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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의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은 신양교회의 위임 목사님이신 정해우 목사님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큰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안에서 만나 뵙게 되어서 매우 반갑습니다. 특별히 우리 존경하는 우리 성원용 목사님과 또 우리 모든 교우들,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망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시편 23편입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잘 아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다윗의 시가 되겠죠?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우리는 자칫 잘못하게 되면은 뻔한 스토리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이 귀한 시간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쏟아부어질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자기의 경험을 살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치는 목동이였습니다. 그래서 양의 피로를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어떻게 양을 돌봐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기 경험을 살려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고 나는 연약한 양입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아니하면 나는 결코 살 수 없는 연약한 양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실존은 어떻습니까? 그의 실존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는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재물을 가졌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편 23편에서 하나님 앞에 뭐라고 고백을 합니까? 하나님 나는 이스라엘 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린 양입니다. 나의 왕은 오직 나의 로드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주님 말이 여호와 말이 나의 왕이시오.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시편 23편을 우리는 지금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우리 인생 여러분 연약합니다. 우리의 행복, 우리의 삶, 누구의 손에 달려 있을까 정말로 다윗처럼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하는 귀한 은혜가 주어지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에게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데 제가 준비한 첫 번째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목자로 삼을 때에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1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저도 안식월을 맞이해서 7월, 8월 두 달 안식월을 맞이해서 해외여행을 준비하는데 사실 부족함이 없을 수가 없죠.
그런데 지나고 나 보니까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셨음을 제가 시간이 많으면 간증하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이 채워주신 은혜를 지금 제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원고에서 벗어나가면 통역이 어렵다고 그래가지고 제가 지금 원고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마는 가끔 한국에서 목회할 때 원고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이 스타일을 또 제가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통역하시는 분이 양해를 좀 바라고 가능하면 원고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게 부족함이 없다 이 고백이 저는 너무나 체험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은 살다 보면 부족함이 많습니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궁핍합니다. 그런데 다윗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왜요? 목자는 양의 필요를 알아요. 먹어야 될 것, 마셔야 될 것, 그가 쉬어야 될 곳, 그의 안전한 곳 목자는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실종은 힘들고 어렵지만은 다윗은 하나님이 목자이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나의 결핍을 채워줄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다윗은 지금 고백하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가 있게 되겠습니다.
여기 목자는 양들을 쉴 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쉴만한 물가란 바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쉴만한 장소가 되겠습니다. 푸른 초장이라는 것은 바로 양들이 꿀을 먹을 수 있는 푸른 초원을 의미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만큼 목자는 양의 피로를 채워준다 이러한 내용이 되겠죠.
현대인들은 정말로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그래서 우리의 몸과 영이 지치고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보면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은 육체도 회복될 것이고 영원도 회복될 것이고 주님 품에 안긴 사람은 다시 한 번 회복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핸드폰 다 갖고 계시죠? 저는 이 팔에 와서 핸드폰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오자마자 핸드폰 쓰리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멘붕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자이기 때문에 금방 한 5분 후에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시고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일정을 곡으로 돌아가지 않고 진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지만 어쨌든 아내 핸드폰을 가지고 제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참 많아요. 저의 일생에 거기에 모든 정보 또 설교 그다음에 금융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데 어쨌든 딱 모바일을 정지시키고 나니까 마음의 평안이 와요.
왜요? 더 이상 그거는 그냥 핸드폰일 뿐이지 모바일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제가 피해가 없을 것 같은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은 일정을 이렇게 진행해 가려고 합니다. 제가 순간 핸드폰 밧데리가 이제 오르세이 그 미술관 나오면서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충전기를 꽂아놓고 가방에 넣었는데 그게 나의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어쨌든 여러분 핸드폰은 충전을 해야 돼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되겠죠. 살다 보면 육체도 지치고 영혼도 지치는 겁니다. 그때 우리는 충전을 해야 되는 것이죠.
어떻게 해요? 방전되면 다윗처럼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여러분들이 주님 품에 안게 뱉으면 그 주님 품 안에서 양이 목자 안에 있을 때 힘을 얻듯이 여러분 주님 품에 안 계시면 여러분의 육체도 회복되고 여러분도 영혼도 회복됨을 꼭 믿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여러분 충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으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된다라고 지금 고백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여호와라는 것은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절대자예요. 스스로 계신 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피조도 우리가 방황할 때에 우리의 갈길을 몰라 방황할 때에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분이에요. 무엇이 여러분 가장 인생에 가치 있는 길인지 여호와는 아는 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방원의 인생들에게 우리는 이 길이 이 길이 진리라고 여러분 제시할 수 있는 분이 누구냐 바로 여호와 하나님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 주님께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유일한 길이 되셔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 땅에 우리 주님이 오셨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가 있게 되겠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는 여러분 양을 치는 그 목자들 목동들이라고 해도 괜찮겠습니다마는 최고의 여러분 목자의 자격이 있는데 저도 깜짝 놀랐는데 양 100마리를 치면서 이제 유목민 아닙니까? 그러면 나중에 돌아올 때 몇 마리를 가지고 돌아와야 최고의 복자로 취급을 하느냐 여러분들은 몇 마리 정도 양을 100마리 들고 나가서 풀을 뜯기고 또 유목생활을 하다가 다시금 돌아올 때 몇 마리 정도 데리고 와야 여러분 최고의 목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정답은 항상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도 놀랐는데 한 100마리를 이제 데리고 나가서 한 70마리 정도 데리고 오면 그 목자는 책임을 다한 아주 베스트 여러분 목자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맹수에 잡혀 먹을 수도 있고 사고 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100마리 중에 70마리만 데리고 와도 아주 좋은 목자로 인정을 해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99마리 여러분 우리에 놔두고 보조 목동이 관리를 하겠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죠. 사실 베스트는 그 한 마리가 소중하겠지만은 찾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왜요? 70마리 정도만 다시금 데리고 와도 최고의 목자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 그렇습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까지 찾으시는 선한 목자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다윗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절 3절에서 주어가 생략이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놓이시고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노래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3절도 내 영혼을 희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내 영혼을 누가 수생시킵니까? 그가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데다 계속해서 그가 그가 나오고 있죠.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가 나를 인도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인생은 누가 인도합니까? 여러분의 자아입니까? 세상의 가축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묻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목자는 누구냐고 묻고 있는 거예요.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 인생에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셨는데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일을 다 담당하시고 이루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는 이 구원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건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게 되면은 그 유명한 말씀이 있죠.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가 되겠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인생길 걸어가면서 다윗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으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구원만 베푸셨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길을 고백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목회를 길게 해왔습니다. 여러분이 제 나이를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은 그래도 꽤 먹었습니다. 제가 이럴 때는 한번 웃어줘도 됩니다. 그냥 그런데 지나고 나보니까 저도 부목사 생활 10년 담임 생활 지금 한 204년 이렇게 하고 있는데 지나온 모든 삶을 뒤돌아보면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이 목자였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혹시 여러분들이 나중에 여러분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진짜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그날이 꼭 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지금 고백해내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탈무드에 보게 되면은 랍비가 학생들에게 숙제를 하나 내줍니다. 학생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좀 적어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히 적습니다. 어떤 학생은 행복, 어떤 학생은 건강, 어떤 학생들은 부 어떤 학생들은 또 여러 가지 지혜 또 이런 것을 적어왔습니다. 그래서 랍비 앞에 제출하면서 우리가 정답을 썼으니까 아마 랍비가 칭찬할 거야 신나게 왔습니다.
그러나 랍비가 이것을 쭉 바라보면서 칭찬하기보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참 좋은 정답을 썼지만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부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라 진정 샬롬 평화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평화가 없다면 건강과 부와 행복과 성공과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라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샬롬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유대인들이 그토록 샬롬을 중요시 여길까요? 왜 그토록 평화를 중요시 여길까요?
여러분 그들은 인삿말 샬롬 샬롬 아입니까? 저는 여기 와서 인삿말 잘 모르는데 봉주르 봉수화 여러 가지 이렇게 막 배워왔습니다마는 잘 모르겠더라고. 내가 불어를 모르고 여기서 산 게 아니니까. 여러분. 그런데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샬롬 샬롬으로 인사해요. 우리 옆 사람한테 주의 평화가 임하길 원합니다. 한번 인사합시다. 주의 평화가 임하길 원합니다. 샬롬
여러분 이게 우스운 얘기 같지만은 샬로몬 있잖아요. 잘하면 샬롬으로 들리거든요. 그래가지고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거예요. 이게 이 샬롬을 잘 아는 게 참 좋습니다. 샬롬 샬롬 주님의 평화 왜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가 없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샬롬을 주셨어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진정한 샬롬이에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가 있고,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샬롬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이 얼마나 두려웠습니까?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서 저희들에게 맨 먼저 주신 인사도 샬롬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샬롬은 근본적으로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 부족함이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차고도 넘친다 이러한 뜻이 되겠죠.
어떻게 보게 되면은 머릿속에 겉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인생 치고 파도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어려움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여러 가지 현상적인 환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환란 가운데서 평광을 누린다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샬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세상에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라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를 목자로 모신 성도는 두려움이 없는 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시편 23편을 볼 때마다 참 아름답다. 목가적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그 나를 푸른 보 탓에 또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쫙. 이렇게 읊으면은 암송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평안한지 몰라요. 그런데 시편을 연구하고 들어가 보면 다윗은 이러한 고백을 하기까지 그의 삶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의 삶에는 항상 위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 시편 23편의 배경을 보게 되면은 다윗의 모든 삶 속에 위기가 없었던 가는 없어요. 그가 왕이 되기 전에도 사울왕의 시기를 받아서 10년간 광야 생활했습니다. 잠을 한 번도 베개를 베고 편안하게 잔 적이 없지요. 쫓겨가야 하고 3천 명의 조개부대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끊임없이 여러분 추격해 온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말이 광야 10년이지 저 같은 사람은 지금 한 달 나와서 사는데 일주일 지났는데도요. 집을 떠나니까요. 고생이고 힘들더라고요. 아무리 여러 가지 조건, 모든 풀 옵션을 가지고 전부 다 여러분 제가 떠나왔어도 실질적으로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광야 10년 저도 성지순례 가보았지만은 그 생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또 왕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날마다 전쟁을 해야 되죠. 그뿐만 아니죠. 압살롬의 아들이 또 반역을 하게 되지요.
여러분 다윗의 생애를 보세요. 전쟁 위기 환란 고난 없어 단 한순간도 없어요.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4절에 보게 되면은 내가 사망의 무침한 골짜기로 단열제로 나를 들어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시나이다 그랬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니까 두려움이 없대요. 저는요. 여기 블란스에 처음 왔었을 때 물론 옛날에도 여러 번 왔었죠. 그러나 이번 왔을 때는 아내랑 같이 왔기 때문에 되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송 목사님이 60 넘어서는 둘이 다니는 게 아니라 가이드가 있어야 된다고 협박을 해가지고 제가 우리 남 목사님을 좀 가이드로 섭외를 해서 다니는데 남 목사님 없이는요. 제가 한순간도 두려워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이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어젯밤에도 우리 사모님이 저를 도와주시다가 긴급한 상황이 발생을 해서 우리 둘이 11시 반에 우버 택시 타고 집에 가라는 거예요. 너무 두려운 거예요. 제가 불어를 모르고 이런 두려운 상황.
그런데 여기 목사님과 사모님은 너무나 다랑 우버 택시보다 안전한 게 없다는 거예요. 목적지 딱 찍어주고 다 하기 때문에 세금 나기 때문에 걱정 하나도 없대요. 그거는 목사님과 사모님 생각이고 나는 너무 두려워가지고 아내랑 둘이 그냥 방법이 없으니까 탔어요. 12시 넘어서 이제 들어가게 되었는데 두렵더라고요. 내가 남잔데도 두렵더라고 다행히 우버 택시기사 영어 조금 하시고 그래서 조금 소통이 돼서 조금 편안하게 갔습니다만 도착한 순간 할렐루야 아멘이 나오더라고 왜요? 무사히 도착을 했으니까 바가지 안 쓰고 무사히 목적지 도착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두려운데도 나와 함께해 주신 우리 우리 남 목사님 또 사모님 얼마나 보이는 하나님처럼 고마웠는지 몰라요.
제가 이게 두려운 인생이더라고. 정말로 두려운 인생 여러분 다윗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런데 여호와가 사망의 음치면 골자 다닐 때도 나와 함께하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고백하는 고백에 저는 이 순간 짧지만은 고백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특별히 이사야서 43장 2절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며,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내가 물 가운데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타지 아니할 것이며,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고백을 다시 한 번 하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하게 하시나이다. 함께할 뿐만 아니라 목자는 여러분 항상 지팡이가 있고 막대기가 있어요.
그러면 지팡이는 뭐냐? 목자보다 키보다 커요. 그리고 이 지팡이는 밑에 갈고리가 이렇게 되어 있어요. 갈고리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양이 여러분 수렁에 빠졌을 때 그 갈고리로 목을 딱 걸어가지고 끄집어내는 겁니다.
그리고 낭떠러지에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합니까? 그 지팡이로 그 양을 걷어 올리는 겁니다. 지팡이로 여러분 양을 때리는 것 아니에요? 지팡이로 양을 때리면 양은 즉사해버립니다. 막대기로 때리는 거예요. 막대기로 막대기는 맹수가 왔을 때 어떻게 하니까 그거를 싸우는 거예요. 막대기로.
그리고 양이 말을 안 듣고 딴 데 가면 툭툭 쳐가지고 바르게 가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 막대기는 양을 바르게 인도하기도 하고 때론 채찍을 떼기도 하는데 사용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자의 여러분 특성도 있지만은 양의 특성도 있게 되는데 이 양의 3대 특성이 있어요.
첫째는 뭐냐 양은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양은 겉으로 보면 이렇게 흰 털이 있고 깨끗한 것 같은데 양의 속성상 이게 뭐냐 더럽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양은 세 번째 특성이 있는데 그게 바로 뭐냐면은 이 양은 공격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 번 뒤집어지면 스스로 못 일어납니다. 목자가 일으켜 세워야만이 일어나게 되었는 것이 양의 특징이 되겠죠.
그런데 이러한 특징보다 제가 이 데이터를 찾아보다 보니까 가장 큰 등책이 뭐냐 양은 이탈을 잘한다는 거예요. 그러고 무리해서 자꾸 도망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아무리 참 목자라 할지라도 양이 이탈되었을 때 첫 번째는 가서 찾아옵니다. 두 번째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세 번째는 어떡하느냐 계속 이탈하는 양은 그냥 낮에 막대기로 다리를 칩니다. 다리를 뼈를 꺾어버립니다. 그래가지고 기브스를 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느냐 그 양을 어떻게 하는 목자 여기 어깨에 메고 다니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은 이 이탈을 잘하는 이 양은 다리가 낫는 동안에 목자의 그 채취를 느끼는 거죠. 그리고 목자의 음성을 익히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이제 온전히 회복이 되고 건강을 되찾았을 때 놓아주게 되는데 그 양은 절대로 목자를 떠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도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 내 마음대로 살 때 하나님이 그냥 봐주는 경우도 있죠. 죄악된 길을 걸어가도 그냥 봐주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면은 빼도 된다는 걸 여러분 알으셔야 되는 거예요. 실패할 때 여러분 그때는 오히려 주님의 채취를 맞는 시간이고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오히려 주님의 그 따뜻한 심정을 느낄 수가 있고 오히려 주님 품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저는 여러분들이 회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혹시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은 주님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이제 주님의 채취를 맞고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더 이상 떠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나를 회복하는 시간임을 기억하시고 주의 은혜를 꼭 누리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는 다 양 같아서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지요. 그래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할 수가 있음을 반려견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 우리를 구원하는 데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평광과 능력과 기쁨과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과 각종 은사와 필요한 모든 걸 공급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 바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성지순례에 가보면 높은 산에 길이 나와 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양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목자들은 여러분 목동들은 그냥 양을 무조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양을 이동할 때에 어느 곳에 가면은 푸른 풀밭이고 그 푸른 풀밭에 가서 먹일 때에 그곳에 처음 가는 곳이니까 독초가 있을 것 아닙니까? 아무 데나 갖다 대면 독초 먹고 너무 많이 죽는 거예요. 그리고 사고가 많아요. 독초를 다 미리 뽑습니다.
그뿐만 아니죠. 또 가장 이제 양들에게 위험한 것이 뭐냐 하면 이제 뱀입니다. 뱀. 그래서 각 곳마다 땅굴이 있어가지고 굴이 있어가지고 밑에서 양들이 와서 풀을 이제 새근새근 이렇게 먹을 때 그 새근새근 소리를 하고 땅속에 있는 어떡합니까? 뱀들이 그 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구멍 있는 곳에 참 목자는 미리 가서 기름을 다 부어 놓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은 양들이 와가지고 그 풀을 뜯어 먹을 때 새근새근 소리가 나서 뱀이 올라올라다가 미끄러가지고선 르르 주저앉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양들이 살아나는 것이죠.
여러분 참 목자는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하고 양을 이동시키고 이렇게 돌본다는 것을 제가 발견하면서 그렇구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미리하고 독초를 없애고 맹수의 공격을 없애기 위해 울타리도 쳐주고 또 뱀이 올라오는 걸 막기 위해서 기름도 쳐주고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서 여러분 악한 마귀의 사탄 권세에 수많은 공격이 있지만은 우리가 이 가운데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미 예비하심이 있는 거예요. 저는 여기 있는 모든 여러분들의 일생에도 여호와의 일에 하나님 미리 앞서 가시고 준비하심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꼭 누리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기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이 고백을 항상 하고 있어요. 유목민들은 여러분 낯선 사람을 환대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낯선 사람이 나한테 친절을 베풀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되게 무섭습니다. 한 번은 아내랑 둘이 있는데 젊은 아가씨가 한국 사람이세요. 그런데 쳐다보고 순간 멘붕이 왔어요. 왜 갑자기 한국 사람에게 묻지 왜냐하면 전날 제가 핸드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무조건 조심하라는 그러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아가지고 순간 멘붕이 왔어요. 다행히 잘 처리가 되었지만은 누가 친절을 베풀면 괜히 두려워요.
그런데 원래 유목민들은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죠. 낙은 뇌를 환대합니다. 그래가지고 오면 반드시 차나 술을 대접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계속 이야기하고 싶으면은 여러분 차에 어떻게 합니까? 한 잔 더 따라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가라. 이러한 사인은 뭐냐 한 잔 두고 찻장을 엎어버리는 거죠.
그건 뭐냐 더 안 따른다는 것은 나는 나그네 당신을 환대했으니까 이제 당신은 당신 갈 길로 가라 이런 뜻이 되겠죠. 이게 유목민의 예법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거.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기뻐했던지 어릴 때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를 이야기하고 다윗의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가 잘났건 못났건, 범죄할 때도, 연약할 때에도 잘 나갈 때에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계속해서 잔을 부어주고 다윗과 함께하고 다윗과 교제 나누고 있고 내 자리 넘치나이다라는 거 내 자리 넘치나이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곳에 생활하는 동안 진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그 성령의 기름부음과 하나님의 잔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길 원하고 교재 나누길 원하고 끊임없이 부어주길 원하고 있죠.
내 자리에 넘추라이다.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되겠습니다.
오늘 세 번째로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게 되면은 영원히 주님 안에 거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약속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게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이 영원히 나를 따르냐? 이것보다 어디 있어요? 하나님의 선하신 분이에요. 하나님의 인자하신 분이에요.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거예요. 이건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인 것이에요. 이것보다 위한 것은 없어요.
그런데 그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이 영원히 나를 따른다는 거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 땅을 전부로 알고 사는데 아니지요. 여러분 우리 육신은 곧 무너질 도성에 불과한 것이죠.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보면 만일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장막집이 우리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예언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100년 정도 밖에 못 산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여기 계신 분 아무리 있어도 100년 전후에 다 여러분 육신의 텐트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우리는 낙망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 살아서 믿는 자는 나를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니라. 여기서 살아서 믿는 자라는 것은 뭐예요?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사랑 계심을 믿는 자 예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거예요. 영원한 대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금 사는 거예요. 살아남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갖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나그 내려왔다가 여러분 순례자로 살다가 영원한 번양 하나님 나라로 가는 존재임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에게 순례의 여정 주님과 동행하시며 꼭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돌아갈 고국이 있고 돌아갈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그래서 오늘 저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죠. 두려운 인생이지만은 순례의 여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돌아갈 본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 1절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우리 주님이 예비하셨어요.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영접하는 사람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하나님 나라 가는 그 길이 누구냐 더웨이 라이프 여러분 누구예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생명이에요. 너의 유일한 길이라고 그랬어요. 또 들었어.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진리인 것이죠. 그러므로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의 존재 양식이 이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어제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내일은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재림지으러 오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시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존재 양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 안에 죽고, 여러분의 모든 남은 여정이 진짜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여러분 부족함이 없는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주의 은혜를 영원히 누리시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샬롬,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길 바라고, 이 땅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기억하시면서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