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권 보내드리고 귀한 선물을 한보따리 받았다.
이강산 선배님의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
장편소설 <나비의 방>
흑백 명상사진시집 <섬, 육지의>
급한 채점을 막 끝낸 홀가분한 마음에 기지개 켜는데 왔다.
반가운 마음에 순서랄 것도 없이 손에 들고 후루룩 봤다.
손글씨로 반갑게 써주신 문장이 담긴 시를 먼저 읽는다.
웅크리고 앉아 바다를 뒤집어쓴 섬이 컥컥, 숨넘어가는 소리로 뒤척여 바다를 잡아당기다 잠을 깼다
섬 홀로 두고 온 날은 꿈도 섬처럼 아득하다
닻을 내릴 틈도 없이 사라진다
팽나무 아래서 슬그머니 바다를 찔러보던 나처럼 지금쯤 섬도 선착장에 앉아 밀물을 집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외로워야 먼 길이 가까워진다
찾아갈 사람이 보인다
나는 노랑아기사과나무를 닮은 옥천 송설산방 다섯 자매의 막내 다현이에게 무러볼말이 있다
나는 구리시 인창주공아파트 310동에 사는 강아지 쪼코에게 무러볼말이 있다
왜 사람보다 사람 같은지
어떻게 마음을 감추는지
나는 나이팅게일 요양원, 내 삼 남매의 할머니에게 무러볼말이 있다
그날 대체 어딜 다녀왔는지
왜 아무 말 못 하는지
오늘도 살구가 떨어지고
살구를 주우려다 살구를 밟고
발바닥 가득 살구의 신음이 고이고
어제보다 깊어지고
오늘도 마음이 떨어지고
마음을 주우려다 마음을 밟고
발바닥 가득 마음의 신음이 고이고
어제보다 깊어지고
낯선 시집을 처음 손에 들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첫 페이지부터 슬슬 넘기며 일별한다. 그렇게 넘기다보면 지나가는 글자들 사이로 가끔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어떤 색이 슬쩍 비출 때가 있다. 더러 어떤 그림이 떠오를 때도 있고, 자주 보이는 단어가 그리고 드물게 사람이 보일 때도 있다. 페이지가 다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보이거나 어지럽게 휘갈겨 쓴 알 수 없는 글자들만 보이는 시집도 있다. 그러면 두었다 아주 나중에 읽게 된다. 아니면 못 읽거나. 그렇게 일별하다가 어떤 시에 턱 잡히기도 하고 눈이 멎기도 한다. 그러면 시 읽기가 거기서 시작될 때가 있다.
이강산 선배의 시집에서는 전깃줄 어지러운 회색 담벼락 사이 좁은 골목길이 보이다가 어스름 뒷골목 흐릿한 불 켜진 낡고 정겨운 여인숙 간판이 보이다가 호젓한 시골 마을 뒷편 쯤 어디 깊지 않은 산 길 감나무 아래 떨어진 감 주워 드는, 작은 배들 가득한 포구에서 섬 기슭에 쓸리는 물소리 나는 쪽 바라보고 선 배낭 맨 사내 하나 보였다. 그가 독백하듯 전하는 크지 않고 높지 않은 음성이 잔잔하게 그러나 깊게 스민다. 물 들어올 때 발 젖듯 마음 젖는다.
뱀발--천년의시작에서 내는 시작시인선, 책이 참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