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하느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도신경은 우리 신앙을 아주 압축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서 단지 강생(잉태와 탄생)과 파스카(수난, 십자가에 달리심, 돌아가심, 묻히심, 저승에 가심, 부활, 승천)의 신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강생과 파스카는 예수님을 알게 해 주는 키워드이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분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그분이 지상 생활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고, 무슨 일을 하셨고, 무슨 마음을 지니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요한 12,20).
1) 하느님 나라 :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의 가르침을 들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누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물어본다면 우리는 이같이 주옥같은 말씀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요약한 말들이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들(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탈렌트의 비유, 탕자의 비유 등등)이 모두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모든 행적도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 개념은 예수님의 독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 체험을 통해 형성된 개념입니다. 이스라엘이 강대국들에 멸망한 후에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셔서 다시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바랐습니다. 그 나라는 불완전한 인간들(=임금들)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이끌어 주시는 완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구원자(=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하느님 나라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무작정 기다릴 뿐이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오늘날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한 구절(그 내용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을 읽으신 후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시작되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셨다.” …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심으로써 이를 행하신다. 이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이는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54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