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양을 찾아나선 목자
말 씀: 누가복음 15:3-7
설교일: 2024. 08. 25(주일 낮 예배)
옛날에는 사람 하나만 죽어도 이웃 동네까지, 온 지방이 떠들석 했습니다.
아니 죽은 것이 아니고 아파서 누웠다고만 해도 다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도대체 감각이 없습니다.
너무 많이 죽으니까 그런지, 사람 몇 명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다 무감각증에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심각한 무감각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무관심하고,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웃을 보고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고,
낭떠러지에 걸쳐 있는 잃은 양을 보고도 안타까와 할 줄 모르는 무감각증,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심각한 병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길 잃은 자기 양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목자의 비유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어느 목자에게 양이 100마리 있었습니다.
낮 동안 목장에 있던 양을 저녁이 되자 양 우리에 넣으면서 그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아흔아홉마리 뿐입니다. 한 마리가 없어진 겁니다.
그 순간 이후 목자의 모든 관심은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양은 자기를 보호하는 자구책이 없는 동물입니다.
양은 눈이 어두워서 바로 앞의 절벽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특히 하얀 털은 밤에 너무 잘 보여서 다른 짐승의 표적이 됩니다.
거기다가 양은 스스로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길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 없으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든지,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가든지.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목자는 잃어버린 양만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양이 절벽에서 떨어져 피를 흘리고 있을지,
사나운 짐승의 이빨 앞에 벌벌 떨고 있을지,
배가 고파서 슬피 울고 있을지,
생각만 하면 도무지 가만이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침내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는 우리에 놓아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섭니다.
아마 목자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여보 ! 포기 하세요 ! 이 험한 계곡 어디에 있는줄 알고 찾겠다는 거예요!
밤새 헛수고 하지 마세요”
그러나 목자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목자가 무서워 하는 것은 험한 계곡이 아니고, 자기가 찾기 전에 그 양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목자의 심정이 바로 우리 주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만큼 사람은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바람이자 소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도 귀하게 여기시고 영혼을 살리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입니다.
오늘 말씀 4절을 보면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 다니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잃은 양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하십니다.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는 목자처럼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의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지금 구원의 우리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습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눅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너무 기쁘고 즐거워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을 부르고 말합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얼마나 기뻤으면 잔치를 벌려 함께 즐기자고 했을까요?
이것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신 주님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저와 여러분이 주님 앞에 나왔을 때에, 우리 주님은 그렇게 좋아하셨단 것입니다.
그렇게 기뻐하시고, 그렇게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또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주님앞에 나오면,
우리 주님은 다시 한번 그처럼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7절을 보싲시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말미암아 기빠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목자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가 구원의 우리에 들어온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더 기뻐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젼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는 순간 하늘에서는,
주님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강물이 되고,
천사들은 그 기쁨의 강물에서 헤험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고
우리 주님은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잃어 버린 양을 찾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시급합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미룰 일이 아닙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감각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 무감감 때문에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무감각 때문에 오늘 수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재해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무감각 때문에 언제 어떤 대형사고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 무감각 때문에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이, 사랑하는 친구가, 사랑하는 이웃들이,
지옥의 벼랑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안전불감증”도 무섭지만, “지옥 불감증” 더 무섭습니다.
예수님이 이 “지옥불감증”에 대한 경고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7절입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아멘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의 이 “불감증”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 잃은 양을 찾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