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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화 특허 받은 화분 경단
구약나물 화분 경단의 생산 체계를 갖추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정령 세계에서 생활하는 동안 구약나물 화분 경단을 자주 먹었던 탓에, 구약나물 군락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구운 고기향이 물씬 풍기는 광활한 검붉은 자줏빛 꽃밭···. 인제 보니 구약나물꽃의 색감이 잘 숙성된 소고기 빛깔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고기향이 그리도 좋았었나?
엉뚱한 상상을 하며 미소 지을 무렵, 구약나물 화분 경단을 만들던 벌 정령들이 내게 의문을 표했다.
- 주군. 정말로 이 많은 양을 다 드실 생각이시옵니까?
- 평소에는 3~5알 정도 드셨사옵니다.
- 그렇사옵니다. 과식은 몸에 좋지 않나이다.
“내가 먹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경단이 우릴 더 풍족하게 해줄 것이다.”
물론, 내가 풍족해지는 것이지만···. 벌 정령들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서로를 독려했다.
- 주군을 위해 더 많은 화분을 채취해야 하오.
- 그렇소! 주군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도 아깝지 않소.
화분 경단을 만드는데, 목숨까지 언급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니?
벌 정령들의 과잉 충성에 살짝 미안해졌다.
- 여봐라! 서둘러 화분을 채취하라!
- 너희들은 화분과 효소를 버무려라!
- 꼼꼼하게 버무려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향이 사라질 터이니.
- 알겠사옵니다!
한 무리는 화분을 채취하고, 한쪽에서는 화분을 삼켜 몸속의 효소와 버무려 토해낸다. 그렇게 경단 베이스가 완성되면 초년생 벌 정령들이 쇠똥구리가 쇠똥 경단을 만들 듯 다리로 빙글빙글 돌려 경단을 완성한다.
철저한 분업으로 화분 경단의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다 만들어진 경단은 동굴에 보관하도록 하라.”
항상 따뜻한 날씨 때문에 애써 만든 경단이 쉬어버리면 곤란하다. 작업반장 벌 정령과 미리 봐둔 근처 동굴을 저장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평균 12도 정도를 유지하는 동굴 안이라면, 경단의 보존 기간을 늘릴 수 있을 터.
저온 저장고가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곳에서 현대 기기를 사용할 수는 없으니···.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마나를 활용해 별것을 다하던데, 내가 정령 세계의 이 풍부한 마나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차원 문을 여는 것.
아쉽다.
마나 사용법을 알았다면, 더 효율적인 생산과 저장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벌 정령들이 구약나물 화분 경단을 생산하는 모습을 감독하고 있을 때, 귓가에 알림음이 들렸다.
- 띠딩!
[신이 내린 음식. - 성공!]
[보상으로 37.5코인이 지급됩니다.]
[62.5코인 보유 중.]
이번에는 37.5코인? 소수점 뭔데···! 아니, 그게 아니지. 대체 기준이 뭐냐고?
미션의 난이도인가?
그렇다기엔 정령 세계에서 만들어 먹었던 구약나물 화분 경단을 나눠준 것밖에 없었다. 난이도가 높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그렇다면, 벌 정령을 이용해서 생산라인을 갖췄기 때문인가?
고뇌하는 와중에 보상으로 지급되는 코인의 증가량에 어떤 규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설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코인에서 1.5배씩 늘어나나?’
처음 보상으로 받은 것이 10코인, 다음 미션에서 15코인을 받아 총 25코인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미션으로 37.5코인을 받았다. 내가 보유한 코인에서 정확히 1.5배 늘었다.
아직은 추론이었지만, 그럴싸했다. 다음 미션으로 이 가설이 확실해지겠지.
“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목록을 보고 싶은데···. 구매 리스트라고 했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데 눈앞이 번쩍이며 메시지가 갱신됐다.
[현 단계에서 구매 가능한 리스트를 불러옵니다. - 초급 양봉가]
[소환권] - 100c
[원격 제어권] - 120c
[봉침 제어권] - 150c
아, 구매 리스트가 하나의 명령어였군?
이제야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명령어 하나를 알아냈다. 뭔가를 알아냈다는 뿌듯함도 잠시, 짜증이 밀려왔다.
작동법은 미리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머릿속에 이런 것을 우겨 넣어놓고 작동 방법도 안 알려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원망의 대상도 모른 채, 계속 투덜댔다. 그러다 문뜩, 이 시스템의 매뉴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매뉴얼.”
“사용 설명서.”
“readme.txt?”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제길. 이런 식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그냥 몸소 경험하는 수밖에···.
내 가설이 맞는다면, 다음 미션을 성공하게 되면 한 개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봉침 제어권이 뭔지는 알았고···. 소환권은 대충 뭔지 예상이 됐다. 정령 세계에 있는 무언가를 현실 세계로 소환하는 그런 것 아닐까? 그리고 원격 제어권은···. 이건 도무지 모르겠다.
뭐, 곧 알게 되겠지.
뭔지 모를 답답함에 짧은 한숨을 내쉬며 경단 제작에 정신없는 일하는 벌 정령들을 돌아봤다.
“그럼, 수고들 해.”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벌 정령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은 후, 차원 문을 열었다.
“내 방으로. 열려라, 참깨.”
#
차원 문을 통해 내 방으로 돌아온 후, 다이어트 식품을 검색했다.
대체로 다이어트 식품의 단가는 무척 높았다. 거기다 친환경 또는 천연재료라는 단어가 붙으면 최소 20% 이상은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얼마로 책정해야 하나?
세상엔 너무나 많은 다이어트 식품이 있고, 또 각자 주장하는 바가 달라, 구약나물 화분 경단과 대조군이 없었다.
“3~5알이면 한 끼로 충분하니까···.”
고민 끝에 유기농 다이어트 샐러드 및 간편식과 비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시저 샐러드, 그릭 샐러드, 닭가슴살 샐러드 등 각종 샐러드의 가격대는 대략 5~6천 원 사이다. 이걸로 한 끼를 해결하는 다이어터들이 많다고 하니, 한 끼에 6천 원 정도면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렇다면 좀 특별한 식품이니 만큼, 한 알에 5천 원···. 비싼가?
하지만, 만복감은 샐러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니까. 쉽게 꺼지지 않는 포만감에 낮은 칼로리···. 구약나물 화분 경단이라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입소문만 잘나면 다이어트 계를 씹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모두 천연에서 나오는 재료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물론, 벌 정령들이 열심히 일하긴 하지만···. 택배비, 포장비, 마케팅비 등을 제외하더라도 마진율은 최소 70%를 넘어설 것이다.
완전 노다지다.
“그래. 한 알에 5천 원이면 되겠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가격을 결정짓는데, 방문이 빼꼼히 열렸다.
“집에 있었니? 언제 왔어?”
어머니가 놀란 토끼 눈을 뜨며 물었다.
“아, 아까 왔는데···. 주무시길래.”
“그, 그랬니? 저녁은?”
“수현이랑 같이 먹었어요.”
어머니는 뭔가 안심이 된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래. 쉬어라.”
“예. 안녕히 주무세요.”
불안한 듯한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생기신 것 같다. 경단을 만들어 파는 것도 좋지만, 당분간은 부모님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수현이와 함께 있다는 걸 알고 계셨음에도 다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아렸다.
“더 잘해드리자.”
한 알에 5천 원이라고 쓰인 노트에 별표를 치며,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
다음 날 아침.
부엌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황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팔을 잡으며 구약나물 화분 경단을 내밀었다.
“이게 뭐니?”
“어머니. 이번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는데 이게 식사 대용이거든요?”
“식사대용품을 개발했다고? 양봉으로 그런 것도 가능하니?”
“많은 것이 가능하죠. 꽃가루로 만들었는데 고기 냄새가···.”
고기 냄새라는 말에 아침 뉴스를 보던 아버지도 어느새 다가와 경단을 하나 집어 드셨다.
“정말, 이게 고기가 아니라 꽃가루라고?”
“예. 정말 꽃가루에요.”
언젠가 성분분석기를 들여야겠다. 이 경단의 성분을 분석해서 문서로 보여주면 일일이 꽃가루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될 텐데···.
“이 정도 모으려면 벌 수천 마리가 필요해요.”
“와, 정말? 하긴 그렇겠네. 벌이 작잖아.”
아버지는 메추리알 크기의 경단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먹어봐도 되니?”
“그럼요. 드셔보시라고 가져온 건데요.”
내 말에 아버지가 먼저 경단을 입에 넣었고, 어머니도 머뭇거리며 경단을 입에 넣었다.
- 오독.
핑크허니의 반응은 매우 좋았는데, 과연 어머니의 반응은 어떨까? 괜스레 긴장됐다. 화분 경단을 오물거리며, 부모님의 눈이 점점 커졌다.
- 오독! 오물오물.
“이럴 수가! 이게 정말 화분이라고?”
“네. 어때요? 드실 만하세요?”
“먹을 만하냐고? 무슨 소리야! 이건 완전 새로운 음식인데? 요즘 그렇지 않아도 대체 고기네 콩고기네 말이 많던데 이 정도면···.”
아버지가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다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내 양어깨를 붙잡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아들! 이거 특허 등록했어?”
‘에?’
갑자기 왜 얘기가 이렇게···. 특허출원을 하지 않아도 이건 나만 만들 수 있는 것인데? 내가 멍한 표정을 지었는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런 건, 특허 등록을 해야 해! 혹시라도 대기업이나, 이상한 사람들이 냄새를 맡으면 머리 터지게 개발해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경우가 많다. 변리사를 소개해 주리?”
아버지 곁에 있던 어머니도 날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일단, 두 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아 좋긴 한데···.
특허라니, 이거 뭔가 곤란한 상황인데?
특별히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정확히 말하면, 정령 세계에서 생성되는 자연 그대로의 꽃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차원 문을 넘어···.
차원 문···. 에이, 특허는 안 될 말이지.
곤란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귓가에 알림음이 울렸다.
- 띠딩!
[다음 미션을 수신 중입니다···.]
[사업자등록을 하시오.]
‘사업자등록이라니? 1차 농업은 면세라고···.’
미간을 좁히며 눈앞에 있는 글씨를 바라보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음? 이동현 실장?’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수찬 씨. 화분 경단 정말 더 만들 수 없는 겁니까? 오늘 아침으로 핑크허니가 식사 대용으로 먹었는데 정말 효과가 엄청납니다. 그 먹보 주리가···.”
이동현 실장이 흥분하여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그래도 데뷔를 앞둔 아이돌 멤버의 치부를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생산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근데 단가가···.”
“얼마든 상관없어요. 제가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뮤즈 엔터테인먼트와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연예인들에게는 꿈의 식품이라고요!”
이동현 실장이 흥분해서 소리치는 바람에, 곁에 있는 부모님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얼마에 팔 건데?”
“확실한 구매처를 갖고 가는 것은 성공의 지름길이지. 어서 수락하렴.”
부모님께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이동현 실장에게 단가를 말했다.
“경단 한 알당 5천 원으로 할까 합니다.”
“5천 원이요? 그걸로 됩니까?”
비싸다고 할 줄 알았더니?
아, 젠장. 한 만 원이라고 할걸···.
살짝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뱉은 말이다. 어차피 원가도 들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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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실장 덕에 뮤즈 엔터테인먼트에서 계약서가 준비되는 데로 체결하자고 한다. 부모님이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그리고 곧 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의 친구라는 변리사를 만나러 가야 했다.
아, 정말 괜찮은데···.
변리사를 만나, 화분 경단에 관해 설명했더니, 그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한마디로 이게 벌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거잖아?”
“네.”
“그럼, 특허 등록이 안 돼.”
변리사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 마음이 다 아프다.
전 세계에서 나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해도 믿을 수 없으실 거고···. 변리사가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릴 때 진지한 표정으로 변리사에게 물었다.
왠지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진 것 같다.
“그럼, 혹시 벌들이 구약나물 화분을 채취할 수 있도록 제가 환경을 만들고 있다면 특허할 수 있나요?”
“벌들이 특정 꽃에서 화분을 따도록 어떤 조치를 한다는 말인가?”
“네.”
“그, 그렇다면 특허할 수 있어. 어떻게 하는지 설명 가능할까?”
변리사가 눈을 빛내며 메모지와 펜을 꺼내 들었고, 아버지도 눈에 힘을 주며 날 뚫어지라 쳐다봤다.
“조금 어려운 얘기인데요···.”
말끝을 흐리며 머릿속으로 순발력을 발휘했다. 정령 세계의 일을 현실에 맞게 각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설명을 시작하자, 변리사는 눈을 빛내며 내 얘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비닐하우스에서 벌들을 넣어 구약나물꽃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구약나물꽃은 아열대 식물인데 심지어 개화 시기도 2월 중순에서 3월 초입니다. 벌들이 겨울잠에서 아직 깨기 전이죠.”
내 말을 메모지에 적던 변리사가 손가락을 탁! 튕기더니 아버지를 돌아봤다.
“태식아. 특허 되겠다. 아들이 아주 똘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