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 어울리네. 보기 좋다. 이 걸로 하자. 이거 실 옆에 세워진 거울을 바라보며 매무세를 가다듬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옆 진열장에 올려진 흰색
다들 볼이 빨간 채 중호만 쳐다본다.
:
:
18. EXT. 초등학교 문방구 앞-DAY
:
문방구 앞에 달랑 설치된 흑백의 조그만 모니터에 설치된 오트론 전자 오락(전자 오락기의 원조)을 하고 있는 한 아이에게 중호가 바싹 다가간다. 그리곤 뭐라고 귓속말을 하자
:
아이:
월경사진? 그기 뭔데?
:
CUT TO
:
중호의 안내로 아까 이야기를 하던 아이와 함께 골목으로 들어온다. 골목 입구엔 준석이 망을 보고 서 있다. 그곳엔 이미 한 아이가 뭔가를 호주머니에 넣고 상택에게 200원을 건네준다. 이번엔 중호가 데려온 아이가 상택 앞에 선다.
:
상택:
어떤거 살래?
:
상택이 아이 앞에 PLAY BOY책을 펼쳐준다. 녀석의 눈이 휘둥그래 진다.
:
빨리 골라라. 어떤거 살래?
:
녀석이 구경을 하는 동안 동수가 가위를 들고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잘라 준다는 폼을 잡는다.
:
중호
: (센타포드를 길게 펼쳐 보이며)
이거 어떻노?
:
아이의 눈이 더욱 휘둥그래 진다.
:
아이:
이. 이거는 얼만데?
:
동수:
그거는 비싸다. 하나 밖에 없는 거라서 이천원은 주야 된다.
:
아이:
이. 이천원?
중호가 센타포드를 접어 넣으며
:
중호:
싫으믄 관두라…….
:
아이
아. 아이다. 집에 가서 돈 좀 가지오께.
:
: CUT TO
:
아이가 볼이 달아오른 채 골목을 뛰어 나오는데 입구에 있던 준석이 아이를 부른다. 아이가 쭈삣쭈삣 준석에게 다가간다.
:
준석
: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니 누구한테 말하믄 알제?
:
아이가 약간 겁을 먹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
:
19. EXT. 육교 아래-DAY
:
녀석들이 육교 아래의 자판이 모여있는 곳에서 열심히 떡볶이를 먹고있다. 녀석들이 허겁지겁 먹어대는 동안 50이 넘고 찌들고 무식하게 생긴 주인아줌마는 열심히 눈으로 아이들의 입에 들어가는 떡볶이의 숫자를 세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마치 아줌마를 헷갈리게 하려는 듯 두 세 개씩 한꺼번에 입에 넣기도 한다. 어느 순간 모두들 먹기를 마치고 조그만 포크를 내려 놓는다. 아줌마의 핑핑 돌던 눈이 멈춘다.
:
중호:
얼맙니꺼?
:
아줌마
: (좀 헷갈리는 듯한 표정으로)
느그가 묵은기…….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52개 아이가……. 그라이까네…….
:
중호
: (잽싸게 말을 받아 좀 답답하단 표정으로)
아줌마 계산 못하능교? 이거 한개 삽십원 아잉교?
:
아줌마:
그. 그렇지 30원.
:
중호:
그라문 삼이는 육하고 오삼은 구하니까 구백육십원아이요.
:
동수:
(슬며시 거들듯)
그래……. 맞다 구백육십원. 오십이 곱하기 삼십원 하문…….
:
중호가 천원짜리 하나를 꺼내서 주며
:
중호:
사십원 남은거는 한개 더 묵어도 되지요?
:
아줌마는 뭔가 석연잖은 표정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중호가 날름 두개를 더 입에 쑤셔넣는다. 그리곤 예의 바른 척 인사를 한다.
:
아줌마 많이 파이소. 잘묵었…….
:
이때, 중호가 고개를 드는데 아줌마가 뭔가에 놀란듯 경악하는 표정이 된다. 중호와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 눈이 동그래 진다. 그러자 누군가가 고함을 치듯 노란차다~하고 외치고 아이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본다. 노란색의 구청 트럭이 새마을 모자를 쓴 건장한 남자들 4명을 뒤에 태우고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아이들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이미 주변의 노점상들은 고함을 치며 아수라장이 되어 자판을 들고 튀고, 물건을 챙겨 넣는 등 정신이 없다. 이윽고 급정거한 노란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자판을 걷어 차고 물건들을 뒤집어 엎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겁에 질려 뒤로 물런난다. 남자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드는 아줌마와 할머니들을 내팽개치듯이 뿌리치고 리어카와 자판들을 닥치는 데로 차에 싣기 시작한다. 리어카 하나를 발로 차자 자판에 있던 과일들이 바닥에 굴러 흩어진다. 주인인 듯한 영감이 남자에게 달려들지만 이내 힘에 밀려 떡 복이 자판으로 넘어진다. 넘어진 연탄 화로에서 굴러 나온 연탄이 구멍마다에서 시뻘건 불길을 뿜으며 바닥을 굴러 아이들 앞으로 온다. 아이들이 마치 전쟁터를 구경하듯 놀라고 찹찹한 표정이다. 아이들 눈 하나하나에 구청직원의 움직임과 노점 상인들의 악다구니가 느린 화면으로 가득 들어온다.
:
: FADE OUT
: FADE IN
:
20. EXT. 선착장 길가-DAY
:
네녀석이 좀 시무룩한 표정으로 조그만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둣길을 걷고 있다.
:
중호:
완전히 도둑놈들이네……. 아까 보이까 넘어진 할배는 잘 걷지도
몬하는 거 같더라. 그 새끼들 다 때리 직이야 되는데, 그자?
:
동수:
즈그도 다 시키니까 그라는 거 아이겠나?
:
중호:
그라믄 그냥 하지마라 하믄 되지 뭐 때메 다 때리 부수노?
즈그가 무슨 깡패가?
:
무심히 말을 내뱉은 중호가 자신도 모르게 아차-하고 다른 준석을 쳐다본다.
:
상택:
(조심스럽게)
깡패하고 저거하고는 다르지…….
:
중호와 다른 녀석들이 준석의 눈치를 살피며 서먹한 분위기가 되는데 마침 옆을 지나던 검은 색 그라나다 승용차가 녀석들의 옆에 선다. 아이들도 가던 길을 잠시 멈추는데 창문이 열리며 준석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던 눈칼자욱의 모습이 보인다.
:
눈칼자욱:
준석아!
:
다른 녀석들은 찔끔하는 표정이 되고 준석이 그 쪽으로 다가간다.
:
집에 가는 길이다. 타라.
:
준석:
집에 안갑니더.
:
눈칼자욱:
그래. 그라믄 더 놀다가 온나. (뒤를 돌아보며) 참 형두행님!
저 아가 큰행님 아들내밉니다.
:
뒷좌석에 타고 있던 30대 중반의 콧수염을 기르고 매눈을 한 사내가 선그라스를 벗고 준석을 쳐다본다. 준석과 눈이 마주친다. 뒤에 있던 녀석들이 목을 길게 빼서 쳐다본다.
:
콧수염:
니 이름이 뭐꼬?
:
준석:
이준석입니더.
:
콧수염:
준석이……. 또 보자. (눈칼자욱을 향해) 가자.
:
그라나다 승용차가 부웅~하고 사라지자 준석에게로 세녀석이 다가온다.
:
동수
: (호기심이 생긴 듯)
누……. 고?
:
준석:
깡패.
:
다들 다시 찔끔 하는데 중호가 영 민망한 표정이 된다.
:
21. INT. 장난감 가게-DAY
:
간단한 운동기구 및 장난감을 파는 가게 안으로 네 녀석이 들어온다. 녀석들이 장난감이 진열된 각각의 통로 쪽으로 흩어진다. 미리 보아둔게 있었는지 중호는 쪼르륵 달려가 나무봉 두개를 가느다란 쇠사슬로 이어놓은 쌍절곤을 집어 든다. 쌍절곤에는 조잡한 흘림 글씨로 `이소룡'이라고 새겨져 있다. 중호의 얼굴에 기쁨에 찬 미소가 번진다.
:
: CUT TO
:
준석과 상택이 함께 가게 안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뭘 고를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이것 저것을 고르고 있던 동수가 좀 비싸 보이는 칼 하나를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선 바지춤에 쓱 집어넣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상택과 눈이 마주친다. 상택이 마치 자신이 도둑질을 한 양 얼굴이 굳는다. 두 사람이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만 보다가 상택이 먼저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한다. 상택이 슬그머니 자리를 딴 곳으로 옮기고 마는데……. 동수가 상택의 옆에 있던 준석에게 다가오며
동수: (V. O. )
준석아!
준석이 돌아보자 동수가 굳은 얼굴을 한 채 재크나이프를 들고 있다. 준석이 멍하게 동수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재크나이프가 준석의 옆구리를 푹 쑤신다. 준석과 상택이 동시에 어?!하고 놀라자 동수가 웃으며 다시 칼을 뺀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 끝을 칼끝에다 대고 힘을 주자 칼날이 손잡이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찌르면 도금칠한 플라스틱 칼날이 손잡이 속의 스프링을 밀고 들어가도록 해 놓은 장난감 칼이다. ) 그제서야 미소를 짓는 준석이 동수에게서 장난감 칼을 받아 든다. 신기한 듯 칼끝을 몇 번 눌러보다가 혼자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쇼를 하고 있는 중호에게 다가간다.
:
준석:
(장난으로 무섭게)
한판 하자.
:
중호가 준석의 손에 쥔 칼을 보고는 잠시 놀라다가
:
중호:
좋다! 덤비라!
:
중호가 호요~하는 야릇한 기합과 함께 휙휙휙-마구잡이로 쌍절곤을 돌리는데 요리조리 피하던 준석이 날렵하게 그 틈을 비집고 중호의 복부를 푹-쑤신다. 중호가 돌리기를 멈추고 윽-하며 내려다보자 칼날이 배에 다 들어갔다. 중호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으아~`하고 금방 죽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나머지 녀석들을 킬킬대며 웃는다.
:
: FADE OUT
: FADE IN
:
22. EXT. 육교아래-DAY
:
지난번 처럼 노란차가 와서 자판이며 리어커들을 차에 싣고 있다. 상인들이 여전히 말리고 부탁해 보지만 속수무책으로 차에 모두 실어 버린다. 이를 먼 발치서 지켜보고 있던 네 녀석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온다. 다들 비장한 표정이 되어 눈치를 살피고 있다.
:
준석:
가자!
:
준석의 말이 떨어지자 녀석들이 골목을 빠져 나간다. 마지막으로 움직이는 중호가 칠성 사이다 병을 나발불고 몇모금 더 마신다.
:
: CUT TO
:
구청 직원들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며 자판과 리어커를 싣고 있다. 카메라가 차 뒤쪽으로 이동하자 상택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트럭의 열린 주유구 속으로 잔뜩 인상을 쓰며 오줌을 누고 있다. 부르르 떨며 오줌누기를 마친듯 자리를 떠나자 계속 사이다를 들이키고 있던 중호와 교대한다. 이제 막 차에 실을 건 다 실었는지 구청직원들이 울부짖는 상인들을 뿌리치고 하나 둘씩 트럭 위로 올라탄다. 나머지 녀석들이 중호에게 빨리 끝내라고 눈짓을 해 보지만 중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계속 나오는 오줌을 멈추지 못한다. 이윽고 차가 부르릉 소리를 내자 중호가 아슬아슬하게 주유구에서 잠지를 뺀다. 시동이 걸린 차가 움직이자 녀석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본다. 녀석들의 기대와는 달리 차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 장소를 향해 이동한다. 지켜보던 녀석들이 차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차가 대로로 접어들기 위해 비교적 큰 골목을 빠져 나가는 동안 녀석들이 열심히 뒤쫓는다. 차는 계속 잘도 달린다. 녀석들이 죽을 힘을 다해 뛰어 보지만 차와의 거리는 멀어져만 간다.
:
중호:
(숨을 헐떡이며)
우째 된거고?
:
상택
: (역시 숨을 헐떡이며)
몰라…….
:
그런데 잠시후 트럭이 크르릉. 크릉…….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선다. 녀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뛰던 걸음을 멈춘다. 트럭의 운전사가 다시 시동을 걸어 보지만 키익-키익-소리만 날 뿐 차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영문을 모르는 운전사가 차에서 내린다. 그리곤 뒤를 돌아다보다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먼 발치에서 뒷걸음을 치며 네 녀석이 트럭을 향해 욕을 하며 주먹 엿을 먹이고들 있다. 트럭 위에 탄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자 녀석들이 도망을 친다.
:
:
23. EXT. 영도다리-황혼
:
녀석들이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영도다리 위의 인도와 차도를 픽스샷으로 잡고 있던 프레임속으로 하나 둘씩 등장한다. 앞서가는 중호는 연신 쌍절봉을 휘두르며 요상한 기합을 내고 그 뒤의 동수는 아까 그 칼이 그렇게 신기한지 계속 그 끝을 손가락 끝으로 놀러보며 걷고 있고 이번엔 준석과 상택이 심각하게 대화를 하며 걷고 있다.
:
상택:
(좀 달아올라)
……. 우째서? 그라믄 지금 당장 전쟁하지 뭐때메 안하노? 니는 테레비에
통계 같은 거 나오는 거 안봤나? 숫자는 적어도 우리나라가 훨씬
신식무기를 가짓다 아이가?
:
준석
: (뭘 모른다는 듯이 한심하단 어투로)
빙시야! 그거는 박대통령이 그렇게 시키니까 그런거지. 다 우리 안심
시킬라꼬 나오는 거 모르나? 지금 북한하고 딱 붙으믄 박살 난다니까.
니 북한 특공대들이 얼마나 싸움을 잘 하는지 아나? 그라고 쏘련에서
울매나 무기를 많이 주는데…….
:
상택:
우리는? 우리도 미국에서 무기 많이 준다 아이가?…….
:
둘의 아야기가 이어지며 차츰 카메라에서 멀어진다. 중호가 한판 해보자며 동수를 야루다가 그만 쌍절곤이 동수의 이마를 때리고 만다. 화가 난 동수를 중호를 잡으로 가고 중호는 도망친다. 자갈치 너머로 지는 해가 다리 위를 온통 붉게 물들였고 녀석들이 다리 위의 언덕너머로 서서히 사라진다. 녀석들이 다리의 언덕길을 넘고 나면 화면을 덮고 있던 음악의 변화와 함께 인도 옆의 차도에 달리던 승용차들(1978년의 택시와 차가용 그리고 트럭들)과 멀리 보이는 빌딩을 비롯한 주변의 풍경들이 서서히 5년이 지난 1983년의 차들이 다리위를 달리고 있는 모습과 멀리선 높은 빌딩 몇개가 더 세워진 모습으로 바뀐다. 다음씬과 연결…….
:
:
24. EXT. 영도다리-황혼
:
이전씬과 연결하여 똑 같은 프레임에서 다리 위의 차들과 주변이 바뀌고 나면 다리의 반대편 언덕에서 부터 까만 모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차츰 거리가 가까워 지며 이제는 고등학생으로 변하여 금박이 달린 단추와 까만 평창모를 쓴 준석과 상택 그리고 동수와 중호의 모습이 보인다. 상택을 제외하곤 다들 좀 껄렁한 스타일로 평창모를 한껏 눌러 최대한 각을 잡았고 교복바지는 밑단 폭이 좁은데 여전히 키가 작은 중호의 바지는 거의 당꼬 바지처럼 딱 달라 붙었다. 밤색 뿔테 안경을 낀 상택을 제외하곤 모두 후크 단추를 풀었고 중호는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애써 기른 머리를 앞가르마 비슷하게 타고 교복 위에 교련복을 걸쳐 입었다.
:
중호:
……. 그라이까 오늘 나오는 디빈져 리더 그 딸래미가 사실은 즈그반
부반장 이거덩……. 공부도 쫌 하는데. 뭐 하기사 우리도 상택이가
있으니까…….
:
상택:
내가 뭐?
:
중호:
있다아이가? 잘치는 놈은 잘치는 놈 끼리, 잘노는 놈은 잘노는 놈
끼리, 공부 잘하는 놈은 공부 잘하는 놈끼리 뭐 그런거…….
:
준석:
마!
:
중호:
와?
:
준석:
오늘 니가 가자해서 가는 거니까 괜히 딴아들하고 시비 붙지 마라이.
:
중호:
내가 무슨……. 즈그가 먼저 안 건들믄 내가 뭐할라고 설칠거고.
:
동수:
짜슥아, 저번에도 니가 먼저 병 들었다메?
:
중호:
아이다. 사실은 나도 그때 급해가꼬 병인줄 알고 딱 들었는데
탁주병인기라. 탁주병. 프라스틱으로 만든 거 있다 아이가? 퍼런거?
와~ 그때 진짜 쪽말리데…….
:
나머지 녀석들이 기가찬지 웃는다.
:
:
25. EXT. 남항여상 교문-DAY
:
축, 남항여자고등학교 제21회 개교 기념일 이라고 쓰여진 프랑카드 아래로 잔뜩 껄렁거리며 들어서는 중호와 상택의 무리가 보이고 다른 학교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문을 들어선다. 그들 중 몇몇은 꽃다발을 들고 있고 다른 남학생들 중 몇몇이 준석이 패거리를 알아 모는 양 힐끔 거리며 자기들 끼리 수근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교문 입구에서는 가슴에 안내라고 분홍 깃을 단 본교 여학생들이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중호는 흐뭇한 표정이고 상택은 좀 어색한 표정이다.
:
:
26. INT. 남항여고 체육관-DAY
:
체육관에 마련된 공연장 무대 위에는 그룹 디빈져 제2회 공연이라고 쓰여 있고 객석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시끌벅적 자기들끼리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하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단상의 커튼 뒤로는 마지막 튜닝을 하느라 기타소리와 전자 오르간 소리가 불규칙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학생들 사이사이로 잔뜩 경계를 눈초리를 번득이며 서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보인다. 무대 바로 오른쪽 아래에는 7명의 다른 학교 놈상 녀석들이 주변을 아랑곳 않고 자기들 끼리 히히덕거리고 있는데 그둘중 빵모자를 눌러쓰고 인상이 좀 독해 보이는 녀석 하나가 자기네 무리들 앞에서 마이클 잭슨의 뒤로 가는 흉내를 내 보이고 있다. 중간에 자리 잡은 중호네 패거리도 이를 지켜 보는데 특히 중호가 아니꼽단 표정을 지으며
:
중호:
저 씨발놈들 청학공고 새끼들 아이가……. 노는 꼴이 완전히
양아치 행님들이네……. (준석을 힐끗 보고는) 조용히 시키까?
:
준석이 대답대신 픽-웃는다. 중호가 혼자 짜증이 나는 듯 계속 눈을 부라리는데 마침 튜닝 소리가 멎고 무대 위로 깔끔하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등장한다. 여학생이 마이크를 잡자 스피커에서 마이크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장내의 웅성거림이 줄어든다.
:
여학생1:
먼저……. 저희 남항여고 21회 개교 기념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오신
학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여학생1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객석에서는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오고 아까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던 녀석이 큰 소리로 고마운 줄 알믄 됐다 고마 하고 썰렁한 농담을 외친다. 그리곤 자신들끼리 키득거리자 이를 보는 중호가 애가 달아
:
중호:
저……. 빙신겉은 새끼들이…….
:
여학생1:
그럼 이제부터 저희 학예발표전의 하일라이트인 5인조 그룹사운드
디빈져의 공연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면서…….
(손으로 무대 쪽을 가리키며) 소개 합니다! 그룹 디빈져~
:
와~하는 함성을 포함한 박수소리와 함께 서서히 무대가 열리며 그룹 디빈져의 퍼스트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연주곡은 스콜피온스의 HOLIDAY이다. 장내는 흥분이 감돌기 시작하고 자신이 신이 난 중호가 옆에 앉은 상택을 쿡 찌르며
:
중호:
오르간 치는 딸아가 부반장이다.
:
좀 길다 싶은 전주가 울려 퍼지는 동안 객석의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디빈져 멤버들은 모두 사복을 입었는데 나름대로 8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캐쥬얼 스타일 들이다. 각각의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과 객석의 사람들(중호네 무리와 빵모자 무리들의 각각)이 번갈아 카메라에 잡히는데 상택은 전자 올갠을 치는 여학생에게 눈길을 준다. 똑똑하게 생기고 얼굴 생김새가 꽤 귀하게 큰 느낌을 준다. 그냥 차분하게 연주를 하고 있다. 준석의 시선은 가운데 서서 도리우찌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학생에게 꽂혀 있다. 이윽고 보컬이 시작될 순서가 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학생(진숙)이 몇발 앞으로 나오며 낭낭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한쪽 눈을 거의 가리는 헤어스타일을 한 채 목소리도 좋지만 발음도 꽤 훌륭하다. 중호가 다시 상택을 툭 치며
:
중호
: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베이스 치는 딸래미 봐봐! 저기 내가 찝은 거다.
:
상택의 눈이 베이스를 치는 키가 큰 여학생을 보더니 이내 진숙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상택의 얼굴이 꽤 감동받는 것 처럼 보이는데 준석과 동수의 시선도 진숙에게로 고정되어 있다. 연주 음악이 차츰 고조되고 진숙의 노래도 차츰 톤이 높아 가며 그와 함께 드럼 주자의 스틱을 움직이는 손놀림도 빨라 지는데…….
:
DISOLVE FROM
DISOLVE TO
:
27. INT. 상택의 방-NIGHT
:
전씬의 드럼스틱에서 책상을 치고 있는 연필로 오버랩 되며 카메라가 dolly out하면 상택이 구식 녹음기에서 흘러 나오는 HOLIDAY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책상 모서리를 두들기고 있다. 눈은 수학정석을 향해 있지만 입으로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때
:
신애: (O. S. )
오빠야!
:
상택이 고개를 돌리자 이제 중학생의 단발 머리를 한 여동생이 문을 열고 서 있다.
:
밥무라!
:
:
28. INT. 상택의 집 안방-NIGHT
:
단란한 저녁 밥상에 상택의 다섯 식구가 둘러 앉아 있다. 다들 묵묵히 식사를 하는데 엄마는 뭐가 좋은 지 혼자 생글거리며 얼굴의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던 상택이
:
상택:
엄마, 무슨 일 있나?
:
상택엄마
: (뿌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인자……. 우리 집 생긴다. 오늘 아파트 계약 했다.
:
다들 식사를 멈추고 좀 놀란 표정을 짓자
:
상택아버지:
아직 이사 갈라문 몇 달 더 있어야 된다.
:
신애:
방이 몇갠데?
:
상택엄마:
3개.
:
신애:
내 방 있나?
:
상택엄마:
공부는 규택이 하고 같이 하고 잠은 혼자 자믄 되지.
:
신애:
: (매우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또? 그라믄 똑같네 뭐……. 우리반에 다른 아아들은 다…….
:
상택아버지:
오빠야는 인자 좀 있으믄 고3 아이가. 공부도 해야 되고 또 서울로
대학교 가믄 니방 금방 생긴다 아이가?
:
신애:
씨~……. 그래도…….
:
상택이 자못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 어버지를 한번 쳐다본다.
:
29. INT. 상택과 중호의 교실-DAY
:
발음이 썩 훌륭하지 않지만 매우 깐깐해 보이는 영어 선생님이 영어책을 한 줄 읽고 또 자신이 번역하여 주며 교탁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상택의 영어책은 빨간색으로 밑줄이 그어지고 사전에서 찾은 주석들이 깨알 같이 쓰여져 있다. 그런데 키가 작으면서도 맨 뒷자리에 짝도 없이(1인1책상 이지만 두 줄을 나란히 붙여 놓은 것) 혼자 앉아 있는 중호는 앞에 앉은 키 큰 녀석이 방패라도 되는 듯 책상에 바짝 엎드려 자를 대고 칼로 정성껏 잘라 10개가 그려진 회수권 다발1장을 교묘하게 11개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
영어선생:
자~ 우리 저번 시간에 배운거……. to부정사가 수동태로 쓰일 때의
예문을 한번 말해 볼 사람?
:
학생들이 잔뜩 긴장 한 채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
38번!
:
38번 학생이 일어난다. 중호의 5칸 앞자리다.
:
예문 말해봐!
:
38번:
잘……. 잘 모르겠는데예.
:
영어선생:
잘 몰라? 그라믄 잘은 몰라도 되니까 아는데까지 얘기 해봐!
:
38번
(사색이 되어서는)
와……. 완전히 모르겠습니다.
:
영어선생:
: (PVC파이프로 된 몽둥이를 들어 보이며)
자랑이다 짜슥아! 양말 벗고 교탁 위에 꿇어 앉아! 그 뒤엣놈!
:
뒷학생1:
(포기 한듯)
저……. 전혀 모르겠습니다.
:
그러자 맨 뒷자리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중호가 화들짝 놀란다.
:
영어선생:
니도 양말 벗고……. 그 뒤에!
:
뒷학생2:
어……. 히 새드……. 잇 머스트……. 비 투……. 어…….
:
영어선생:
됐어! 니도 꿇어 앉고……. 그 뒤!
:
중호가 고개를 바싹 숙인 채 자신이 앉아 있는 책상을 양손으로 꽉 붙잡고 낑낑거리며 의자와 책상의 조금씩 위치를 옆으로 옮기려 애를 쓰고 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리를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다.
:
뒷학생3:
모르겠습니다.
:
영어선생:
뒤!
:
다음 학생이 일어날 때 쯤이 되자 중호가 낑깅대며 거의 책상을 그 옆줄로 옮겨 갔다.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
뒷놈 말고 그 옆엣 놈 말해봐!
:
중호의 바로 앞에 앉은 녀석이 일어난다. 중호가 죽상이 되어 다시 바들거리며 책상을 원위치 시키는데
:
맨 뒤에 쮜같은 새끼!
:
중호가 죽은 듯 동작을 멈춘다.
:
이사 댕긴다고 욕 본다……. 니 부터 나와!
:
CUT TO
:
PVC파이프 몽둥이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휭-휭-하는 바람소리가 나며 중호의 맨발 바닥을 때릴 때는 쫙-쫙-하는 소리가 난다. 중호가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무는 모습을 상택도 보기 안타까운지 눈을 찔끔거린다.
:
:
30. INT. 준석과 동수의 교실-DAY
:
머리가 좀 벗겨지고 아주 야비하게 생긴 40대 중반의 선생님이 교단 아래에서 한손으로 한 녀석의 뺨을 세게 움켜잡고 나머지 한 손을 높이 쳐들어 쨕-쨕-소리가 복도까지 퍼져 나가도록 뺨을 후려 갈긴다. 수차례를 가격한 후 볼따구를 놓자 맞은 녀석이 얼얼함 속에서도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런난다. 그 뒤로 7명의 학생들이 뭘 크게 잘못한 양 고개를 숙이고 구석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준석과 동수의 모습이 보인다. 선생은 얼굴이 달아올라 매우 흥분해 있지만 애써 안 그런 척 자제하는 모습이다. 다음 녀석이 도살장에 들어서듯 선생 앞으로 가자 역시 한 손으로 뺨따귀를 움켜쥔다.
:
야비한선생
: (목소리를 덜덜 떨며)
아부지 뭐하시노?
:
학생1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회……. 회사에 다니십니더…….
:
야비한선생
: (잔뜩 눈을 부라리며)
회사? 그래 이 빌어묵을 놈아! 느그 아부지는 회사에서 직장상사한테
굽신거리가메 니 공부시키는데 니는 시험을 30점도 못받나? 어이?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의 큰 손바닥이 사정없이 학생의 면상에 내리 꽂힌다. 쫙-쫙-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순서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움찔한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준석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두번째 녀석이 코에서 피를 흘리며 뒤로 무른다. 꾸벅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번에는 동수 차례다. 선생이 힘껏 동수의 뺨을 움켜쥔다.
:
: (뺨을 잡고서 벼르며)
아부지 뭐하시노?
동수:
장의삽니다.
:
야비한선생:
장의사? (뺨을 쥐고 흔들며) 그래 이놈아! 느그 아부지는 죽은 사람
염해가메 오만고생을 다 하는데 니는 공부를 이꼬라지로 하나? 어이?
이번에도 역시 선생의 풀스윙이 동수의 면상을 강타한다. 다섯대를 얻어맞은 동수가 비틀거리며 그냥 뒤로 무르자 선생이 다시 동수의 뺨을 잡고 몇 대를 더 때린다. 그리곤 놓아준다. 이번에는 동수가 잊지 않고 꾸벅 인사를 한다. 이번엔 준석이가 앞으로 온다. 눈알까지 벌겋게 충혈된 선생이 흥분해서 씩씩거리며 준석의 볼을 잡는다.
:
아부지 뭐하시노?
:
준석이 대답을 않는다. 선생이 쥐고 있는 뺨을 흔들어 댄다.
:
말해라 아부지 뭐하시노?
:
준석:
건달입니다.
:
선생이 순간 동작을 멈춘다. 다른 학생들도 찔끔하는 표정이 된다. 선생이 준석을 노려보지만 준석이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갑자기 선생이 손바닥으로 준석의 얼굴을 갈긴다. 계속 연타로 갈기지만 준석이 이를 악물고 그대로 맞고 있다. 그러자 선생이 분에 못이겨 준석의 뺨을 주먹으로 연타로 갈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준석이 끄덕을 않자 왕년의 한가닥을 자랑하듯 준석을 발로 거둬 넘어뜨린다. 이제는 넘어진 준석을 발로 차기 시작한다. 준석이 말없이 선생의 발길질을 받고 있다. 다른 학생들이 보기가 괴로운지 이맛살을 찌푸리는데…….
:
야비한선생
: (씩씩거리며 발길질을 하며)
좋겠다! 너그 아부지 건달이라서 좋겠어……. 이 쌔빠질 놈아! 느그
애비한테 가가꼬…….
:
이때, 준석이 벌떡 일어선다. 잔뜩 충혈된 눈으로 선생을 노려본다. 살기가 느껴진다. 선생과 학생들이 모두 뻥찌는 표정이 되는데
:
준석
: (악이 바쳐 이를 악다물로)
누가 좋다 했습니까?
:
준석이 화가 난듯 살기어린 눈으로 쳐다보자 선생이 얼어 붙어 아무말을 못한다. 준석이 성큼성큼 자기 자리로 들어가며
:
동수야! 가자!
:
앞에 서 있던 동수 역시 준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큼성큼 따라 들어간다. 그리곤 둘다 자신의 자리로 가서 책가방을 챙긴다. 선생이 얼이 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지켜만 볼 뿐 아무말을 하지 못한다. 준석과 동수가 교실 뒷문을 열고 휙- 나가버린다. 학생들과 선생이 두사람이 나간 뒷문을 한참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나머지 학생들 쪽으로 눈을 돌려
:
야비한선생:
쟈……. 즈그 아버지가……. 진짜……. 건달이가?
:
학생들:
(일제히)
예-.
:
눈을 몇번 꿈벅거리더니
:
야비한선생:
쟈아는? 점마도 건달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