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노트 14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에서 수행을 지도하시는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해를 거듭하면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 참고 >는 수행자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별도로 보충한 내용입니다. 수행은 개인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론에서 벗어나면 안 되므로 반드시 스승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또 스승에 따라 다른 수행방법도 있습니다
2. 질문 :
수행자의 기본적인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 수행을 할 때 인드리야(근본이 되는 힘)가 좋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법을 만난다. 인드리야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때 도(道)를 만난다. 어떻게 눈을 이기느냐 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개입시키지 말고 보이면 무조건 “보임, 보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눈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것이다. 눈이라는 것은 세간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라서 중요하다. 그러나 출세간에서는 보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면 보이는 것으로 인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귀 역시 마찬가지다. 소리가 들리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들림, 들림”하는 것이 귀를 컨트롤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소리를 이기는 방법이다. 세간에서는 귀가 모든 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출세간에서는 귀를 닫는 것처럼 해야 도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
코로 냄새를 맡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간에서는 코로 여러 가지 냄새를 맡는데 사용하지만 출세간에서는 세간에서 하는 것처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코를 완전하게 닫은 것처럼 하고 살아야 한다.
혀로 맛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간에서는 혀로 여러 가지 맛을 아는데 사용하지만 출세간에서는 세간에서 하는 것처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혀의 기능을 완전하게 닫은 것처럼 하고 살아야 한다. 입 역시 마찬가지다. 세간에서는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해야 하지만 출세간의 수행에서는 말하는 것이 필요가 없다. 입을 닫아야 도를 성취할 수 있다.
몸 역시 마찬가지다. 세간에서는 빨리 움직이고 힘을 많이 써야 한다. 걸어서 안 되면 자동차를 타고 기차나 비행기를 타야한다. 그러나 출세간의 법에서는 전혀 반대다. 수행자는 환자처럼 움직이며 자기 몸을 알아차려야 한다. 오히려 빨리 행동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세간에서는 많이 생각해야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출세간에서는 전혀 반대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무조건 알아차림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상의 여섯 가지를 잘 컨트롤해야 근본이 되는 힘이 생긴다. 이렇게 여섯 가지를 잘 컨트롤해서 이기면 첫 번째로 불법승 삼보에 대한 신념이 생긴다. 두 번째로 노력에 관한 힘이 생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 세 번째로 알아차림의 힘이 생긴다. 네 번째로 집중력이 생긴다. 다섯 번째로 이렇게 네 가지가 모두 균형이 잡히면 지혜가 생긴다.
이렇게 다섯 가지가 구족하게 되면 수다원의 도과를 성취한다. 이것보다 더 강한 근본이 되는 힘을 얻으면 사다함이 도과를 성취하나. 계속해서 더 강한 근본이 되는 힘을 얻으면 아나함의 도과를 성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것이 가장 구족하면 아라한의 도과를 성취한다.
참고 :
수행은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근기가 필요합니다. 이때의 근기를 빨리어로 인드리야(indrya)라고 합니다. 인드리야는 통제원리, 지각능력, 감각기관, 감관, 근(根)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다섯 가지 근기를 오근(五根)이라고 하는데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입니다. 다섯 가지 기능이 조화를 이루면 강하고, 힘 있고, 균형을 이루어 수행이 발전합니다.
믿음은 항상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노력은 항상 힘차고 강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은 정확하고 깊어야 합니다. 집중은 알아차림이 지속되어 고요함에 머물러야 합니다. 지혜는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오근이 각각의 기능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면 오력(五力)이 되어 수행을 이끕니다.
오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지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알아차림 하나만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가지는 적절한 것이 좋습니다. 믿음이 많으면 맹신에 빠지고 부족하면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노력이 많으면 들뜨고 부족하면 나태해집니다. 집중이 많으면 졸음에 떨어지고 부족하면 산란합니다. 지혜가 많으면 간교해지고 부족하면 어리석습니다. 이렇듯 알아차림 하나만 제외하고 다른 것들은 중도를 이루어야 합니다.
법(法)을 만난다고 할 때의 법은 마음의 대상입니다. 이 말은 수행자가 알아차릴 대상을 뜻합니다. 이렇게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나중에 진리의 법을 알게 됩니다. 이때 진리의 법이란 존재하는 생명의 특성인 무상, 고, 무아입니다. 불법(佛法)이라고 했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 보아서 존재의 특성인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합니다. 또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상의 법이 진리의 법으로 바뀌면 모든 집착이 끊어진 열반에 이르러 윤회가 끝납니다.
도(道)는 해탈의 자유를 지향하는 과정입니다. 도(道)가 지향해서 얻는 것이 바로 과(果)입니다. 과(果)는 도(道)가 지향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이것을 합쳐 도과(道果)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도가 있고 과가 없으면 아직 도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과가 있으면 당연히 도가 없을 수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도과가 결합되어야 하나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도의 과정에서 진리의 법을 통찰하면 열반에 이르러 과를 완성합니다. 이것이 수다원의 도과, 사다함의 도과, 아나함의 도과, 아라한의 도과입니다. 네 단계의 도와 과를 합쳐 사쌍팔배라고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을 닫고 오직 아는 마음 하나만 열어두는 수행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모두 작용해서 좋고 싫은 것으로 반응하면 고요함이 생기지 않아 정신과 물질의 바른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수행이 잘 되고 되지 않는 것은 바로 감각기관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처럼 세간과 출세간의 차이는 알아차림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좋다고 따라가서 집착하고, 싫다고 화를 내면 세간입니다. 그러나 좋아도 따라가서 집착하지 않고 싫어도 화를 내지 않으면 출세간입니다.
세간에서는 알아차림이 없어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접촉하여 느낌이 일어날 때 즉시 좋거나 싫은 느낌을 원인을 갈애로 반응합니다. 하지만 출세간에서는 알아차림이 있어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접촉하여 느낌이 일어날 때 좋거나 싫은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느낌이 일어나면 즉각 갈애로 반응하여 윤회의 원인을 만듭니다. 지혜가 있는 자는 느낌이 일어나도 갈애로 반응하지 않아 윤회의 원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해탈의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