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상사동일서사(和李上舍冬日書事)
이상사의 동일서사에 화답하여
- 한구(韓駒)
北風吹日晝多陰(북풍취일주다음) : 북풍이 부는 날은 낮에도 그늘지고
日暮擁階黃葉深(일모옹계황엽심) : 저물는 때, 계단 끼고 앉으니 누런 나뭇잎 짙어가네
倦鵲繞枝飜冬影(권작요지번동영) : 지친 까치는 나뭇가지를 돌며 겨울 그림자 날개짓하고
飛鴻摩月墜孤音(비홍마월추고음) : 날아가는 기러기 달을 만지며 외로운 소리 떨어뜨린다
推愁不去如相覓(추수불거여상멱) : 근심을 밀어내도 나를 찾는 듯이 떠나가지 않고
與老無期稍見侵(여로무기초견침) : 늙음은 약속 없어도 조금씩 다가오는구나
顧藉微官少年事(고자미관소년사) : 미관말직 집착함은 철 없던 젊은 때의 일
病來那復一分心(병래나부일분심) : 병 들고 늙은 몸 어찌 조금이라도 마음씀을 반복하리오
야박영릉(夜泊寧陵)
밤에 영릉에 정박하다
- 한구(韓駒)
汴水日馳三百里(변수일치삼백리) : 변수에서 날마다 삼백 리를 달렸나니
扁舟東下更開帆(편주동하갱개범) : 한 조각 배는 동쪽으로 내려 다시 돋을 편다
旦辭杞國風微北(단사기국풍미북) : 아침에 기나라 땅 지날 때는 북쪽에서 미풍이 불더니
夜泊寧陵月正南(야박영릉월정남) : 저녁 영릉에 배를 대니 달이 정 남쪽에서 빛난다
老樹挾霜鳴窣窣(노수협상명솔솔) : 고목은 서리를 맞아 우수수 소리 내고
寒花垂露落毿毿(한화수로락삼삼) : 차가운 꽃에 드리워진 이슬 또르르 떨어진다
茫然不悟身何處(망연불오신하처) : 망연하여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겠는데
水色天光共蔚藍(수색천광공울람) : 물 색 하늘 빛은 모두가 짙은 쪽빛이로다
題太乙眞人蓮葉圖(제태을진인연엽도)
태을진인 연엽도에 제하여
- 韓駒(한구)
太乙眞人蓮葉舟(태을진인연엽주) : 태을진인 연잎 배에서
脫巾露髮寒颼颼(탈건노발한수수) : 건 벗고 머리 드러내어 바람에 차다
輕風爲帆浪爲檝(경풍위범랑위즙) : 가벼운 바람 돛 삼고 물결을 노 삼아
臥看玉字浮中流(와간옥자부중류) : 누워서 구슬 같은 글자 읽으며 물결 가운데 떠있다
中流蕩瀁翠綃舞(중류탕양취초무) : 물결 출렁이니 푸른색 실 춤추듯 하고
穩如龍驤萬斛擧(온여룡양만곡거) : 편안하기가 진나라 양장군의 큰 배가 떠있는 듯하다
不是峰頭十丈花(불시봉두십장화) : 연화봉 십장 높이의 꽃이 아니면
世間那得葉如許(세간나득엽여허) : 세상에서 이러한 일 어찌 얻었을까
龍眠畵手老入神(룡면화수노입신) : 용면거사의 그림 솜씨는 늙어서 입신의 경지에 들어
尺素幻出眞天人(척소환출진천인) : 한 자 폭의 비단 위에 진짜 천인을 상상으로 표현했다
恍然坐我水仙府(황연좌아수선부) : 황홀하게도 나를 물속 선인의 집에 앉게 하고
蒼煙萬頃波粼粼(창연만경파인린) : 푸른 안개 낀 넓은 바다에 물결이 출렁거린다
玉堂學士今劉向(옥당학사금유향) : 옥당의 학사들은 지금의 유향 같아
禁直岧嶢九天上(금직초요구천상) : 하늘 위에 높이 솟은 궁전을 지켜 앉아
不須對此融心神(불수대차융심신) : 이것을 보고는 반드시 정신을 융회시킬 건 없으니
會植靑藜夜相訪(회식청려야상방) : 반드시 푸른 명아주 지팡이 짚고 밤에 찾아가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