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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동영상), 1644년 3월 19일, 명의 수도 북경, 황제가 살던 자금성이 불탄다. 가뭄과 기근에 지친 농민 반란군이 명 왕조를 무너뜨린 것이다. 명 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목을 매 자결을 하고 주인을 잃은 자금성은 청의 2인자 섭정왕 도르곤이 장악한다. 300년 가까이 중원을 호령한 신제국, 청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도르곤 옆에서 신제국의 새로운 탄생을 직접 목격한 이가 있었다. 조선의 2인자 소현세자였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삼백아흔아홉번 째 역사저널 그날입니다. 신제국의 탄생, 도르곤과 조선의 2인자 소현세자가 중국의 심장 북경에 입성한 그날 이야기입니다.
최태성/한국사 강사: 많은 분들이 헷갈리시는 게 뭐냐면 병자호란 이전에 명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병자호란 이후에 명나라가 망하는 장면을 지금 보여주는 겁니다.
박민수/이화여자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북경 그리고 자금성에 청의 2인자. 조선의 2인자가 함께 들어갔다는 건 우선 청의 입장에서는 요동 지역의 한낫 오랑캐가 인생역전의 드라마 같은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소현세자의 조선측에서는 평생을 부모의 나라로 받들었던 명이 멸망하고 그 자리를 오랑캐 라고 비하했던 청이 올라서는 걸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겠죠.
최원정: 명청교체기의 태풍의 핵을 소현세자가 보고 있는 거예요.
이시원/배우: 그러니까요, 또 얼마 전에 개봉한 <올빼미> 라는 영화에서 이 시기를 다뤘잖아요. 근데 저는 진짜 깜짝 놀란게 인조 役에 등장한 배우가 유해진 배우님이었어요. 왜 흔히 왕하면 맡을만한 인물이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는데 딱 유해진 배우님을 보는 순간 내가 알던 인조랑 뭔가 다르겠구나. 인조의 다른 면이 들어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최태성: 전 맨 처음 봤을 때 이거 미스캐스팅아냐?
허준/방송인: 묘하게 상상되는 모습
이시원: 실제로 유해진 배우님이 너무 완벽하게 왕 역할을 맡으신 거예요.
최태원: 그게 처음이예요?
이시원: 최초의 왕 역할이었대요.
최원정: 근데 사실 소현세자하면 사람들이 관심이 많잖아요. 아버지에게서 독살을 당한 것 같은 불운의 세자~ 그런데 역사저널 그날에서(48회 참고) 역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저희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사전 부활했으면 하는 인물하면 누구? 바로 소현세자였어요. 그만큼 뭔가 소현세자 하면 다들 안타까워하는 아쉬움이 많은가 봐요.
박민수: 오늘 이야기가 딱 그 영화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전에 먼저 소현세자가 무슨 자격으로 자금성에 들어갔는지 체크를 해보아야겠는데요. 병자호란에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를 하고 항복을 하죠. 그때 청이 조선에 항복 이행조건을 제시합니다. 그 조건 중에 하나가 인조의 큰 아들 소현세자와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청의 수도인 심양으로 인질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최태성: 맞아요.
허준: 대를 끊겠다는 거야~ 아들이 귀하고 대를 잇는 것에 대한 조선의 마인드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 아녜요. 근데 세자 그 밑에 동생까지 데려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조선 입장에서는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최태성: 네 목줄을 내가 쥐고 있다! 라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때 인조가 끌려가고 있는 소현세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그래요. 지나치게 화 내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보이지도 말라 (인조실록/인조 15년 2월 8일),
이시원: 이건 완전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이런 느낌~
최원정: 섹시하고 청순하게
이시원: 이건 소현세자 입장에서는
허준: 어쩌라고요!
최태성: 아버지의 입장과 조선의 왕이라는 입장이 공존한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 입장에서 가서 너무 화내고 그러면 위험할 수 있고 다칠 수도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걱정되는 마음 하지만 또 조선의 국왕의 입장에서 거기 가서 가볍게 보이면 우리나라의 국격이 무너지게 보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는 입장, 그런 인조의 심정이 담겨져 있는 멘트가 아닌가.
최원정: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아요. 저도 아들이 어디 새로운 학교엘 간다거나 단체에 가면 너무 나대지 말고 너무 주눅들지 말고 하면 표정이 어쩌라는 거야
최태성: 주눅들지 말라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허준: 학교를 다니지 말까?
이시원: 소현세자의 입장은 인질이니까 가지 말까 그럴 수도 없어요.
최원정: 소현세자가 요때 나이가 20대 중반 스물 다섯, 여섯 요 때쯤 이잖아요. 이미 다 상황을 알고서 끌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참담했을 것 같애요.
허준: 물론 여기 기록에 소현세자의 타입이 나오잖아요. 내가 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고 가지 않았을까.
이시원: 저는 뭐 솔직히 말해서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 같애요. 내가 볼모로는 가지만 조선의 대표인데 이런 중압감 거기다가 나를 어떻게 할 지 몰라 볼모는 볼모잖아요. 고문을 당할지 어떻게 괴롭힐지 독살을 할 수도 있고 얼마나 무서웠을 거예요.
박민수: 소현세자 일행이 청의 수도 심양으로 출발할 때 청측에서 인솔 가이드가 붙거든요. 그 인솔 가이드가 바로 오늘 다루는 새로운 주인공 도르곤입니다.
최원정: 도르곤, 우리가 시작할 때 도르곤과 소현세자가 자금성에 같이 입성했다고 그랬는데 지금 소현세자가 혼자 신났어 (허준에게) 도르곤이 누군지 아세요?
이시원: 저는 솔직히 말해서 대본 볼 때 처음에 드래곤 오타인줄 알았어요. 정말 아는 채 하고 싶었는데 도르곤이 누구죠?
최태성: 교과서에도 안 나와요. 소현세자는 나와도 도르곤은 안 나와요.
이력서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출생/사망 1612년 11월 17일~1650년 12월 31일
가족관계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
특기 및 경력
-전략구상, 전쟁지휘, 인질협상 (홍타이지 휘하에서 눈부신 군공기록)
-조카를 대신해 7년간 섭정왕으로 재위
-화려한 여성 편력에도 자식은 딱 딸 하나
-사후 묘가 파헤쳐져 부관참시됨
박민수: 만주어로 도르곤은 오소리 라는 뜻입니다. 싸움 잘 하는 족제비과 동물이죠. 청태조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이고요. 이복형인 청태종 홍타이지 휘하에서 십수년간 눈부신 전공을 세웁니다. 도르곤은 1612년 11월생으로 2월생인 소현세자보다 9개월 느린 동갑내기입니다.
허준: 전쟁 지휘를 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이때 당시의 청은 한 마디로 아시아의 최강자인데 여기서 전쟁 지휘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투 능력이 입증이 됐다는 것이고 그리고 섭정 (당시 순치제 5세)을 했다는 것은 말이 2인자이지 1인자나 다름없다는 뜻도 되잖아요. 그런걸 보면 우리는 몰랐지만 청에서는 굉장한 능력자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민수: 17살 때 부터 몽골과 명의 정벌에 나서서 많은 전공을 세우거든요. 가장 도르곤을 빛나게 한 사건은 바로 차르 몽골정벌 때 대원제국(大元帝國) 옥쇄라는 원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옥쇄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걸 이복형인 홍타이지에게 바치게 되거든요. 이 옥쇄를 바탕으로 다음 해에 원나라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대청을 세우게되는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도르곤이었습니다.
이시원: 어떻게 보면 개국공신 같은 사람이네요.
최태성: 징기스칸의 대를 잇는 대원제국의 옥쇄를 홍타이지에게 준 사람! 이건 엄청난 거네.
최원정: 그러니까 청 신제국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 아주 중요한 인물이네요. 그런데 저 특이사항이 계속 눈에 띄는게 화려한 여성편력에도 자식은 딱 딸 하나? 삶이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같아요.
이시원: 화려한 여성편력인데 어떻게 자식이 딸이 딱 하나예요?
최원정: 그러니까 재밋잖아요. 이상하잖아요.
박민수: 여기서 또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홍타이지가 한(han)에 오르고 나서 어린 도르곤을 견제하기 위해서 도르곤을 낳은 생모를 아버지 누르하치 무덤에 순장시켜버립니다.
최원정: 살아있는 사람을?
박민수: 네, 워낙 도르곤이 누르하치의 총애를 받았고 도르곤이 커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을 견제해서 친 엄마를 순장시켜 버리죠. 이때 도르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원수 분노를 억누르고 일단은 이복형인 홍타이지에게 충성스러운 신하로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시원: 도르곤의 운명도 기구하네요.
최태성: 병자호란에 참여했던 그런 인물이에요. 우리 얘기했지만 병자호란에서 결정적 무기가 뭐 였죠?
허준: 홍이포!
최태성: 그러면 병자호란에서 결정적인 승패를 좌우한 사건 그게 뭘 것 같애요?
이시원: 남한산성 포위?
최태성: 남한산성 포위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청군의 강화도 점령입니다. 왜냐면 강화도에 인조의 왕실 가족들이 많이 있잖아요. 여기를 점령한 순간 그때부터 인조는 엄청나게 압박을 받으면서 결국 인조가 백기를 들고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그 강화도를 점령한 인물이 도르곤이에요.
허준: 전설적인 동물 중에 허니 뱃저(honey badger) 라고 있어요. 허니 뱃저=벌꿀 오소리, 독사를 보잖아요. 독사에게 뚜벅 뚜벅 걸어가요 독사가 오소리를 콱 물어요. 그러면 오소리도 콱 물어요. 그러면 뱀이 죽어요. 그리고 오소리도 중독이 돼서 벌벌 떨면서 쓰러져요. 그랬다가 다시 또 눈을 뜨고 일어나서 뱀을 먹어요. 그리고 또 뚜벅 뚜벅 걸어가요. 오소리는 누구든 만나면 일단 물고 봐요.
이시원: 아까 어머니가 순장됐다고 했잖아요. 그게 독사에 물린 거랑 똑 같죠. 하지만 그대로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자기가 섭정까지 하는 되게 이름 잘 지은 것 같애요.
최원정: 반면에 소현세자의 입장에서는 조선을 굴복시키고 아버지에게 수모를 안겨준 당사자에게 끌려가는 거잖아요. 얼마나 치욕스러워요.
박민수: 소현세자가 도르곤과 함께 서울을 떠나서 심양으로 가서 다시 서울로 돌아올 그날까지 무려 8년 동안 심양에서 볼모 생활을 하는데요. 그때 생활을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사료가 있습니다. 바로 심양일기 라는 사료인데요. (심양일기-병자호란으로 청의 심양에 볼모로 간 소형세자 일행의 상황을 세자 시 강원에서 정리한 일기), 하루 하루 날씨는 물론이고 세자의 건강상태, 청나라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 그리고 심양 안팎의 세세한 정보까지도 모두 빠짐없이 꼼꼼하게 적어 넣은 아주 귀중한 사료입니다.
최원정: 역시 기록의 민족, 이 와중에서도 SNS 매일 올리듯 날씨까지 해서 대단하죠. 저희 제작진이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심양일기를 화면에 담아 보았습니다. (동영상) 보러 갈까요?
내레이션: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매일 날씨와 일정, 만난 사람 대화 등 소현세자가 380년 전 8년 동안 심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명청 교체기에 볼모 신분의 세자가 청 조정으로부터 받아야했던 직접적인 압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군사를 징발하고 군량을 운반하는 일을 밤늦도록 독촉하고 가거나 (심양일기/1640년 7월 5일), 아침 일찍 청 관리가 조선에서 보낸 옻칠의 품질이 좋지 않다고 불평했다(심양일기/1640년 7월7일),
허준: 그때 이후로 배운 거죠. 우리가 방학만 되면 일기장에 날씨 맑음 하고 오늘은 역사저널 그날을 봤다 참 재밌었다.
박민수: 심양일기라 해서 소현세자가 직접 쓴 일기가 아니구요. 세자 시강원에서 세자의 동태를 다 적어 놓은 기록입니다.
최태성: 맨 처음 출발할 때 소현세자가 거기 대신들도 있을 것이고 궁녀들도 있을 것이고 노비들도 있을 것이고 약 180명 정도 출발을 했거든요. 그런데 도착해서 심양관에 머물면서 조선인들이 계속 불어나요. 조선인 대신들 자제분들 인질로 와 있고 그러는데 몇 명까지 늘어나느냐 하면 약 500명 까지, 그런데 심양관이 18칸 이었데요. 18칸에 어떻게 500명이 들어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잘 안 굴려지는데, 거처하는 방이 좁고 낮아…(중략) 여름에는 무더위를 견딜 수 없어..(심양일기/1640년 7월 17일),
최원정: 그러면 1칸에 몇 명씩 자는 거예요?
최태성: 실제로 여름에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대요.
박민수: 심양에서는 청 조정에서 식량이나 식료품을 대줬거든요. 그런데 심양도 식량 사정이 좋지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서는 땅을 떼어줄 테니까 너네들이 알아서 농사짓고 알아서 먹어,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팔기(八旗)의 농지에서 1천일갈이 땅을 떼어 줄 것이니…농부는 본국에서 조달하십시오(심양일기/1641년 12월 12일), 요렇게 되어 버립니다.
최원정: 둔전을 경작해라.
이시원: 너무 한데요. 여기 지금 인질로 끌려온 사람들 농사는 지울 줄 알았나요?
최원정: 근데 제가 소현세자 입장이었으면 오랑캐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았을 것 같애요. 차라리 배추 무 심어서 김치 해먹는 게 나았을 것 같애요.
박민수: 당장 심양관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겠죠. 그래서 소현세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심양관 근처에 병자호란 때 끌고 왔던 포로들을 돈을 받고 속환을 하거나 (贖還-두 차례 호란으로 청에 끌려온 조선인들을 그 주인에게 몸값을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 노비로 매매하는 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현세자는 이들을 조선의 돈을 사용해서 일꾼으로 고용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들에게 농사를 짓게 만든 겁니다. 조선인들이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니까 해가 갈수록 수확량도 늘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심양관에서 필요한 경비를 대는 것 플러스 이윤을 내기에 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최태성: 우리가 또 농업의 민족 아니겠습니까.
이시원: 이거 일 타 몇 피 예요? 노예해방+고용창출+식량난 해결+이윤까지 창출한 거잖아요.
최태성: 소현세자의 수완이 뛰어난게 농사에서만 끝난 게 아니에요. 당시 청 나라 사람들한테 가장 선호하는 럭셔리 상품이 그게 뭐냐면 메인드 인 조선, 특히 종이나 면포,
이시원: 코리아가 브랜드 파워가 있었군요.
최태성: 그렇죠, 청 귀족들이 청탁을 하는 거예요. 나 이거 좋아 하는 데 몇 개만 빼줘 이렇게 시작되었다가 청탁이 점점 커지면서 무역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런 기록이 있어요. 곡식을 쌓아두고는 그것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하느라 관소 앞이 마치 시장 같았다(인조실록 46권/인조 23년 6월 27일),
허준: 그리고 또 그 당시 중국에서는 꽌시 라는 게 (꽌시(關系)-상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비공식적 네트워크 중국인들은 처세의 기본으로 생각),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가 있는데 소현세자 관소 앞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꽌시가 굉장히 넓어졌다라는 거잖아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No 관세 아니겠어요? 200명을 더 구해 오너라 노예상한테
최원정: 그야 말로 창조경제 이 정도면 심양에서 소현세자의 입지가 점점 커졌을 듯
이시원: 이걸 만약에 인조가 소식을 즉각 즉각 들었으면 역시 내 아들이야 거기서도 잘 하고 있구나 얼마나 뿌듯 했을까요.
허준: 지금 이 때 당시는 머리를 세번 조아리고 이마를 아홉번 땅에 찌은 후 잖아요. 그런데 그 나라에서 걔네 아들하고 우리 아들하고 잘 지내고 있다더라. 이 자식이 내가 아홉번이나 머리 찌은 놈들 하고 잘 지내고 있다구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최원정: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수 있겠어요. 아빠 입장 같아서는
박민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소현세자가 굉장히 활약을 한 걸로 나오는데 영원히 소현세자는 패전국의 인질이고 볼모였죠.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소현세자가 어려운 상황에도 끗끗하게 이겨냈다는 모티브로 많이 쓰이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그렇지만 소현세자는 자기 마음대로 뭘 활 수가 없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었구요. 문 밖 출입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됐습니다.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정명소 같은 역관이나 일부 허가 받은 고위 대신들 황족들만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도르곤이었던 거죠.
이시원: 도르곤과 소현세자가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애요. 소현세자와 공통점이 많아요. 제2인자고 나이도 동갑내기고 거기다가 조선에서 심양까지 그리고 자금성까지 같이 들어간 거잖아요. 둘이 어떤 관계였을까?
박민수: 실제로 심양으로 가는 도중에 도르곤이 사냥해서 잡은 양이나 노루 같은 것들을 보내기도 하고 자기 숙소에 초청을 해서 같이 차를 마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원정: 도르곤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얘는 내 편을 만들겠다고 생각을 했겠죠.
최태성: 인간적으로는 친할 수 있었을 것 같애요.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소현세자는 도르곤과 동격이 아니라는 거죠. 볼모로 끌려왔다는 거죠.
허준: 8년 동안 기록해 왔다는 거잖아요. 거기에 그러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아~ 슬픈 일 이런 것도 있어요?
최태성: 있어요, 왜냐면 어떻게 보면 무리한 무례한 부탁을 굉장히 많이 해요. 예를들면 정확히 도르곤과 소현세자는 갑을관계예요. 그래서 하라면 해! 하면 해야 되는 거예요. 특히 조선의 왕세자한테 청 나라 황제가 사냥 간다. 그럼 와라 심지어는 전쟁터에 나가니까 와라 완전히 명령까지 내려요.
최원정: 소현세자가 무인기질이 있었어요?
최태성: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허준: 조선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소현세자를 왜 데려가요?
최태성: 그러니까 거기다가 화살 맞아서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이시원: 그러게요, 왜 데리고 갔을까요?
박민수: 특히 소현세자가 견딜 수 없었던 건 명에 대한 정벌에 동행을 강요 받은 겁니다. 청이 소현세자 일행을 볼모로 데리고 있었던 이유는 물론 조선에 대한 압박도 있었지만 명에 대한 선전효과도 상당했겠죠. 그때 당시에는 아직 명이 멸망하기 전 이니까 너희들에게 가장 충성을 바쳤던 조선의 세자가 우리 손에 있다 그리고 그 세자가 너희들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라는 걸로 명에게 강한 압박이 되었을 겁니다.
최원정: 둘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명한테는 얘 내 꺼야 너 관심 끊어, 명과는 관계를 단절시키는 전시효과로 끌고 다니는 거예요.
최태성: 그렇죠, 도르곤은 여우예요.
이시원: 이거 다 속셈이 있었네요.
허준: 우리가 희망적인 것도 보았지만 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이었던 거지. 진짜 큰 희망은 아니었던 거죠.
박민수: 희망고문에 가깝죠. 실제로는 조선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사항도 모두 소현세자를 통해서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요새 보낸 곡물의 질이 형편 없는데 이거 딴 마음 품고 있는 거 아냐? 이렇게 위협을 한다거나 명과 전쟁을 할 테니까 군사를 보내도록 조선에 이야기를 잘 하십시오. 혹은 황제가 조선 음식을 좋아하시니 조선 음식을 좀 더 많이 보내도록 특별히 이야기 좀 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사사건건 시비 걸고 감독을 하는 거죠.
최원정: 소현세자한테 자꾸 시키는 거죠.
이시원: 제가 오해했어요. 친한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거기에 서열이~ 착취하고 빼앗고
최태성: 인간 대 인간 관계가 아니라 바로 국가 대 국가의 외교적 행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박민수: 중간에 오해도 있었던 것 같애요. 청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세자니까 어느 정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 한 건데 사실 조선의 세자는 왕에 대한 2인자이긴 하지만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소현세자는 조선에 이걸 그대로 전달 할 수도 없고 또 청의 입장에서는 세자한테 이야기를 하면 이것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구. 중간에서 소현세자가 끼어 있던 상태인 거죠.
이시원: 양쪽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허준: 조선에서는 세자가 예를 들면 어떤 권력자나 기관에 가서 나 세자인데 이런 일은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면 그건 역모 상황이 되는 거 아녜요?
최태성: 큰 일 나죠.
허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최태성: 예전에 보고를 왕한테 안하고 세자한테 했다고 난리가 난 일이 있었어요 (영조와 사도세자)
허준: 이런 데 자꾸 뭘 시키니
최원정: 그리고 또 인조가 그냥 인조예요 인조는 자아가 강한 왕이었어요.
최태성: 인조 같은 경우는 어떤 상황이냐면 청 나라가 조선 국내정치를 활용해요. 뭐냐면 인조를 압박하는 거예요. 만일 너(인조)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왕으로 세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압박을 하니까
허준: 삼전도에서 절을 시키는 게 아니고 그냥 왕을 바꿨어야 하는데
최태성: 이런 말에 인조로서는 엄청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이시원: 부자 사이가 그러면 틀어지겠네요.
최태성: 서서히 틀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관계가 멀어지는 거죠.
박민수: 어떤 식으로든 청 조정은 소현세자를 통해서 조선을 압박 할려고 했었던 거고 조선은 소현세자를 통해서 그 압박을 완충시킬려고 했었던 거죠. 심양일기에서 소현세자가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했고 뭘 했는지가 다 나오니까 이게 완성될 때마다 인조에게 보내라고 했어요. 조선에 있는 인조는 그 심양일기를 보고 세자가 이렇게 일을 하고 있구나 누구랑 친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일거수 일투족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던 거죠.
이시원: 흔히 일기라고 하면 내 마음의 쉼터, 내 속을 다 토할 수 있는 그런 존재잖아요. 그런데 심양일기는 그런 일기가 아니라 나를 항상 감시하는 CCTV인 거예요.
허준: 도르곤이 와서 막 협박을 하고 뭐 할 때 아~ 이거 아버지 이것 좀 보내주시지 이렇게 말 한 게 기록되면 이게 인조에게 불만으로 그래서 말도 못하는 거 아녜요.
최원정: 양 쪽을 피 말리게 할 것이 아니라 도르곤이나 청의 입장에서 왕을 바꿔 버리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청의 입장에서는 인조가 별로 였을 것 아녜요. 왜 안 그랬을까요?
박민수: 그것이 바로 청의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항복을 받았고 무력으로 정벌을 했지만 마음을 다해서 항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주 유용한 장치가 소현세자가 갔던 경우였죠.
허준: 궁금한 게 청이 사실 조선만 정벌한 게 아니라 몽골 여러 소수민족을 정벌한 거잖아요. 다른 민족들 한테도 이렇게 했어요?
박민수: 조선 뿐만 아니라 몽골의 다양한 부족들의 아들들이 다들 심양에 와서 인질 생활들을 하고 있었어요.
허준: 그럼 아들들끼리 커뮤니티가 있었겠네요.
박민수: 그럼 청 입장에서 그렇게 커뮤니티가 생기면 가만 있을까요, 안 돼죠.
이시원: 절대 안 돼죠, 청의 전략을 보고 있는데 치밀하고 너무 훌륭해요. 얄밉다!
최원정: 저희는 오랑캐라 그러면 우락 부락 말 타고 싸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전략적이에요.
허준: (박민수에게) 왜 그렇게 뿌듯해 하십니까?
박민수: 오랑캐는 여러분 마음 속에 있습니다.
최원정: 청과 조선 사이에서 아슬 아슬하게 줄 타기를 하는 이 상황 속에서 바로 소현세자가 도르곤을 따라서 전쟁터에 나가게 되는 거잖아요. 그 전쟁터가 바로 소현세자가 북경에 입성한 오늘의 그날과 연관이 있습니다.
-----------허준: (전화기를 들고 호출 갑자기 전화는 왜?) 만물각이 짜장면을 굉장히 잘 한데요. 여보세요, 만물각이죠? 여기 짜장면 4개만 배달해 주세요, 곱빼기로.
김정선/쇼호스트: (신속배달 철가방 들고) 짜장면 시키신 분! 짜장면 배달 왔어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역사저널 그날 홈쇼핑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니 그나 저나 많이 출출 하셨나 봐요. 방송 중에~짜장면 시키시고~ 누가 시키셨어요?
허준: 제가 시켰습니다.
김정선: 여기에 따끈 따끈한 신속배달 (자금성) 진짜 짜장면 등장입니다. 젖가락 까지 스멜~
이시원: 진짜 주시는 거예요?
허준: (술렁이는 녹화장) 오늘 진짜 짜장면 주는 거예요?
최원정: 진짜 짜장인가봐요.
김정선: 진짜 짜장 이라 해~오늘의 상품이 짜장면이니까 오래 보시나 본데 오늘의 상품은 짜장면이 아니고요 저희가 채널을 통해서 특별하게 준비한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고품격 북경 3박4일 투어 패키지를 준비했습니다. 자~ 자~ 북경으로 떠나보시죠, 북경하면 어떤게 떠오르나요?
이시원: 북경오리
김정선: 북경 오리는 맛 있으니까 특식으로 넣어드리죠. 북경하면 떠오르는 것 탁~ 탁~ 자금성~ 자금성~ 아까 여러분 굳이 중국 가시지 않으시더라도 동네에 하나씩은 다 있잖아요? 그만큼 자금성은 북경의 랜드마크예요. 규모도 어마 어마하게 큽니다. 근데 크다는 얘기를 하자면 1박2일 밤을 새도 모자라잖아요. 그래서 제가 특별히 서울에 하버드대에서 연수를 마치시고 돌아오신 초특급 가이드 분을 모셨습니다. 나오세요! (박민수 교수 등장),
박민수: (투어 가이드 깃발 들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랑캐 가이드 민수박 이에요. (자금성-현존하는 궁궐 가운데 가장 큰 규모, 명태종 영락제의 명으로 15년간 20만명 동원, 1420년에 완공), 자금성도 명태종 영락제의 명으로 15년 동안 약20만명이 동원돼서 1420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총 면적이 72만 제곱미터 축구장 약72개의 규모이구요. 명청시대 500년 동안 24명의 황제가 업무를 보고 거주한 초대형 초호화 궁전입니다.
최원정: 설명을 잘 하시네
최태성: 고급 정보가 쏟아질 것 같은 느낌
김정선: 모시기 어려웠어요.
이시원: 신뢰도가 엄청나요.
김정선: 저희가 자금성에 딱 들어가게 되면 오해를 좀 하세요. 아~ 건물이 자색이고 지붕이 황금색이라서 자금성인가? 아니죠, 초특급 가이드한테 들어보세요.
박민수: 한자 이름을 따져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천자가 사는 우주의 중심을 자미원(紫微垣)이라고 했는데요. 이 자미원에서 紫자를 떼어 오구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다해서 금지할 禁자를 써서 紫禁城이라 한 것입니다. 북경의 중심이자 천하의 중심 그리고 우주의 중심이 바로 紫禁城인 거죠. 참고로 여기 보이는 황금색 지붕은 황제만이 쓸 수 있는 황금색 입니다.
이시원: 한 마디로 자금성에 아무나 못 들어가는 뜻이었네요. 그럼 가이드님 영어로 뭐에요?
박민수: 영어로는 Forbidden city, 네, 금지된 도시라는 뜻입니다.
김정선: 가이드님이 하버드 나오셨어요.
최원정: 우리가 패키지 주문하면 가이드님과 돌아다닐 수 있는 거예요?
최태성: 가능한 건가요?
김정선: 걱정마세요. No 팁 No 옵션! 지금 전화만 주시면 돼요.
이시원: 가이드님! 대충이라도 조금 알고 가면 좋은 게 있나요?
박민수: 이게 중국의 성이다 보니까 모든 현판이 한문으로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시는 데 중간의 어느 지점부터는 요상한 글자가 같이 있습니다. 한자 옆에 무슨 문자가 있을까요?
최태성: 만주어
박민수: 바로 만주어가 있습니다.
이시원: 가이드님, 만주어 하실 줄 아니까 같이 가면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박민수: 걱정마시고 만주 황제가 중국 황제로서 업무를 보는 전삼각이라고 하는 앞쪽 3개의 전각에는 모두 한자로만 편액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궁이 세 개가 있는데 황제가 거주하는 곳이죠. 거기에서는 한자 편액 옆에 만주어로 똑 같은 글자로 씌어 있습니다. 왜 만주어냐? 자금성의 주인이 만주 황제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김정선: 보셨죠, 들으셨죠, 우리 가이드님이 이 정도입니다. 여러분! 저희는 무슨 투어라고요? 여러분! 저널 투어에서 저희가 그냥 씹고 맛보고 즐기고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역사여행까지도 완벽하게 알차게 채워드리는 투어라는 얘기죠. 그리고 북경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지 않습니까? 어디를 또 가고 싶으십니까?
최태성: 북경이면 자금성 봤으니까 그 다음은 만리장성 가 봐야죠.
김정선: 그렇죠, 역시 만리장성 저희도 당연히 가죠. 그런데 단체로 우루루 다 똑 같지 않는 빠다리창청? (박민수에게) 도와 주세요.
박민수: 빠다리 창청!
이시원: 그게 뭐예요?
박민수: 팔달령장성(八達岭長城)-사방 팔방으로 길이 통한다는 뜻의 사통팔달(四通八達)에서 유래 명대 1505년에 축조, 만리장성 구간 중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서북쪽에 있는데 가장 많이 가는 만리장성의 스팟인데요.
최태성: 사람이 너무 많아 가지고 이동 자체가 곤란한
김정선: 우리 저널 투어에서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있는 산해관, 비록 저희가 300킬로미터 밖에 안돼요. 가실 수 있으면 워낙 알찬 곳이라서 안 가시면 후회하시니까 가셔서 인증 샷! 찍어 주세요.
최태성: 만리장성 산해관 쪽은 가본적이 없는데
김정선: 그래서 특별한 단독 투어를 저희가 저널 투어에서 했다는 거죠. 오실 거죠?
이시원: 네
김정선: 역사적인 의미까지 저희가 알려드릴테니까 채널 고정하시고 저널 투어에 전화 주세요.
---------스튜디오에 두 사람, 다소 다이내믹한 이광용 아나와 박금수 무기전문가 등장-------
이광용: 천하제일관 산해관의 역사적인 의미는 저희 콤비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널 투어 북경 패키지, 자금성 & 산해관 패키지 상품이 중요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청 도르곤과 조선 소현세자가 그 길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누르하치도 홍타이지도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천하제일관 산해관을 청군 사령관 도르곤이 조선의 인질 소현세자와 함께 넘은 것이죠.
박금수/무기및전략 전술 전문가: 그러면 지금부터 도르곤이 어떻게 철벽 같은 산해관을 넘어서 북경의 자금성에 입성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드릴텐데요. 때는 1643년 4월 9일입니다. 산해관이 버티고 있으니까 산해관을 피해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몽골 초원을 우회를 해서 북경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이때 소현세자를 도르곤이 자기 군영 가까이에 동행을 시켰던 거죠. 그런데 이때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옵니다. 어떤 소식이냐 하면 이미 북경과 자금성이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반란군에 의해서 함락되었다.
허준: 이자성의 난 (명나라 말 정치 부패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봉기),
이시원: 내가 가지려 갔는데 이미~
이광용: 주인이 바뀌었어요. 목적지가 북경인데 이자성에 의해서 북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도르곤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었겠어요.
허준: 도루묵 되었어요.
이광용: 정답입니다. 마음은 급했겠죠.
박금수: 맞습니다. 이자성이 다 먹기 전에 빨리 가야 되거든요. 자금성 탕수육이 맛있습니다.
이시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박금수: 굉장히 마음이 급합니다. 이때 더 깜짝 놀랠 소식이 전해집니다. 누가 소식을 전했느냐면 산해관을 지키고 있었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가 도르곤한테 소식을 전해요.
최태성: 명 장수가?
박금수: 그렇죠,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반란군이 산해관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를 도와서 같이 싸웁시다 라고 지원요청을 한 거예요.
이시원: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됐네요.
최원정: 적한테 어떻게 손을 내밀지 이상하지 않아요?
최태성: 이 편지를 딱 받는 순간 굉장히 복잡해 지겠는데~
허준: 산해관을 지키고 있는 장수는 이런 판단했겠지요. 농민 반란군에 망하면 우리는 다 죽는다. 청하고 손을 잡으면 청이 중원을 장악했을 때 나도 한 자리 할 수 있다.
최태성: 오삼계 같은 경우는 농민 반란군은 내가 충분히 진압할 수 있어. 이 기회에 저기 도르곤도 한번 제거해 볼까 할 수 있잖아요?
이시원: 이게 함정이라구요?
최원정: 도르곤은 오삼계의 제안이 덫인지 아닌지 잘 판단해야 해요. 이 판단이 너무 중요해요.
최태성: 함정에 빠져 버리면
이광용: 우회 하느냐 아니면 직진 하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도르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이시원: 저는 직진!
최태성: 나는 우회
이광용: 그런데 도르곤은 큰별샘처럼 조심스럽거나 욕심이 없지 않았어요. 직진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허준: 함정이 아니었어.
박금수: 일단은 고속행군을 해서 4월 22일 산해관에 도착을 합니다. 오삼계군과 연합해서 이자셩의 반란군을 대패시켜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산해관 전투가 되겠습니다.
최태성; 정말 독특한 장면아녜요.
이광용: 산해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도르곤은 이제 어디로 행하지요? 북경입니다. 빨리 가서 최대한 많은 전리품을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르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뭐?
이시원: 속도!
이광용: 스피드!
박금수: 얼마나 빨리 걸어갔냐면 9일간 총620리 약310킬로미터를 새벽 5시 출발 밤늦게 까지 강행군하여 하루 이상 머문 데가 한 군데도 없이 북경만을 보고 직진했던 거죠.
이시원: 쉬지 않고 달렸구나
최태성: 하루 쉴 때 마다 북경 보물들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빨리 달려야지
허준: 소현세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시원: 소현세자는 거기서 그랬을 것 같애요. 여긴는 어디? 나는 누구? 내가 왜 여기서 같이 달리고 있지?
이광용: 많게는 하루에 100리 50킬로미터 이상을 계속해서 쉬지 않고 진군했던 적도 있고요. 어떤 날은 비가 와서 불을 피우지 못하면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요(심양일기/1644.4.23), 어떤 날은 황사가 눈에 계속 들어와서 엄청나게 고통을 느껴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또 사람과 말이 굶주린 채 이틀을 쉼 없이 달려야 하는 날도 있었다(심양일기/1644.5.2),
박민수: 청세조실록에는 도르곤의 행군이 순조롭다 못해 평화롭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면 지나가는 도시 마다 환영인파가 서고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 순조로운 모습이 보이는데 반면에 심양일기에는 고생이었다. 행군이 얼마나 긴박하고 다급했는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얼마나 다급하게 갔는지 소현세자가 지나가면서 본 전쟁의 참상, 그리고 헐벗은 사람들 그리고 황폐한 모습까지 모두 생생하고 꼼꼼하게 기록을 해놓은 겁니다.
이시원: 이게 크로스 체크가 된 거네요.
박민수: 그렇죠, 그래서 청의 공식 기록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청의 입장에서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소현세자가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기록을 해서 오늘까지 전해지게 된 겁니다.
최태성: 교수님, 지금 이 기록이 재미있는데 하버드대 계셨으니까 외국 학계에서 심양일기를 연구를 많이 했어요?
박민수: 한국인에게는 소현세자가 익숙한 이름이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나 유럽에서나 중국에서는 소현세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심양일기가 가지고 있는 기록의 가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미국에서 발표를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같은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양일기가 굉장히 앞으로 주목을 받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태성: 심양일기 지금 연구하시는 거예요?
박민수: 지금 논문을 쓰고 있구요. 영어로도 번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원정: 오랑캐 라고 너무 놀려대서 죄송해요. 교수님의 연구를 응원합니다.
이광용: 저널 투어 가이드는 이제 못 하시는 거예요? 산해관을 통과한 이후에 청군의 진군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은 모두 도르곤의 전략적 판단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르곤은 어마 어마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북경에 입성합니다. 조선의 인질 소현세자와 함께 말이죠.
최원정: 자금성의 입성은 청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 거네요.
박민수: 우리가 병자호란을 홍타이지의, 홍타이지에 의한, 홍타이지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했잖아요. 오늘 살펴본 산해관 전투는 저는 이렇게 살펴보고 싶습니다. 도르곤의, 도르곤에 의한, 도르곤을 위한 전쟁이었다구요. 왜냐면 도르곤은 여진 부락을 국가로 결집시킨 아버지 누루하치도 못 했고 만주 몽골 한족을 아울러서 황제에 오른 홍타이지도 못한 산해관을 돌파해서 북경의 자금성에 발을 내디뎠기 때문입니다. 비록 도르곤이 황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황제보다도 큰 업적을 세운 거죠.
이시원: 가지진 못했으나 다 가졌다. 도르곤을 위한 말 같애요. 그런데 도르곤이 자금성에 입성했을 때 위풍당당함 영화로 표현하면 끝내 줄 것 같애요.
박민수: 근데 도르곤이 막상 북경에 들어오고나서 눈에 보이는 것은 불타고 남은 잔재 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최태성: 이미 다 빼돌렸구만
박민수: 산해관 전투에서 도르곤과 오삼계 연합군에게 패배한 이자성이 북경으로 돌아와서 이건 도저히 지킬 수가 없다 판단을 내리고 자금성에 불을 지르고 모든 보물을 싣고 북경을 빠져 나간 거죠.
허준: 이게 중국 특기예요? 옛날 삼국지에서도 보면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도망 가잖아요. 그냥 안 가고 여기 있는 거 쓸어 가지고 가는
최원정: 나중에 이자성이 가지고 간 보물은 회수를 하나요?
박민수: 수거를 할려고 노력을 하죠. 끝까지 추격을 합니다.
허준: 이 정부를 심양일기에 기록을 하셨잖아요? 그러면 소현세자께서는 가시는 길을 함께 가신 거잖아요. 소현세자의 뉘앙스가 어떻는지가 궁금해요. 청은 이렇게 강하다 뚫고 나가고 있어 경외심? 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속상해? 이런 뉘앙스일까?
박민수: 굉장히 이중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요. 자기가 평생 받들었던 사대의 대상이었던 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인생무상 허무를 느끼기도 했고 또 우리가 무시했던 청이 이렇게 명의 유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북경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구요.
허준: 처음에는 이게 재미 있는게 북경을 정벌해서 식민지로 만들어서 청의 제국을 세우겠다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가서 털어서 많은 것들을 심양으로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다 불타고 하나도 없는데 가만 있어봐 저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네 여기 들어갈 수 있겠는데 이렇게 바뀐 거예요.
이시원: 지금 북경은 진공상태인 거예요. 나라도 없고 황제도 없고
박민수: 일반적인 오랑캐 였다면 그렇게 생각을 했겠죠. 들어가서 약탈을 찾고 없으면 빠지는 게우선이죠. 실제로 그때도 도르곤의 부하들이 이제 더 이상 북경에서 얻을 것이 없으니 우리 심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도르곤은 달랐죠. 도르곤은 명의 관원들과 유민들을 귀순시키고 민심을 잡기 위해서 선전활동도 펼치고 치안유지에 다양한 정책들을 펼칩니다. 무엇보다 허망하게 목을 맸던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위해서 후하게 장례를 치러 줍니다. 그리고 이제 청나라가 명나라의 원수를 대신 갚고 새로운 중국을 펼치겠다 라는 비젼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도르곤이 강력하게 주장을 합니다. 이제 심양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그래서 결국 심양에 있던 어린 황제 6살 짜리 순치제도 10월에 북경에 도착을 하고 자금성에서 두번째 즉위식을 올리게 됩니다.
허준: 근데 이게 하늘도 도왔다는 느낌이 있는 게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대의명분을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그런데 우리 제국의 마지막을 청이 와서 없앤 게 아니라 저 나쁜 이자성의 난 때문에 명이 멸망을 했다. 그 복수를 청이 대신해 준다. 그러면 명의 명맥을 청이 잇는다 이렇게 되버리네요.
최원정: 도르곤은 상황판단을 굉장히 소름끼치게 잘 하는 사람이에요. 민심을 그런 식으로 수습하잖아요. 은근 슬쩍 우리 너희 편이야 하면서, 사실은 오랑캐인데 희한하게 스며들게
박민수: 만약에 처음 와서 북경을 공격해서 무력으로 함락을 하였다면 그런 식의 회유작전이 통하지 않았겠죠.
최원정: 중원의 주인이 바뀌는 그 역사적인 그날 현장을 소현세자가 본 거예요.
이시원: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하잖아요. 명이 몰락하고 청이 뜬다. 이 얘기를 백번 듣는 것 보다 그 현장에서 딱 본 소현세자의 마음이 훨씬 더 동했을 것 같애요.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박민수: 특히 도르곤은 북경에 함께 들어온 소현세자에게 불타고 남은 자금성의 전각 중 한 곳을 내어주고 생활하게 합니다. 그 중에 아담 샬 (沕若望/Johann Adam Schall von Bell/1592~1666) 이라는 예수회 신부를 만나서 천주교도 접하게 되고 서양의 역법이나 과학 기술 등을 접합니다.
허준: 아버지(인조)한테 얘기를 해요?
이시원: 심양일기 기록을 계속 보내 주었겠죠.
박민수: 그리고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 실제로 소현세자가 북경에 들어오고 나서의 일정은 심양일기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시원: 왜요? 왜요?
박민수: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원정: 추측하건데 교수님은 왜라고 생각하세요?
박민수: 그 기록이 중간에 없어졌을 수도 있고 북경에서의 행적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훼손했을 수도 있겠죠.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그런 기록이 비어 있을 때 여러 상상력이 나오잖아요. 소현세자가 실제로 북경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심양일기에서 지금은 우리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허준: 영화 관계자분들 보고 계시다면 나중에 꼭 밝혀야 돼요.
최원정: 원동연 대표님이 이걸 보셨으면 좋겠어요.
최태성: 8년간의 볼모생활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거기서 세계사적 변화를 온 몸으로 보고 온 사람이잖아요. 왔더니~ (동영상) 그러나 조선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 그 모습을 보며 소현세자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최원정: 그러니까요, 만약에 소현세자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 조선도 국제정치에 밝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강국으로 재탄생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허준: 저는 역사엔 if 가 없다는 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에 if 가 있어야 된다. 소현세자 같은 경우는 청의 최강자와의 친분이 있죠. 그리고 외국인 신부라든가 선진문물을 배울 수 있는 루트를 알고 있잖아요. 그러면 홍이포도 결국 유럽에서 들어온 무기, 유럽의 무기들이 엄청 발전하고 있는 시대 아니겠습니까. 이걸 우리가 다 수입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여러가지 들을 소현세자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태성: 소현세자가 어떤 사람인가는 청과 조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의 줄타기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상한 아버지 인조, 마음에 안 드는 아버지 인조 사이에서 권력으로 목숨이 오가는 줄타기를 했던 인물이잖아요. 모든 긴장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소현세자가 만약에 인조 다음에 왕 위에 올랐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다르게 씌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시원: 왜 역사 선생님들이 소현세자를 부활시키고 싶은 인물 1위로 꼽았는지를 알 것 같애요.
최원정: 우리가 5회에 걸쳐서 명청교체기를 살펴봤는데 주변에서 평소 우리가 듣지 못했던 너무나 많은 일화를 담아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어요.
이시원: 진짜요, 저는 솔직히 오랑캐 하면 편견이 있었어요. 무데뽀 계획적이지 않고 근데 웬걸 우리가 살펴본 누루하치, 홍타이지, 도르곤 까지 굉장히 유연한 판단력을 갖고 있고 그걸 실행시킬 능력까지 있었더라고요. 이걸 몰랐으면 저는 오랑캐에 대해서 오해했을 것 같애요. 진짜 오랑캐의 모습을 알게 해 주신 오랑캐 교수님, 박민수 교수님 제 마음 속의 오랑캐 교수님은 박민수 교수님 랑캐~
박민수: 알겠당캐!
최태성: 소위 역사의 비주류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그 과정을 우리가 너무 생생하게 살펴 보았어요.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우리 인생이 모든 모습은 아닐 것이다.
박민수: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청의 역사를 최대한 낯설게 보려고 노력한 것 같애요. 예를 들어서 오랑캐 청이 아닌 한족의 명이 현대 중국으로 이어졌다면 현재 중국의 영토, 문화, 민족정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정을 해보면 청나라의 존재감과 의미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오랑캐는 돌아옵니다!
최원정: 오랑캐가 돌아온다는 얘기가 의미심장한데요. 본인이 돌아온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사에는 항상 오랑캐가 돌아온다는 얘기~
최태성: 새로운 세력은 그 시대의 오랑캐로 취급받는 세력이었으니까 그 세력들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니까 오랑캐는 돌아온다.
허준: 다음에 돌아올 때는 소현세자 기록을 찾아오세요!
최원정: 신제국의 탄생, 청나라 편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399회 신제국의 탄생, 청나라 ⑤ 소현세자의 목격-청, 자금성을 장악한 날 에서 정리).
① 1644년 3월 19일, 明의 수도 북경, 황제가 살던 紫禁城이 불탄다. 가뭄과 기근에 지친 농민 반란군이 明 왕조를 무너뜨렸다. 明 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목을 매 자결을 하고 주인을 잃은 자금성은 淸의 2인자 섭정왕 도르곤이 장악한다. 300년 가까이 중원을 호령한 신제국, 淸이 탄생하였다. 그날 도르곤 옆에서 조선의 2인자 소현세자는 신제국의 탄생을 직접 목격하였다. 丙子胡亂(1636년) 이후에도 명나라는 망하지는 않했다. 이 순간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소현세자는 평생을 부모의 나라로 받들었던 明이 멸망하고 그 자리를 오랑캐 라고 비하했던 淸이 올라서는 걸 보았다. 아버지(인조)에게서 독살을 당한 것 같은 불운의 세자, 역사 선생님들 대상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전 부활했으면 하는 인물이 바로 소현세자가 1위였다. 그만큼 뭔가 소현세자 하면 다들 안타까워하는 아쉬움이 많다. 병자호란에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를 하고 항복을 한다. 그때 청이 조선에 항복 이행조건을 제시한다. 그 조건 중에 하나가 인조의 큰 아들 소현세자와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청의 수도인 심양으로 인질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네 목줄을 내가 쥐고 있다! 라는 의미다. 그때 인조는 끌려가고 있는 소현세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지나치게 화 내지도 말고 가볍게 보이지도 말라,
② 당시 소현세자의 나이 25 때쯤 이미 상황을 알고서 끌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참담했을 것 같다. 소현세자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았을까. 동시에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 같다. 내가 볼모로는 가지만 조선의 대표인데 이런 중압감 거기다가 고문을 당할지 괴롭히고 독살을 당할 수도 있고 무서웠을 것이다. 소현세자 일행이 심양으로 출발할 때 청측 인솔 가이드가 도르곤이었다. 도르곤은 만주어로 오소리 라는 뜻, 싸움 잘 하는 족제비과 동물, 청태조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이고 이복형인 청태종 홍타이지 휘하에서 십수년간 눈부신 전공을 세운다. 도르곤은 1612년 11월생으로 2월생인 소현세자보다 9개월 느린 동갑내기다. 당시의 청은 아시아의 최강자인데 여기서 전쟁 지휘를 했다는 것은 도르곤이 그만큼 전투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고 섭정 (당시 순치제 5세)을 했다는 것은 말이 2인자이지 1인자나 다름없다. 그런걸 보면 청에서는 굉장한 능력자였다.
③ 도르곤은 17살 때 부터 몽골과 명의 정벌에 나서서 많은 전공을 세운다. 도르곤을 가장 빛나게 한 사건은 몽골정벌 때 대원제국(大元帝國)의 옥쇄라는 원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옥쇄를 손에 넣게 된다. 그걸 이복형인 홍타이지에게 바치게 된다. 이 옥쇄를 바탕으로 다음 해에 원나라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大淸을 세우게되는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도르곤이었다. 그러니까 청, 신제국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특이사항에 화려한 여성편력에도 자식은 딱 딸 하나?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다. 홍타이지가 한(han)에 오르고 나서 어린 도르곤을 견제하기 위해서 도르곤을 낳은 생모를 아버지 누르하치 무덤에 순장시켜버린다. 워낙 도르곤이 누르하치의 총애를 받았고 도르곤이 커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을 견제해서 친 엄마를 순장시켜 버렸다. 이때 도르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원수 분노를 억누르고 일단은 이복형인 홍타이지에게 충성스러운 신하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도르곤의 운명이 기구하다. 도르곤은 병자호란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④ 도르곤은 병자호란에서 강화도를 점령한다. 강화도에 인조의 왕실 가족들이 많이 있었다. 여기를 점령당한 순간 그때부터 인조는 엄청나게 압박을 받으면서 결국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전설적인 동물 중에 허니 뱃저(honey badger)가 있다. 허니 뱃저=벌꿀 오소리, 독사를 보면 독사에게 뚜벅 뚜벅 걸어가면 독사가 오소리를 콱 문다. 오소리도 콱 문다. 뱀이 죽는다. 오소리도 중독이 돼서 벌벌 떨면서 쓰러진다. 그랬다가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서 뱀을 먹는다. 그리고 뚜벅 뚜벅 걸어간다. 오소리는 누구든 만나면 일단 물고 본다. 도르곤 어머니가 순장됐다고 했다. 그게 도르곤이 독사에 물린 거랑 똑 같다. 하지만 그대로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자기가 섭정까지 하였다. 반면 소현세자는 조선을 굴복시키고 아버지에게 수모를 안겨준 당사자에게 끌려가는 거다. 치욕스럽다.
⑤ 소현세자가 도르곤과 함께 서울을 떠나서 심양으로 가서 다시 서울로 돌아올 그날까지 무려 8년 동안 볼모생활을 하였다. 그때 생활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사료가 심양일기다. 심양일기는 병자호란으로 심양에 볼모로 간 소형세자 일행의 상황을 세자 시강원에서 정리한 일기, 하루 날씨는 물론이고 세자의 건강상태, 청나라 사람들과 나눈 대화, 그리고 심양 안팎의 세세한 일상까지도 모두 빠짐없이 꼼꼼하게 적어 넣은 귀중한 사료다.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매일 날씨와 일정, 만난 사람 대화 등 소현세자가 380년前 8년 동안 심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되어 있다. 심양일기라 해서 소현세자가 직접 쓴 일기가 아니다. 세자 시강원에서 세자의 동태를 다 적어 놓은 기록이다. 또한 명청 교체기에 볼모 신분의 세자가 청 조정으로부터 받아야했던 직접적인 압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군사를 징발하고 군량을 운반하는 일을 밤늦도록 독촉하고 가거나 (심양일기/1640년 7월 5일), 아침 일찍 청 관리가 조선에서 보낸 옻칠의 품질이 좋지 않다고 불평했다 (심양일기/1640년 7월7일), 소현세자가 맨 처음 출발할 때는 대신들 궁녀들 노비들로 약180명 정도 출발을 했다. 심양관에 도착해 살면서 조선인들이 계속 불어나서 나중엔 약500명 까지, 그런데 심양관이 18칸 이었다. 18칸에 어떻게 500명이 들어가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거처하는 방이 좁고 낮아…(중략) 여름에는 무더위를 견딜 수 없어..(심양일기/1640년 7월 17일), 실제로 여름에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처음엔 청 조정에서 식량이나 식료품을 대줬다. 심양도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땅을 떼어줄 테니까 너네들이 알아서 농사짓고 알아서 먹어,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팔기(八旗)의 농지에서 1천일갈이 땅을 떼어 줄 것이니…농부는 본국에서 조달하십시오(심양일기/1641년 12월 12일),
⑥ 당장 심양관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소현세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심양관 근처에 병자호란 때 끌려 왔던 포로들을 돈을 내고 속환을 하거나, 贖還은 두 차례 호란으로 청에 끌려온 조선인들을 그 주인에게 몸값을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 노비로 매매하는 시장이 있었다. 소현세자는 이들을 조선 돈을 사용해서 일꾼으로 고용을 하여 그들에게 농사를 짓게 만든다. 조선인들이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니까 해가 갈수록 수확량도 늘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심양관에서 필요한 경비를 대고 플러스 이윤을 내기에 까지 이르렀다. 소현세자의 수완이 뛰어난 게 농사에서만 끝난 게 아니다. 당시 청 나라 사람들한테 가장 선호하는 럭셔리 상품은 조선의 종이와 면포, 청 귀족들이 청탁을 한다. 몇 개만 빼줘 이렇게 시작되었다가 청탁이 점점 커지면서 무역이 되었다. 이런 기록이 있다. 곡식을 쌓아두고는 그것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하느라 관소 앞이 마치 시장 같았다(인조실록 46권/인조 23년 6월 27일), 그리고 그 당시 중국에서는 꽌시라는 게, 꽌시(關系)는 상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비공식적 네트워크 중국인들은 처세의 기본으로 생각,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소현세자 관소 앞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꽌시가 굉장히 넓어졌다라는 거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노예상한테 200명을 더 구해 오너라 그야 말로 창조경제, 심양에서 소현세자의 입지가 점점 커졌을 듯, 이 때 당시 인조는 머리를 세번 조아리고 이마를 아홉번 땅에 찌은 후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걔네 아들하고 우리 아들하고 잘 지내고 있다더라. 이 자식이 내가 아홉번이나 머리 찌은 놈들 하고 잘 지내고 있다구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수 있겠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소현세자가 굉장한 활약을 한 걸로 나오는데 소현세자는 영원히 패전국의 인질이고 볼모였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소현세자가 어려운 상황에도 끗끗하게 이겨냈다는 모티브로 많이 쓰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소현세자는 자기 마음대로 뭘 활 수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었다. 문 밖 출입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됐다.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역관이나 일부 허가 받은 고위 대신 황족들만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도르곤이었다.
⑦ 도르곤과 소현세자는 공통점이 많다 제2인자고 나이도 동갑내기고 거기다가 조선에서 심양까지 자금성까지 같이 들어갔다. 둘이 어떤 관계였을까? 도르곤은 실제로 심양으로 가는 도중에 사냥해서 잡은 양이나 노루를 보내기도 하고 자기 숙소에 초청을 해서 같이 차를 마시기도 했다. 도르곤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얘는 내 편을 만들겠다고 생각을 했겠다. 인간적으로는 친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뭐냐 소현세자는 도르곤과 동격이 아니다. 볼모로 끌려왔다. 8년 동안 기록한 일기에는 무리한 무례한 부탁을 많이 했다. 예를들면 도르곤과 소현세자는 갑을관계다. 그래서 하라면 해야 된다. 조선의 왕세자한테 청 나라 황제가 사냥 간다. 그럼 와라 심지어는 전쟁터에 나가니까 와라 완전히 명령까지 내린다. 특히 소현세자가 견딜 수 없었던 건 명에 대한 정벌에 동행을 강요 받은 거였다. 청이 소현세자 일행을 볼모로 데리고 있었던 이유는 물론 조선에 대한 압박도 있었지만 명에 대한 선전효과도 상당했겠다. 그때 당시에는 아직 명이 멸망하기 전 이니까 너희들에게 가장 충성을 바쳤던 조선의 세자가 우리 손에 있다 그 세자가 너희들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라는 걸로 명에게 강한 압박이 되었다. 둘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명과는 관계를 단절시키는 전시효과가 있다.
⑧ 도르곤은 여우다. 우리가 희망적인 것도 보았지만 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이었다. 진짜 큰 희망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조선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사항도 모두 소현세자를 통해서 얘기를 했다. 요새 보낸 곡물의 질이 형편 없는데 이거 딴 마음 품고 있는 거 아냐? 이렇게 위협을 한다거나 명과 전쟁을 할 테니까 군사를 보내도록 조선에 이야기를 잘 하십시오. 혹은 황제가 조선 음식을 좋아하시니 조선 음식을 좀 더 많이 보내도록 이야기 좀 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사사건건 시비 걸고 감독을 하였다. 소형세자와 도르곤은 친한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거기에 서열과 착취가 있었다. 인간 대 인간 관계가 아니라 바로 국가 대 국가의 외교적 행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었다. 중간에 오해도 있었다. 청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세자니까 어느 정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 한 건데 사실 조선의 세자는 왕에 대한 2인자이긴 하지만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소현세자는 조선에 이걸 그대로 전달 할 수도 없고 또 청의 입장에서는 세자한테 이야기를 하면 이것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구 중간에 끼어 있던 상태였다. 양쪽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리고 인조는 자아가 강한 왕이었다.
⑨ 인조의 경우는 어떤 상황이냐 청 나라가 조선 국내정치를 활용했다. 뭐냐 인조를 압박하는 거다. 만일 너(인조)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왕으로 세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압박을 하니까 삼전도에서 절을 시키는 게 아니고 그냥 왕을 바꿨어야 하였다. 이런 말에 인조로서는 엄청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부자 사이가 서서히 틀어지고 관계가 멀어지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청 조정은 소현세자를 통해서 조선을 압박 할려고 했었고 조선은 소현세자를 통해서 그 압박을 완충시킬려고 했었다. 심양일기에서 소현세자가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했고 뭘 했는지가 다 나오니까 이게 완성될 때마다 인조에게 보내라고 했다. 조선에 있는 인조는 그 심양일기를 보고 세자가 이렇게 일을 하고 있구나 누구랑 친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일거수 일투족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다. 심양일기는 일기가 아니라 소현세자를 항상 감시하는 CCTV였다. 청은 양 쪽을 피 말리게 할 것이 아니라 도르곤이나 청의 입장에서 왕을 바꿔 버리면 되는 거다. 청의 입장에서는 인조가 별로 였는데 왜 안 그랬을까.
⑩ 바로 청의 노림수는 항복을 받았고 무력으로 정벌을 했지만 마음을 다해서 항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소현세자가 갔던 경우였다. 청은 조선 뿐만 아니라 몽골의 다양한 부족들의 아들들이 다들 심양에 와서 인질 생활들을 하고 있었다. 청의 전략은 너무 치밀하고 훌륭하다. 이건 오랑캐가 아니다. 청과 조선 사이에서 아슬 아슬하게 줄 타기를 하는 이 상황 속에서 바로 소현세자가 도르곤을 따라서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그 전쟁터가 바로 소현세자가 북경에 입성한 날이다. 북경, 자금성은 현존하는 궁궐 가운데 가장 큰 규모, 명태종 영락제의 명으로 15년 동안 약20만명이 동원돼서 1420년에 완공되었다, 총 면적이 72만 제곱미터 축구장 약72개의 규모이고 명청시대 500년 동안 24명의 황제가 업무를 보고 거주한 초대형 초호화 궁전이다. 자금성은 한자 이름을 따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천자가 사는 우주의 중심을 자미원(紫微垣)이라고 했다. 이 자미원에서 紫자를 떼어 오구 아무나 범접할 수 없다해서 금지할 禁자를 써서 紫禁城이라 한 것이다. 북경의 중심이자 천하의 중심 그리고 우주의 중심이 바로 紫禁城이다. 황금색 지붕은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색이다. 한 마디로 자금성은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이었다. 영어로는 Forbidden city, 금지된 도시라는 뜻이다. 자금성은 중국의 성이다 보니까 모든 현판이 한문으로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데 중간의 어느 지점부터는 만주어가 있다. 만주 황제가 중국 황제로서 업무를 보는 전삼각이라고 하는 앞쪽 3개의 전각에는 모두 한자로만 편액이 되어 있다. 그런데 뒤에 있는 궁이 세 개가 있는데 황제가 거주하는 곳이다. 거기에서는 한자 편액 옆에 만주어로 똑 같은 글자로 씌어 있다. 왜 만주어냐? 자금성의 주인이 만주 황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⑪ 북경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만리장성이다. 팔달령장성(八達岭長城)은 사방 팔방으로 길이 통한다는 뜻의 사통팔달(四通八達)에서 유래, 명대 1505년에 축조, 만리장성 구간 중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서북쪽에 있는데 가장 많이 가는 만리장성의 스팟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있는 천하제일관 산해관의 역사적인 의미는 바로 청 도르곤과 조선 소현세자가 그 길을 밟았다. 누르하치도 홍타이지도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산해관을 청군 사령관 도르곤이 조선의 인질 소현세자와 함께 넘은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도르곤이 어떻게 철벽 같은 산해관을 넘어서 북경의 자금성에 입성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면 때는 1643년 4월 9일. 도르곤은 산해관이 버티고 있으니까 산해관을 피해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몽골 초원을 우회 해서 북경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출발을 했다. 이때 도르곤이 소현세자를 자기 군영 가까이에 동행을 시켰다. 이때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온다. 북경과 자금성이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반란군에 의해서 함락되었다. 이자성의 난은 명나라 말 정치 부패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봉기, 목적지가 북경인데 이자성에 의해서 북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도르곤은 당황하였다.
⑫ 이때 더 깜짝 놀랠 소식이 전해진다. 산해관을 지키고 있었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가 도르곤한테 이자성의 농민반란군이 산해관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고 알려왔다. 나를 도와서 같이 싸우자 라고 지원요청을 하였다. 도르곤은 우회 하느냐 직진 하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직진을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함정이 아니었다. 도르곤은 고속행군을 해서 4월 22일 산해관에 도착한다. 오삼계군과 연합해서 이자셩의 반란군을 대패시켜 버린다. 이것이 산해관 전투다. 산해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도르곤은 이제 북경을 향해 출발했다. 최대한 빨리 9일간 총620리 약310킬로미터를 새벽 5시 출발 밤늦게 까지 강행군하여 하루 이상 머문 데가 한 군데도 없이 북경만을 보고 직진했다. 소현세자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소현세자는 거기서 그랬을 것 같애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가 왜 여기서 같이 달리고 있지? 많게는 하루에 100리 50킬로미터 이상을 쉬지 않고 진군했던 적도 있다. 어떤 날은 비가 와서 불을 피우지 못하면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다(심양일기/1644.4.23), 어떤 날은 황사가 눈에 들어와서 엄청나게 고통을 느꼈다. 사람과 말이 굶주린 채 쉼 없이 이틀을 달린 날도 있었다(심양일기/1644.5.2), 청세조실록에는 도르곤의 행군이 순조롭다 못해 평화롭게 기록되어 있다. 지나가면 지나가는 도시 마다 환영인파가 있고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 순조로운 모습이 보이는데 반면에 심양일기에는 고생이었다. 행군이 얼마나 긴박하고 다급했는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소현세자가 지나가면서 본 전쟁의 참상, 그리고 헐벗은 사람들, 그리고 황폐한 모습까지 모두 생생하고 꼼꼼하게 기록을 하였다. 청의 공식 기록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청의 입장에서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소현세자는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기록해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⑬ 한국인에게는 소현세자가 익숙한 이름이다. 미국 유럽 중국에서는 그의 역할에 대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양일기가 가지고 있는 기록의 가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심양일기는 주목을 받을 것이다. 산해관을 통과한 이후에 청군의 진군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그것은 모두 도르곤의 전략적 판단 덕분이었다. 그는 어마 어마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북경에 입성한다. 조선의 인질 소현세자와 함께, 자금성의 입성은 청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였다. 병자호란은 홍타이지의, 홍타이지에 의한, 홍타이지를 위한 전쟁이었다면 산해관 전투는 도르곤의, 도르곤에 의한, 도르곤을 위한 전쟁이었다. 도르곤은 여진 부락을 국가로 결집시킨 아버지 누루하치도 못 했고 만주 몽골 한족을 아울러서 황제에 오른 홍타이지도 못한 산해관을 돌파해서 북경의 자금성에 홀로 입성했기 때문이다. 도르곤은 황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황제보다도 큰 업적을 세웠다. 도르곤이 막상 북경에 들어오고나니 눈에 보이는 것은 불타고 남은 잔재 밖에 없었다.
⑭ 산해관 전투에서 도르곤과 오삼계 연합군에게 대패한 이자성은 북경으로 돌아와서 도저히 지킬 수가 없다 판단을 내리고 자금성에 불을 지르고 모든 보물을 싣고 북경을 빠져 나갔다. 자기가 평생 받들었던 사대의 대상이었던 明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했고 우리가 무시했던 淸이 명의 유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북경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소현세자는 굉장히 이중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게 재미 있는게 북경을 정벌해서 식민지로 만들어서 청의 제국을 세우겠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가서 털어서 많은 재물을 심양으로 가지고 가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불타고 하나도 없는데 저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네 여기 들어갈 수 있겠는데 이렇게 바뀐 거였다. 지금 북경은 진공상태 나라도 없고 황제도 없었다. 일반적인 오랑캐 였다면 그렇게 생각을 했겠다. 들어가서 약탈을 하고 없으면 빠지는 게 우선이다. 그때도 도르곤의 부하들이 더 이상 북경에서 얻을 것이 없으니 심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도르곤은 달랐다. 그는 명의 관원들과 유민들을 귀순시키고 민심을 잡기 위해서 선전활동도 펼치고 치안유지에 다양한 정책들을 펼쳤다. 무엇보다 허망하게 목을 맸던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위해서 후하게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이제 청나라가 명나라의 원수를 대신 갚고 새로운 중국을 펼치겠다 라는 비젼을 제시한다. 도르곤이 강력하게 주장을 한다. 이제 심양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 결국 심양에 있던 어린 황제 6살 순치제도 10월에 북경에 도착하고 자금성에서 두번째 즉위식을 올리게 되었다.
⑮ 이게 하늘도 도왔다는 느낌이 있다. 중국에서는 대의명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제국의 마지막을 청이 와서 없앤 게 아니라 저 나쁜 이자성의 난 때문에 명이 멸망을 했다. 그 복수를 청이 대신해 준다. 청이 명의 명맥을 잇는다. 도르곤은 상황판단을 소름끼치게 잘 하는 사람이다. 민심을 그런 식으로 수습하였다. 은근 슬쩍 사실은 오랑캐인데 우리는 너희 편이다. 만약에 도르곤이 처음 와서 북경을 무력 공격 함락을 하였다면 그의 회유작전은 통하지 않았다. 조선의 소현세자는 중원의 주인이 바뀌는 그 역사적인 그날을 현장에서 지켜 보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명이 몰락하고 청이 뜬다는 얘기를 백번 듣는 것 보다 그 현장에서 본 소현세자의 마음은 훨씬 동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도르곤은 북경에 함께 들어온 소현세자에게 불타고 남은 자금성의 전각 중 한 곳을 내어주고 생활하게 한다. 소현세자는 그 중에 아담 샬 (沕若望/Johann Adam Schall von Bell/1592~1666) 예수회 신부를 만나서 천주교도 접하고 서양의 역법이나 과학 기술 등을 접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소현세자가 북경에 들어오고 나서의 일정은 심양일기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빠졌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른다. 그 기록이 중간에 없어졌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북경에서의 행적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훼손했을 수도 있겠다. 소현세자가 실제로 북경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심양일기에서 지금은 확인할 수가 없다.
ⓐ 소현세자는 8년간의 볼모생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거기서 세계사적 변화를 온 몸으로 보고 온 사람이다. 왔더니 조선은 정치가 아직도 제자리 걸음, 그 모습을 본 소현세자는 답답했겠다. 만약에 소현세자가 빨리 죽지 않았더라면 조선도 국제정치에 밝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강국으로 재탄생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소현세자는 淸의 최강자와 친분이 있다. 외국인 신부라든가 선진문물을 배울 수 있는 루트를 알고 있다. 홍이포도 유럽에서 들어온 무기, 유럽의 무기들이 엄청 발전하고 있는 시대였다. 이걸 우리가 다 수입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여러가지 들을 소현세자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소현세자는 청과 조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의 줄타기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상한 아버지 인조, 마음에 안 드는 아버지 인조 사이에서 권력으로 목숨이 오가는 줄타기를 했던 인물이었다. 모든 긴장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소현세자가 만약에 인조 다음에 왕 위에 올랐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다르게 씌워지지 않았을까. 왜 역사 선생님들이 소현세자를 부활시키고 싶은 인물 1위로 꼽았는지를 알 것 같다. 오랑캐 하면 무데뽀 무지하고 미개하고 근데 웬걸 우리가 살펴본 누루하치, 홍타이지, 도르곤 까지 유연한 전략적 판단력을 갖고 있었고 그걸 실행시킬 능력까지 있었다. 이들을 오늘도 몰랐으면 여전히 오랑캐에 대해서 오해했을 것 같다. 우물 안의 개구리, 진짜 오랑캐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다.
ⓑ 역사의 비주류가 역사의 주류가 되는 그 과정을 생생하게 살펴 보았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 인생이 모든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오랑캐 청이 아닌 한족의 명이 현대 중국으로 이어졌다면 현재 중국의 영토, 문화, 민족정책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정을 해보면 청나라의 존재감과 의미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오랑캐는 돌아온다. 역사에는 항상 오랑캐가 있다. 새로운 세력은 그 시대의 오랑캐로 취급받는 세력이었으니까. 그 세력들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니까. 오랑캐는 돌아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