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와 코리아 의 개괄적 간추린 역사]
리 또는 이란말은...코리아..할 때 리입니다. 고구려도 일제가 바꾸어주기전엔 고구리이죠..일본에서는 고쿠리라고 합니다. 광개토태왕때부터는 국호를 고리(코리,가오리,구리,겨례,꼬레)라고 정했습니다...이는 본래 그들이 강태공시절에도 있었던 구리를 그대로 다시 쓴것이죠...강태공 이전에도 배달시대 치우천황도 구리의 황제였습니다....구리는 리의 총연맹이란뜻에서 구9는 주역에서 가장 크다는 뜻입니다...리는 큰사람,대인들이라는 뜻이고..말을타는 높은 사람 지배층이고 각궁이라는 최첨단 활을 쓰는...비유하자면...일본에서 사무라이계층하고...일반 하층민계층하고 확연히 다른 인종이자 다른 집단계급인데...그 리...라는 지배층 계급들이 처음엔 부리(부리야트.부여.바이칼호일대,최초로 불을 발견한 불+리+야트,복수,들)에서 세력이 분화하여...요하일대의 홍산문명과 중원의 동쪽의 비옥하고 남으로는 월남에서 북으로는 길림까지... 광대한 평야지대를 다스리며 번성한 것이 동이문명입니다...반면..한족은 서쪽 낙양과 시안(장안)에서...동쪽으로 감히 나오지 못했죠...삼국지 위촉오 역사도 그 안에서 일어난 40년밖에안되는 역사일뿐이고...춘추전국시대도 그 안에서 일뿐인데...몽골징기스칸때...동이문명이 싹 갈아엎어지면서...중원의 주인이었던 고구려백제신라..그리고 고려말까지의 역사는...저물고..심양과 만주로 밀려났습니다...공양왕을 원나라가 심양왕이라고 격하시킨것이 그 역사의 한부분이죠...즉...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의 고려는...옛 대륙 백제 신라 고구려를 총망라한 대제국이었는데...고려말기에 몽골이라는 초대역사적인 사건으로 대고려는 심양(개경)으로 위축되고...원나라 말기에 홍건적 주원장이 강남땅(양자강일대,고려의 남경)에서 명나라를 세우면서...여전히 대륙의 원래주인으로 생각하고있던..고려의 심양으로 사신을 보내어 거사를 일으켰다고...보고합니다...이는 주원장도 초창기에는 고려의 백성으로서 의병을 일으켜서 원나라를 몰아내겠다는 의미이죠...이때...강남에 속한 전주(대륙)에서 한 집안이었던 이성계와 주원장은 호형호제...관계였고..천하의 호걸 이성계도...자기보다 더 큰 호걸 주원장에게는 끔뻑 엎드리고 숙이는 사이였다고 봅니다...훗날 이성계가 심양으로 밀려난 고려에서 만주의 열악한 여진족들을 격파하면서...고려의 신흥무관으로 성장하였고...주원장은 원나라를 무너트리면서...북경일대를 차지하면서 한족으로서는 최초로 북경을 지배하는 역사를 갖게됩니다....한편...이성계는 심양의 고려를 점령하면서...명과 조선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연맹이자 형제관계를 넘어선 군신관계가 됩니다...주원장이 엄청 무서웠다고합니다...최고권력자가 된이후..주변에 함께 도왔던 공신들이 99% 다 숙청당했을정도였으니...이성계가...오죽했으면...조선은 군대도 없고 종교도없고..칼대신 농사만짓는 순박한 나라로 자처하며...요하일대의 개경(심양)에서...지금의 서울땅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한것이지요...조선과 명은 산해관을 기점으로...영토가 나뉘어졌지만...조선은 수도가 너무 멀리 남하한바람에...만주일때까지 지배력과 치안을 확실하기어려운 점이 있었지만..그래도 공식적으론 만주가 조선령은 맞습니다...산적때(여진족)들때문에..잘 가질않았죠...조선이 안정된때 세종대왕때...처음으로 고려사를 정리하고..한반도지리서가 최초로 발간됩니다...그때...고려사에있던 지명들이 어디인지몰라..개경은 개성이되고..대륙전주는 오늘날 전라도 전주가되고...북경의 동쪽에 산동반도가 강화도(비가많이오면 바다처럼 산동반도는 대륙과 분리됨)는 오늘날 서해섬 강화도로 이름짓고...하여간에..고려사와 옛 동이역사의 지명들은 한반도에서 다시 태어납니다...세계적으로 이렇게 90%이상 완벽한 도플갱어는 없죠...일제가 만들어준 우리 국사책의 청천강,백마강,황산벌,압록강,사비성,웅진성,을지문덕무덤,유리왕무덤,연개소문유적,장보고절,보장왕무덤,의자왕무덤...모두모두 대륙에는 있는데...한반도에는 없지만...모두 지금의 대동강으로 추측한다. 백마강은 금강으로 추정된다...이런식의 추정된 기술만있을뿐...근거는 전혀없는 소설식일뿐이죠...끝으로 한마디만 더...경주에 있는 인위적으로 조작한 몇개빼고 나머지 무덤 고분군들은 전부 파보면 고구려의 지방 칸들의 무덤이며 광개토태왕이 하사하신 금속그릇을 머리에 두고 있는 모습입니다....경주는 고구려가 내분할 시기에...대륙동쪽의 신라가...해류를 따라건너와서 경상도지역을 점령하면서...고구려멸망이후엔 길림까지 접수합니다...길림은 계림과 같은 말입니다...즉...발해는 옛고구려땅인 발해만과 북경일대를 거점이었고...만주쪽이란것은 역사왜곡인것이지요...길림에서 일어난 김씨의후손이 금나라를 세우고...후에 청나라를 세우면서..국호를 애신각라...신라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옛 삼국통일한 통일신라의 대륙땅 전체를 회복하겠다는 국시인것죠...
백제의 본거지는 황하이남의 서쪽 즉..요서이고...황하 동쪽은 북경이고 구리,즉 고구려의 본거지이며...
산동지역의 남동쪽은 신라가 본거지이며...요서백제는 해양으로 진출하여...22담로(탐라,타무라,티무르,틱라)를 개척하였는데...그 광역이 일제가 대동아전쟁할때 최대영역이었던 동남아까지 펼쳤던것입니다..흑치상지는 핀리핀의 담로였다고합니다...물론 한반도 충청,전라지역도 백제 담로였는데...대륙에서 왕위계승문제로 무녕왕이 첫째부인에게 독살당하면서...무녕왕릉이 공주지역에 옮겨져있는것이..일제가 대동아전쟁때 요서백제지역에서 옮겨온것인지...아니면..무녕왕의 일파들이 시신을 거두어 한반도로 피신해서 공주에 요서백제와똑같은 양식의 무덤을 만든것인지...모호한 상태입니다...우리역사를 이렇게까지 편집해놓은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인학자들이 우리보다 우리역사를 더 많이 연구하고 잘알고있었음에...우리가 잘못살아온 시대적 반성이 필요한 점이라고 지적할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