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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삼성산 산행
ㅡ삼막사를 향하여
추석 이튿날, 서울을 가다말고 삼성산에 올라 보았다.
삼성산은 예전에 관악산 산행시 가보려다, 길을 제대로 몰라 가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어,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찜해두었던 곳...
천안에서 급행편 전철로 안양역까지갔었고,다시 환승하여 관약역에서 내렸다.
마침 산행길에 나선 아주머니게 물어보니, 삼성초등학교 인근에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고 일러준다.
일러준대로 가다보니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나타나는데, 각기 행선지들이 달랐다.
어떤 사람은 얀양유원지로, 또 다른 일행은 비봉산을 가고 있단다.
때마침 서울에서 왔다는 젊은 두 아줌마 그들도 초행이라 길을 물었고.....
그래서 쉽게 등산로 입구를 찾아 산행길을 출발했는데,산 길치고는 너무도 평평한 평지같아 등산기분이 전혀 나지않았다.
평지만 같던 길이 드디어 험준한 길로 바뀌어지고...
돌계단을 한발짝 한발짝 힘겹게 올라야만 했다.
기암 괴석과 멋스런 소나무가 보이고....
멀리 국기봉 정상이 바라보였다.
보이는 경관이 참 멋진 산이겠구나 느껴져 왔었고...
여기서 국기봉으로 가는 길과 삼막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국기봉 정상을 오르려다 말고, 삼막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까닭은 삼성산은 삼막이라는 삼성현의 전설이 묻혀 있는 곳이기에, 그곳부터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
꼬불꼬불한 산길에다 이런 험난한 코스도 자주 나타났다.
'삼성산'은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금천현의 진산(각 고을을 진호(鎭護) 하는 주산(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두 산은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산의 유래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효와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이곳에 조그마한 막을 짓고 수도에 전진했던 3막이 있던 곳이라 전하여,그것이 곧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삼성산(三聖山)」 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 고승이 기거했다는 3막은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답변을 얻을수는 없었다.
한편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근접 거리에서 잡아본 삼막사
산중에는 삼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암, 망원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1592)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우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와, 일제강점기에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일찍이 (900)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돌위에 돌 하나를 더 올려놓아주고....
금방 절이 나타날줄 알았는데 또 다시 이런 암벽길이 나타난다.
가까히 삼막사의 전모가 드러난다.
깊은 산골인데도,사찰 규모가 대단함에 놀랐다.
길게 대리석 돌계단과 난간이 펼쳐지고, 길위에는 연등이 내걸려 있었다.
삼성사를 가기에 앞서 칠보전을 찾았다.
삼성사의 칠보전은 칠성각의 다른 이름으로 매우 멋스런 풍경인데다 먼곳에 있음에도 대리석으로 길을 잘 만들어 놓아 볼품스럽다.
남녀 근석이 있다는 글을 읽어보고 어느것이냐고 물었더니
위에 있는 돌이 남근석이고, 아래 있는걸 여근석이라 한단다.
여기에 와서 치성드리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많은 여인들이 찾고 있기도 한다는데...
드디어 삼막사에 이르렀다.
삼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라고 한다.
용주사는 수원 병점에 위치해 있는 사찰을 말한다.
삼막사는〈사지 寺誌〉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관음사라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왕건이 중수한 후 삼막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1394년(태조 3)에 무학왕사가 머물면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한 것으로 인해 1398년 태조의 왕명으로 중건되었다.
그뒤에도 몇 차례의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1880년(고종 17)에는 의민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에 칠성각 등을 완공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망해루·대방·칠성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마애삼존불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동종, 3층석탑, 거북이 모양의 석조 등이 있다.
소나무 숲이 퍽 어울려 좋은 휴식처가 되는 장소였다.
이곳 삼막사에서 서울대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고, 경인대쪽으로 가는 길도 보였다.
서울대 쪽으로 온다면 차량으로 이곳까지 곧장 들어올수도 있는 길이 있는 듯 싶다.
국기봉을 거쳐 왔더라면 서울대 방향으로 내려 갔을텐데.....
거북귀자의 다른 글씨체 음각의 삼귀자.
이 글씨를 쓴사람은 지석영의 형인 지운영이었으며, 이곳 백련암지에 머물러 있을 당시 꿈에 관음보살을 본후에 새겨 놓았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