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아, 들으라!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8:32-36)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잠10:1-5)
① 잘 아시는 대로 내일은 어린이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어린이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주일 설교로 어린이의 소중함과 어린이의 좋은 특성을 테마로 합니다만 오늘은 청년인 여러분을 대상으로 마치 청년주일인 것처럼 설교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날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어린이날이라고 하면 우리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일제 시대 때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썼고 어린이를 위한 많은 글과 강연을 통해 어린이의 인격 또한 존중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어린이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열심히 글쓰고 강연했든지 그만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방정환 선생님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던 고로 천도교 신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② 자, 이제 청년인 여러분에게 본문 말씀에 있는 대로 ‘아들들아, 들으라’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봅니다. (잠8:32-33)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여기에서의 주안점은 ‘들으라’입니다. ‘이제 내게 들으라’ ‘훈계를 들어서’ 잘 들어야 합니다.
③ 특히 진리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절대적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상대적 진리의 말씀은 부모, 스승, 선배의 말입니다. 그 말들을 잘 들으면 지혜를 얻습니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④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잘 안 듣고 있다가 딴소리한다고! 꼭 그래요! 전체적인 내용을 모르면 딴소리하게 돼 있죠! 봉창 두드리는 소리한다고도 합니다. 봉창은 옛날에 창문 대용으로 문틀은 없고 방안에 빛이 들어오도록 종이를 붙여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끔 밖에서 누가 부르면 잠결에 방문을 여는 것이 아니고 봉창을 열려고 두드릴 때가 있단 말이예요! 정확하지 않고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을 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아무튼 잘 들어야 해요!
⑤ 다음은 34절,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에서의 주안점은 ‘기다리며’입니다. 여기에서의 기다림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1)
⑥ 청년들의 약점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냥 참는 것은 어느 정도 하는데 때를 기다리는 참을성은 지극히 작습니다. 혈기왕성하니까요! 피가 끓으니 참아 기다리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하지만 서둘지 않고 참아 때를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니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시37:7-9)
⑦ 그다음 35-36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여기에서의 ‘나’는 ‘지혜’를 말합니다. 앞서서 지혜를 어떻게 얻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부모, 스승, 선배의 말을 잘 들을 때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⑧ 재미있는 사자성어를 소개합니다. ‘먹은 만큼 싼다’를 사자성어로 하면 (만고진리) ‘먹은 것보다 적게 싼다.’(재산은닉) ‘먹은 것보다 많이 싼다.’ (바보아냐) ‘고장난 문을 잠궜는데 문이 안 열려 갇혀버렸다’를 사자성어로 하면 (자승자박) ‘누군가 문이 고장났는지 안에서 난리들을 치고 있다.’(오도방정)
⑨ 본문 말씀을 이어서 봅니다! (잠10: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아들이 되느냐, 근심을 끼치는 아들이 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3절,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주릴지언정 불의의 재물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되죠! 앙대요! 부모님께 근심을 끼치게 됩니다. 4-5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여기에서의 주안점은 ‘부지런함’입니다! 사실 부지런함이 은사고 능력입니다. 이것을 타고난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성경적 은사는 후천적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부지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곧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마음에 그러한 의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⑩ 두 부인의 대화를 잘 들어보세요! 한 부인이 묻기를 “매일 어딜 그렇게 다니세요?” “저요! 네~, 남편이 반찬 맛 없다고 해서 학원엘 다녀요!” “아~ 요리학원에요?” “아니요! 유도학원이요! 또 불평하면 던져버리게요!” 여러분 조심하세요~!
⑪ 아들들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들입니다. 물론 요즘 세상에서는 아들, 딸 구분이 없습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리고 역할상으로는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간단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라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영향력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스스로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진단해야 합니다.
⑫ 그러면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인터넷에서 그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남성이라면 ‘꼭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독립심, 인내심, 적극성, 용감성 따위가 사회문화적으로 남성 일반에게 일정하게 틀지워진 채 남성의 모습으로 요구받게 되었다.” “남성적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신사, 터프함, 카리스마, 강인함, 듬직함, 말수가 적음 등과 같은 것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부드러운 남성, 꽃미남과 같은 것이 남성의 특징으로 부여되기도 하지만 ...” “그동안 남자의 남성성 그리고 여자의 여성성은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 남성성과 여성성도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다. 원래 남녀 차이보다 여성과 여성과의 차이, 남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더 큰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러한 본능을 왜곡하여 인간을 남녀로 분류한 제도가 가부장제다.”
⑬ 모두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데 핵심적인 것은 남성성이 만들어지는 곳이 가정이라는 것이고 그 가정에서의 남성성은 앞서 인용한 글에서처럼 ‘독립심, 인내심, 적극성, 용감성 그리고 거기에 책임감을 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⑭ 이제 결론으로 ‘아들들아, 들으라!’ ‘독립심, 인내심, 적극성, 용감성, 책임감’을 갖고 진리의 말씀을 잘 들을 것이며 참고 기다리면서 불의의 재물에 손대지 말며 부지런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싱어송/송철호목사)
♬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