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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2014.07.20 플레이웨어즈에 작성했던 리뷰를 옮긴 것입니다.
2016.01.06 수정.
게임 트레일러와 게임 정보를 추가했습니다.
이후 리뷰들의 링크를 포함했습니다.
얼음병정의 게임서사평론 - 과연 해피 엔딩일까?『투 더 문』
(제공 : Kan Gao)
개발 : 프리버드 게임즈
유통 : 스팀
발매 : 2011. 11. 01
[투 더 문]은 '기억 조작을 가지고 인생을 감성적으로 그려냈을 때, 그 행동에 대한 도덕적 문제점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제에 불가능이라는 마침표를 찍어준 작품이다. 쉽게 말해 "스토리텔링에 실패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을 대단히 감성적인 작품이며, 스토리텔링이 우수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물론 우수하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는 엔딩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행복해졌으니 해피엔딩이 아니냐" 라거나 "현실은 시궁창 아니냐. 배드엔딩" 또는 "리버만 불쌍해졌다. 새드엔딩" 이 세가지가 대표적인 주류인데, 이들의 편차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유야무야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때문에 지금부터 [투 더 문]의 스토리라인을 다시금 따라가보고자 한다. 이 작품이 어느 면에서 스토리텔링에 실패했는지 엔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찬찬히 살펴가 보자.
작품의 주동인물은 '존'이다. 그리고 '존'이라는 인물에 깊이 관여하는 인물이 아내 '리버'이다. 이야기는 존과 리버간의 상관관계를 시간을 역행하면서 보여주는 구성방식을 선택했다. 때문에 사건의 원인이 후반부에 등장하면서 "왜?"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이로 인해 작품의 성격은 중후반부까지 서스펜스를 끌고 간다. 그러다 후반부에 로맨스로 급격하게 탈바꿈한다. 부자연스러운 구성방식이다. 엔딩의 유야무야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줄거리의 흐름을 제대로 다시 파해쳐보기 위해, '존'이라는 중심인물을 기반으로 시간순서대로 파악해보도록 하겠다.
조니는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은 인물이다. 이 바람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한다. 어머니가 형제 조이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인식. 때문에 조니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예컨대 리버와 존이 처음 대면했을 때, "어, 모두가 이름이 똑같으면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어?"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서술에서 많은 사람들이 '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자신 또한 '존'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환멸을 느낀다는 것을 내포한다. 반면 '조이'라는 이름은 남성에게는 흔치 않은 이름이라는 서술이 후반부에 나온다. 이런 점에서 '조이'라는 인물에 '존'이 얼마나 많은 열등감을 가지는지, 그것이 존의 인격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리버와의 첫 대면에서 조니는 "어른들은 언제나 그럴듯하게 말을 지어내니까" 라고 말한다. 조니의 어른들에 대한 시각을 위 서술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존은 누군가에게 배풀거나, 자신을 남들에게 드러내거나, 자신의 장점을 남에게 자랑하면서 자존감을 유지하고자 한다. 예컨대 리버와의 첫 대면에서 리버가 '오리너구리'를 탐내자 리버에게 그것을 선물하고, 리버가 덜렁댄다고 하자 가방이 도움이 될거라면서 리버에게 주고는 사라지는 모습에서 이러한 존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다. 리버에게 오리너구리를 선물할 때, 그가 했던 대사를 기억하자.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난 두더지잡기 일인자니까!" 두더지잡기 때문에 조이와 엄마와 다투었던 것이 바로 요 몇 분 전이라는 것을 그대들이 기억한다면 필자의 이런 판단이 결코 억측이 아님을 알 것이다.
조니는 리버와 만날 약속을 했다. 혹여 둘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달에서 만나면 된다고 했다. 이 만남은 리버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장면에서 리버는혼자 생활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언제나 오리너구리만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존이 선물한 오리너구리다. 초등학생 때 이름 모를 한 남자아이에게 받은 오리너구리 인형을 고등학교가 될 때까지 학교에 들고다닐 정도라면 그 애착은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조니와의 만남이 리버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다. 한 편 그녀의 인생은 줄곧 외톨이였으며, 의지할 곳은 오리너구리 밖에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다른 이들과 소탈하게 지냈다면 그 오리너구리가 그 시점에까지 남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들으면 모두 씻고 싶어진대"라는 대사에서도 위와 같은 면을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리버는 존에게 "한 번 정도라면... 모두가 같은 이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라고 말한다. 둘의 첫 만남에서 리버는 평소 자기가 밤하늘을 바라보던 자리를 이름 모를 한 아이가 차지하고 있자 소리 없이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런 장면에서도 평소 그녀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소극적이고 내향적이다. 조니는 리버와 말동무가 되어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공감해주며, 그녀가 찾은 밤 하늘의 토끼별자리를 같이 찾아주었다. 그녀에게 오리너구리를 선물하고 덜렁대는 자신을 위해 가방도 남겨주었다. 자존감을 위해 한 행동들이다. 하지만 리버에게는 감명깊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위의 작품은 서술들로 '리버는 존에게 의지하고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구체화한다. 또 둘의 결혼 생활이 늘 존이 리버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것, 그로 인해 리버가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사건이 벌어진다. 후진하던 어머니의 차에 조이가 치여 숨진 것. 어머니는 크게 충격을 받고, 조니는 어머니에게 "왜 조이를 죽인 거에요?"라고 묻는다. 이후 어머니에게 있어 '조니'라는 인물은 '조이'에 대한 죄책감을 질타하는 반영물되고, '조니'에게 '조이'를 투영하려고 한다. 예컨대 어머니가 그 이후부터 '조니'를 '조이'로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날 이후로 결국 '조이'라는 인물에 집착하게 되고 '조니'를 '조이'로 변이 시키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조니'는 베타블로커'를 처방받으며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조니'라는 인물과 '조이'라는 인물이 혼재되어있는 '존'이라는 인물만 남는다. (필자는 확실한 구분을 위해 유년의 존을 조니로, 베타블로커 처방 이후를 존으로 부르겠다. 이점이 이후의 구분에도 쉽다고 여겨진다.)
엄연히 말해 존은 조니가 아니다. 조니는 [애니모프]를 좋아하지 않았고, '올리브 피클'도 좋아하지 않는다. (애니모프와 올리브 피클을 좋아하던 건 조이다.) 조니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고, 그 형제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존은 외동아들이고, 유년시절 [애니모프]를 즐겨봤으며 (내용은 모른다.) 올리브피클을 즐겨 먹는다. 존에게는 열등감은 남아있지 않는다. 자신을 조이라고 부르는 이해 못할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그저 특별해지고 싶다는 특별함에 대한 열망만 남은 상태다. 유년 시절 기억과의 단절은 존과 조니의 분별을 야기했다. 존과 리버의 관계는 여기서 형성된다. 리버가 기억하는 존은 조니이지만 존은 조니가 아니다. 더이상 리버에게 배려나 과시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존이 리버에게 관심을 보인 이유도 '특별함'에 비롯한다. 기존에 그가 가졌던 '자존감 확립'과는 분명히 다른 이유다. 리버와 함께 있으면 자신도 특별해질 것이라고 믿은 존은 그녀에게 관심을 표한다. 이를 계기로 존은 그녀를 위해 헌신한다. 한낱 자존감 때문이 아니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20대 쯤에 리버에게 선청적인 인격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의 치유에 힘쓴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그녀가 등대를 좋아하니 그 등대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으로 집을 짓기도 한다. 둘의 관계는 '마이웨이'로 흘러가는 리버와 그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존 사이의 간극으로 표현된다. (이 점에는 존이 리버에게 접근한 동기가 불순했단 것에 죄책감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으리라.)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기부턴 확실치 않은 단순한 예측이다.) 리버가 유독 존과의 대화에서 ... 으로 끝나거나 쉬는 장면들이 많은데 존의 태도에서 리버는 존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던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조니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중년에 다다라서야 존은 자신이 아내에게 접근했던 이유를 알려준다. 존은 미안함과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나, 리버에게는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리버에게 위 고백은 '이 남자는 나와 맨 처음 만났던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후 리버는 존이 둘의 첫 만남을 떠올릴 수 있도록 종이로 토끼를 접거나 등대를 보거나 한다. 이 장면을 리버가 존의 기억을 깨워주기 위한 헌신으로 잘못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존을 위해 헌신한 것으로 해석하려면 리버가 존이 베타블로커를 처방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는 위와 같은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 서사의 틈에서는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이는 작품 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제공하기 마련이다. (직간접적으로) 의도적으로 감춰질 곳은 의도적으로 감추고, 그것을 해석가능하도록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어찌되었건 전달가능하도록 서술한다. 그러니 리버가 존의 상태를 전혀 몰랐다고 생각하고 봐야 한다. 이 경우 위 행동은 '존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기억을 존이 함께했으면 한다'는 욕심에서 비롯한 행동이다.
이렇게 보면 노년의 존을 이해할 수 있다. 존은 평생에 거쳐 리버에게 주는 사랑만을 했다. 그녀를 위해 등대 가까이 집을 짓고 그녀를 위해 작곡하고, 그녀에게 창작곡을 연주해주기 위해 피아노를 1층에서 2층으로 옮기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리버가 병에 걸려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존은 리버를 위해 짓고 있던 집을 포기하고 리버의 수술비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리버는 집을 완성시켜주기를 바랐다. 존은 리버를 살릴지 집을 완성할지 고민한다. 친구 이사벨은 그런 존에게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이른다. 그러자 존은 "이 일이 모두 리버에게만 중요한 일이야? 난 어떻게 되는데, 응?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 난 딱 한 번만이라도 이기적이면 안 돼? ... 난 혼자가 되기 싫어, 이사벨." 이라고 답한다. 오랜 시간 리버에게 맞춰주던 존은 처음으로 리버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사벨은 존에게 독선적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존은 리버의 수술비를 위해 집을 허물지 않는다. 그녀가 세상을 등진 이후 리버가 그토록 원하던 집을 완성한다. (리버가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어쩌면 이렇게 해서라도 존이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주길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녀는 결국 세상 모든 등대, 별들과 친구가 될 것이기에 등대를 보살피는 것은 자신을 보살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까워 한다.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우리를 지켜봐주지?" 하고 말이다.
그 이후로 그는 달에 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지크문트 인생형성사무소에 의식을 잃기 전에 의뢰한다.
여기까지가 존의 인생사이다. 자 앞서 말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다시 후반부를 정리해보자.
로잘린과 와츠의 시각과 관점 대사들을 종합해보면 뚜렷하게 두 사람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로잘린은 리버를 중심으로 사건을 보고 있고, 와츠는 존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고 있다. 때문에 둘의 선택은 극명하게 갈린다. '조니'를 되살리느냐, '존'으로서 남기느냐. 로잘린은 전자를 선택했고 와츠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존을 달로 보내는 일은 '존'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숱한 도전과 그의 인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무리해도 존은 달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노년에만 달로 보내달라고 로잘린과 와츠에게 부탁한다. 달에 가겠다는 열망은 '존'의 열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약을 완수하려면 이 욕망의 소유주인 '조니'를 깨워야 한다. 해결책은 이렇다. 존의 인생에서 리버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조이이의 사망을 없던 일로 하는 것. 이렇게만 조작한다면 존에게 조이에 대한 열등감이 살아날 것이고, 상대적 박탈감도 살아날 것이고,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생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리버와 달에서 만난다는 약속을 기억해낼 것이고 그를 계기로 '특별해지고자'하는 열망이 살아날 것이다. NASA로 가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청소년의 조니가 생겨날 것은 자연스럽게 예상해낼 수 있다. 이는 리버가 원하는 방향이다. 반대로 와츠는 존이 이대로 남아있길 바란다. 이유는 당연하다. '존'은 자신의 기억에서 리버가 사라지길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조니는 존이 아니다. 조니가 살아난다는 것은, 존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당연히 리버를 사랑한 기억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영감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와츠의 입장은 이 한마디로 축약된다. '조니'가 살아나 행복한 것은 '조니'의 행복이지, '존'의 행복이 아니다. 리버를 사랑하고, 리버를 위해 헌신하고, 끝내 리버를 위해 리버를 보낼 수 밖에 없으며, 리버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리버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리버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고등학교때만 해도 죽도록 싫어했던) 그림으로 그려가며 그녀를 그리워했던 존이 의미없이 사라지게 된다. 투더문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선택이 나비효과로 번지게 되고, 세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투 더 문이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위의 내용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은 아래의 서술이 증명한다.
(잊혀진 대사)
(존에게서 리버가 사라지고)
('존'역시 존에게서 사라진다)
결국 와츠는 실패하고 로잘린이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존의 인생이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존의 인생에서 리버가 사라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그 재구성 씬은 사실 정확히 하자면 존(외형)을 구성하고 있던 '존'(인격)이 사라지고, 그 대신 '조니'가 인생을 재구성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존'이 사라지는 씬인 것이다.
'존'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다시 리버를 만나게 된다. 달에 가겠다는 염원은 '존'의 것이었으나, 이는 다행이 '조니'에게도 남았다. 존이라는 인생을 지탱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리버를 보겠다는 간절한 염원만은 남은 것이다. 이 가슴아픈 사연은 리버를 위해 작곡한 '리버에게 (For river)'의 이름이 '달로 (To the moon)'로 바뀌는 요소를 통해 형상화한다. (이의 구체화는 달과 등대를 통한 서술이 보충한다.) 리버라는 뚜렷한 목표가 희석되고, 달이라는 매개체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리버는 전자의 리버에게라는 이름은 싫어하고 달로라는 이름은 좋아한다.
조니는 자신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인생'을 모두 구성한다. 그리고 리버와 함께 달로 간다. (ㄴㄴ 쟤네 달로 못감. 저거 우주왕복선이라 달에 착륙 못함. 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철저히 존의 기억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 농구코트도 모두 사각으로 되어 있다고 인정할 참인가?)
엔딩의 우주선 안에서 달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에서, 그의 신체에 이상이 생기자 우주선 안에서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리버는 그를 바라보다 '처음으로' 존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처음으로' 리버에게 손을 받은 존은 함께 앞을 바라본다. 그 둘의 앞에 달이 점차 가까워져 오고, 존의 심장은 박동을 멈춘다.
스토리를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면 보이는 것들이 꽤 있다. 결국 리버는 죽은 후에야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었다. '존'은 일생 리버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로 소멸되고, '조니'가 살아나 비로소 리버에게 사랑을 받는다. 존이 달에 가고싶다고 생각한 것은 리버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낸 열망이었다. 하지만 조니는 리버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니가 달에 가겠다고 다짐한 것은 '존'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라 오직 '리버'에 대한 마음만 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멸해가면서 조니에게 기억을 바톤터치 하면서까지도 남겨둔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 필자는 결국 리버는 구원받았으나 존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원하던 그녀와의 이해와 나눔은 그의 머릿속에서 가능했지만 존이 원하던 리버의 사랑은 존이 사라지고 대신 조니가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헌신은 결국 어떤 매력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모두들 리버가 불쌍하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리버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존이라는 인물이 쌓아온 인생 모든 것이 사라졌음이 그녀의 것보다 더 크다고 느낀다. 또 이것이 본래 투 더 문이 하고자 하는 얘기이다. 그러나 모두 리버의 존재에 묻히고 말았다. 시간순서대로 서술했다면 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전반부에 던졌던 의문들이 중간과 후반에 고루 분포하게 되면서 서사 진행이 안정적이게 된다. 시간 역순의 문제는 서스펜스와 로맨스의 급격한 긴장감 교체를 야기했다. 이 때문에 서스펜스적 기반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시간 순서대로 서사를 진행시켰다면 반대로 로맨스가 묻힐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로맨스와 도덕 문제는 섞일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보다 더욱 실망스러운 건 반전구성을 이용했단 것이다. 반전구성은 정말 결함 덩어리의 구성이다. 좋은 작품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반전구성을 쓰기를 경계해야 한다. (현대 문화에서 '스포일러'라는 문제가 생긴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반전구성 때문이다. 뒷 내용을 알고 보면 서사에 재미가 없다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좋은 서사는 알고 볼수록, 보면 볼수록 더 좋고 새로워야 한다. 도리어 스포일러를 환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간을 역행하면서 '추리'가 아니라 '추측'하게 하는 전형적인 '반전구성'의 문제 때문에 후반부에 핵심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집약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핵심은 고루 분포되어야 서사가 풍요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투 더 문』과 같이 한 곳에 몰려있게 되면 급작스럽고 작위적이게 될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은 이들을 위해...)
로맨스는 살고 주제는 죽었다. 제작자도 이 문제를 인지했던지 결국 30분 짜리 추가 시나리오를 무료로 제공하여 본래 제기하고자 했던 '기억 조작'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분명 에피소드2의 프리퀄을 제작중임에도 불구하고 (『A bird story』 글을 쓴 당시에는 미발매) 추가 시나리오를 제작해가며 도덕적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는 점은, 투더문의 서사에서 일부는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투더문을 다시 돌려볼 때마다 그 안타까움이 오랫동안 남는다. 이제는 리버보다는 존이 좀 더 집중되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여, 이 평론을 작성한다. 기억을 소재로 한 『리멤버 미』와 유사한 구성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터널 선샤인』과의 비교를 해보며 다시 플레이 해도 좋을 듯 하다.
얼음병정의 게임서사평론
ㄴFortune, Governance, Devil『어쌔신크리드 4 블랙플래그』: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SFl/26
ㄴ"멍청한 SF, 멍청한 가족주의" 『리멤버 미』: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18
얼음병정의 게임 리뷰
ㄴ『리멤버 미』: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10
ㄴ『Journey』 :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25
* 본래는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의 평론을 쓸 생각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2회차 엔딩을 보고 블랙플래그를 진행중이었는데, 근래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느낀 것이 있고 또 정치철학을 배우면서 손자와 유가, 법가. 왕도와 패도 등의 내용을 배우면서 브라더후드에서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성하려고 보니 찍어놓은 스크린샷이 없더군요. 좀더 명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서 대사마다 스크린샷을 찍는게 습관이 됐는데 1회차 때 다 찍어놓은 줄 알고 2회차 때는 스크린샷을 안 찍고 플레이를 했다가 확인해보니 1회차때도 초반부만 찍어놨더라구요. 덕분에 3회차를 다시 하거나 블랙플레그 2회차를 완료하고 작성해야 할 것 같네요. 신디케이트의 리뷰(후기)를 쓰는 방향도 있을 것 같았는데 이는 좀 생각을 정리하고 쓸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겸사겸사 작성했던 투더문 리뷰를 퇴고하여 올립니다. 이후에도 한 동안은 예전에 썼던 리뷰들을 퇴고해서 올릴 것 같네요. 아마 긴 글이라 많은 분들이 읽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정성들여 쓴 원고입니다. 읽어주신분들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첫댓글 투더문은 워낙 스토리텔링의 명작이라는 소문만 듣고 해본 적은 없는데, 서사적 관점에서 보니 특이하네요. 재밌게 읽었어요. 어쌔신 크리드도 기대가 됩니다. 긴 글인 건 상관 없지만 부사가 너무 많아서 잘 안 읽힐 때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글을 한 번 더 수정할 수 있었네요.
글 잘 쓰시네요:)
감사합니다
와 필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필력 아직 많이 모자라요 ㅎㅎ...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이름만 들어봤지 해본적이 없는데 게임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네요. 스토리도 뭔가 끌어당기는 마력이있고요. 잘읽었습니다. 꼭 해볼게요
음악을 재작총괄자인 칸가오가 제작했는데 음악 활용이 정말 예술입니다. 이 음악과 서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정말 진국이죠. 글과 그림만 있어서 좀 지루한 감이 있는데 분위기가 되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