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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영환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 예수님께서 편안하게 주무셨죠 이 이야기가 사실은 현실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오늘 초대 손님이 딱 그런 삶을 사셨는데요. 어 현재 고난의 상황에 있는 많은 분들께 오늘 장로님의 이야기가 참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딱 먹고 싶은 디저트인 거 같애요. 그죠 와플 대학의 대표 손정희 장로님 모셔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찾으시죠. 요즘 길거리에서 많이 봤습니다. 와플대학 네 감사합니다. 곳곳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 와플 대학 프랜차이즈의 인제 대표신 거잖아요. 이름 그 와플대학이란 이름 자체도 굉장히 신선한데 대학생들이 지어준 거라면서요 맞습니다.
어 대학가에서 시작해서 단골로 오던 대학생들이 다양한 크림이 대학교의 다양한 학과와 비슷하다고 와플대학 하라고 그렇게 지어줬어요. 어느 대학교 이화여대 앞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는데 학생들이 지어준 이름이군요. 그렇죠. 아 그래서 와플 대학이라고 아마 많은 분들이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요즘 프랜차이즈 몇 개까지 저희 지금 한 400개 정도 되구요. 예 일본 진출 안 하십니까? 일본 일본보다 하반기에 미국을 가게 될 것 같아요. 부에나 파크로 가실 거 같은데, 네 아닙니다. 성장하는 게 더 즐거운 일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하고 밥그릇을 같이 나눠 먹고 사는 게 더 재미있어요.
아 저 작가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지금 사실 이 장로님이 인제 와플 대학의 성공과 더불어서 많은 프로그램들 세상에 방송에서 섭외를 많이 하셨는데 저도 다 거절하고 새롭게 할 수만 출연하셨다고 해서 유퀴즈가 굉장히 탐날 캐릭터인데요. 유퀴즈에서 당연히 소비했을 것 같은데, 다큐멘타리를 좀 찍자 그런 제안을 오래전부터 많이 받았는데
사실 제 인생은 하나님을 빼고는 할 얘기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일반 방송에 나가서 하나님 빼고 얘기할려면 정말 아무 건더기가 없는 내용인데 방송을 나간다는 게 그래서 힘들었어요. 이름을 와플 신학대학으로 에이 불교 신자들이랑 이슬람들 어떻게 그렇잖아. 걔들도 그들도 먹어야지 뭐 그렇잖아요. 그러면 너무 크리스천들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네 4년제입니다. 좋습니다. 그래요.
정말 우리가 사실은 우리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란 말을 할 수 없이 빼면 뭘 할 얘기가 있을까 싶어요. 사실은 그래서 예전에 이하니 씨도 출연하셔서 본인의 영화 홍보도 나오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얘기하면 할 얘기가 없어서 꼭 새롭게 가서 나오고 싶었다고 하셨거든요. 맞아요. 많은 분들 간증하고 좋은 댓글도 달고 감동도 받는데 사실 방송을 계속 거절한다는 것도 저한테는 교만이죠. 예 하나님 간증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아유 오늘 나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구요. 뭐 저도 대충 인터뷰 내용을 봤는데 정말 영화같이 살아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지금까지 이런 와플대학이라는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키기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 보니까 성공에는 고구마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라고 해서 고구마가 키워드라고 저희 작가가 딱 정리를 해주셔서 고구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한번 이야기 나눠볼 텐데 우리 어머님 원래 이제 시작은 아동복부터 시작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딸만 둘이라 딸 있는 엄마들은 아이들 어렸을 때 그냥 아이 예쁘게 보이게 하고 싶어서 예쁜 옷을 많이 관심을 가지죠. 그러니까 저도 내 눈에 예쁜 거 물건 떼어다가 안 팔리면 내 딸 입히면 되니까. 하는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겁 없이 아동복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거를 17년을 했어요. 정말 20대에 시작해서 40대까지 어디서 하셨어요. 네 저 인천에서 했어요.
그래서 아이한테 원없이 예쁜 옷도 입히고 장사도 잘 돼서 정말 남의 처마 밑에서 시작했던 장사가 한때 꿈이 그 윈도 브러쉬 약품을 뿌리면서 유리창을 닦아보는 거, 자기 매장에서 어 가게 오픈할 때 사장님들 이거 많이 닦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정말 유리창을 닦을 할 수 있는 가게로 옮겨가고 집도 사고 아이한테 해주고 싶은 것도 다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사업이 잘 됐었죠. 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근데 이게 파는 건 누구 못지않게 잘 팔 수 있는데, 문제는 팔 물건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브랜드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물량은 한정돼있고 저는 그것보다 더 많은 소비자가 찾아오니까 매일 아침마다 전철 새벽 첫차를 타고 브랜드 본사 앞에 가서 빵하고 우유 사서 요렇게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직원들 출근하면 나눠주면서 오늘 무슨 물건 들어오냐 예 본사들도 납품을 받잖아요. 뭐 니트가 들어오는 날도 있고 청바지가 들어온 날도 있고 그러면 그거를 배급받듯이 받아다 팔았어요. 그러니까 항상 물건이 부족한 게 저는 너무 속상한 거예요.
근데 인제 저한테 빵하고 우유 먹던 직원들이 아니 옷 만드는 게 뭐가 어려워서 대표님은 뭐가 팔릴지 너무 잘 아니까 그걸 만들면 되지 않냐 그래서 나는 파는 건 자신 있어도 어떻게 옷을 만들어 그러니까 아니 디자이너가 그려주고 하천공장에다가 주면 턱턱 만들어 주는데 어 그렇게 잘 팔면 만들어서 팔면 되지 이러는 거예요. 쑥 그 말에 홀랑 넘어가서 예 인제 만드는 걸 손을 댔죠 근데 또 만드는 족족 너무 잘 팔리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파셨길래 그렇게 물건이 없을 정도로 잘 파신 거예요. 그냥 심지어 하얀 바지가 필요한데 본사에 있는 흰 바지를 생산을 안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은 원단을 관리하는 말단 직원한테 혹시 하얀색 원단이 있냐 물어봐가지고 저 단체복으로 하얀 반바지 200장 주문받았습니다. 이러고 선금을 주고 본사에서 단체복으로 갔다가 그냥 1장 1장 1장씩 팔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대리점엔 하얀 바지가 없는데 저희 매장에만 있으니까 손님이 또 더 오는 거죠. 예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서 파는 거에다 더해서 뭐 양말이라든지. 모자라든지 이렇게 코디가 될 수 있는 거 그리고 또 아동복 사이즈 큰 거는 사실 애들 큰 애들은 어른만 하잖아요. 특히 엄마들하고 자녀들 체격이 비슷하잖아요. 그러니까 가장 큰 사이즈를 엄마들한테 입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패밀리룩처럼 아이하고 같이 있는 예 그런 아이디어들 그런 것 때문에 남달리 가게가 참 잘 됐었어요. 에 그때 신앙생활 하셨었어요. 모태신앙이기는 한데 이게 사업이 바쁜 분들은 사업에 팔려서 사실 주일 성수하기 힘들죠. 근데 어려서부터 어머니나 할머니가 그 뻣뻣한 신권 있으면 성경책에다 껴 놓으세요. 예 그러니까 그걸 보고 자랐던 영향이 있어서 손님들한테도 신권을 받으면 이 돈은 하나님 돈 같아서 쓰질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아놨다가 인제 작은 교회들이 뭐 성가대 가운을 바꿀 때가 됐다든가 뭐 교회에서 이런 필요한 게 이제 귀에 들리면 이 돈으로 하시라고 갖다 주는 걸로 인제 죄책감을 좀 사 그러트리면서 예 그러면서 돈만 열심히 벌어요. 그러면 이제 직접 제작까지 하셨으니까 돈 많이 버셨겠어요. 네 정말 많이 벌었어요. 저는 어제보다 못한 오늘이 없었어요. 야 날마다 날마다 그럼 뭐 그까 직접 파는 걸 넘어서 인제 다른 곳에 물건까지 보내시고 저 이마트에도 납품하고 예 역시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니까.
결국은 이제 해외 생산에 손을 댔죠. 중국에서 네 예예 이제 그게 행복이자 불행의 시작이었어요. 그니까 해외까지 제가 갈 수가 없잖아요. 여기서 관리해야 될 것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남의 손에 맡기다 보니까 저는 사업하면서 1번도 어음이나 이런 걸 써보지 않고 언제나 현찰 거래를 했거든요. 근데 제 현찰을 가져가서 외상 거래를 하고 그렇죠. 근데 이제 모든 건 제 책임으로 돌아오잖아요. 그 사람 튀고 네 중간 업자가 사기를 친 거네요. 네 그래서 그 당시에 한 10억 빚을 졌어요.
당시 10억이면 뭐 남은 거는 옷 뿐이구. 이제 받아야 될 돈과 줘야 될 돈이 거의 비슷한데 저한테 돈을 줄 사람들은 다 숨어버리고 받아야 될 사람들은 인제 아우성을 치는 그런 상황이 됐죠. 그러니까 돈을 빼돌렸다고들 채권자들은 이제 오해를 하시더라구요. 너무 억울하잖아요. 나는 아이 돌반지까지 내다 팔면서 이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했는데 뭐 서울에다 집도 사놓고 다 빼돌려 놓고 지금 저러는 거라는 말들을 하니까 제가 이렇게 무서운 영화를 사실 잘 못 봐요. 근데 그 일본 무사들이 나오는 영화 보면 할복자살을 하는 장면들 있잖아요.
어우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다만 했는데 제가 그런 오해를 받고 너무 억울하니까 내 마음은 그게 아니고 내 속은 그게 아닌데 몰라주니까 정말 배를 칼로 그어서 보여주고 싶다. 예 그 정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갈 정도로 너무 억울하더라구요. 이 뭐 당시의 그 심정은 말로 정말 못할 것 같아요. 경제적인 압박도 있고 그쵸. 근데 심정을 좀 예 딱 죽고 싶었죠. 근데 딱 죽고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딸만 2이잖아요. 뭐 아들도 잘 키워야 되겠지만, 특히 어린 딸들은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인생이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쟤네들 20살까지만 딱 키워놓고 죽는다 내 할 도리 하고 죽는다 이렇게 억울한 세상 살아서 뭐하냐? 그래서 정말 20살까지만 키워놓고 죽는다고 제 딴에는 아주 단단히 계획을 세운 거예요. 몇 년만 참으면 된다구 예 그래서 인제 가세가 하루아침에 기울었겠네요. 그쵸. 정말 말 그대로 길에 나앉을 지경이었죠. 예 집도 옮기시구요. 지분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게 남편이 인제 그 당시 너무 충격을 받으셔 가지고 술 드시고 계단에서 이제 미끄러져서 어깨를 다친 거예요. 근데 수술비도 없지만, 수술을 한다. 그래서 이 어깨가 원상태로 돌아오기도 쉽지 않은 그런 부위더라구요.
의사 선생님이 그냥 밥 숟가락 들 수 있으면 본인이 뭐 운동선수도 아니고 하니 차라리 수술 안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구요. 수술할 돈도 없었지만 근데 이제 남편 성격이 별명이 강가이버예요. 맥가이버처럼 뭘 그렇게 막 예 그런 걸 좋아하는데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살면 또 계속 자기 하던 대로 할 거 아니겠어요. 어깨도 안 좋은데 그래서 어찌 됐든 손이 안 가는 아파트에서 살아야 되겠다. 하고 서울에서 제일 싼 아파트를 알아봤더니, 그게 상계동이더라구요. 15평짜리 500에 50만 원 그래서 아파트로 이사를 왔죠 또 딸이 그때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도 했고 그때 인제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였어요.
예 근데 사실 서울예고를 다녔거든요. 인제 인천에서 서울예고 다니기 너무 힘드니까 학교 앞에다 자취방을 얻어주고. 저희는 인천에 있었었는데 그니까 아이는 이렇게 엄마가 인제 사업이 어려워지고 집안이 막 난리가 난 줄을 모르고 지냈죠. 예 그리고 저는 받을 돈 받아서 줄 돈 주면 큰 문제 없으니까. 이제 돈 받으러 쫓아다니고 그런 상황이 돼버렸죠 일단 채권 채무가 있으니 많은 송사가 또 있었겠네요. 그럼요 원고도 됐다. 피고도 냈다 예 정말 법원에 가서 살구 경찰서 가서 살았어요. 예 근데 그게 참 쉽지 않더라구요.
내가 원고일 때야 어느 정도 할 말할 수 있지만 피고일 때는 그냥 죄인이잖아요. 예 근데 인제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해야 그래도 유리하다고 하는데 변호사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구 어떤 변호사가 정말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근데 법원에서 만난 많은 사람 중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 사연을 인제 서로 막 동병상련으로 하소연하다 보니까 아줌마 그거 힘들겠어 그냥 변호사 살 돈 있으면 어디 가서 소리 안 나는 총을 사가지고 그냥 쏴 죽이는 게 낫겠는데. 정말 나쁜 놈인 건 맞는데 법으로 하기에는 애매한 게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사기치는 사람들이 법을 더 잘 알고 빠져나갈 길을 더 잘 아니까 그리고 또 어떤 분은 그러더라구요. 재판이 언제 끝나는지 아냐고 재물이 떨어져야 판결이 난다. 야 그래서 절망적인 얘기네요. 네 그 약자라고 네 재물이 떨어져야 판결이 난다 그러니 돈 없으면 시작도 말라 예 좋은 변호사 사고 그만큼 할 수 있겠느냐 어 그런 절망적인 얘기들을 법원에서 많이 듣고 그냥 딱 아 하나님한테 맡겨야지 악인은 하나님이 처단하시는 거니까 내 힘으로 세상법으로는 더 이상 안 되니까. 그냥 하나님한테 맡기고 돌아섰어요. 그 이후로는 법원을 안 갔죠 근데 집에 오니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어요.
네 그냥 다윗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면 이 복수 억울함을 하나님이 하나님한테 맡기자 그리고 그냥 시편을 열심히 읽었어요. 예 그러면서 읽어서 안 되니까. 쓰고 밤새 잠이 안 오니까 시편을 쓰다가 그 다음엔 잠언을 쓰다가 정말 성경 말씀 1절 1절이 저를 살렸죠 네 집안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나뿐 아니라 가족들 전체가 힘들잖아요. 그렇죠. 그게 저 제일 못 견딜 일이죠. 따님은 서울에 사느라 몰랐다고 하셨는데 이런 일들을 따님도 알게 되셨었나요?
알 수밖에 없었던 게 인제 작은 아이는 어렸으니까 작은 딸하고 남편하고 3이서 인제 지방에 받아야 될 미수금들을 받으러 예 뭐 지방으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이제 채권자들이 제가 안 보이니까. 불안했었던 가봐요. 뭐 돈을 받아올 거라는 보장도 없어보이고 사람은 안 낳다고 나고 이러니까 딸아이 큰 딸아이 학교로 찾아간 거예요. 교문 앞에 찾아가서 니네 엄마 어디 갔는지 아냐고 연락되냐고 우리는 이렇게 니네 엄마한테 돈 받아야 된다고 이런 얘기를 하니까 정말 상상도 못 했죠. 서로 간에 돈을 꿔주고 빌릴 때는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있고 인간적으로 믿음이 가니까 돈거래를 한 거잖아요.
근데 그랬던 분들이 내가 잠시 안 보인다고 큰 아이 학교 앞까지 찾아가서 자기들도 자식이 있는데, 그럴 줄은 몰랐어요. 근데 큰 애가 그러더라구요. 이제 내막을 다 알고 나서 엄마 좋은 고등학교는 왜 다니는 거야. 이래요. 대답을 못 했더니, 엄마 좋은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교 갈려고 다니는 거야. 내가 좋은 대학교 가면 굳이 너 무슨 고등학교 나왔니 그거 물어보는 사람 없어 그러니까 나 그냥 검정고시로 좋은 대학교 붙을 테니까. 고만하자 자퇴하자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고등학생 딸이 서울예고 들어가기 정말 힘든 학교인데 들어가기도 힘들구 이렇게 자퇴한 학생은 개교일에 없었대요 거기 또 웬만해도 다 부유한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렇죠.
유학을 가는 경우에 인제 자퇴를 하는 케이스가 있지 이런 경우에 자퇴를 한 경우는 정말 개교일에 없던 일이라고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시겠다고 그러더라구요. 근데 특히 예고는 등록금만 갖고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에요. 결국은 딸아이한테 지구 자퇴를 했죠. 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마음 아파요 그럼 딸은 그 이후로 학교를 자퇴하게 된 거예요.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있는데, 자기는 인제 검정고시 봐서 좋은 대학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 뭐 학원이라도 다녀야 되잖아요. 사실 저는 한샘 학원에 빚진 사람이에요.
네 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노량진 한샘학원을 가서 100명이 듣는 수업을 101명이 듣는다고 학원에 무슨 손해 끼치는 거 아니지 않냐 예 나 하나 더 듣게 해달라고 어 나는 서울대학교를 붙을 사람이니까. 내가 서울대학교 붙으면 여기 학원에 현수막을 걸지 않냐고 그걸로 내 수업료를 퉁 치고 예 100명 듣는데 나 1명 더 들어가서 듣자고 그렇게 얘기를 했대요. 통뿐이 아니야. 진짜 범상치가 않은데 그래서 지금은 지금도 학원에 있는지 모르지만 근로장학생이라고 그래서 칠판을 지우는 예 그 조건으로 아이가 인제 칠판을 지우는 조건으로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는데 아이 땜에 인제 생긴 거죠.
그리고 얘가 수능 보고 선생님들한테 인사하러 갔더니, 작은 봉투를 하나 주드래요. 예 인제 안 올 테니까. 용돈이라고 하면서 봉투를 하나 주시면서 그 당시에 티비는 사랑을 싣고 그 프로가 막 유행할 때였어요. 너 나중에 뭐 되면 우리 찾아봐야 돼! 아이구 그 만큼 선생님들도 이뻐하던 아이였네, 네 그런 적도 있었어요. 근데 다행인 건 정말 저희가 4대째 이어오는 인제 기독교 집안이다. 보니 어른들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은 덕분인지 딸아이를 친구가 교회로 인제 인도를 한 거예요. 전도를 해서 근데 정작 인도한 친구는 그 교회 안 다니고 저희 딸아이는 이제 교회에 푹 빠진 거예요.
그래서 진짜 삐뚤어질 수도 있는 환경이고 그럴 딱 예민한 나인데 교회를 다니는 게 저는 너무 고맙더라고요. 근데 하루는 자다가 보니까 애가 없어요. 그래서 아니 어딜 갔나 하고 봤더니, 낡고 작은 아파트 좁은 베란다에 나가서 방석을 깔구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너 뭐하니 그랬더니, 엄마 새벽 예배를 너무 가고 싶은데 교회가 너무 멀잖아. 1번 가서 될 게 아니고 매일 가야 되는데 차비를 매일 어떻게 하냐고 네 그래서 자기는 그 시간에 여기서 혼자 기도를 한대는 거예요.
아 그냥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거 엄마로써 할 수 있는 게 뭔가 우리한테는 합의가 문제니까 그냥 교회 옆으로 이사 가면 되겠다. 월셋방 사는 거 똑같은데, 예 그냥 딸아이가 걸어서 교회 갈 수 있는 그냥 교회 옆으로 이사 가자 교 옆에 사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땐 몰랐습니다. 왜요 갑자기 반전이네요. 반전이 갑자기 기도의 은혜 받으시다가 갑자기 또 갑자기 왜 그래서 이사를 가셨어요. 딸아이가 바르게 크는 것만 생각하고 아무 계산 없이 그냥 교회 옆에 단칸 셋방으로 이사를 갔어요.
네 상계동에 비해서 용산이라 너무 집이 비싸가지고 정말 쪼그만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는데 살림이 들어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죄다 버리고 애들이 울면서 책은 버리면 안 된다고 그래 가지고 책만 갖고 이사 들어갔어요. 저 정말 평생을 열심히 살아서 항상 아이들한테 좋은 집 좋은 환경 이런 걸 제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던 엄마였어서 그렇게 형편없는 집으로 이사한 게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예 그래서 큰 애한테 정말 미안하다 이런 집 밖에 이사를 못 오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 그랬는데 우리 애 하는 말이
“엄마 성경책에 인자도 머리 둘 곳이 없었다는 말이 있어 그래도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거나 집 나가버리지 않고 우리 버리지 않고 천장있는 이런 집을 얻어서 우리 비 안 맞고 같이 살잖아.”
그 말을 하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제가 지혜도 부족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좋은 자식을 주시고 자식을 통해서 많이 저를 깨우쳐주신 것 같아요.
그럼 딸의 요청으로 인제 교회 옆으로 이사를 하셨으니까 자연스럽게 장로님도 다시 하나님 곁으로 다가가게 되신 거예요.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저는 그냥 교회를 학교처럼 다녔죠 어른들이 가라니까 가고 음 저희 어머니와 이모의 주례를 다 한경진 목사님이 하셨어요. 저는 한경진 목사님이 저희 집에 하도 자주 오시는 동네 아저씨라 예 그냥 그냥 동네 아저씨 그쯤으로 알고 대단한 분인지 모르셨던 거 같애요. 너무 자주 뵈니까 그리고 인제 목사님만 오시면 어른들이 계란을 삶아서 내놓고 이러니까 한경직 목사님이 저를 무릎에 앉히고 삶은 계란 까서 먹여주고 하시니까 저는 동네 좋은 아저씨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커서 엄마 결혼식 사진을 보니까 그분이 계시고 이모 결혼식 사진을 봐도 그분이 계시고 예 부모님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하다보니까 한경직 목사님 저서도 많고 친필로 싸인해 주신 것들도 많구 남들은 재산을 물려주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 이 나이 되고 보니까 믿음의 뿌리가 있었다는 게 정말 큰 상속이고 유산이구나 네 제일 자랑할 게 이거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제 따님은 매일 새벽 기도하시고 함께 가셨어요. 근데 인제 저는 그때까지도 그냥 썬베이 크리스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수준이었어요. 근데 새벽 5시 새벽 예배 드리러 갈 때 깜깜하잖아요.
깜깜한데 18살짜리 딸아이 혼자 그 어두운 길을 가는 게 불안해서 전 그냥 보호자로 따라간 거예요. 무사히 교회까지 아무리 가까워도 가는 길에 무슨 일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같이 따라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냥 어려서부터 예배드리는 건 익숙했으니까 그냥 무덤덤히 앉아서 예배드리고 오고 가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죠 근데 이제 목사님께서 저희 집 사정을 아신 거예요. 딸아이가 학교를 안 다니는 것도 알고 그리고 새벽 예배 끝나고 자꾸 애가 집엘 안 가고 교회에서 맴도니까. 너는 학교 안 가니 하는데 그 시간이 딱 아이들이 학교 갈 시간이잖아요. 그러니까 밖에 나가기를 싫은 거야.
그러니까 교회에서 청소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그러면서 있으니까 목사님이 인제 도와주고 싶은데 항상 자존심이 셀 나이인데, 새벽 예배 때 피아노 반주를 니가 좀 할래 하시구 반주자 사례로 용돈을 주시는 거예요. 정말 너무 감사했죠. 근데 항상 반전이 있어요. 딸아이가 어느 날은 주보를 들고 와서 교회주보 뒷면에는 헌금자들이 써 있잖아요. 어떤 안수 집사님이 좋은 일이 있으셨는지 천만 원을 감사헌금을 하신 거예요. 금액이 크다 보니까 이름만 나온 게 아니고 금액까지 주보에 실린 거예요. 공이 많잖아요.
길죠 예 그 오타 아니고 진짜로 근데 그 주보를 저한테 내밀면서 엄마 나도 헌금 천만 원 드리고 싶어 옛날 같으면 그리구. 제가 못 받은 돈만 받을 수 있다면 예 아 천만 원 드리죠 딸아이가 이렇게 반듯하게 커나가는 거에 대한 감사헌금 저 얼마든지 드리죠. 근데 보증금 500만 원짜리 월세 사는 사람이 집을 빼도 감당할 수 없는 돈이잖아요. 내가 받을 돈만 누구 1명한테만 받아도 이거 할 수 있는데, 그래 가지고 그날부터 1달이 넘도록 딸하고 새벽 예배에 가면 옆에서 천만 원 천만 원 하나님 천만 원 천만 원 내가 못 받은 돈 받게 해 주세요. 예 그럼 다 하나님 드릴 거예요.
그러고 기도를 해도 남들은 뭐 응답이 있다는데 정말 아무 응답이 없는 거예요. 1달이 넘어가니까 이제 짜증이 나더라구요. 아니 내가 쓸려는 것도 아닌데 당신 드리겠다는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왜 돈이 안 생기냐고 내 돈 떼어먹은 사람 누군가 1명이 턱 나타나서 돈을 줘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안 생기는 거야. 하느님 뭐하시는 거예요. 하고 짜증을 냈는데 저는 그 오기로 드린 기도에서 응답이 오더라구요. 하나님이 가난한 거 아니잖아.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우리 같은 가난한 딸아이한테 천만 원을 드릴 마음을 생기게 하셨을까? 그건 아닐 거야. 잘은 모르지만 그건 아닐 거야.
근데 저도 한때 사업을 했으니 큰돈을 많이 만져봤잖아요. 천만 원이 별거야. 만 원짜리 천장이면 천만 원이지 음 내가 지금 1천만 원은 없지만, 예 1만 원씩 천 번 드릴게 하나님 땡큐 아 그러네 진짜로 하느님 땡큐 네, 네 에 그리고 이 헌금은 정말 하나님이 딸을 지켜주시리라는 마음에서 하고 싶었던 거라 천 번을 드리는 동안은 얘를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 같아서 저는 이 방법이 훨씬 맘에 들더라구요. 단번에 드리는 것보다 드리는 동안은 보호해 주실 거다 끝까지 가야 되니까.
자릿값 드려요 근데 인제 자신이 없어서 딸아이한테 성인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드리겠지만, 다 못드리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저 인제 딸아이 20살 되면 죽을 사람이었으니까 이건 하나님하고 약속이니까. 니가 벌어서라도 천 번을 드려야 된다. 그런 다짐을 하고 시작했는데요. 얼마나 제 헌금이 제가 느끼기에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교회에 있는 헌금 봉투가 아까운 거예요. 황금봉투 하얀 게 뻣뻣한 게 거기다 만 원씩 그걸 제가 천장을 써야 되잖아요. 봉투 값도 아까운 말이에요.
문방구에 가서 누런색 이렇게 100장씩 묶어서 파는 제일 싼 편지 봉투 그걸 사다가 제가 이제 펜으로 번호를 써놓고 아 이게 몇 번째인지 네 그리곤 만 원짜리 1장씩을 넣고 교회를 가는데 그게 예배 시간마다 또 헌금을 걷는 건 아니잖아요. 언제 내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남보다 일찍 가서 강대쌍에다가 살짝 올려놓고 네 부끄러워서 이렇게 나눠서 드리는 게 부끄러워서 예 그렇게 헌금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카운팅을 하면서 헌금을 하니까요? 교회 가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아 그래요. 왜냐하면, 이거 신선한데 봐야 되니까.
이거를 빨리 내고 싶으니까 네 빨리 천문 채우고 싶어서 예 막 1자릿수가 2자리 숫자가 되고 3자리 숫자가 되고 막 90이 되면 100이 하고 싶구 막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교회를 열심히 갔어요. 근데 주일날은 예배를 또 1번만 드리는 게 아니잖아요. 새벽 예배드리고 1부 2부 3부 막 이렇게 예배를 드리니까 주일날은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죠. 진짜 너무 신나는데 그 예배 사이사이에 텀이 있잖아요. 그 시간에 할 게 없는 거예요. 정말 뭐 저도 어쩌다 다닌 교회지 어려서부터 저희 집안에서 섬기던 교회가 아니니 저한테 뭔가 역할을 주시지도 않고 제가 무슨 집사를 받은 것도 아닌 상태니까 할 일이 없더라구요. 뭐 했을 것 같으세요.
제가 중간에 네, 뭐 하셨어 남는 시간에 뭐하셨어 평소 그렇죠. 그 교회에서 대부분 식사를 제공하잖아요. 그러면은 식사 후에 설거지가 있잖아요. 저 주방 들어가서 설거지부터 했어요. 근데 주방에 들어가니까 너무 좋은 게요 거기는 나이 드신 분들이 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예 밥하고 반찬 하고 근데 저는 그걸 할 군번도 못 돼서 인제 설거지를 하는데 제가 그때 50대 초반인데 저보고 막내라더라구요. 거기서 막내가 됐네요. 주방에선 막내예요. 50 초반이면 네 막내는 힘이 좋으니까 열심히 설거지 했죠. 근데 설거지도 하고 또 시간이 또 남아요.
그럼 이제 청소를 해야죠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청소 화장실 청소 네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교회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천천히 청소를 해도 아니 뭐 변기 닦고 휴지통 비우면 화장실 청소 끝이잖아요. 근데 더 오래 있고 싶으니까 저는 막 문도 닦고 벽도 닦고 천장도 닦고 대청소를 그냥 매주 하셨네요. 자발적으로 근데 그래도 여자 화장실 청소는 할만한데 남자화장실 청소는 저도 좀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고 청소하는 중에도 인제 볼일 보러 들어오시니까 좀 난감할 때도 있고 그래요.
근데 그러면서도 기쁘고 내가 교회에 뭔가를 봉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딸아이가 이렇게 잘 지내는 거에 너무 감사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가 근데 또 반전이 있죠. 어떤 반전 화장실에는 휴지가 떨어질 때가 종종 있죠. 그렇죠. 근데 이제 그 교회를 오래 다니는 어떤 집사님이 휴지 떨어졌다고 저한테 짜증을 부리시는 거예요. 아 금 휴지도 내 돈으로 사다 놔야 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니 내가 교회에서 돈 받고 화장실 청소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 휴직까지 나한테 요구하신 게 너무 속상한 거예요. 교회 뒷마당에 가서 울었어요.
눈물이 나서 알아주기는커녕 내가 나한테 이렇게 까지들 하나 정말 가난하면 그런 건가 하면서 울다가 눈물을 참으려고 하늘을 봤는데 하나님이 내가 안다 내가 안다 그러시는 거예요. 정말 허공에서 내가 알어 내가 다 알어 그날부터 저는 억울한 일 속상한 일 남들한테 말할 수 없는 일은 다 하늘 쳐다보고 아버지 아시죠. 그러면 내가 안다 저는 그 힘으로 살았어요.
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세요. 그리고 다 아세요. 아유 참 담임 목사님이 기억하시겠네요. 그래도 네 담임 목사님한테 1번은 얘기를 했죠. 이런저런 집사님 꼰드리지 모르겠어요. 누구라고 말은 안 하고 화장실 휴지 많이 갖다 놓으시면 제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넣는 건 하겠다고 그러고 살짝 일렀죠 잘했어요. 네 근데 현명하신 목사님이 제가 기죽는 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교회에서 갈 때는 안녕히 계세요. 하고 가잖아요. 근데 저한테 그렇게 인사하지 말래요. 다녀오겠습니다. 네 집사님 또 오실 거잖아.
그리고 이 넓은 교회에 이거 집사님네 집이야 하나님 집은 성도의 집이야 그리구 손님이 주인한테 뭘 해달라고 요구하고 짜증을 부리는 거지 주인이 손님한테 그러느냐 이거예요. 성도님들이 집사님한테 뭘 요구할 때는 이미 집사님이 여기 집주인이니까. 그런 거야. 너무 지혜로우신 분이죠. 네, 그러니까 교회를 얼마 다닌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집사님은 우리 교회 집주인 된 거야. 이거 집주인이니까. 세상에 나갔다 다시 돌아올 집이니까. 서울에서 이만한 집 가지면 부자지 꿀릴 거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안녕히 계세요. 하지 말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목사님은 다녀오세요. 어휴 네 너무 위로가 되셨겠어요. 그죠 어느 교회 어떤 목사님이에요.
진짜 너무 어느 교회를 다니신 거예요. 네 말 못 해요. 네 또 반전이 있거든요. 진짜 비밀이구나 진짜 어떡해 어떡해 여기 오늘 반전대학이네 오늘 아니 근데 저는 궁금한 게 이렇게 헌금을 매 예배 때마다 이렇게 드리셨다고 했잖아요. 근데 예배를 예배마다 참석을 하시면 굉장히 많았을 거란 말이죠. 그렇죠. 그게 일주일에 만 원이 아니라 더 많았을 텐데 부도가 난 상황에서 이케 형편이 안 좋은데 어떻게 또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신이 나서 교회를 가긴 가는데 교회가 인제 일주일에 예배를 13번을 드리는 거예요.
새벽 예배 7번 수요 예배 금요 철야 또 주일날 1부 2부 전 세계에서 예배가 제일 많은 날 그래서 복도 제일 많이 받은 나라죠 네 이 저도 제가 매주 13번 교회를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이걸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근데 너무너무 신이 나서 교회를 다니는데 이게 만 원이 없으면 교회 가기가 그냥 못 가는 거죠. 영화를 1편 봐도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데두 만 원 정도 지불하잖아요. 근데 정말 이렇게 꿀보다 달고 나한테 영애 양식이 되는 말씀을 듣고 어떻게 만원도 안 내고 와요. 네, 그러니까 이 헌금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저는 그냥 헌금 없이 교회 간다는 걸 생각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 당시엔 제가 뭐 11조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집사가 된 것도 아니고 근데 목사님은 저에게 정말 집사 직분을 주고 싶으셨나 봐요. 근데 제가 정말 거지같이 가난하니까 명분을 만들고 싶으셨나봐요. 이제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구 했으니까 하루는 주일 설교 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교회 화장실에 밥알이 떨어져 있으면 교회 화장실에 밥알이 떨어질 리는 절대 없죠 네 밥알이 떨어져 있으면 나는 주워 먹을 수 있다.
그 말은 화장실은 너무 깨끗하다 예 목사님이 화장실 밥알을 주워 먹겠다고 할 정도면 그 화장실 청소를 1년 넘게 한 저에게 집사 직분을 주는 걸 누가 반대할 수 있겠어요. 네 저 화장실 청소하고 집사 됐어요. 예 그런데 교회도 세상에 축소판이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잖아요. 제가 목사님한테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 이걸 꼭 좋아만 하지는 않죠 결국은 그 교회를 떠났어요. 아유 그러셨구나 이게 또 반전인 거예요. 바뀔 수가 없었군요.
네 그래도 일천번제는 마치고 떠났는데 근데 저는 그게 일천번재라고 제가 제목을 붙일 줄도 몰랐어요. 그냥 나는 천만 원 천 번 그렇게 생각하셔 가지고 근데 이제 재정 헌금을 다루는 재정 집사님들이 자꾸 번호 붙은 봉투가 올라오니까 목사님한테 이거는 주보에다 어떻게 실어야 되냐고 그러네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아마도 일천번재 같으다 하시면서 일천번재하고 딸아이 이름을 숫자를 매주 주보에 올려주셨죠 음 그게 그 교회 최초의 일천번재였대요 예 다행히 일천번제는 마치고 떠났습니다. 그러셨군요. 당시에 인제 또 뭔가 일을 하셨을 거 아니에요. 어떤 일 하셨어요.
인제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대단지 아파트에 아파트 5일장이라 그래서 장사꾼들이 들어오던 풍습이 있어요. 주로 인제 경기도 내에 있는 이제 신도시 이런 대단지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서 저도 장사를 하게 됐습니다. 뭘 하셨어요. 쌀국수 팔고 근데 이게 인제 경기도에서 장사를 주로 하다보니 전날 내려가서 아침 일찍 자리를 선점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고 하니까 도저히 안되겠어서 어디든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해야겠대요 그런 생각을 하던 참에 하루는 집에 왔더니, 10키로짜리 쌀 포대가 하나 떡하니 문 앞에 있는 거예요. 교회에서 갖다 놨드라구요.
엄마가 집을 많이 비워도 안 되겠고 정말 이제는 닥치는 대로 뭐든 해야 되겠다. 근데 집에 뒤져보니까 현금이 딱 30만 원 있는 거예요. 집값 가운데서 리어카를 사서 장사를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벼룩신문을 열심히 뒤져서 30만 원짜리 리아카 나온 데를 찾아갔어요. 대단하시다 동서울 터미널 어유 또 거리가 좀 있네요. 돈에 맞는 리어카를 찾아서 거까지 갔는데 리어카를 파시는 분이 근데 아줌마 이거 갖고 어디 가서 무슨 장사하려느냐 묻더라구요. 그래서 재당 저의 젊은 시절에는 신촌이 가장 핫한 지역이었어요. 그래서 집하고도 가깝고 그래서 저 신촌 가서 장사할라구요.
그랬더니, 여기도 서울 터미널인데 신촌까지 리어카를 어떻게 갖고 갈 거예요. 30만 원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5만 원 깎아주시고 용달차 불러 주시더라구요. 그런데 척북적합니까? 좋으신 분이다. 그니까 세상은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정말 돕는 거 같애요. 맞아요. 그리고 이제 리어카를 내려놓고 장사를 시작할 자리가 또 문제잖아요. 근데 제가 퀴즈 하나 낼게요 노점상 노점상한테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굴까요? 구청 직원 단속반 아니에요. 노점상이 제일 무서운 건 같은 노점상이에요. 텃세를 하는 거야. 텃세랑 또 찔러 하나라도 더 늘어나는 게 싫은 거야. 그 구청 직원도 찔러서 나오는 거거든요.
예 그러니 같은 노점상이 상관 안 할 만한 자리 진짜 형편없고 별 볼 일 없는 자리에 갔다 리아카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죠.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 그죠 사람 인적이 드문 곳 그런 데는 다 있으니까 많은 곳엔 있으니까 그리고 노점상도 빈부격차가 있어요. 아 그래도요 노점을 좀 오래 해서 자리 잡으신 분들은 모터가 달린 전동 리어카를 쓰세요.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전동 리어카 시대로 바뀌었잖아요. 근데 저는 30만 원짜리 수동 리어카니까 이게 저녁에 들어갈 때는 치워야 돼요. 보통 주차장에다가 차 보관료 내듯이 1달에 얼마를 내고 이제 리어카를 맡기는데 수동 리어카를 멀리 끌고 갈 힘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주차장이 가까운 그리고 인적이 드문 거기다 리어카를 내려놓고 시작을 했어요.
아 그 자리도 이렇게 어떻게 보면 좀 자릿값 뭐 요즘에 추첨한다고들 하던데 제 시대 때는 사고 팔았죠 그러니까 이제 그쵸. 근데 제 노점상들이 저를 안 건드린 건 어차피 장사 안 될 자리니 저 아줌마 그냥 며칠하다 재료를 안 쓴 거지 예 제 풀에 그냥 그만 살 거다 예 그렇게 생각하고 저를 내버려 둔 거죠. 못 파셨는데요. 처음엔 그냥 떡볶이 길에서 흔히 내가 사 먹는 거 예 근데 맛을 낼 줄도 모르고 형편없었죠. 그러니까 파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고 예 가스는 하루 종일 켜놔야 되니 남는 것도 없고 형편은 없었어요.
근데 밑천이 없으니 뭐 이렇게 공산품을 떼어다 팔 수도 없고 장사는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밑천이 없으니 무슨 양말이라도 떼어다가 팔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어떤 분이 지나가다가 제가 인제 장사를 9월쯤 시작했는데 찬바람 불면 골목에서 팔아도 붕어빵은 잘 팔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긴 그래도 큰길인데 골목은 아니니까 그럼 붕어빵 팔면 밥은 먹겠다. 그리고 붕어빵이 계절 장사잖아요. 그래서 재료를 대주시는 분들이 붕어빵 굽는 기계도 그냥 무료로 빌려주세요.
겨울 한철 장사니까 네 그리고 자기 재료를 쓰는 조건으로 매일 재료 받아서 팔아서 재료값 주고 저한텐 딱 맞는 장사였죠 밑천이 없었으니까 왠지 잘 됐을 것 같애 자리가 안 좋아서 잘 안 됐어요. 그리고 또 반전이 있는 게 제가 이 나이인데도 편식이 심하고 팥을 안 먹어요. 사장님이 팥을 안 먹었는데 붕어빵 파시니까 참 이게 얼마나 예 아 또 반전이네 정말 예 왜 안 드세요. 팥 아니 그냥 제 편식 성향이에요. 팥하고 콩을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이제 장사를 할려면 장시간이니까. 배가 고프니까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는데 이 도시락을 길에서 먹질 못하는 거예요. 암만 배가 고파도 화병이 뭔지 그때 알겠더라고요.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요 그래서 싸간 도시락도 먹지도 못하고 지내던 시절인데 그래도 계속 꼬르륵 소리는 나고 일을 할려니 힘은 필요하고 그래서 붕어빵이라도 또 근데 이게 장사하다 보면 예쁘게 못 만들고 초보니까 터진 것도 있고 그래서 인제 그걸 먹는데 팥을 싫어하니까 팥을 탁탁 털고 껍데기만 먹는데 그럼 이 팥이 더러운 팥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걸 다시 팥 붕어빵에다 넣으려니 좀 찝찝하긴 하고 그래서 인제 맨 반죽만 구워서 먹으니까 너무 맛이 없고 근데 인제 도시락을 못 싸 갖고 다니면서 집에서 고구마를 삶아 갖고 나갔었어요. 드디어 나갔다 고구마 이게 첫 질문이 고구마였잖아요. 그래서 근데 인제 차가워졌잖아요.
그래서 그 고구마를 껍질을 벗기고 붕어빵 안에다가 요렇게 1덩어리 집어넣고 구웠죠 그러면 고구마도 따뜻해지고, 맛있겠다. 그래서 인제 그거를 끼니처럼 먹고 있는데, 팥붕어빵 사러 온 학생들이 아줌마는 노란 걸 드세요. 자기들은 까만 거 먹는데 혼자 먹다 들켰으니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조금씩 잘라주고 니들도 먹어봐. 어 맛있대는 거예요. 예 그래서 그날부터 고구마 붕어빵을 팔았죠 어머나 야 진짜 놀랍다 놀라워 팥을 못 드시는 바람에 그거 드셨으면 고구마 붕어빵이 안 나올라오겠죠. 그랬더니, 그게 인제 인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조금씩 인제 잘 팔리기 시작하는데 이 달달한 건 오래 못 먹어요. 질려서 저는 끼니잖아.
사가는 사람은 간식이지만 아니 며칠 먹으니까 이제 고구마 붕어빵도 못먹겠는 거예요. 어머 장로님 본인이 손님들한테는 권할 수 있지만 제 끼니가 되기에는 그들은 가끔 먹는 거지만 나는 매일 먹어야 되니까. 근데 저희 집이 이북에서 피난 온 집안이에요. 한경진 목사님과 함께 피난온 천막 교회를 세운 집안이다. 보니 근데 이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딱 대표적으로 2개가 있죠. 만두 냉면 만두 전 그냥 어렸을 때 하루 1끼는 만두 냉면 먹고 컸거든요. 근데 만두를 집에서 다 빚으니까 빚다가 그거를 속을 또 1숟갈씩 먹다가 빚으면서 1숟갈 먹고 빚으면서 그걸 생각하니까 아 만두 속을 여기다 넣으면 되겠다. 질릴 리가 없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그래서 집에서 신나게 만두소를 만들고 딸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초딩 입맛이니까. 거기다 케첩도 넣구 거기다 피자 치즈도 좀 넣어서 어머나 예 그렇게 먹으면 엄마가 더 좋 입맛에 맞고 좋을 것 같은데,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해 가지고 또 구워서 먹었죠. 신나더라구요. 근데 갑자기 또 누가 와가지고 뭐 드세요. 뻘건 걸 먹으니까 예 그래서 또 양심에 찔여서 또 시식을 했죠. 그랬더니, 맛있대는 거예요. 근데 이거는 속재료가 다양하니까 이름을 짓기가 난감한 거죠. 네네 그래서 인제 학생들한테 이름 좀 지어달라고 그랬죠 치즈 칠리 붕어빵 치즈 칠리 와 딱이다. 너무 근데 맛있어 보여요. 피자 붕어빵보다 훨씬 그러네 이름에서 오는 제가 그때 작명의 힘을 안 거죠. 맞아 이름이 중요해요.
우리 친구들이 아이디어가 신선하잖아요. 치즈칠리 붕어빵 야 정말 행복이 시작됐어요. 너무 잘 팔리는 거예요. 어머나 그래서 막 이대 라인에 붕어빵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겼어요. 장모님 가게 때문에 여기 장모님 가게 잘 된다. 소문났어 여기 잘 된다. 어머나 야 그랬더니, 인제 이대생들이 안타까웠는지 저는 자리가 나쁘잖아요. 이대 홈페이지 사이트에다가 진짜 원조는 이 아줌마다 여기다 거까지 찾아가라 가다가 다른 붕어빵집에 넘어가면 안 된다. 우리 2대 친구들 의식 있는 친구들 참 고맙네요. 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를 다 해준 거예요. 근데 이대를 졸업해서 언론계에 종사하시던 분들이 취재거리를 써치하던 중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제 길을 저에 대한 글을 보신 거죠.
그래갖고 그 당시에는 아침에 다들 스포츠 신문을 보셨어요. 맞아요. 다 스포츠신문 기자가 찾아오신 거예요. 이거를 신문기사를 쓰겠다고 웬일이야 네 스포츠 신문에 나갔어요. 그랬더니, 조선일보에서 오셨어요. 또 연이어서 이제 메이저 일간지에 나갔더니, 그다음에 KBS 방송국에서 찾아온 거예요. 터졌네 진짜 근데 그 해가 누가 카운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붕어빵의 시작된 100년째 되는 해라는 거예요. 참 그래서 붕어빵에 대한 취재를 해야 되는데 예 붕어빵의 변천사 여기까지 진화했다. 이거죠. 아 그래서 저를 취재하겠다고 오신 거예요. 모든 게 다 정말 척척 예 아니 제가 KBS 9시 뉴스에 나갈 일이라고요.
와 방송 탔어요. 더 잘 됐겠어요. 그 이후 여의도에서 택시 타고 막 붕어빵 사러 가지고 미디어 한번 타면 사람들이 막 찾아오잖아요. 근데 또 반전이 있죠. 붕어빵은 사계절 팔 수가 없어 그래 여름에 안 먹잖아. 겨울이 가고 봄이 가니까 이제 더 이상 팔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못 굽겠는 거야. 덥죠 너무 덥죠 예 만약에 붕어빵을 사계절 팔 수 있었다면 전 그냥 붕어빵 장사 여직도 하고 있었고, 붕어 대학 볼 뻔했네요. 붕어대학교를 볼 뻔했어. 네 그래서 인제 아 이제 붕어빵 못 파는 여름에 대신 뭘 팔아야 되나 밥을 굶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찾아다니다가 학생들 손에 와플이 들려있는 걸 발견한 거죠.
그래서 인제 여름에 와플 장사를 하자고 시작을 했는데 철없는 학생들은 여름에도 와서 고구마 붕어빵을 찾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와플 크림에다가 고구마를 삶아서 섞었어요. 우와 아쉬운 대로 고구마 붕어빵 대신 고구마 크림 와플을 먹으라고 예 그냥 하얀 크림에다가 삶은 고구마 넣고 그냥 휘저어서 고구마 크림을 만든 거예요. 이걸로 또 당분간 행복했죠. 근데 이제 아이디어가 자꾸 하나님의 지혜죠 새벽 예배 하루도 안 빠지고 일천 번재도 너무너무 신나서 하니까 하느님도 저한테 재미를 더 주시고 싶으셨나 봐요.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이라 저는 숫자 중에 제일 좋은 숫자가 12 12 네 가당치 않게도 12가지 크림을 만들어보자 써리원이 아니라 여기는 투입으로 갖고 베스킨라빈스를 네 12가지 크림을 만든다고 정말 되지도 않는 크림을 뭐 막 만들었어요. 그 크림을 12개를 리아카에 구멍을 뚫어서 담고 나름 위생적으로 하겠다고 아크릴로 뚜껑을 맞춰서 덮고 이 리아카를 밀고 나가는 날 정말 태어나서 가장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한테 했어요. 10키로짜리 와플 믹스 한 포대만 팔면 계산해 보니까 제 수입이 1달에 500원 되겠더라구요.
하나님 정말 믹스 10키로 한 포대만 팔게 해주세요. 그러면 하나님 시키는 일 다 하고 살게요 예 남은 인생 하나님한테 바칠게요 그날 팔았어요. 하루에 다 팔았어요. 그거를 12가지가 무슨무슨 맛이 있었어요. 그게 그 말이에요. 나 지금 배고파지면서 불이 지금 너무 막 이따가 가면서 먹을 거야. 꼭 아 진짜 배가 확 고파졌어요. 지금 무슨 맛이 있습니까? 고구마 크림을 선두로 커피크림 커피가루 넣고 막 이거 맛있겠다. 네 오렌지 주스 타는 오렌지 분말 넣고 오렌지 크림 포도크림 그냥 정말 어거지로 12가지 그림 목동에 여기 와플 대학 혹시 어디 있나요? 있습니다. 방금객 꼭 한번 사보세요.
많이 진화해서 지금은 모카크림 요거트 크림 블루베리 크림 지금 더 늘어났어요. 그대로 12가지가 아니고 지금은 10가지가 됐어요. 왜냐하면, 고객분들이 이 10가지 크림을 자꾸 베스킨라빈스를 연상해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으로 착각하시는 거예요. 네 그래서 인제 10가지 아이스크림까지 지금 하는 단계에 와서 예 지금은 텐텐 전략으로 10가지 크림의 10가지 아이스크림 처음에 그 파던 날 팔던 날 첫날 학생들 반응이 어떻든가요 저 막 시식했어요. 예 마트에서 시식하듯이 잘라서 먹어보라 하고 그리고 학생들도 이게 너무 다양하니까 이 크림 저 크림 먹어보고 싶다 그러면 요기 반 발라주고 요기 그렇지 원하는 건 다 해줬죠 짬짜면처럼 어차피 반반씩 예 그리고 또 찬바람이 나니까 붕어빵도 찾잖아요.
이제 업종이 2가지가 아 붕어빵도 팔고 와플도 팔고 딸아이가 나와서 하나는 도와주고 정말 얼마나 돈을 잘 벌었겠습니까? 등 따시고 배부르고 넉넉히 헌금할 수 있고 그러니까 목표를 다 하셨네요. 원하시는 대로 돈을 벌면서 가장 행복했던 게 아 헌금을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게 가장 기뻤어요. 지금 드라마 보는 것 같아요. 제빵왕 조탁본 봤어도 예 이런 거 야 정말 근데 사실 와플 대학을 하시겠다고 찾아오신 분들하고 인제 상담을 하다보면, 그냥 제가 편안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분들도 이 장사를 하기까지 결심하게 된 데는 다 그만한 우여곡절들이 있으시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드라마 같지 않은 인생은 세상에 없다고 다 울고 시작했어요. 예 돈이 얼마 있어요가 아니고 사연 듣다가 울구 그래 돈이 그거밖에 없으면 어떻게든지 해보자 그 돈 갖고 해보자 이러고 시작했죠. 아니 그 노점 생활하시면서 성경을 많이 읽으셨다고 하는데 뭐 성경책 읽을 겨를이 있어요. 장사하실 때 전혀 없죠 예 계속 손과 눈이 계속 로보트처럼 반짝거리 이렇게 가잖아요. 이게 뭐 만들어 놓은 예를 들어 양말이나 이런 걸 판다고 그러면 손님 올 때까지 한가위 기다리면 되니까. 성경을 볼 수 있지만 저는 계속 만들어서 팔아야 하니 성경 볼 시간이 없죠 근데 성경이 너무 재미있고 성경 말씀을 너무 접하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못 되니까.
쪼끄만 성경책 사서 보다가 반죽통에 빠트리기도 하고 예 마태복음만 따로 돼 있는 또 성경 사서 보다가 네 또 물에 젖기도 하고 너무 말씀이 사모가 되는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1구절씩 암송을 했어요. 예 일주일에 1절만이라도 네 말씀을 계속 입에서 되뇌이면서 암송하면서 이번 주에 1절을 외웠으면 다음주에는 또 그다음 절을 외우고 머리가 안 좋으니까 그 2절을 또 붙여서 암송을 하고 네, 그렇게 머릿속의 성경을 갖기 시작했죠. 예 그런데 가장 은혜가 되는 말씀 장이 저는 히브리서 11장이었어요.
믿음의 장이라고들도 많이 말씀하시죠. 진짜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들이 쫙 나열돼 있죠. 근데 그 장이 그렇게 저한테는 감동인 거예요. 이 하나님의 역사 히스토리 네 근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저는 야곱에서 딱 멈췄어요. 야곱을 참 다양한 평가를 하는 인물이죠. 근데 야곱에 대한 표현이 히브리저 11장 23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야곱이 죽을 때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계했다. 근데 저는 그 지팡이라는 단어 1에서 정말 심장이 딱 멈추더라구요.
지팡이에 의지할 때까지 내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어 내 마지막이 하나님 경배하는 거로 끝날 수 있다면 예 저는 정말 그게 가장 큰 행복일 것 같아요. 가장 보람된 인생이고 예 그 미국의 인앤아웃 버거라고 햄버거집 아세요. 잘 몰라요. 캘리포니아에 있는 햄버거집인데 거기는 우리가 콜라랑 사이다를 직접 뽑아먹는 그 컵 일회용 컵 있잖아요. 고 밑에 잔 뚜리 식스틴 적어놨어요. 모든 컵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와플 대학도 나중에 포장지 어디 한편에 히브 있어 11장 23절 뭐 이렇게 하나 적어서 하면 좀 그런 좋은 걸 따라 해도 좋잖아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와플을 먹는 사람들마다 그 말씀이 계속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차피 밀가루 반효통에 또 성경채도 빠트려 주셨으니까 다 들어가 있어요. 부분이 예 복원 냄새가 확 날 거예요. 아니 뭔가 듣다 보니까 하나님이 쓰신 1편의 드라마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장로 님도 그런 생각드실지 모르겠어요. 아니요. 저는 그냥 음 제가 노점을 탈출하고 이렇게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돌아오고 저한테 가장 달라진 변화가 제가 가난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거예요.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를 확인도 안 해보는데 나는 절대 가난한 느낌이라는 게 없는 거예요.
계획대로 제가 50여 년을 살아서 계획대로 된 거 하나도 없잖아요. 네 사람은 끝이 좋아야 좋은 거죠. 예 제 끝을 제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더라고요. 하나님을 알고 난 이후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내가 있다. 나는 모르는 그 계획 근데 굳이 알아서 뭐 해 그냥 내가 오늘 누굴 만날지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할지 그 하루하루가 쌓여서 하나님이 계획한 끝까지 갈 건데 그 끝을 굳이 알아야 하냐? 어 그냥 오늘 하루의 조카다 예 아무 계획 안 세우고 삽니다. 저랑 똑같네요. 계획이 없어요. 전혀 계획이 어차피 하나님이 하실 거잖아요. 알아버렸어요. 너무 편해요.
그래서 걱정도 없고 예 걱정이 없어요. 사업하면서 저만큼 태평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사업이라는 게 100% 100가지가 이루어져야 성공을 하는 게 사업인 것 같아요. 단 한 가지만 삐끗해도 사업은 언제 망하든 망해도 이상한 게 아니거든요. 그럼 사업은 원래 망하는 거야. 네 단지 언제 망하느냐일 뿐이죠. 근데 저는 정말 저 같은 사람이 아직도 16년째 와플 대학을 하고 있다는 거 사람들이 와플 대학이 16년 된 브랜드라고 그러면 깜짝 놀랐어요. 진짜 아 그래요. 이게 16년 전 얘기였어요. 2008년도에 신촌에서 와플대학을 시켰는데 뭐 한 3년 4년 안에 이렇게 생긴 브랜드인 줄 알았어요.
16년째 이거를 하고 있는 브랜든데 사람들도 깜짝 놀래죠 근데 아직도 안 망했다. 네 근데 저처럼 부족하고 성격 급하고 남의 말에 잘 속아 넘어가고 결정 쉽게 내리고 사기도 당했는데 원래 그런 분들이 사업합니다. 남의 말 안 듣고 귀 두꺼운 사람은 사업을 못 해요. 그냥 남이 주는 월급 원래 귀 얇은 사람들이 사업하는 거예요. 충동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거예요. 근데 정말 왜 아직도 안 망할까 그냥 이유는 딱 1가지다 이건 하나님 와플 대학 망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하나님 그거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맨날 허당이고 맨날 실수고 네 아무 신중함도 없는 결정을 내리는데 정말 망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님 1가지 그러니까 와플 대학이 망하지 않은 걸 보면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건 와플대학이 아직 안 망했기 때문에 네 저는 그렇게 얘기해요. 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큰딸 지금 몇 학년 어떻게 됐어요. 그 후에 좋은 대학교 갔고요. 검정고시로 그래서 미술 계속 했어요. 네 미대 갔구요. 어머나 서울에서 10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교 갔구요. 4년 장학금 받았구요. 3학년 때 총장상도 받았구요.
믿음 좋은 신랑하고 결혼해서 딸아이 낳구 그냥 남편 하고 사이좋게 잘 삽니다. 제가 볼 때 와플 대학의 성공에는 한 5할은 따님 역할이 했으면 역할이 있었다고 봐요. 지금은 또 작은딸이 저를 많이 도와줍니다. 그렇군요. 딸도 훌륭하게 잘 키우셔서 이렇게 정말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그냥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어요. 장모님이 여기서 그 이후로 행복하게 계속해요. 그냥 저 철들었으니까 네 요즘 젊은 청년들이 교회 봉사하고 신앙 좋은 걸 보면 저는 정말 나는 저 나이 때 뭐 했나 와플대학 대표로 이 자리에 나왔지만 와플대학 대표가 제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 안 해요.
진짜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뒤늦게 늦깍이 장로가 됐는데 어 장로 직분이 제 마지막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랑 정말 친한 분들은 저한테 대표님 안 그래요. 장로님이라고 장로님 장로라는 자리가 얼마나 또 힘든 자린지 모르구 장로 됐어요. 와플대학이 이렇게 잘 될 거라고 몰랐을 때 장로를 승낙했거든요. 겁도 없이 어떻게 장로가 됐냐면요 지금 저희 지저스처치 목사님께서 제가 협동조합할 때 감사직이 꼭 필요한데 감사직을 부탁할 분이 없는 거예요.
어디 가서 단돈 10만 원 꿔달렐 데도 없고 이런 걸 부탁할 분도 없는데 그런 푸념을 목사님 앞에서 한 거예요. 근데 목사님한테 해달랜 게 아닌데 푸념인데 목사님이 정말 1초도 생각 안 하시고 제가 감사해 드릴게요. 이러시는 거예요. 그때 결심했죠. 목사님 정도 되는 분이 나 같은 가난한 성도에게 평생 무슨 부탁하실 일이 있으랴 그렇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목사님이 나에게 뭐라도 부탁을 하시면 나는 0.1초도 생각 안 하고 예스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목사님이 첫 부탁이 장로 돼 주세요. 아 장로가 뭐드라 장기간 노는 사람 장미 그냥 노동하는 사람 저희 집에 장로 목사 전도사가 하도 많아서요.
일 안하고 교회 가서 맨날 있는 장로님 고모부 막 이런 분들 보고 장기간 노는 사람이지 그렇게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수락을 하실 수 있었죠. 0.1초도 고민 안하고 예스하기로 했기 땜에 예스 네 하고 받아들였는데 정말 네 제게 드리겠습니다. 지은 많은 죄를 담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예예 그래도 우리 지저스 셔츠 목사님이 그때 감사하신 게 정말 감사한 그럼요 저는 와플대학이 협동조합에서 프랜차이즈로 이렇게 자리를 지켜나가면서 여러 가지 사업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이유 중에 또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목사님은 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원치 않으신대요 100명이 모이는 100개의 교회를 하고 싶대요 네트워크화된 교회 그래서 제가 목사님 보고 철없을 때 그랬어요. 저는 막 풀 데 프랜차이즈 하는데 목사님은 교회 프랜차이즈 하고 싶으신 거네요. 제가 열심히 배워서 노하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지금 네 번째 지저스 처치를 열었습니다. 아 그래요. 네 번째 어떻게 보면 이제 계속 열매를 맺어서 네 번째 교회까지 저희 교회에 아직 100명이 모이지 못하는데요. 예 그래도 지저스 처치는 4~5점이 나왔죠 그러니까 100명 여기서 400명을 앞두고 있는 거네요. 그죠 네 대단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방송을 보고 계실 그 그 단칸방으로 이사해서 주저앉아서 내일이 막막하고 캄캄했던 그 시절에 나와 같은 지금의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저도 지금 말씀을 드리면서 제가 처음 저는 이제 그때 혼자였지만 젊은 시절에 500에 37만 원짜리 원룸을 얻고 처음 이삿짐을 풀던 날이 기억이 갑자기 나는 거예요. 나 이거 어떡하지 37만 원도 낼 돈이 없는데 그 500 보증금도 빌려서 왔는데 나 이거 어떡하지라고 방에 앉아서 주저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렇게 내일부터 어떡하지라고 아주 캄캄하다고 느끼는 많은 이 땅에 또 같은 시간을 겪고 있을 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사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건 음 믿지 않는 분들에게는 거짓말 같은 얘기고 믿어볼까 하나님이 정말 있을까? 하는 친구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얘기예요. 예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 기간이 꽤 길었죠. 답답하고 저는 그때 아무 성경책이나 폈어요. 그리고 미친 듯이 읽고 미친듯이 쓰고 이 안에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근데 아무도 인도해주지 않잖아요.
예 그런데 그냥 제가 오늘 나와서 쭉 얘기한 간증 예 제가 겪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 옆에 계시고 손 내밀면 손 잡아 주십니다. 어 어플대학에도 손의 손잡고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근데 제가 그걸 만들면서 그랬어요. 누워있고 앉아있고 아무것도 해볼 생각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려는 그런 프로젝트는 아니다.
살아보려고 손을 내밀 때 일어서 보려고 손을 내밀 때 누군가 그 손 한번 잡아주면 그 사람은 사는데 예 까 우리가 그 손 한번 잡아 주자 그리고 만든 프로젝트인데 저같이 정말 이런 인생도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 줄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는데 사랑이 넘치시고 은혜가 넘치시는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의 손을 내밀면 안 잡아줄 리가 없잖아요. 네 주변 사람들 말 듣지 말고 교회 가서도 교회 사람들 말도 듣지 말고 그냥 하나님 손 내밀어 주세요. 제 손 좀 잡아주세요. 네, 그러면 돼요.
아유 참 오늘 이 방송을 보고 계실 저는 다른 시청자들보다 2007~8년 9년 그 무렵에 이대를 다니면서 장로님의 붕어빵과 와플을 직접 드셨을 그 학생들이 이 방송을 보시면 얼마나 어머나 저분이 와플 대학의 저분 거였어. 얼마나 깜짝 놀랄까 내가 그때 간혹 저희 매장에 그런 학생들이 와서 이 와플 대학이 그 와플 대학이냐고 묻는데요. 내가 연대 앞에서 이 대 앞에서 먹었던 그게 그 와플 대학이 이 와플 대학이냐고 물어보고 맞다. 그러면 박수치고 좋아한대요 이번 편에 특히 좀 댓글 좀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식으로 잘라준 것들 이렇게 먹으면서 사장님 이게 맛있어요. 저게 맛있어 했던 그분들이 보시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치즈칠리 붕어빵 이름 붙여줬던 학생 저도 만나고 싶구요. 치즈칠리 이름 붙여줬던 시청자 찾습니다.
네 저희가 와플 20회권 저희가 선물 나중에 와플 대학 총동문회 한번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겠네요. 다 모여서 아유 오늘 너무나 뭐 정말 재미있고 은혜가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하느님 살아계시다를 느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팀장님 어떻게 들으셨어요. 저는 장로님 그 관중 중에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나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참여한다. 됐기 때문에 내가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지 않고 오늘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하루면 족하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거든요. 사실 믿지 않는 분들은 점쟁이한테 가서 묻잖아요. 저 어떻게 될까요? 퇴사할까요? 누구 만날까요?
내 인생의 타임라인을 굉장히 궁금해 하면서 살아가고 알면 조금 더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냥 이미 하나님이 이제 운영하시는 우리 인생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한 자로 살았을 때 가장 평안하게 살 수 있구나 그 평안함을 선물로 받은 자들이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웬만한 여목사님보다 총격리를 너무 잘해 주시죠. 네 요즘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제가 새벽마다 베란다에서 기도하세요. 따님 왜 그래 어휴 너무 뜨거우신데, 아니 저희가 얘기를 들으니까 와플 대학이 곳곳에 지점이 생기면 캠퍼스라고 한다. 그러더라구요. 대학이라는 이름 덕분에 저희는 개점하는 시간도 등교시간 문 닫는 시간도 폐교시간 그니까 학교 끝날 때 너무 신박하다 진짜 그리고 땡땡 점이 아니고 땡땡 캠퍼스 좋네요.
그리고 저희 이제 와플을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와플 클래스도 열어서 수료증도 주구 네 오늘 같이 온 제 동생이 와플클래스 총장님이십니다. 그러시군요.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는 와플 대학의 곳곳에 캠퍼스가 생기는 것처럼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로님으로서 기도하시면서 곳곳에 하나님의 또 나라를 계속해서 세워가는 이 멋진 후반전의 사역을 위해서 저희도 함께 기도하고,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장로님의 간증이 너무나 영화 같고, 드라마 같단 얘기를 많이 했는데 붕어빵 왕 손정이라는 이 1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드라마에 악역이 안 나오는 드라마 참 재미없죠 사기꾼이라는 악역도 등장했고 예 아주 많은 악역들이 등장했고 화장실에서 휴지 없다고 성질내는 집사님도 등장했고 하나님께서 이 손정희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장치인들도 두셨지만 결국은 그 내 한 영혼인 손정이라는 영혼을 내 곁에 두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건져내시고 그 눈물의 빵을 드시면서 견뎌냈을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 비로소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장로님으로써의 자리에 그래서 이 아름다운 스토리가 완성이 됐는데 이 스토리를 우리가 감히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인가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느님께서 다 준비하셔서 한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만드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작품을 감상하시는 분들도 많이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면서 내가 꿈꾸는 하나님 그리고 내가 그 방 500만 원짜리 방에서 그렸을 내일은 지금의 내일이 아니었을 텐데 내가 상상하지 못한 나중을 창대한 이런 마지막에 해피엔딩의 스토리로 이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 캠퍼스가 점점 뻗쳐 나가듯이 하나님의 복음이 씹어진 사업으로 번창하셔서 하느님께 큰 영광 돌리는 기업으로 성장하시기를 저희도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기획관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