원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며 중보자를 원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육신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대로 모세와 같은 중보자를(선지자를) 보낸다고 이어지는 18절에서 반복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하게 하신다는 것은, 율법을 복음으로 바꾸어 주신 것을 믿어야 함을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따르라는 뜻은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임을 말씀하는 마태복음 17장 3~9절을 보면 ....
<마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모세오경을 말하며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로 모든 선지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 전체를 말하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했다는 것은,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메세지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5장 39절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구약의 모든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해 주실 것을 모형과 그림자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마태복음 17장 4~5절을 보면 ....
<마17:4~5>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빛난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은 성경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오신 그 선지자가(중보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으라 말하는 것은 우리의 중보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십자가에서 복음으로 바꾸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6~8절을 보면 ....
<마17:6~8>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말씀하고 있었는데 오직 예수만 보였다는 것은 구약에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오신 분이 예수님임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므로 모형과 그림자로 말씀하고 있는 성경에서 예수님만 발견하여 증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십자가 복음으로 풀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사야6장을 보면 성전 안에서 이사야가 환상 중에 ㅎ님의 형상을 보고 두려움에 휩싸여 탄식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도다..’(떨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보좌에 앉으신 ㅎ님의 형상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는 것은 그냥 종교심에서 뱉는 넉두리가 아니라, 죄인이 거룩하신 ㅎ님을 보면 뼈속까지 밀려오는 두려움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면서 꼼짝 못하는 죽은 자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라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악한 생각이 입술을 통해 뱉어지게 되는 것이니 결국 자신이나 백성들이나 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데요, 우리가 언제 죄인임을 알게 되냐면 ㅎ님을 만날 때에 비로소 자신이야말로 구원은커녕 지옥이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스스로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누가 예수를 믿게 된다고요? ㅎ님의 안배 속에서 창기와 세리 같은 죄인들처럼 자기 의가 끝장난 자들이 마지막 피난처로 예수를 찾는 겁니다. 반면에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자기 가능성과 자기 의를 가지고 ㅎ님을 섬기려는 자들의 신앙은 허사에 불과합니다. 왜죠? 죄인인 줄 모르고 예수를 찾게 되면 자기 열심과 노력으로 ㅎ님께 인정받으려는 것이기에 말로는 예수 찾고 십자가 찾지만 실제는 자기 탐심을 위해 신을 찾는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일반 종교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폭로하는 인간 자신이 본질적이고 태생적인 죄인인 것을 모르고 자신들이 무엇인가 신을 감복시켜 구원을 이루겠다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열심과 정성이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모든 종교는 어둠과 무지로 가득한 인간들이 스스로 복을 받기 위해 자신들의 손으로 신을 만들고 그 신을 섬기는 우스꽝스러운 자기기만이고 자기 체면에 빠진 우상 숭배입니다.
다시 사6장으로 가서, 이사야가 떨고 있을 때에 천사가 제단 불에서 취한 핀 숯 하나를 가져와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네 악이 사해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제단 불은 IX의 십자가 죽음을 상징합니다. 거기서 핀 숯은 한마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즉 IX의 십자가 피로 네 죄악이 다 사해졌다는 엄청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죄만 뿜어내는 부정한 자가 어떻게 깨끗해진다고요? 십자가 피의 복음을 믿음으로요.
이와 같은 내막을 깨닫게 된 이사야가 마음 가득 기쁨이 넘쳐나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나섭니다. 율법 행함으로의 구원이 아니라 ㅎ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로 가득한 ㅎ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아직 주님의 십자가 사건 한참 전(약 7백년 전)이기에 네가 전하더라도 그들이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모든 영적인 비밀은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성취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레12장의 산모의 정결 규례..남아 출산시 7일까지 부정, 33일 후 산혈이 정결케 됨)
이것도 IX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교회가 죄사함을 받아 깨끗케 됨을 비유한 내용입니다.
얼마 전에도 나눈바가 있지만 잠간 다시 설명하자면, 산모가 남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7일 동안 부정하다고 할 때 7일은 주님의 일생을 뜻합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까지는 죄사함이 안 일어났기에 산모인 교회가 아직 부정한 거지요. 33일 동안 산혈로 깨끗지 못하다는 말도 같은 의미로서 33년에 십자가로 대속하셔야 교회가 정결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산모가 여자 아이를 낳다는 말은 일반 신자를 뜻합니다. 신자가 언제 거듭납니까? 성령을 받아 자신이야말로 태생적인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 복음을 믿을 때에 거듭납니다. 거듭나기 전까지는 부정하지요. 지금 이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7일이고, 그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 다음 7일입니다. 즉 성령을 통해 내가 주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옛사람) 때입니다. 66일도 마찬가지 개념입니다. 시적인 댓구 형식으로 반복하여 주님의 십자가와 성령의 일하심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처럼 구약도 모두 IX의 십자가 대속에 대한 비유를 모형과 그림자로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들이라서 ㅎ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고, 또한 죄인들이라서 ㅎ님의 율법도 지키지 못해 모두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멸망의 존재들인데,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다 치루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은 전적으로 중보자 IX의 은혜 때문입니다.
딤전 2:5절에서는 ‘ㅎ님도 한 분이시오, ㅎ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라고 증거 합니다. 중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죄가 일체 없으신 ㅎ님의 아들만이 가능합니다.
또한 히9:15절에서는 ‘IX는 새언약의 중보이신데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증거 합니다. 즉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새언약의 피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위해 중보함으로 구원키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스라엘(영적 참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즉 창세전에 택함을 입은 자들을 역사 속에서 복음으로 불러내어 구원시키시려고 오셨다는 말입니다. 지금 그 십자가 대속을 이루시기 위해 스스로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고 이어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본문<요18:33~34>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마27장을 보면 빌라도의 질문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에 대해 ‘네 말이 옳도다.’ 하십니다. 물론 오늘 본문 37절 본문도 주님이 긍정하는 답을 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을 ㅎ님을 선포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위에도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붙였습니다(요19:20)
‘유대, 유다’라는 단어의 뜻은 ‘찬송하다’, ‘찬송을 받으실 분’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은 야곱의 12 아들 중에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계5:5절은 예수님에 대해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다윗 왕으로 계보가 이어집니다. 즉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탄생 했을 당시에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으로 오다가 길을 잃어 헤롯 왕한테 가서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뇨?’
여기서 유대인이란 영적인 유대인을 말합니다. 롬2:9절을 보면 표면적인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에 대해 언급합니다. 즉 혈통적 유대인은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 유대인이지만, 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의 할례란 성령을 받아 자기 가능성을 일체 부인하는 자를 말합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인간 자기야말로 무능하고 무가치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십자가를 붙잡게 되는 겁니다. 이것 역시 ㅎ님의 간섭으로 되는 일이지 사람의 원함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면적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오직 ㅎ님의 택하심과 IX의 십자가 은혜로 되어진 것을 알게 되니까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감사와 감격에 겨워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은 감사가 벅차서 기쁨의 환호성이 되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지 억지로 의무적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와 찬송은 분명 격이 다릅니다.
그 찬송을 받으실 분이 우리 왕이신 IX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세세토록 참 유대인들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너무도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감당해야할 지옥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다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영생이라는 천국을 주신 생명의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8:36~37>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즉 유대인이란 천국 백성을 상징하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하늘에서 오셨듯이 우리들 영혼은 천국에 소속된 자들입니다. 이를 37절에서는 진리에 속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진리에 속한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진리란 거짓과 반대 개념입니다. 절대로 변치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리이시고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ㅎ님의 일하심이 진리입니다. 이 땅에 ㅎ님의 일하심이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십자가 복음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곧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창세전부터 계획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전 메시야 언약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택한 자들을 부르시는 복음으로 역할을 다하다가 장차 천국에서도 이 십자가 복음이 높이 칭송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계14장에서는 이를 ‘영원한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말로는 영원히 찬송 받으실 우리의 중보자 IX라는 말입니다.
<요18:39~40>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하니 40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킨 강도요 살인자입니다. 사형 언도를 받고 사형 집행만 기다리던 시한 부 사형수입니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수읽기에 몰려 사는 하루살이라는 말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해 보니까 죽여야 할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노라고 세 번이나 말을 합니다(18:38, 19:4, 6). 이것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ㅎ님께 드려질 흠 없이 깨끗한 제물임이 빌라도의 심문으로 분명히 드러냄으로 성경을 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죄가 없으신 예수이기에 빌라도가 회유책으로 예수를 풀어주기 위해서 유월절 특사를 거론하자, 온 백성들이 소리 질러 말하되 예수는 죽이고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바라바가 졸지에 살아나고 예수가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누가 바꾸겠습니까? 바라바는 누구라고요? 사형 선고를 받은 시한부 사형수라고요. 바로 우리 인간들 모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놀라운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라바란 단어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지칭합니까?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사는 모든 자를 말합니다. 주님은 누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습니까? 바로 이들이라고 벧전 1:2절에서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세 가지를 말합니다. ㅎ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된 순종, IX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셋은 결국 하나를 말합니다. 창세전 ㅎ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아버지가 미리 아신 자라고 했고요. 이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 피를 흘렸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나를 위해서 피 흘리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ㅎ님께 속한 자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37절에서도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에 속한 자라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말이고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라는 말이잖아요? 복음이 들려질 때 이들만이 귀를 쫑끗 세우고 반응하여 영접하게 됩니다. 행13장에서도 같은 증거를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믿는 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향해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 이라고 합니다.
다시 벧전1:2절 중반을 보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에 대한 말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IX의 십자가 공로를 믿게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되는 것이 곧 거룩을 입는 것입니다. 거룩은 사람의 행함으로 조성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면 복음이 아멘으로 믿어지게 합니다. 믿어지게 한다는 그 말은 순종함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율법 조항을 실천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은 단순히 ㅎ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복덕방쟁이가 아닙니다. 당신의 피를 흘려서 우리가 받은 지옥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중보자 이십니다. 이와 같은 새 언약의 중보자가 계시기에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아 살아났습니다.
그야말로 거저 선물로 받은 구원입니다. 천국은 은혜 입은 자만 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IX의 피를 힘입어 가는 나라가 천국이며 진리의 나라입니다. 극악무도한 죄로 사형을 기다리던 바라바가 예수 때문에 살아났듯이 우리 모두가 그 바라바입니다. 내가 죽을 그 자리에 예수께서 대신 죽고 나를 살려내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로의 구원을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는 ㅎ님 아버지와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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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과 복음교회 | - Daum 카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