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비가 자주 내려서 산과 들이 더 싱그러운 오월인데요. 싱그러운 초록이들 사이로 하얗게 핀 이팝나무와 아카시꽃 향기가 코끝에서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꽃향기를 맡으며 산책하다 보면 모내기 위해 물을 댄 논에 아카시 꽃이 흐드러진 산 그늘이 비쳐 멋진 풍경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순성면은 순성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남원천이 마을 중앙 유역에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어 미작농업의 중심지를 이루고 서북쪽으로는 몽산을 분수령으로 당진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농부들에게 오월은 한 해 농사를 위해 모내기 준비를 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철인데요. 농촌마을의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해 부지깽이도 거들어야 할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쁜 계절에 순성면 본리 1구 이인숙씨 댁에서 김치를 담궈 나눔을 하는 멋진 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위해 한달음에 찾아갔습니다.
농촌사랑 봉사단은 22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봉사단인데요. 한달에 한번 회원들이 김치를 담궈 순성마을 홀몸 어르신들과 취약계층에게 김치를 나눔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촌 마을의 취약계층과 홀몸어르신들을 위해 매달 한번씩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본리에 살던 1대 김종옥 회장님과 몇몇 주민이 '사랑애' 라는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며 봉사단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취약계층의 어르신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주고 싶은 마음에 처음에는 순성면사무소에 세탁기 3대를 놓고 어르신들의 옷과 이불을 수거해 세탁을 했다고 합니다. 이불빨래를 할땐 회원들이 발로 밟아가며 세탁을 했는데 구정물이 나올정도로 더러웠던 빨랫감에 창피해 싫다고 하던 홀몸 어르신들도 시나브로 마음을 열고 빨랫감을 맡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순성에 위치한 아셀복지원과 음암에 있는 서림 복지원으로 목욕봉사도 다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벌써 28년째 라고 합니다.
매달 김치를 전달하다 보니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해 우울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대상자들과의 소통이 시나브로 이뤄져 안부도 챙기고 돌봄도 이뤄져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김치담는 일이 손꼽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매달 김치를 담는 일이 대단해 보이는데요. 농촌사랑 봉사단이 매달 김치를 담아 나눔을 할수 있는 것은 매달 빠지지 않고 김치 담그는 고광홍, 홍봉선, 이인숙, 김종옥, 정명숙, 민동분 회원 덕분이라고 합니다.
이인숙 회원댁에 도착하니 벌써 회원들이 김칫거리를 다듬고 씻느라 분주한데요.
홍봉선 어르신이 쪼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열무와 얼갈이를 다듬고 계셔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늙고 허리 구부러진 노인이지만 매달 모여서 꾸준히 봉사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허리 구부러진 노인이 봉사를 받아야지 왜 봉사활동을 하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재미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때부터 봉사 활동을 해서 항상 마음 속에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하고 있습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니까 옆에 아주머니들도 같이 동행해서 오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일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사람인 거 같아요."
열무와 얼갈이 배추를 깨끗이 씻는 회원들 사이에 멋진 남성분이 일손을 거들고 있는데요.
소리소문없이 하는 나눔이지만 나눔의 향기를 막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순성농협에서도 농촌사랑봉사단의 아름다운 행보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물품을 후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도순 조합장은 김치 담그는 날이면 시간을 내서 회원들과 함께 김칫거리를 다듬고 씻으며 김치 담는 일을 거든다고 하네요.
강도순 조합장에게 농촌사랑봉사단을 후원하게 된 동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농촌사랑 봉사단 회원들의 마음은 천사 같아요.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천사 같지 않나요. 아무리 추운 날이나, 무더운 날에도 사시사철 쉬지 않고 꾸준히 봉사를 하고 계시는 고마운 분들이예요. 열악한 생활을 하시는 분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시는 농촌사랑 봉사단 덕분에 순성마을이 훈훈해지고 있습니다. 농촌사랑 봉사단이 열심히 봉사하고, 고생하는 것을 보고 '순성농협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미력하나마 후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농촌사랑 봉사단 덕분에 우리 순성 지역 사회가 너무 밝아져서 좋습니다. 순성농협에서는 농촌사랑 봉사단과 함께 지역사회에 소외되는 분들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후원하겠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김칫거리도 여럿이 다듬고 씻으니 금세 끝나네요. 함께 모여 기념사진도 찍습니다.
30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초창기 맴버 대부분이 70이 넘어 현재는 초창기 맴버인 정명숙 회장이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데요.
농촌사랑 봉사단을 운영하며 애로사항은 없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할때 회원들 집을 돌아가며 김치를 담고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30년이 되다보니 초창기 맴버들이 연로해 가정집에서 많은 양의 김치를 담다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행사처럼 매달 하는 김치담기라 어르신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조리대도 없이 쭈그려 앉아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볼때마다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비록 환경이 열악하지만 회원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김치를 담고 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처럼 특별한 날이면 회원들이 모여 통배추 김치도 담고, 가을에는 수확한 농산물로 김치를 담아서 이웃과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받는 사람도 기쁨이 크지만 나누는 기쁨은 더 큰가 봅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더 좋은것을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담은 김치를 먹고 맛있다고 할 때마다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김치담그는 날이면 회원들이 집에 있는 양념도 가져오고 부족한 건 사다가 김치를 담고 있습니다. 채소 값이 아무리 비싸도 매달 한 번씩 양념을 아끼지 않고 김치를 담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김치가 너무 맛있다고 소문이 났어요. 가까운 이웃들도 모르게 하는 일이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보람있고 재밌습니다."
매달 김치를 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요. 초창기 맴버인 이인숙 회원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넓은 창고와 마당이 있어서 눈비에도 불편없이 김칫거리도 다듬고 물도 맘대로 쓸수 있어 많은양의 김치를 담아 나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인숙 회원은 누군가에게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집을 개방하고 하루 전부터 파, 생강, 마늘을 까고 준비해 다른 회원들이 좀더 쉽게 김치를 담궈 나눔을 할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담근 김치를 전달하며 대상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있고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순성농협에서 여성복지를 담당하는 민동분 회원도 김치 담그는 날이이면 어르신들과 함께 김치를 담는데요. 민동분 회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순성농협농촌사랑 봉사단'회원님들의 봉사정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오랫동안 김치나눔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0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시나브로 어머님들 사이에 변치 않는 우정과 같은 유대감도 형성되어 서로 보듬어 가며 챙겨주는 모습들에서 끈끈한 정을 느끼곤 합니다. 비록 몸은 70 이 넘으셨지만 어머님들이 봉사하시는 마음은 아직도 20대처럼 열정이 넘치고 순수해 봉사하러 왔다가 좋은 기운 얻어갈때가 많습니다. 어머님들의 모습을 본받아서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씻은 김칫거리를 소금에 절입니다.
양념으로 쓸 쪽파와 양파, 부추도 썰어 놓습니다.
창고 한쪽에 장조림이 있은데요. 이번 달에는 밑반찬으로 소고기 장조림도 준비했다고 합니다. 하루전에 한우도 사고 메추리알도 삶아서 껍질을 벗겨 장조림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처음에 메추리알 껍질을 깔때는 양이 많아 이걸 다 언제 하나 걱정이 앞섰지만 회원들이 함께 하다보니 금방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바쁜 농사철에도 회원들이 서로 시간을 맞춰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 정도로 나눔을 위한 봉사가 일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절여진 열무에 양념을 넣고 버무리니 맛있는 감치가 완성되었네요.
오늘 김치담느라고 고생했다며 이인숙 회원께서 맛있는 열무 바빔국수와 팥죽을 만들어 주셨네요. 팥죽의 담백함과 매콤달콤한 비빔국수의 맛이 일품입니다.
사회적거리를 두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가끔씩 마음이 따뜻한 고향사람들과 들판의 흙 내음, 푸른 산의 향기가 가득했던 어릴적 시골풍경이 그리울때가 있는데요.
고향을 닮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순성마을에서 만났습니다.
바쁜 농삿일을 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도 강산이 세번 바뀐다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오롯이 이웃을 위한 마음 하나로 사랑을 실천하며, 나눔이 일상이 된 사람들이 있어서 순성마을의 풍경이 더 아름다운가 봅니다.
조용히 흐르며 마을을 풍요롭게 하는 남원천 처럼
바라만 보아도 편안하고, 시나브로 미소짓게 되는 농촌사랑 봉사단과 함께 한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