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줄이 끊어질 듯 경적이 울린다. 줄줄이 늘어선 옥상 주차장은 한가위 장을 보는 차량으로 콩나물시루인데 서행하는 차들 사이에 차 한 대가 후진 중이다. 꼭 막힌 곳에서 경적을 울린다고 앞서갈 수 있는 것도, 빠져나갈 것도 아니다. 어디라도 빈 곳이 나면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그사이를 못 참고 나가려는 차가 경적을 울려댄다. 주차 중인 운전자의 마음도 뾰족해진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빵빵거린다. 젊다 못해 어려 보이기까지 하는 남자는 당황했는지 후진과 전진을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차를 멈춘다. 그 사이 육십 대 초중반의 남자는 분을 못 이겨 창문을 내리고 삿대질을 시작한다. 젊은 남자도 창문을 내리고 내가 물 잘못했느냐고 응수한다. 그쯤에서 끝내고 지나가면 끝날 일이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문을 박차고 내린다. 차림새도 풍기는 이미지도 어느 정도 품위 유지하며 사는 축이다. 퇴직을, 했음 직한 연륜도 보인다. 큰 싸움이라도 나겠구나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어려 보이는 남자도 드디어 내린다. 얼굴만 보송보송했지 내리는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단단한 팔뚝이랑 떡 벌어진 가슴이 헬스트레이너가 무색하다.
‘뭐 제가 잘못했습니까? 주차 중인데 왜 자꾸 경적을 울리고 욕까지 합니까?’
말투는 단호하면서도 깍듯하다. 큰 키는 아니지만 두 발을 살짝 벌리고 떡 벌어진 가슴을 당당하게 내민 체구가 내가 봐도 만만하지 않다. 남자의 목소리가 기어들며 무라고 궁시렁 궁시렁 변명을 늘어놓는다. 뒤따라 내린 그의 아내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팔을 잡아끌자 못 이기는 척 차에 오른다.
목덜미를 잔뜩 세워 입을 크게 벌렸다가 뒤뚱거리며 후다닥 내빼는 꼴이다. 영락없는 목도리도마뱀이다. 방향의 중심을 잡는 목도리도마뱀의 기세등등한 꼬리가 도망칠 때는 얼마나 볼품없는가. 한껏, 부풀렸다 푹 꺼져버리는 목도리도마뱀의 목덜미는 얼마나 허풍스러운가, 머쓱해진 남편이 자기 모습을 본 듯 씁쓸한지 말이 없다. 그 상황을 다 지켜본 아들이 차에 오르며 한마디 한다.
“아내 앞에서 어설픈 모양새 하다가 잔뜩 졸아 스타일 구겼네.”
아들은 계속 흥분하여 ‘아빠도 젊은 사람에게 무조건 반말하고 큰 소리로 말하며 다니지 마시라고’, ‘그 젊은 사람은 끝까지 존댓말로 싸우지 않았느냐고’, 은근히 조언하며 떡 벌어진 청년과 목도리도마뱀 같은 남자를 동시에 쳐다본다.
친구의 딸이 하루는 하소연하더란다.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 찾아오는 할줌마들 때문에 힘들다고. 할줌마가 무슨 뜻이냐니까 개념 없는 할머니와 아줌마, 그 사이 어디쯤 연령의 여자를 칭하는 말이란다. 따뜻한 커피를 시키고도 냉커피를 시켰다고 우기며 큰소리로 항의하고 사람 수에 모자라게 차를 시키고 잔을 더 요구하는 할머니 같기도 아줌마 같기도 한 여자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다. 신조어는 사회를 빠르게 반영한다. 도대체 신조어를 만드는 사람은 누군지 머리도 좋다.
개저씨, 개줌마, 개 같은 아저씨, 개 같은 아줌마란 말인지 개념이 없는 아저씨 아줌마란 말인지 아리송하지만 좋은 말은 아니다. 여기에 꼰대 내지는 할저씨. 할줌마라는 말까지 붙으면 오륙십 대 이상은 일순간에 볼썽사나운 족속이 되고 만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죄밖에 없는데 왜 젊은 세대로부터 반감의 이름으로 불릴까. 젊은 세대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뒷방 늙은이로 취급되는 것처럼 허무하고 억울한 일이 없다. 개저씨. 개줌마, 할저씨. 할줌마란 말을 생각해보면 나 또한 반성할 점이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기성세대는 마뜩찮다. 상대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억지 주장을 내세운다. 토론보다는 큰소리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심보만 가진 늙은이 부대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수록 듣기 좋은 말, 나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경륜이 쌓여 사리 분별이 분명할 거란 기대와 달리 쉽게 흥분하고 서운해하는 일이 잦다. 점점 사회로부터 무관심해지는 시선, 밀려난다는 열등감으로 작은 일에도 목소리를 높이려는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작은 목도리도마뱀이 두른 커다란 목도리는 자라나는 불안과 열등감을 공격성으로 부풀린 방패에 불과하다.
나이를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끔 개념 없는 아줌마가 된다. 머리로 생각한 단어와 뱉어지는 단어가 다르건만 우기기도 한다. 카페의 그 아줌마도 그랬을 것이다. 주차장의 그 남자는 퇴직 후 아내 앞에서 모처럼 살아있음을 보여주느라 큰소리 한번 쳐보았을 뿐인데..... 아니면 개인비서인 양 아내의 동선에 맞추어 마트 가고 계모임 장소에 내려주고 모셔오는 짐꾼처럼 취급당하는 건 아닌지, 인생 후반의 위축감과 삼식이 신세에 잔뜩 화가 치밀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내에게 소리쳤다가는 곰국 한 솥 끓여두고 족히 보름은 종적을 감출 게 뻔해 잘못 걸린 젊은이에게 분풀이해 보려다 본전도 못 찾고 망쳐 버렸다. 벌겋게 짓 찢긴 자존심이 불 보듯 해서 내가 저지른 일인 양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아들아, 남자들은 모두 목도리도마뱀일지도 몰라. 한 여자에 한 가정에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싶은 본능을 간직하며 살지. 바른 곳에 쓰일 때는 코끼리의 상아처럼 사자의 갈기처럼 멋지지만, 오늘처럼 맥없는 허울을 보여주는 때도 있는 거야. 불시에 남들의 시선과 조롱을 받게도 된단다. 사내라는 이름 속에 웅크리고 있는 과중한 책임, 누군가를 밟고서라도 우뚝 서야 한다는 우월감을 버린다면 넌 더 멋진 남자로 살아갈 거야.’
목도리도마뱀 둘이 같은 처지라는 걸 모르고 각자의 창을 열심히 내다보고 있다.
돌아오는 길, 지평선 위로 하늘이 벌겋게 물들고 있다. 눈시울이 붉어지듯 처절한 실패가 조금씩 애잔한 단상으로 변해간다. 일주일을 넘지기 못할 영화의 예고편처럼 하루가 또 간다.
첫댓글 요즘 세태에 젊은이라고 반말 했다간, 모욕당하기 일쑤지요,
어른입네 하기전에 어른답게 처신을 해야 될 겁니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잘 읽으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