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행정동우회 홈페이지 개설에 부쳐
고문 양병희
장성군행정동우회 홈페이지가 개설된 것은 2011년 5월이다. 12대회장으로 취임한 김재선 회장님이 컴퓨터를 구입하고 인터넷가입 개설했다. 이러한 지식정보화사회에 우리 모임도 첫발을 내 딛게 되었다. 집 마다 있는 컴퓨터에 접근하여 동우회 홈페이지를 노크하여 많은 댓글을 올려 회원상호간에 전달할만 것을 서슴지 말고 올려보자고 권해 마지않습니다.
장성군행정동우회 홈페이지 개설을 축하하며 모든 회원은 물론 본 회에 관심있는 이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산수(傘壽 )지나 문집(文集)을 펴내다
나는 장성군행정동우회에서 10여 년간 참여하여 봉사했다. 그리고 2003년5월부터는 제8대회장으로 추대되어 봉사하며 8년여를 연임해 동우회의 발전을 위해 전력투구했다. 임기 중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 불우이웃돕기에도 힘썼다. 그러나 회고해 보면 만족할만한 성과는 거양치 못했으나 동기는 부여했다고 본다. 그리고 ‘장성행정동우회 27년사’ 를 회장직 막음하는 2011년 3월에 펴냈음은 큰 보람으로 여긴다. 그리고 본회 발전기금2000만원을 조성보존 한 것, 회보발간도 내 회장임기중의 기억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장성군행정동우회의 고문으로 추대되었기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나의 활동을 멈출 수는 없어 내 생애 흔적을 남길 것이 무엇인가를 숙고 중 젊어서 공무생활을 하면서도 이따금 글을 써보았다. 출장 여행기라든가 휴일의 등산을 산문으로 또는 시조조로 흉을 내보기도 했다. 정년 후에는 글 장난이 더 심해 원고지가 제법 모았다.
나는 여기서 내 나이 80을 갓 넘겼고 내 건강이 여의치 않아 종명은 멀지않았다고 여겨져 위의 잡다한 장르의 함량미달의 글이지만 모아서 책으로 펴내는 것은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마음먹고 착수 해 ‘이삭을 줍다’라는 제호아래 2012.5에 출간 했다.(B5판 365쪽) 그리고 친인척 중심으로 배부했다.
‘이삭을 줍다’ 의 책 머리글을 소개 한다.
책머리에
나이 팔십을 넘어 글을 써 책을 펴낸다? 건강이 좋으면 의욕의 발로라 부를 듯하고 병을 치료하는 중이라면 노욕이라 부를 듯하다. 하지만 그간 써놓았던 글들을 정리해 펴내는 일은 의욕과 노욕 사이에서 쉬이 이해받을 듯도 싶어 용기를 낸다.
연필을 들고 문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잡기장에 짓거리하기가 좋았다. 수업 시간에 글을 써내면 선생은 교실 뒷벽에 붙여주고 칭찬을 해주곤 하였기에 글쓰기에 더욱 재미가 붙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일본말로 된 ‘소년삼국지’ 12권을 친구집에서 빌려와 밤새워 읽기도 하고 일본에 계신 숙부가 보내주신 ‘집 없는 아이’를 눈물을 훔치며 읽고 안데르센 동화집을 읽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학급에 1부씩 나눠주는 ‘少國民新聞’도 재미있었다. 이러한 독서열 덕분인지 국어 과목 성적은 의례 갑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조선문학전집을 읽었고, 적색 문학회이어서 곧 탈퇴하고 말았지만 선배들의 권유에 따라 문학회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따금 산문이나 기행문을 쓰기도 하고 3,4조가 좋아서 흥에 겨워 시조도 쓰곤 하였는데 어릴 적 일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그랬나 보다.
이런 결과로 남아 있는 잡기장들을 들추어보니 참 어설프다. 책으로 펴내자니 읽는 이들이 웃을 듯도 싶었지만 버리자니 아쉽기도 하였다. 이 양 갈래 생각에서 나름대로 갈등하며 몇 달을 두고 심사숙고한 결과, 정다운 이들에게 보이기로 마음먹고 대충 간추려보았다. 더 정성을 들여 손도 보고 새 글들도 선보이고 싶으나 있는 글들을 한데 모으고 이렇게 몇 줄을 쓰기도 힘겹기만 하다. 그러나 힘을 다해 엮어 본다.
여기저기에 실렸던 글들을 새로이 작업하여 만들면 보기도 좋고 읽기도 한결 편하겠으나 옛 모습대로 싣는 데도 뜻이 있을 법하여 그대로 실었다. 내놓는 글들이 함량미달인 듯해 부끄럽기 짝이 없으나 백분양해하고 한 장이라도 넘겨보아 주면 고맙겠다.
책명을 무제로 할 수는 없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설픈 글들이지만 몽땅 내버리자니 아쉬운 마음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로 할까도 하였으나 가을걷이 뒤에 여기저기 들려진 이삭을 하나둘씩 모은다 싶어 “이삭을 줍다”로 이름 지었다.
끝으로, 이 글들을 쓸 기회를 마련해주셨던 이들께 감사드린다. 이 작은 책을 받고 마음으로 읽어 줄 정든 이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2012년 춘분절에
장성군행정동우회에서 출판기념 축하 파티를 열다
동우회에서는 2012.6.12 원로동우님과 이사님들이 모여 양병희 고문의 “이삭을 줍다”책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김회장님의 축사 이어 저자 양병희 고문의 인사, 흥산 최병식 이사님의 격려 찬사가 있은 후 오찬을 나누었다.
생각지도 않은 이러한 훌륭한 출판기념 파티를 주관한 김회장님께 첫째로 감사드리고 그 날 참여해주신 동료들에게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관심 그리고 애정을 늘 잊지 않고 남은 생애를 잘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우회원 늘 건강하고 무탈한 나날 맞도록 노력하십시다.

장성군민신문 에 ‘이삭을 줍다' 발간기사가 보도되었다
첫댓글 뜨거운 가마 속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결코 빛깔이 바래는 일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난의 아픔에 단련된 사람의 인격은 영원히 변하지 않게 됩니다.
안락은 악마를 만들고 고난은 사람을 만드는 법입니다.(쿠노 피셔)
존경하는 매헌 고문님, < 이삭을 줍다 >책명도 걸작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도움과 행복을 주시는 매헌 양병희 고문님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조선왕조 27대이 이르는 오백여년 동안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만이 유일하게 80을 넘긴 83에 종명했나니 매헌고문님께서는 그 누구 왕보다 더 왕처럼 천수를 다 하시면서 '이삭'까지 다 주어담았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참으로 참인생의 보람찬 인생을 가꾸셨습니다. 활발한 여생에 박수를 보냅니다. 더욱 건겅하십시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