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살림꾼 / 백현
결혼할 때 약속했다. 한 사람이 가사로 바쁠 때, 다른 사람은 쉬거나 놀지 않기로 말이다. 힘을 합쳐 빨리 해치우고 같이 쉬자고 했다. 신혼이니 잘 지켜졌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하면 남편은 청소하면서 세탁기를 돌렸다. 설거지할 때면 빨래를 널었다. 그러다 보니 청소와 빨래는 그의 몫이 되었다.
짐작하듯이 처음부터 청소 솜씨가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잔소리하지 않았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혼자 다 할 자신이 없어서, 허술하긴 해도 맡아서 해주는 것 자체로 고마웠다. 주중과 주말에 한 번씩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괜찮다고 했다. 더러워서 죽지는 않으니, 힘들면 다음에 하라고 했다.
화장실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청소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화장실을 내가 맡기로 했다. 이 결단은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그로서는 무려 화장실을, 뭐라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맡아준 게 고마웠던 것 같다. 힘든 일을 무조건 자기한테 미루는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살다 보니 다른 일도 자연스럽게 분담이 되었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 덜 싫어하는 사람이 하게 되었다. 가끔은 누구 실력이 더 나은가 비교해 보기도 했다. 나는 다리미질에 서툴렀다. 그도 군대를 갔다 온 사람치고는 별로였다. 처음에는 선임이, 나중에는 후임이 다려줘서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단다. 시험 삼아 해보니, 둘 다 솜씨랄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의 힘이 더 센 그가 맡게 되었다.
그는 자기 와이셔츠를 하는 김에 내 블라우스도 다려주었다. 잘 보이는 칼라 부분과 소매 부분은 신경 쓰고, 몸판은 주름만 펴는 식이었다. 워낙 어설퍼서, 우리는 구김이 많이 가는 옷은 되도록 사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다림질을 숙련시킬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 두 딸이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7년 동안 교복 블라우스를 다려야 했던 것이다. 각각 블라우스 두 장씩을 준비해서 돌려 입혔기에, 일요일이면 네 장씩 꼬박꼬박 다려야 했다. 때로는 주중에도 다림질이 필요하곤 했다. 물론 블라우스도 그가 세탁했는데, 빨리 닳는다고 꼭 손빨래했다.
남편은 또 바느질을 좋아한다. 한 땀 두 땀 뜨며 온전하게 몰입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단다. 그래서 뜯어진 옷을 꿰매고 떨어진 단추를 다는 것도 맡게 되었다. 딸이 데리고 놀던 텔레토비 인형의 옆구리가 터지면 티 나지 않게 수선하는 것도 잘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도록 딸들은 바느질은 당연히 아빠가 하는 일인 줄 알았단다.
그는 텔레비전도 그냥 보는 법이 없다.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서 이불 홑청과 이불솜을 펴서 맞춘 다음, 큰 바늘을 머리에 문질러가며 맞춰진 이불솜에 홑청을 씌워 시침질도 했다. 꼭 바느질이 아니라도 빨래 건조대에서 마른 수건이나 옷가지라도 걷어와 개키면서 본다.
그래서 거실은 늘 그의 차지다. 텔레비전의 채널 선택권도 그렇다. 가끔 나에게 ‘마님’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집의 중앙부를 장악한 실권자이다.
첫댓글 우와. 백점짜리 사부님과 사시는걸요.
한쪽 면만 써서 그렇습니다.
'더러워서 죽지는 않아' 하하.
선생님이 참을성이 좋으시네요.
그러니 점점 실력이 올라가지요.
저는 참고 견디질 못해서 제가 다 해야해요.
하나 배웁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을성이 좋은 게 아니라, 게으른 거랍니다. 완벽하게 할 실력도 없구요.
한두 번 눈감고 참으면 된다는 거, 꼭 잊지 마세요. 하하
와우, 바느질하는 남자랑 사시는군요.
멋져요.
이 글 읽고 미안해졌습니다.
딸을 둘이나 키우면서도 교복 다리미질 안 해 주었거든요.
남편은 원래 안 하는 사람이라서,
저는 바빠서 옷 정도는 그냥 입으라고 했네요.
그래도 잘 자라줬으니 딸한테 잘해야겠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엄마를 보고 잘 자랐을 테지요. 바느질은 하는데, 친구랑 놀러가는 것은 많이많이 싫어한답니다. 하하
선생님의 품성이 그리 넉넉하니 복 받는 듯합니다.
그리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게으른 것일지 모릅니다.
바느질까지 하는 남자, 완전 자상하실 것 같아요.
자상은 하지요. '다정도 병인양 하여' 라는 시조 구절 아시나요? 그렇답니다, 글쎄.
선생님의 참을성이 자상한 남편을 만드셨네요.
부럽습니다.
부러워할 정도는 아니랍니다. 딱 좋은 점만 쓴 것이거든요. 하하
와! 정말 살림꾼이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우와, 바느질까지. 너무 자상하시네요. 선생님 글 읽으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