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보다 무서운 불행의 대물림
“행복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의 이유가 제 각기 다르다.”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지난겨울 우리 집 욕실을 대대적으로 공사했다. 바닥에 온돌을 넣고 타일을 새로 깔았다. 우리는 확 변한 화장실을 둘러보며, 공사 기간 중 불편을 감수한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이튿날 보일러가 터져서 거실로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나왔다. 나와 아내는 바닥 공사를 할 때 쿵쿵거리며 망치를 내리쳤던 것을 떠올리고 어떻게 공사했기에 보일러 배관이 터졌냐고 항의를 하였다. 나의 비난 섞인 눈초리를 받으며 기술자들은 화장실 바닥을 뜯어냈다. 뜻밖에 화장실 바닥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누수 전문가를 불러 물이 새는 원인을 찾아보았다. 물은 화장실과 전혀 상관없는 보일러의 동 파이프가 낡아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누수 전문가가 말하길, “간혹 정품을 사용하지 않고 동 함량이 미달인 제품을 쓰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공사 기술자 중 한 분이 말씀했던 대로 오비이락(鳥飛架落)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그날 나는 공사 기술자들을 비난했던 것에 미안함과 함께 수치심을 느꼈다.
—가족 문제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원인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인과관계가 복잡한 가족 문제에서는 더 자주 그렇다. 보통 가족 문제는 한 가지에 기인하지 않는다. 서로 모순된 여러 원인들이 꼬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을 찾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때가 있다. 따라서 다른 어떤 상담보다 가족상담의 성공률이 낮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의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를 인용하면서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은 가축화에 적합해 보이는 수많은 야생 포유류가 왜 가축화되지 못했을까를 설명하기 위해 다이아몬드가 도입한 법칙이다. 그는 이 법칙을 설명하면서 “결혼 생활이 행복하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 한 가지만 어긋나면 나머지 요소가 아무리 성공적이어도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들이 암시하듯, 가족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과정은 몹시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다.
그럼에도 가족상담사들은 상담에서 종종 하나의 원인에 집중하다가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를 놓치는 실수를 한다. 가족 문제에 단일한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가족 문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의 집합체라는 것. 따라서 상담사나 가족은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문제의 패턴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이 해결에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수樹)의 소설 『1Q84』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든 사고나 행동에는 반드시 패턴이 있고 그런 패턴이 있으면 거기에 약점이 생기지. (…) 패턴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어, 음악에서의 테마 같은 거야. 하지만 그건 동시에 인간의 사고나 행동에 틀을 만들고 자유를 제약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틀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느 가족에든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존재한다. 가족 관계의 패턴은 결혼 생활 속에서 어떤 관계나 일이 매일 반복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 속에서 가족 문제는 반복된다. 가족 관계, 부부 관계의 어려움은 개개인의 성격과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서, 조금 더 참지 않아서, 어느 누군가의 성격이 나빠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에 따라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회전문을 통과하듯 돌고 도는 가족의 삶—
새로운 가족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각 배우자는 새로이 만들어진 가족에 이전 세대의 가족 문화와 전통을 가져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가족의 전통과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가족의 역기능, 주고받음의 불균형, 가족 내 착취와 왜곡, 학대, 방임, 중독, 폭력 등은 현재의 것인 양 보이지만, 이러한 관계 패턴은 이미 수세대에 걸쳐 반복된 악순환이다.
가족 안에 내재한 과거의 불행했던 경험들을 이러한 관계 패턴의 틀에서 볼 때, 가해자-피해자라는 단순 도식이 아닌 순환하는 관계의 도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가족의 상처와 불의는 대부분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족치료사 보스 조르메니 나지(Ivan Boszormenyi-Nagy) “마치 건물의 회전문을 통과하듯이 가족은 세대 전수를 통해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은 급격한 우경화로 주변국들과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일각에서 조금씩 제기되었던 우경화 주장이 일본의 정치권을 비롯한 주류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시동된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하지만 그 나라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이와 같은 일본의 움직임이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자기 나라는 아시아가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말했으며 스스로 위치를 그렇게 정하고 살아왔다. 아시아적인 것을 거부하고 ‘서양과 아시아 사이의 한 나라’ 쯤으로 여겨지길 바랐다. 실제로 지난 100년 동안 일본은 아시아 최고의 나라로 군림했고,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5000년 아시아 역사의 최강자 중국이 돌아왔다. 일본은 2등의 자리로 밀려나야 하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국경 문제는 물론이고 경제,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중국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더욱이 아시아는 더 이상 후진 지역이 아닌 세계 무역과 문화에서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의 강풍 속에서 메이지유신을 통해 정치,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켰다. 그 덕에 그들은 식민지 지배의 수모를 겪지 않았고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다. 현재 일본의 엘리트는 메이지유신 직전의 엘리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조상이 현명하게 위기에 대처했듯이 자신도 지금 그와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본의 역사를 통해 일본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듯, 가족 문제의 역사를 통해 가족의 현재를 진단할 수 있다. 현재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과 갈등은 당사자들에게는 수치스럽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부인한다고 억지로 밀어낸다고 해서 거기서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행한 역사에 더 얽매일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고 기억해 야 한다.
—바꿀 순 없지만 이해하면 달라진다—
가족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가족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정한 패턴을 알아야 한다.
보웬에 따르면 가족 문제의 세대 전수에는 가족 투사 과정이 존재한다. 가족 투사 과정이란 ‘분노와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다른 가족에게 투사하는 것, 부부 갈등을 자녀에게 투사하여 자녀를 부부 갈등에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즉 가족 투사 과정을 통해 자녀는 부부 갈등에 휘말려 고통을 당하고, 그들이 성장하고 결혼을 한 후 자신의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 부부간 분노와 불안에 대처하게 된다.
얼마 전 막 결혼을 한 지현 씨가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유 없이 자꾸 분노하게 되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남편이 꼬리를 내리고 자기 눈치를 보면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고 불안감이 가라앉는다고 하였다.
지현 씨는 남편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이를 통해 남편을 통제했다. 지현 씨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실 자기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오래갈 수 없고 남편의 인내심도 어느 순간 바닥날 것이란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불안해졌고 더 반복적으로 이런 행동을 했다.
나는 그녀의 가족 관계 패턴을 찾아내기 위해 어렸을 때 부모와의 사이는 어땠는지 물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아버지에게 엄청난 분노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동시에 그녀는 그만큼의 공포와 두려움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수없이 아내와 자녀들을 폭행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자신이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를 보고 자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역시 식구들을 학대하고 모질게 대했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분노와 공포를 품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서자로 태어나 큰어머니에게 무시와 학대를 받은 분노를 가족에게 풀곤 했던 것이다.
지현 씨의 분노 행동은 그렇게 몇 세대에 걸쳐 내려온 일정한 패턴의 하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그녀는 어렸을 적에 가족 폭행과 그보다 더 무서운 공포와 두려움을 경험했다.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음 세대에 똑같은 패턴을 전수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지현 씨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그녀에게 해독제는 ‘감정이입’이었다. 그녀는 피해자가 겪을 공포와 두려움,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할 것”을 권하였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느낄 그 두려움은 낯선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녀는 이제 불안과 분노가 밀려올 때면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떠올리고 남편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스스로를 조금 더 자제할 줄 알게 되었다.
출처: 최광현, [가족의 발견]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