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4장 넓어지는 천하 (8)
요즘들어 여희(驪姬)의 얼굴은 늘 화사하게 빛났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 신생(申生) 보다는 내가 더 주공 가까이에 있다.
이런 그녀의 예상은 맞았다. 단 한 번의 시도에 정부인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이제 그녀의 목표는 변했다.
'다음은 세자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세자 신생(申生) 의 나이 서른 살이 훨씬 넘었다. 게다가 평판도 좋았다. 그를 따르는 조정의 중신들도 많다. 두원관이라든가 이극(里克) 같은 명신들이 그를 보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여희(驪姬)의 아들 해제는 너무 어렸다.
- 해제(奚齊)의 나이 두 살!
도저히 신생(申生)과는 견줄 수가 없다.
'빨리 자라는 묘약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할 정도로 어린 해제(奚齊)를 보고 있노라면 여희 자신이 답답함을 느꼈다. 더욱이 신생(申生)이 궁성안을 활개치고 다니는 마당에 세자를 바꿔 치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만은 불가능한 일인가?'
여희(驪姬)는 이렇게 자포자기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진헌공(晉獻公)은 정실 부인이 된 여희와 앉아 한가로이 얘기를 나누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신생 대신 해제(奚齊)를 세자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세자 신생(申生)은 어찌하구요?"
"패하여 공자로 삼으면 그만일 뿐 아니겠는가."
진헌공(晉獻公)의 말을 들은 여희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한 말이 아닌가.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그러나 그녀는 예전의 여희(驪姬)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맞장구를 치면 해제의 세자 책봉 계획이 미리 알려져 공실과 조정의 다른 대부들이 벌 떼처럼 일어나 반대할 것이 뻔하다. 또 신생의 이복동생들인 중이와 이오도 형을 아끼는 마음이 지극한지라 해제(奚齊)가 세자가 되는 일을 결사적으로 방해하고 나설 것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해제(奚齊)의 신상에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진헌공(晉獻公)의 마음을 엿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것을 무기로 좀 더 은밀하고 치밀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여희(驪姬)는 무릎을 꿇으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세자가 신생(申生)인 것은 이웃 나라 제후들까지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신생은 어질고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공연히 저희 모자 때문에 공실에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군후의 그러한 말씀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혹여 군후께서 신생(申生)을 내치고 해제를 세자로 세우신다면 첩은 차라리 자살하겠습니다."
진헌공(晉獻公)은 감동했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그 마음씨 하나만으로도 너는 세자의 어미가 될 자격이 있다. 세자에 관한 일은 그리 급하지 않으니 좀 더 시일을 주고 생각해보도록 하자꾸나."
여희(驪姬)는 욕망의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 세자 해제(奚齊)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 무렵, 또 하나의 욕망이 그녀의 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젊은 여희(驪姬).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어찌 미래에 대한 안정뿐이겠는가.
"올 때가 되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그림자 하나가 벽을 뚫고 나온 듯 방안에 어른거렸다. 그 그림자를 발견한 순간, 여희의 눈빛이 지금까지와 달리 강렬해졌다.
"우시(優施)!"
"군부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팔을 벌려 상대를 세차게 껴안았다.
여희(驪姬)가 우시라고 부른 사람은 사내라기보다 소년이었다.
이름은 시(施), 직업은 배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우시(優施)라고 불렀다. 배우 시(施)라는 뜻이다. 우시의 올해 나이 열아홉. 얼굴이 여자 뺨치게 예쁘고 아름답게 생겼다. 이러한 소년을 미소년(美少年)이라고 하던가.
우시(優施)가 궁중 출입을 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배우 직업을 지닌 숙부를 따라 궁중을 출입하다가 진헌공의 눈에 띄었다. 우시(優施)는 어렸지만 영리하고 재치가 있었다. 말솜씨 또한 대단해서 이내 진헌공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덧 수시로 내궁까지 출입할만큼 궁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가 처음 여희와 눈이 맞은 것은 지난 봄이었다.
그때 진헌공(晉獻公)은 진나라를 침공한 괵나라의 군대를 무찌르기 위해 궁중을 비우고 없었다. 여희(驪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시를 불러 재주를 보이게 했다. 갖은 재주를 피우고 있는 예쁘고 가냘프다 싶은 우시(優施)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희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저 아이는 물건도 작고 예쁘장할 거야.'
문득 장난을 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 마침 가까이 다가온 우시(優施)의 사타구니를 슬쩍 건드려보았다. 순간 그녀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촉이 손등을 스친 것이었다.
- 하!
여희(驪姬)의 입에서 묘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을 우시(優施)도 들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우시 쪽에서 하체를 여희의 손등에 밀착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방 안에는 여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궁녀들이 우시의 재주를 관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묘기 보이는 일을 끝내고 우시(優施)가 방을 나가자 궁녀들도 제각기 흩어졌다.
혼자 방 안에 남은 여희(驪姬)는 방금 전 손등에 와 닿았던 육중한 감촉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진헌공의 것과는 여실히 달랐다.
'어쩜 ......어린 아인 줄 알았는데....'
혼자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날 밤이었다.
창으로 달빛이 스며드는 중에 홀연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달빛에 어른거리는 나뭇가지 그림인 줄 알았다.
- 너는.........?
- 군부인.
우시(優施)의 떨리는 목소리가 여희에게는 새로운 쾌락의 세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군부인과 배우.
이런 관계에서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신분이 높은 쪽이었다. 여희(驪姬)는 우시가 어린 소년이라는 것이 자극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리라 생각하니 더욱 몸이 짜릿해졌다. 그러나 옷을 벗겨놓은 우시(優施)의 몸은 보기와 다르게 훌륭한 사내였다. 한순간 여희(驪姬)는 혼란을 느낄 정도였다.
- 네놈이 감히..........
- 용서하십시오.
그때까지만 해도 여희(驪姬)는 우시를 가지고 놀려는 마음에 그를 자신의 밑으로 깔아눕혔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듯 우시의 불기둥을 자신의 몸 속으로 받아들였을 때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그녀는 도저히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의 몸 속을 더듬었던 진헌공(晉獻公)의 그것과는 전연 달랐다. 울음을 터뜨리며 여희(驪姬)는 매달리듯 스스로 우시의 밑으로 파고들었다.
- 네가 정말 우시(優施)인가?
기억할 수 없는 황홀감에 몸을 한참 동안이나 떨고 나서야 여희(驪姬)는 새삼스런 눈길로 우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