訥窩文集(눌와문집)李若烈(1765 ~ 1836 )訥窩文集卷之二 詩... 晝寢夢讀退陶書又與其子孫二人談話覺而以記呈愼承宣黃岡 性眞 求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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晝寢夢讀退陶書又與其子孫二人談話覺而以記呈愼承宣黃岡 性眞 求和 聖師今不作晝寢誰警余所以陶山翁儼然臨華胥 欲揉朽木姿授我舊遺書半枕堆一部片晷敵三餘 覺來若有記怳惚圖畫如倘非聖學摹應是四七儲 授訣笑圮橋牖迷邁越車依然摳我衣折旋溪上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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況與賢子孫讀罷更摻裾非無許多雅二人識面初 或有肯構者志勤繼終譽夙昔高山仰幸從睡鄕攄 矧是鄒魯鄕遺風猶未除從今廢百家抱此勤卷舒 出谷聽鶯鳥對案掃蠹魚吾衰不其甚精誠發蘧蘧 孜孜學著力瞿瞿職思居冥感有如此暴棄堪可歔 徒讀未有得眞覺夢是虛更與黑甜謀日日到石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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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黃岡挽 德裕盤據壯猿鶴闢洞壑淑氣所停滀瓌奇多名碩 於人見夫子家世何赫赫黃皐爲其祖持憲迺其親 自從獲有道受業勉日新述蛾仍紹緖屠龍繼蜚英 實地勤造詣餘事就功名幾乘桓典馬再佩呂虔刀 伏蒲仍讓史奉檄適傚毛衣緋從睿簡晩年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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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榮抱痛從含索絶意更彯纓娛老適我願拘拘更 何營顧余顓蒙甚中歲獲從遊直以不挾長聲氣動 相求幾秉留髡燭頻登御李筵篔簹聯驛店鞍馬指 西天抉摘來名勝晤言遣幽悁入城歲已晏同館慰 孤羈莫省在何年猶夫入追惟自從各賦歸相望杳 川原閡闊雖間歲書信猶源源忍說前春進公已帖 牀玆告餞摻我袂曰今便永離徊徨不忍發公泗我 淚滂迢迢東野書胡爲入我堂强衰來一哭對孤欲 無辭卽眞知何日剛恨未攀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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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진(愼性眞)
[문과] 정조(正祖) 1년(177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위(06/33)
생년 임신(壬申) 1752년 (영조 28)
합격연령 26세
본인본관 거창(居昌)
거주지 안의(安義)
선발인원 33명 [甲3・乙7・丙23]
전력 통덕랑(通德郞)
문과시제 논(論):인인능악인(仁人能惡人)
[부(父)]
성명 : 신인명(愼認明)
[조부(祖父)]
성명 : 신수이(愼守彛)
[증조부(曾祖父)]
성명 : 신부(愼桴)
[외조부(外祖父)]
성명 : 박성운(朴聖運)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
본관 : 미상(未詳)
[출전]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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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진(愼性眞)
[음관] 문음보(文蔭譜)
자(字) 정보(精甫)
생년 임신(壬申) 1812년 (순조 12)
본인본관 거창(居昌)
초직 정유(丁酉) 식(式)
[부(父)]
성명 : 신인명(愼認明)
관직 : 정언(正言)
과거 : 문과(文科)
[조부 - 조부1:부의 부]
성명 : 신수이(愼守彛)
관직 : 교관(敎官)
관직 : 음관(蔭官)
[증조부 - 증조부1:조부1의 부]
성명 : 신부(愼桴)
[4대 - 4대조1:증조부1의 부]
성명 : 신경호(愼景昈)
[5대 - 5대조1:4대조1의 부]
성명 : 신당(愼譡)
관직 : 현감(縣監)
관직 : 음관(蔭官)
[6대 - 6대조1:5대조1의 부]
성명 : 신복형(愼復亨)
[7대 - 7대조1:6대조1의 부]
성명 : 신중행(愼仲行)
[8대 - 8대조1:7대조1의 부]
성명 : 신선갑(愼先甲)
관직 : 감사(監司)
과거 : 문과(文科)
[외조부(外祖父)]
성명 : 박성운(朴聖運)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송경청(宋景淸)
본관 : 미상(未詳)
[출전]
『문음보(文蔭譜)』 冬(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929.4-M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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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진慎性眞
영어공식명칭 Sinseongjin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심민정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효자.
[개설]
자는 정보(精甫), 호는 황강(黃岡)이다. 거창 출신으로 1777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를 지냈다. 효행으로 1857년 정려를 받았다.
[가계]
아버지는 신인명(認明), 할아버지는 취한당(就閒堂) 신수이(守彛)이다. 부인은 두 명이다. 첫 번째 부인은 증숙부인(贈淑夫人)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외조부는 파평(坡平) 윤씨 윤장언(尹長彦)이고, 아버지는 송경청(景淸)이다. 두 번째 부인은 선산 곽씨(善山郭氏)로 외조부는 능주 구씨(綾州具氏) 구봉조(具鳳朝)이고, 아버지는 곽응*(郭應*)이다.
[활동 사항]
신성진(慎性眞)[1752~1830]은 학행을 닦아 177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좌부승지를 역임하였다. 수승대 경내에 있는 정려각의 정려문에 의하면, 신승진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할아버지가 반찬을 주면 늘 부모에게 주고, 부모가 아플 때에는 똥을 맛보았다. 부모 생전에는 성심으로 공경하였으며,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에는 눈이 오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울면서 성묘했다.
[묘소]
묘소는 거창 안의현 도림촌 뒷산 임좌(壬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57년 "효자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신성진지려"로 정려되었다.
[참고문헌]
『거창 신씨 세보(居昌愼氏世譜)』
「효자 신성진 정려문」
거창군사 편찬 위원회, 『거창군사』(거창군,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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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황강고택, 도문화재 제663호 지정거창신씨 집성촌 대표 가옥
거창군은 ‘거창 황강고택(居昌 黃岡古宅)’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3호로 지정 고시됐다고 25일 밝혔다.
위천면 황산1길 73-2에 소재하고 있는 황강고택은 황산마을의 요수(樂水) 신권(愼權)의 후손인 신성진(愼性眞)이 건립한 고택으로 조선후기에서 일제 강점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황산마을 거창신씨 집성촌의 대표적 가옥이다.
신성진(1752년∼1830년)은 1777년(정조1년, 당 26세)에 문과급제하여 40여 년을 공직에 봉사하며 승정원 좌부승지를 역임했으며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彛)의 손자로 호(號)가 황강(黃岡)이라 이 집을 그 후손들은 ‘황강고택’이라 부르고 있다.
황강고택은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한옥으로 한 일자(一字)형 건물 3동을 정남향 석 삼자(三字) 형태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반듯하게 배열된 형태로 여타의 집과는 달리 사랑채의 대청북면을 활용해 그 공간에 4대 조상의 위패를 봉안할 가묘를 설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해용 문화관광과장은 “지속적으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보존해 나가겠다”며 “주변의 수승대, 황산마을 옛담장, 황산리신씨고가, 구연서원 등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